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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토)
팔, 다리에 선명한 선이 생겼다.
신발을 신은 부분과 바람막이 점퍼를 입은 부분을 빼고는 정말 까맣게 탔다.
요즘 사진 속 내 모습을 보며 자주 경탄한다. 너무나 현지에 잘 어울려서.
피부도 거뭇거뭇하고, 옷도 어디서 주워온 것 같이 입고 있는 것이, 이 마을 어딘가에 사는 아이가 아닌가 헷갈리곤 한다.
나는 현지에 맞게 색칠되어가고 있다.
나는 햇빛이 비치는 대로, 그냥 잔뜩 쐬이기로 했다.
어딜가든 햇빛이 있는데, 언제나 숨어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사실상 불가능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여행하면서 햇빛을 피하는 건 불가능하니 그냥 햇빛을 만끽하기로 했다.
썬크림. 그것은 여행 한두번해본 아마추어들이나 바르는 것이다.
진정한 여행자는 햇빛이 두렵지 않다!!
(하지만 요즘 주근깨가 많이 생겨, 썬크림을 발라야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이긴하다)
5/20(일)
민석이의 생일이었다. 생일상이 푸짐했다.
찬희쌤께서 민석이가 좋아하는 장조림을 비롯해, 전이며 샐러드며 가지볶음까지 요리해주셨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재능껏 민석이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젓가락을 만들어준 친구도 있었고, 그동안 열심히 번 돈으로 과자를 산 친구도 있었다. 설거지 대신해주기, 1시간 마음대로 이용하기 쿠폰을 만들어 준 친구도 있었다.
나는 민석이를 위해 실팔찌를 만들었다.(뒤에 있는 것이 내가 만든 실팔찌다)
내 팔목에 실팔찌 4개가 걸릴때까지 나는 팔찌를 계속 받기만 했는데,
이제 나도 다른 사람을 위해 팔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러종류의 실팔찌 중 ‘작명루’라는 가장 기본 팔찌 만들기에 도전했다.
팔찌를 만들 실 5가닥을 고르며 상당히 많이 고민했다.
어떤 색을 넣어야 잘 어울릴까. 어떤 색을 민석이가 좋아할까.
결국 나는 고민고민하다가 그냥 내가 마음에 드는 실을 뽑았다.
빨간색, 주황색, 흰색, 연보라색, 초록색. 그렇게 잘 맞는 조합같지는 않았지만,
‘실팔찌는 어떤 색을 넣어도 다 예쁘다’는 호근이의 말을 믿고, 일단 만들어보기로 했다.
나는 실을 무릎사이에 끼우고 잠들기 전까지 열심히 ‘검지 손가락으로 실 끓어오기-끓어온 실을 중지, 약지로 옮기기-양 손의 실을 팽팽하게 잡아당기기’를 반복했다.
처음 해보는 서툰 솜씨가 실팔찌에 그대로 드러났다.
앞부분은 실을 세게 잡아당기지 않아 느슨하게 풀렸고, 중간부분은 실을 손가락에서 빼어놓고 쉬는 사이에 실 순서를 까먹어 패턴이 엉켰다.
딱 예쁘게 잘 만든 팔찌는 아니었다.(사실 조금 부실한 듯 보였다)
그래도 나는 이것이 내가 만든 ‘첫 실팔찌’라는 점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앞으로 이만큼 공들인 팔찌는 없을테니까.
처음이고 서툴렀기 때문에 정말 더 열중해서 끙끙대며 눈을 부릅뜨고 만든 팔찌였다.
점점 익숙해지면 언젠가는 무의식 중에도 쓱쓱 팔찌를 잘 만들테지만, 그때는 이만큼의 정성이 담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실팔찌는, 앞으로 내가 만들 그 어떤 실팔찌보다도 값진 팔찌인 것이다.
민석이도 이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민석이 팔목에 팔찌를 묶어주려고 보니, 이미 5개는 넘게 팔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팔찌를 묶을때 소원을 빌면 팔찌가 끊어질때 소원이 이루어진다는데, 이 모든 팔찌들에 담긴 민석이의 소원들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5/21(월)
터키 거리를 거닐며 발견한 터키의 특징은
국민들이 자기나라 국기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이다.
상점에도, 마트에도, 트럭에도, 집앞에도 어딜가나 터키 국기가 걸려있다.
터키 국민들은 모두 애국자인 것일까?
