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피나무Japanese Pepper , 蜀椒 , サンショウ山椒
분류학명
초피나무는 야산이나 깊은 산자락 어디에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나무다. 자그마한 키에 누가 혹시라도 얕볼까봐 짧고 날카로운 가시를 쏙쏙 내밀고 있다. 가을이면 쌀알 굵기만 한 새까맣고 껍질이 반질반질한 씨앗을 무더기로 매단다. 힘 닿는 대로 많이 낳아 가문의 융성을 바라던 옛사람들은 초피나무의 씨앗처럼 많은 자식을 갖길 원했다. 그래서 초피나무 열매는 바로 다산(多産)의 상징성을 갖는다.
초피나무는 《시경》 〈당풍〉의 ‘초료(椒聊)’란 시에서 “초피나무 열매 알알이 익어 한 되는 넘겠네······” 하고 시작되는 옛 문헌에서 처음 만날 수 있다. 《시경》이 2500~3000년 전에 지어진 책이라고 하니 초피나무 열매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 훨씬 더 이전일 것이다.
초피나무의 이용 역사가 이렇게 오래된 것은 약용을 겸한 향신료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주로 열매를 쓰며, 기름을 짜거나 약간 덜 익은 씨앗을 열매껍질과 함께 갈아서 가루를 만들면 맵싸한 맛이 나고 강한 향기가 있다. 사람마다 취향의 차이는 있지만 초피 향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추어탕을 비롯하여 각종 생선요리에 넣으면 비린내를 없애준다. 또 살균·살충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상하기 쉬운 여름 음식의 보존기간을 늘려주어 식중독을 예방해주는 효과까지 있다. 당연히 옛사람들은 다산(多産)의 상징성에 향신료의 기능까지 갖춘 초피나무를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왕비나 후궁 등 ‘왕의 여자’들이 거처하는 방을 초피나무 방이란 뜻으로 초방(椒房)이라 불렀다. 초방은 초피가루를 벽에다 발라 향기로움으로 방 안의 분위기를 띄우고 불쾌한 냄새를 없애주었다. 무더기로 달리는 초피나무 열매는 왕가의 번성을 기원하는 의미까지 더했다.
백거이의 〈장한가〉에는 당태종의 초방 후궁들이 백발이 되어버린 세월을 노래한 내용이 들어 있다. 우리나라 문헌에도 초방은 《조선왕조실록》에서 1백 회 이상 언급될 정도다. 《동의보감》에는 초목(椒木), 촉초(蜀椒), 초엽(椒葉)이란 이름으로 초피나무의 효능을 기술하고 있다. 여러 가지 증상에 쓰이나 특히 배변을 좋게 하는 효능이 있으며, 열매는 “벌레 독이나 생선 독을 없애며, 치통을 멈추고 성기능을 높이며, 음낭에서 땀나는 것을 멈추게 한다”라고 했다.
초피나무는 키가 3~4미터 정도까지 자라는 작은 나무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에까지 분포한다. 햇빛이 잘 드는 양지를 좋아하고, 잔잔한 잎 여럿이 한 대궁에 달리는 겹잎이다. 또 작은 가시가 마주보기로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꽃은 초여름에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황록색으로 피며 암수가 다른 나무다. 가을에 적갈색의 열매가 열리며, 안에는 반질반질한 새까만 씨앗이 들어 있다. 열매껍질의 향기가 가장 강하다.
초피나무와 함께 알아보아야 할 나무로 산초나무가 있다. 이 둘은 비슷하기는 해도 분명 다른 나무다. 우선 산초나무는 열매나 잎에 향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초피나무보다는 훨씬 약하다. 한마디로 산초나무는 초피나무와 비슷하지만 가짜인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나무를 흔히 혼동하여 이름을 뒤섞어 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옛 문헌에 나오는 ‘초(椒)’는 초피나무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산초나무로 번역해버린다. 초피나무와 산초나무는 서로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 간단하고 가장 확실한 구별방법은, 초피나무는 가시가 마주보기로 달리고, 산초나무는 어긋나기로 달려 있다는 점이다.
한자 문화권인 동양 삼국에서 초피나무에 붙인 이름도 좀 혼란스럽다. 초피나무의 일본 이름은 산쇼우(山椒), 우리의 산초나무는 이누산쇼우(犬山椒)다. 중국 사람들은 초피나무를 화초(花椒), 혹은 화북산초(華北山椒)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초피나무와 같은 종(種)이 아니라 ‘Zanthoxylum bungeanum’란 학명을 가진 별개의 나무다. 결국 개화 초기에 우리나라의 표준식물 이름을 처음 붙일 때 초피나무를 일본처럼 산초나무라 하고, 지금의 산초나무는 다른 이름을 붙였더라면 이름에 따른 혼란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