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열심히 했다고? 아니,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거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드라마 〈미생〉의 첫 회는 장그래(임시완 분)의 독백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회를 거듭하며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나간다. 미생은 바둑에서 완생할 여지가 남아 있는 상태의 돌이다. 원작은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이다. 실제 모델은 연세세브란스 빌딩에 있는 대우인터내셔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드라마 촬영지는 지척에 있는 서울스퀘어다.
〈미생〉을 연출한 이재문 PD는 "종합상사의 전성기를 몸으로 겪어낸··· 한 시대의 한국 경제를 상징하는 건물"이라 말한다. 그럴 만하다. 서울스퀘어의 전신은 대우그룹의 거의 모든 계열사가 입주해 있던 대우빌딩이다. 1977년 지하 2층 지상 23층으로 지어졌다. 5층 건물이 빌딩으로 불리던 시절이다. 서울역과 마주한 건물의 상징성은 물어 무엇 할까. 대우빌딩은 지난 2009년 리모델링을 거쳐 서울스퀘어로 다시 태어났다. 〈미생〉은 서울스퀘어 13층에 원인터내셔널 세트를 꾸며 촬영했다. '담배 한 대'가 갖는 다층의 의미가 고스란하던 옥상 역시 서울스퀘어다. 실제로 드라마를 촬영한 23층 옥상에서는 서울의 전경이 아찔하리만치 시원스럽다. 하지만 드라마로 족할 일이다. 서울스퀘어는 3층에서 23층까지 오피스 동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다. 개방 공간은 지하 2층에서 지상 2층까지다. 주로 카페, 레스토랑 등이 있는 서울스퀘어 몰이다. 하지만 옥상의 아쉬움을 달랠 만한 촬영지는 있다.
서울스퀘어 2층 뒤편 주차장에서 계단으로 이어지는 주민참여공원이다. 〈미생〉의 중반부를 지나면 옥상보다 더 빈번하게 등장한다. 특히 안영이(강소라 분)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많다. 엄마와 통화하며 화를 내는 장면, 마 부장이 부당한 명령을 하는 장면, 장백기(강하늘 분)에게 구두를 선물 받는 장면도 공원이다. 안영이만일까. 장그래가 퇴사를 고민하며 엄마와 통화를 하던 곳도, 오 차장이 마지막으로 고 과장과 우정 어린 대화를 나누는 곳도, 게다가 〈미생〉 마지막회의 시작도 공원이었다. 그때마다 빨갛게 익은 홍시가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