(아니면 설마 이것도 어떤 특정 집회가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단 국기일까?)
나는 국가 기념일에도 태극기 다는 것을 자주 잊어버려 그냥 지나치곤 했었는데, 이렇게 매일같이 국기를 열심히 다는(이유야 어찌됐든) 터키 사람들을 보니 그동안 내가 나랏일에 너무 소홀했단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태극기를 거는 날은 꼭 기억해서 제대로 게양해야겠다.
5/22(화)
윈드서핑 보트 위에서 균형을 잡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올라가자마자 곧바로 자빠졌는데, 이제는 보트를 타고 앞으로 나간다.
아직 불안하긴 하지만 방향도 튼다. 장족의 발전이다.
‘바람, 네가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나는 이은재다!!’
유치찬란하지만, 나는 정말 이런 생각으로 거세게 몰아오는 바람을, 입술 꾹 깨물고 두다리로 버텨섰다.
오늘은 이안(서핑 선생님)을 따라 꽤 멀리까지 나갔다.
예전에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람들이 떨어져 죽은 곳이었다는 바다 한가운데까지 갔다.
가는 길에 이안이 내게 이름과 기분을 물어봤는데,
나는 이 질문이 왠지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의 의식을 확인하기 위해 하는 질문같이 느껴졌다.
나는 입을 헤 벌린 채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었고, 정말로 그런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멀리까지 어떻게 가긴 했는데, 돌아오는 것이 문제였다.
배에 다시 올라타 마스트를 잡았는데 방향이 문제였는지,
바람이 너무 셌던 탓이였는지 올라가자마자 고꾸라 넘어졌다.
함께 왔던 다른 아이들은 하나둘씩 모두 가버리고, 어느새 나는 대장님과 둘만 남겨졌다.
나는 안간힘을 썼지만, 배에 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대장님과 지중해 한가운데에 표류되었다. (사실상 나 혼자라고 해야겠다. 대장님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나를 두고 떠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장님께서 내 몸이나 보트에 끈으로 사용할 만한 것이 있는지 잘 찾아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런건 없었다. 결국 나는 세일을 배 뒤에 얹히고, 대장님 배를 잡고 끌려가기로 했다.
나는 정말 이게 내 마지막 생명줄이란 생각으로 있는 힘을 다해 대장님 배를 움켜잡았다.
‘놓치면 이대로 끝장이야!’
뭔가 모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Life of 은재’를 찍는 기분이랄까.
(호랑이와 표류되지 않은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다행히 중간에 모터보트가 나를 구조하러 왔고, 나는 겨우 목숨을 건져 육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쓰릴 넘치는 여정이었다.
내가 오늘 알게 된 것은 내가 정말 의지가 약하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 바다 한가운데 남겨지면서도 힘써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배 위에 올라타는 것을 실패한 후에는,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생각으로 주저앉으려고 했다.
눈보라치는 스키장에서, 배가 갑자기 지연되었을때 그랬던 것 같이 나는 상황에 대처하려하지 않았다.
오늘은 내 곁에 대장님이 계셔서 어떻게든 살아돌아가려고 노력했지만,
아마도 똑같은 상황에 혼자 있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쉽게 내 자신을 포기해버리는 나를, 여행하며 자주 목격한다.
이렇다 정말 살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냥 포기하고 죽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누가 없어도, 스스로 끝까지 매달리는 것을 연습해야겠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일간 ‘라마단’을 하기로 했다.
라마단은 원래 이슬람교도들이 한달간 해가 떠있는 동안 금식을 하며 가난한 사람들의 배고픔을 느껴보는 것인데, 우리는 약식으로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금식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화요일 저녁은 라마단 전 마지막 저녁식사였다.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라고나 할까.ㅎ
우리는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이 저녁을 먹었다.
평소처럼 수다를 많이 떨지 않고, 모두 각자의 음식에 집중했다.
사진으로만 봐도 분위기가 침체된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실제로도 모두들 얼굴빛이 어두웠다.
삶의 유일한 희망이자 목표인 음식을 내일부터 자유롭게 먹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마지막’이란 말에 사로잡혀, 한 숟갈 더, 두 숟갈 더, 그렇다 결국 한 그릇을 더 먹었다.
본능적으로 더 채워두고자 했나보다.
과연 한끼에 고기 10키로를 먹는 비밀병기들이 밥을 굶을 수 있을까?
