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간으로 그제, 그러니까 5월 7일 텍사스주 댈러스시 교외의 한 쇼핑몰에서 있었던 어느 괴한의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지요. 8명이 사망을 했다고 합니다. 이 중에 3명이 한인 동포였다고 알려져 한국 국민으로서 마음 아프게 생각합니다.
범행 동기가 인종 혐오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해져 우려를 자아내고 있지요. 미국이나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인 동포들이 긴장하며 살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사건이 된 것입니다. 참으로 인간은 불안을 떨치고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위험한 요소들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앞일을 미리 알 수 없는 한계 상황적인 실존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른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언27:1)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4:14).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도 위의 말씀처럼 잠시 동안의 안개와 같은 것인지 모릅니다. 희생 당한 한인 동포 가족은 단란하고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던 가족임이 분명합니다. 30대 부부인데 남편은 벼호사로, 아내는 치과 의사로 살고 있었으니 그 정도면 미국 사회에서도 생활면에서 남부럽지 않은 안정된 계층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6살, 3살 두 자녀를 두고 있었으니 그들의 삶이 하루 하루 보람되고 즐거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불행이 닥친 것입니다.
부부와 3살 아이가 총격에 의하여 사망하고 6살 아들은 어깨에 총을 맞아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고 하는군요. 일순간에, 다복했을 이 가정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짧았던 행복이었습니다.
사람의 운명을 갈라치기 할 수 있는 계기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들일 수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가족이 그 쇼핑몰, 그러니까 아울렛에 오게 된 목적이 6살 아들의 옷을 바꾸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큰 아들이 이 사건이 있기 4일 전에 생일이었다고 합니다. 그 때 옷을 선물 받았는데 사이즈가 맞지를 않았던 것이지요. 작았던지 좀 컸던지 하였겠지요. 그래서 바꾸러 왔던 것입니다.
더욱이 안타까웠던 것은 아울렛에 오기 전에 어느 가정의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아 참석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때 함께 초대 받은 지인의 말처럼, 그 가족이 5분만 더 파티 장소에 머물렀다 갔더라도 참사를 면했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5분의 시간이 그들의 운명을 바꾼 셈입니다. 좀 서둘러 간 것 뿐인데, 그런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삶에는, 그러니까 일상에서는 '만약에'라는 가정이 설정될 수 있지요. '만약에 그랬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인데..' 후회와 애통함이 따를 수 있는 사건들 말입니다. 이 가정도 만약에 부부가 옷을 바꾸지 않기로 하고 그냥 두었다가 동생에게 입히든지 아니면 좋은 마음으로 '도네이션'(donation), 즉 사회에 기부를 하던지 하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너무 성급하지 않고 느긋하여 주어진 기회를 즐길줄 아는 여유도 때로는 유익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유별난듯한 성격을 지양하고 털털하게 어울려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의 유연성도 길러야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권유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필요한 것 같구요.
그러나 이 가정이 불행을 만나도록 한 것은 악한 사탄의 흉계임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교회를 잘 섬기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 가정을 불행에 빠뜨리려고 사탄은 이미 작정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감정에 가득찬 총기 난사범을 이용하여 그 가족을 표적으로 삼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셨듯이 사탄의 목적은 행복을 도적질 하는 것과 살인과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이니까요. 사탄은 영혼을 멸망케 하는 도적이요, 행복을 빼앗는 도적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10:10)
희생당한 가족의 영혼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천국에 이르러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계실 것입니다.
지역 사회에서 평판도 좋았고 교회 생활도 충실했었다는 이 가정에 불행이 찾아온 것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남겨진 어린 아들을 주님께서 끝까지 돌보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슬픔에 잠겨 있을 가족들에게 크신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향한 신앙 생활에도 충실하고 사회로 부터도 좋은 평판을 받을 만큼 봉사 황동에도 인색하지 않았던 모범적인 이 가정이 왜 이런 불행을 당했을까? 욥의 고난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욥은 하나님 보시기에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기에 전혀 흠결이 없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 욥을 비난하고 힐책하려는 사탄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셨으니까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留意)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욥기1:8).
그러니까 욥은 당대에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그런 욥이 그저 한없이 밉기만 했습니다. 그런 욥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닮을까 시기한 것이지요. 욥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는 것을 싫어한 것입니다. 그래서 욥을 파멸시키려고 획책한 것입니다.
사탄은 욥이 하나님을 잘 믿고 따르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욥을 잘되게 복을 그저 주시기 때문이라고 하나님 앞에서 욥을 참소했습니다. 욥이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면 욥이 그렇게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할 것이라는 악의적인 주장을 내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조건부의 고난을 허락하셨습니다. 욥의 생명만은 해하지 말고 다른 어떤 방법으로든지 욥에게 고난을 내려도 좋다는 허락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고난 중에 하나가 욥의 모든 열명의 자녀가 목숨을 잃게 된 것입니다. 동방 지역에서 최고의 재력가였던 그 많던 재산도 다 없어졌구요.
욥은 그런 가운데서도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앙을 지켰습니다. 물론 그도 괴로움에 몸부림쳤지요. 자기 생일을 한탄하기도 했으니까요. 자기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불행을 당하지 않았을 것인데라고 말입니다.
욥은 승리했습니다. 사탄의 모함을 이겼습니다. 사탄의 시험을 이겨냈습니다.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았습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불행의 희생을 당했음에도 그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모함과 참소가 있었음을 알지는 못했지만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불의한 방법으로, 합당치 않은 이유로 자신에게 그런 큰 불행을 당하도록 버려두지 않으셨을 것임을 끝까지 믿음으로 지켜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선하심을 믿었습니다.
욥은 마침내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였지요.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기42:5,6).
어쩌면 율법적이고 감성적이었던 욥의 신앙이 모진 고난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인자하심과 그 사랑하심을 피부로 느끼게 되는, 그런 실제적이고 온전한 신앙의 자격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욥의 고난을 지켜 보시던 하나님께서 욥에게 그런 은혜를 내려주셨을 것입니다. 실질적이고 실체적인 신앙으로 다시 새롭게 되는 은혜를 부어 주셨을 것입니다.
비록 짧은 행복을 누렸을 한인 희생자 가족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분명히 계실 것입니다. 슬픔 중에 있을 가족과 교회가 위로를 받고 더욱 견고한 믿음 가운데 서서 모든 사람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고난도 합력해서 선한 일을 만들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合力)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