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말하는 인연과보(因緣果報)는
일반적인 권선징악적 선악의 개념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원리와 법칙을 말한다.
고통은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고통은 내가 지은 인연 따라 일어난다.
부모로부터 시작된 것,
태중에서 시작된 것,
유아기 때 형성된 것,
어릴 때 형성된 것,
어제부터 시작된 것,
방금 전에 시작된 것...
이렇게 수없이 많은 인연이
겹치고 겹쳐
지금 작용하는 것이다.
꼭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이 인연과보(因緣果報)
즉, 어떤 원인과 조건으로 결과가 왔다는 것을 알면
세상에 두려워할 것이 없게 된다.
돌은 물에 넣으면 가라앉고
기름은 물 위에 뜬다.
물보다 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은 위로 뜨는 것,
이것이 자연의 이치다.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이 나는 것,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것...
이런 자연의 원리를 인연과라고 한다.
이런 인연과의 법칙인 인연법은
내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알든 모르든,
믿든 안 믿든 상관없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법칙이다.
나쁜 짓을 해놓고 좋은 결과를 바라는 것은
인연법에 어긋난다.
콩 심어놓고 팥 나기를 바라는 것,
돌이 물에 뜨기를 바라고
기름이 물에 가라앉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인연법에 맞지 않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인연과에서
'인(因)'은 직접적인 원인을 말하고
'연(緣)'은 간접적인 원인, 조건을 말한다.
콩 씨앗이 인이라면
수분이나 흙, 거름, 햇빛, 공기 등은 연이다.
씨앗은 흙, 물, 공기 등과 만나야 싹이 트는 것처럼,
인과 연이 만나서 '과(果)'를 만든다.
무인무연(無因無緣)도 무과(無果)요,
유인무연(有因無緣)도 무과(無果)라 했다.
씨앗이라는 연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싹을 틔울 수 없다.
인과 연이 화합할 때에야 비로소 과가 생긴다.
어떤 때에는 인이 더 큰 작용을 할 때가 있고,
또 연이 더 큰 작용을 할 때도 있지만,
그러나 어느 쪽이든 하나가 없다면
과는 생기지 않는다.
이렇게 인연과보의 원리에 따라 살게 되면
죽고 살고 이런 것에 구애받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의 결과를 계산하게 되는데 그 계산을 놓아버리게 됩니다.
모든 것은 원인에 의한 결과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어난 결과를 수용하고 다시는 이런 과보를 받지 않으려면 수행을 해야 한다.
그런데 어리석은 중생은 과보는 받기 싫고 인연은 짓고 싶어 한다.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무엇인가?
다 지은만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며 겸손해야 한다.
복을 얼마나 받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얼마나 좋은 인연을 지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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