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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성품을 배워야 영혼이 잘 됩니다.
빌립보서 2:1~4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첫째 날 기도와 성령보다 앞서지 말라
기도와 성령보다 앞서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둘째 날 영혼이 잘되는 것이 참된 복입니다.
영혼이 잘되는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만 집중합니다.
셋째 날 간구하면 허락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영적인 사람이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허락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넷째 날 그리스도의 성품을 배워야 영혼이 잘 됩니다.
바울은 이교도의 핍박과 교회 안에서 시기와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간절하게 바라던 것은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마음이 일치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일치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1.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지켜야 할 덕목을 권면합니다.
1절 [그러므로(만약)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그리스도의 소유된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지켜야 할 5가지 덕목을 말씀합니다.
[무슨] = 티스 = 누구든지, 누구나, 어떤 사람이든지를 의미합니다.
[권면] = 파라클레시스 = 호소, 간청, 격려, 위안, 위로를 의미합니다.
바울이 교회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권면하고 호소와 간청을 합니다.
그처럼 성도들도 서로 성령으로 하나님 말씀을 권면하고 호소와 간청으로 격려해야 함을 말합니다.
[사랑(아가페)의 무슨 위로] = 파라뮈디온 = 격려, 위로, 눈물을 닦아줌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한 것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서로 사랑함으로 연약한 가운데 있는 형제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해야 함을 말합니다.
[성령의 무슨 교제] = 코이노니아 = 친교, 교제, 참여, 나누어줌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이 성령에 의해서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순종하여 서로 돕고, 섬기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축복하는 교제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긍휼] = 스플랑크논 = 감정의 자리인 심장, 마음, 사랑을 의미합니다.
[긍휼] = 라함 = 깊이 사랑하다, 긍휼히 여기다 – 자궁 안에 있는 아이를 향한 엄마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자비] = 오이크티르모스 = 동정, 연민, 불쌍히 여김을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사람의 불행이나 죽음을 애도하거나 슬퍼하는 것을 의미했습ㅈ니다.
그러나 후에 비유적으로 동정, 연민, 불쌍히 여김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연약한 자나 어려움에 빠진 자들에게 공감해야 합니다.
그 후에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 사랑을 실천하는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2. 성도는 한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덕목을 실천해야 합니다.
2절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마음을 같이 하여] = 생각, 감정, 의지, 태도를 같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은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는 것]이라고 반복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반복 강조하여 빌립보 교인들 사이에 생각과 마음의 일치를 권면합니다.
이것은 [같은 사랑 =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져야만 한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어진 한 형제라는 믿음이 있어야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3절에 그 방법을 제시하며 권면하는 것입니다.
3절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다툼] = 에리데이아 = 비열한 본성, 이기주의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이익을 얻기 위해 품위를 떨어뜨리는 이기주의자, 창녀, 날품팔이 등의 저속한 태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허영] = 케노독시아 = 망상, 착각, 자만 – 내용 없는 영광이나 자랑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을 높이고 헛된 영광을 추구할 때 다툼이 일어나게 되어 교회에 불일치를 초래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겸손] = 타페이노프로쉬네 = 마음의 낮아짐을 의미합니다.
타인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을 뜻합니다. - 적극적인 일치를 위한 행함입니다.
당시에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 [노예근성]에서 비롯된 [굴욕과 비굴함]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겸손의 본을 보여주심으로 겸손은 성도의 최대 미덕이 되었습니다. - 이런 겸손을 통해서 서로 섬김으로 [일치]를 이루게 합니다.
4절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돌보다] = 스코페오 = 목표, 목적을 바라본다, 주시한다, 관찰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소유된 성도는 교회 안에서 자신의 이익과 은사를 잘 살펴야 합니다.
또한, 타인의 이익과 은사를 잘 살펴서 서로를 포용하며 연합으로 일치를 이루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 교회의 덕, 성도 신앙의 유익이 됩니다.
1~2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준비됨을 보여줍니다.
3~4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실천하는 생활 방법을 교훈합니다.
교회 역사를 통해 보면 많은 하나님의 종들도 어려움을 당해 허둥지둥하고, 낙심에 빠져서 다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은 유혹을 받았던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아마 저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도 이런 일들이 가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명심할 것은, 어떤 상황을 만나도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보고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이끌어 가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사탄이 주는 두려운 마음으로 결정하면 더 나쁜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마음으로 결정하면 평안과 기쁨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면서도 승리하는 삶을 살지 못할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에게 두 가지 모습이 나타납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모셨으나 여전히 자기가 왕좌에 앉아 있는 주인의 모습입니다. (육적인 사람)
2)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나의 왕좌에 모시고, 그 앞에 엎드리는 겸손한 모습입니다.(영적인 사람)
둘 중에 첫 번째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셨다고 하는 대부분 사람의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셨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즉 말씀을 알았어도 말씀을 잊어버리고 살고, 생각나도 접어두고 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항상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말씀)을 품으라] 이것이 정답이요 해답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품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하나님이 행하실 구원을 간구할 때, 감사와 기쁨을 받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저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 [주님 어떻게 할까요?] [무엇을 할까요?] 라고 끊임없이 물으시면서 언제나 내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기쁘고 행복한 예배자로 살아가는 심령과 가정과 삶의 현장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