(결과가 궁금하다면 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5/23(수)
오전 9:30- 아침으로 빵과 시리얼, 우유를 먹었다.
오후 2:10- 점심으로 파스타와 고기, 감자, 버섯, 파프리카를 넣은 요리를 먹었다.
우리는 딱 3시가 되면 먹던 음식도 뱉어내기로 했기 때문에,
한 숟갈 먹고 시계보고, 또 한 숟갈 먹고 시계 보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정말 빠른 속도로 6그릇을 넘게 더 먹었다.
오후 2:50- 갑자기 냉동고에 수박이 있다는 것이 생각나, 급히 수박을 잘랐다.
3시 5분전에 겨우 수박을 다 자랐고,
아이들은 과자부스러기를 쪼아먹는 비둘기들처럼 모두 수박에 달려들어 재빨리 수박을 흡입했다.
수박을 안먹으면 정말 큰 일이 날 것처럼 맹렬하게 수박을 먹는 모습이, 먹잇감을 앞에 둔 짐승을 연상시켰다.
오후 4:25- 라마단을 시작한지 아직 1시간 25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벌써 공허한 느낌이 든다. 평소에 먹으라고 할때는 항상 별로 내키지 않았는데,
먹지 말라고 하니 괜히 뭔가 더 먹고 싶다.
오후 7:00- 세계사 시험을 봤다. 보통 때 같으면 저녁을 먹고,
식곤증으로 눈이 반쯤 감긴 상태에서 시험을 봤을텐데,
오늘은 맑은 정신으로 시험을 볼 수 있었다.
덕분에 글씨 쓰는 속도도 이전보다 빨랐고, 머릿속에서 정리도 더 잘 되었다.
이번에 세계사 시험을 잘 봤다면, ‘라마단’ 덕분이리라.
오후 9:00- 지금 이 상태가 너무 편하고 좋다.
음식으로 배가 더부룩하거나 속이 부대끼지 않는다.
저녁을 먹었다면 음식을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데 분주하고 바빴을 시간인데,
지금은 굉장히 조용하고 평화롭다.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여유 시간이 생겼다.
평소엔 밥 먹고 이것저것 정신없이 하느라 놓쳤던 해질녘의 하늘을, 오늘 저녁에는 보았다.
밥을 한끼 안먹으니 몸도, 마음도 가볍다.
어쩌면 그동안의 식사가 정말 불필요하고 과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배고프지 않으며, 몸이 붕떠있는 듯한, 약간은 성스러운 상태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후 10:00- 주변 순찰에 나섰다.
오전에 먹다 남은 빵 냄새를 맡고, 배를 움켜잡는 우진 형님이 포착되었다.
분명 배가 불렀을 때는, 이 거실을 몇번이고 왔다갔다 하면서도 빵냄새를 의식하지 못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고소한 빵냄새가 거실 전체에서 풍겼다.
우진 형님은 그렇게 잠시 배고파하다가, 독해 TA를 받으러 올라가셨다.
쇼파에 시체처럼 엎어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해인쌤이었다.
에너지가 없으신지, 저렇게 몇분동안 쓰러져 계셨다.
밝고 힘차던 해인쌤은 어디가셨는지..
일기를 쓰고 있는 정우 발견.
배고파서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았는데, 할일을 찾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매우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던 참에, 정우의 진심어린 호소를 듣고 빵터졌다.
“배고파서 죽을 것 같아. 라마단 진짜 왜 하는거야?”
ㅋㅋㅋ
그래, 정우야. 이래야 너 답다.ㅎㅎ
침대에 엎드려있는 지원형님과 민석이.
신기하게도 서있는 사람보단 이렇게 엎드려있거나 기대어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몸을 지탱할 힘이 없어서 그런걸까?
찬희쌤과 그 아래 민승쌤.
민승쌤은 하반하에서 밥을 제일 많이 먹는 분이신데, 굶으면서 많이 힘드셨을 것 같다.
그런데도 민승쌤은 몇분 후 베란다에 나가 줄넘기까지 하셨다. 정말 대단한 분이다.
5/24(목)
오전 5:30- 몸에 힘이 없다. 그러나 배는 안고프다.
오전 8:30- 책을 읽고 있는데 글이 눈에 잘 안들어온다.
오전 9:00- 아침을 먹었는데, 모두들 생각보다 적게 먹었다. 먹는 속도도 많이 느려졌다.
