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박, 코코넛 매트

코코넛 매트     권박      그 인도 작가는 글은 영어로 쓴다고 말하였다.    인도의 식민지와 한국의 식민지에 대해,    식민지에 대해,    말하였다. 그 인도 작가는,     깔려 있는 코코넛 매트를 밟자    여왕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친애하는 식민지여    코코넛 매트를 밟고 들어가자    짓밟듯     차를 우려내자    괴로워 괴로워    차를 우려내자     건강을 걱정해    차를 마십니다    환경을 생각해    알레피에 휴양 갔을 때 코코넛 매트 공장에서 코코넛 매트를 구입했습니다     다르질링은 중국에서 재배한 차와 품질 차이가 없을 정도로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진 곳이기 때문에 선택되었습니다    신은 당연히 선택합니다    비가 그치고 안개가 걷히고 칸첸중가가 선명히 보입니다    대령들이 머물렀던 별장들도    보입니다    선명히 당연히     별장 입구에 깔려 있는 코코넛 매트를 밟고 들어서며    여왕처럼 정의내립니다    정의를 내리는 것은 짓밟는 것    오늘 내가 내린 식민지의 정의는, 깔려 있는 코코넛 매트를 밟는 것, 차를 우려내듯, 짓밟는 것,     정의는 어떤 식으로든 바뀝니다    선입견은 있기 때문에 생깁니다     모르겠습니다, 선입견을 버리겠다는, 정의를 바꾸겠다는, 뜻입니다⸺《문학과 창작》 2021년 가을호 영국에서 촉발된 산업혁명 이후 서구열강에 분할되었던 대부분의 식민지가 독립한 것은 1945년부터 1960년대까지의 일이다. 현시점에서 식민지에 대한 시를 쓴다는 것은 십중팔구 청산되지 않은 식민지의 잔재, 혹은 새로운 식민지의 형태에 관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定義와 正義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며 이 시는 지적 관찰자가 비지적 관찰자의 입을 빌어 세계를 비판하는 외적 아이러니의 형태를 띠고 있다. 대체로 인간은 자기 나름의 잣대로 대상을 정의한다. 광복된 지 76주년이 지난 우리의 반일 감정에 견주어 피식민지의 작가가 식민 종주국에 대해 가지는 태도가 어떠어떠할 것이라는 선입견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우리보다 2년 늦게 독립한 나라, “그 인도 작가는 글은 영어로 쓴다고 말하였다.” 이어지는 시의 쉼표들과 동어반복적 더듬거림이 선입견에 혼선이 온 “나”의 심리적 동요를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시는 연상 상상의 회로를 타며 매우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깔려 있는 코코넛 매트를 밟자” 인도를 “친애하는 식민지여”라고 칭하던 “여왕의 말이 떠”오른 것은 “나”가 식민지를 코코넛 매트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밟는 능동과 밟히는 피동이 매트에서 동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전자에는 “여왕”과 “대령들(식민지 지배계층이 관료가 아닌 군인이었음을 말해주는)”과 “휴양”객인 “나”가 있고, 시에 직접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후자에는 사물화된 인도인과 인도(“친애하는 식민지여”)가 있다. 이 자각은 “인도 작가”에서 촉발된 것이다. “인도 작가”는 밟히면서 동시에 밟는 중간자적 존재이다. 그는 “친애하는 식민지”를 기획한 식민 종주국의 누적된 결과물 중 하나로서 먼저 “영어”에 대한 열등감으로 짓밟힌 후에야 인도어를 짓밟을 수 있는 우월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정의定義를 내리”면 正義가 되는 不義! “나”라는 지적 관찰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 아닐까. “오늘 내가 내린 식민지의 정의는, 깔려 있는 코코넛 매트를 밟는 것. 차를 우려내듯. 짓밟는 것.”으로 귀결된다. “나”가 기존에 가졌던 식민지에 대한 정의를 수정한 것으로, 식민주의가 생각보다 더 뼛속 깊은 불의였음을 알게 된 자의 탄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첫 연에서처럼 마지막 연에서 “모르겠습니다, 선입견을 버리겠다는, 정의를 바꾸겠다는, 뜻입니다”라고 쉼표들과 체념적인 비지적 관찰자의 목소리가 다시 등장하는데, 이는 기존의 식민주의나 경제ㆍ문화적 식민주의에 대한 논의를 독자의 몫으로 넘겨버리고 시침을 뗌으로써 시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 시의 현실감각은 이처럼 중층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