라마단을 하면 오히려 식욕이 줄어든다는데, 우리도 그 효과를 보고있는 것 같다.
오후 2:30- 라마단이 3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음식준비가 덜 되어서,
밥과, 물김치, 샐러드만 먹게 됐다. 우리에겐 음식 투정을 부릴 시간이 없었다.
주어진 음식을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많이 먹는 것이 급선무였다.
아침에 먹던 빵까지 동원해 배를 채웠다.
오후 2:58- 3시 2분 전에, 끓이고 있던 닭도리탕이 완성됐다.
비겁한 자식. 될꺼면 빨리 되든가. 2분전에 완성되는 건 또 뭔가.
우리는 딱 한 숟갈씩만 국물을 맛보았다.
뜨끈뜨끈 국물이 아까 먹은 메마른 밥을 쑥 내려주는 듯했다.
나는 국물을 더 달라고 아우성치는 내 배를 무시한채 입만 다셨다.
내일 아침에 먹으면 더 맛있겠지..?!
오후 10:00- 대장님께서 사주신 꿀을 ‘약으로’ 먹었다.
(라마단 기간에도 약은 먹을 수 있다)
매일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꿀을 먹으면 건강이 좋아진다기에
열심히 챙겨 먹어보라고 하셨다.
7시간 만에 무언가를 먹는것이라 그런지, 꿀이 정말 꿀맛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꿀을 먹은 그 다음이었다.
목이 타서 물을 찾고 있는데,
문득 라마단 기간에는 물도 마시면 안된다는 규칙이 떠올랐다.
‘약이니까, 약 먹은 다음에 물 마시는 것까지는 허용되는 거 아냐?’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와 타협하려 했지만, 왠지 이런 내 자신이 비굴해보였다.
나는 결국 내 몸이 계속 물을 갈구하도록, 그냥 이 상태 이대로 놔두기로 했다.
이 또한 목마른 이들의 고통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테니.
나는 침을 꿀꺽꿀꺽 삼켜가며, 내 스스로가 만들 수 있는 최대한의 수분을 몸에 공급했다.
운동하는 지원형님과 호근이 발견.
이제 다들 슬슬 라마단에 적응해가는 것 같다.
어제는 나태해져 있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오늘은 각자의 방법으로 저녁 시간을 잘 사용하고 있다.
오후 10:35- 아래층에서 음식 냄새가 올라오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누군가 내일 먹을 것을 미리 요리하고 있는 걸까?
내려가보고 싶지만, 그러면 금새 배가 고파질 수 있으므로
나는 그냥 침대에 붙어있겠다.
찬희쌤 말씀대로 정말 후각이 예민해졌는지,
이 요리에 뭐가 들어갔을지까지 냄새로 느껴진다.
왠지 카레인 것 같은데, 고기가 약간 들어간 것 같다.
감자랑 호박도 들어간 것 같다. 맛있는 음식임에 틀림없다.
5/25(금)
오전 7:00- 어젯밤 모든 것은 나의 망상이었다.
누구도 카레를 요리하지 않았으며 물론 고기와 감자와 호박이 들어갔을리도 없었다.
(대장님이 닭도리탕을 다시 끓이고 계셨던 것이었다)
나는 오전에 대장님이 카레를 만들 것이라는 말을 엿듣고,
혼자 상상속에서 고기까지 들어간 카레를 요리한 것이다.
(사실 어젯밤 나는 그 카레를 맛보기까지 한 기분이었다.)
배고픔이 사람을 이런 경지에 이르게 하다니,
내 자신에게 놀랍고, 조금은 부끄러웠다.
오전 9:00- 어제 못먹은 닭도리탕을 드디어 아침으로 먹었다.
오래오래 끓여서 그런지 국물이 정말 진하고 맛있었다.
사람들의 밥 먹는 속도가 점점 느려져, 내가 밥 먹는 속도와 비슷해지고 있다.
그동안은 밥 먹을 때 항상 불안했는데, 이제는 조금 마음을 놓고 천천히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오전 10:00- 터키쉬 딜라이트 1개와 과자 1개를 먹었다.
역시 나는 단 음식을 좋아하는지, 먹자마자 금새 기분이 좋아지고 몸에 힘이 났다.
(써니쌤께서 제가 당뇨가 있는지 물으시는데, 정말 당뇨일 가능성이 있을까요?)
오후 2:20- 닭도리탕 소스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세훈이가 아침까지 못먹었는데도 점심을 얼마 먹지 않았다.
면도 다른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아침에 남겨 놓았던 밥도 조금 밖에 안먹었다.
아침에 배가 고프지 않냐고 물었을 때도,
“저 완전 괜찮은데요. 라마단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고추전 하나 더 먹으려고 욕심내던 세훈이가, 그새 많이 어른스러워진 것 같다.
얼굴도 홀쭉하니 잘생겨지고^^
음식만 앞에 있으며 평정심을 잃고 음식에 달려들었던 아이들이,
모두 음식 앞에서 침착하고 무던해졌다.
라마단 3일의 결과였다.
음식을 조금 더 기다렸다가, 조금 더 나누어먹는 아이들이 이전과는 달라보이고, 훨씬 멋져보였다.
음식에 대한 욕심만 없어도 사람이 훨씬 품격있어 보인다는 것을 느꼈다.
라마단 전과 후를 비교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라마단 전 지원형님의 모습이다.
라마단 후 금요일 오후 지원 형님의 모습이다.
정말 단 한개도 변한것이 없이 똑같아서 깜짝 놀랐다.
얼굴 표정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똑같아, 같은 사진인가 헷갈리기까지 했다.
이건 라마단 전의 내 모습.
라마단 후의 내 모습.
얼굴 각도에 차이가 있는 것을 빼고는 마찬가지로 변한 것이 없었다.
이 사진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밥을 3일 정도는 굶어도 몸에 큰 차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시 인간의 몸은 강하다.
밥을 며칠 더 굶어도 괜찮을 것 같다.
라마단을 마치며- ‘라마단’을 한단어로 정리하면?
자유-음식으로부터, 음식에 대한 욕심으로부터, 음식을 먹은 후 느끼는 포만감과 몰려오는 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3일이었다. 덕분에 내 몸 자체를 느낄 수 있었고, 평온하고 편안했다.
첫댓글 1. 파란만장하군, 이은재! -암튼 화이팅! "바람, ...나는 이은재다!" ㅋㅋㅋㅋ 아주 좋아, 엑설런트! 생존축하 기립박수 1분 보냄 (내가 매우 좋아하는 작가 생떽쥐베리의 글 <인간의 대지> 가운데 한페이지를 읽는 기분이 들었음. 그에겐 앙리 기요메라는 멋진 친구이자 동료가 있었는데, 눈 덮인 안데스 산맥에 추락해서 살아서 돌아온 사람임. 실화.)
2. 썬크림 덕지덕지 바르기 강추. - 귀차니스트는 예방이 최고 간편함. 피부가 자외선에 한번 상하면 부작용이 끝도 없는데 엄청 고생하고 귀찮기 때문...예방이 최고 간단 간편함...썬크림 강추.
내 눈에는 라마단 이전이 조금 더 예쁘다고 느껴짐...역시 생명체는 좀 토실토실해야 살아있는 느낌이고 정이 간달까..인간은 뼈다귀가 아님...ㅎㅎㅎㅎ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감사는 지구 생명체가 시작된 이래로 동서고금 만가지 생명체가 동일하게 느껴온 것임- 이탈하지 말고 꼭꼭씹어 감사하면서 먹기를!! 푸하하.
은재양 까맣게 탄 건강한 손ᆞ발이 좋아보이네요 하루하루 상세한 기록이 최고입니다
은재의 글을 보며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나 소통 실력이 상당히 높고 깊어서. 그건 넓이도 있다는 얘긴데...더욱 놀라는 건 그런 자기 소통이 되는 사람은 번거로운 것을 싫어해서 호젓하고 고독한 '해석 시간' '나만의 자율적 시간'이 항상 모자라는데, 은재는 단체 생활의 틈바구니를 견디며 그걸 한다는 거야..놀랍군. 넓은 독방을 쓰던 사람이 고속터미널 대합실에서 생활하게 된 것과 비슷한데...잘하고 있네..전쟁통에 집을 점령군에서 빼앗기고 자기 집에서 부자유하게 사는 사람처럼..ㅋㅋㅋ.단체 생활을 잘 견디고 있군. 뭔가가 엄청 업그레이드 되는 중인가????
은재 글이 점점 더 재미있어지네^^ 마침내 윈드서핑 성공한 거 정말 축하해! 허기를. 느끼고 밥을 찾는 은재의 모습도 한국에선 드문 일 아니었니? 그만큼 건강해지고 있다는 뜻이겠지?
은재가 좋아하는 <파이이야기>가 은재이야기가 되었구나 ㅎㅎㅎ 지금이야 웃으며 네 이야기를 듣지만 정말 그 당시는 네가 너무 두렵고 힘들었을거 같아. 끝까지 힘을 낸 것 잘했고 표류에서 구출된것 정말 다행이다~
진정한 여행자는 할수 있는 한 자기 몸을 잘 보호해야하니 썬크림은 꼭 발라라.주근깨나 검은 피부가 문제가 아니라 피부건강의 문제 발생할수 있단다. 피부 벗겨지고 염증도 생기고 피부암 발생 위험도 있음~
라마단 문화 체험은 새롭고 흥미롭다.
주변 순찰은 ㅋㅋㅋ 큰 웃음을 주었어^^
꿀맛나는 꿀약..그거 참 좋은 약이다~
은재는 라마단 전 사진이 더 보기좋게 예쁘다에 한표!!
6월 2일 토욜 오후. 서울 29.6도. 하지(6.21)를 향해 달려가는 날들. 저녁이 너무도 풍성하고 깊고 아름다운 날들이다. 서울숲으로 산책을 가려다말고 네게 기요메 이야기를 제대로 해주고 가야겠다 싶어서 컴터를 켰지.(잘했지? ^^* 암!) 초창기 비행조종사들은 뻑하면 불시착을 했는데, 그건 대개 영이별이었다. 사막에-, 바다에, 안데스고원에...해발 4500미터 안데스 고원에 영하 40도가 넘는 곳에 등산지팡이도, 밧줄도, 식량도 없이, 홀로 추락해서 목숨만 건져..이 지구상 어떤 생명체도 한 적이 없는 '생존자로 돌아온' 건 '앙리 기요메'였다. 그는 진짜 '어린 왕자'같은 실존 캐릭터를 지녔던 인물이지.
그는 이렇게 말했어.
"눈 속에서는 생존 본능이라는 게 사라진다네. 이틀, 사흘, 나흘을 걷고 나면 자고 싶은 생각만 간절해지거든. 나도 그랬어.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지. ' 내 아내는 생각하겠지. 만약 내가 살아 있다면 걸을 거리고. 동료들도 내가 걸을 거라고 믿을 거야. 그들은 모두 나를 믿고 있어. 그러니 걷지 않는다면 내가 나쁜 놈인거야.' 이렇게 말이야."
그래서 그는 온몸이 동상이 심해지고 더 이상 도저히 생존 불가의 지경까지 걸었는데, 마지막 생각은 자기가 실종자 처리되어 '아내와 아이가 보험금도 못받고 고생하는 것'을 막기위해 죽을 힘을 다해 시체가 발견되기 쉬운 바위 위에 가서 죽으려고 이동했지..그러다가 구조대에
@지초난초 발견되었어. 그는 구조되었고, 동료들의 기립박수, 진정 우러나는 찬사를 눈물겹게 받았지만 치명적인 동상 탓에 오래 견디진 못했어...기요메는 곧은 성품과 따스한 유머와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동심을 가진 그런 인물이었다. 그의 책임감은 온통 진정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라 얼마나 아름답고 따뜻한지...정말 눈물 겹지..
네 글을 읽고 기요메 이야기를 하게 되다니...오-, 극적이야. 이은재. 나는 이제 서울숲으로 간다. 하늘이 깊고 푸르게 어두워질 때 돌아올거야..ㅎㅎㅎ
사진과함께 자세한 라마단체험 덕분에 체험을 함께 한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생생했어~
은재야. 당뇨 걱정은 마. 너 건강검진 피검사 같은 거 했는데 그런 소견은 없었으니. 니가 원래 달달한거 좋아하잖냐 ㅎㅎ.은재야 보고 싶어. 너 오면 같이 가고 싶은 곳...먹고 싶은 거..리스트 짜놓을게 ㅎㅎ 그때까지는 다시 못해볼 그곳에서의 모든 경험들을 즐겁게 맞이하길~^^♡♡♡싸랑한다.은재.
은재야 작명루가 아니라 '장명루'인건 알지? ㅋㅋㅋ 나름 잘 지내는 것 같아 참 기특하다. 민승이랑 해인이 한테도 안부전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