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돌이켜 보면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제 아내의 생일이 3월 20일(음 2월 29일)입니다.
이를 미리 축하하기 위하여 두 딸과 사위가 우리 집에서 오늘 저녁에 모이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지내고 있으므로 아침에 생일 축하 카드와 더불어 옷을 한 벌 사 입으라고 돈을 챙겼습니다.
그런데 왜 이리 감격스러울까요? 눈물이 어른거렸습니다.
어렵던 시절 큰 처형 집의 아이들 방에 놓여 있었던 돼지 저금통을 보며 내 평생에 저렇게 돈을 여유 있게 놓고 살날이 있을까? 그랬는데 저의 작은 신음에 귀 기울이시는 주님은 넉넉하게 채우셨습니다.
돈을 ATM에서 찾아 가지런히 챙겨 봉투에 넣으며 지난날을 돌이켜 은혜의 찬송을 부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치렀고, 부천에 있는 중앙직업훈련원에서 1년 동안 국비로 지내면서 선반 자격 3급을 취득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성동기계공고에 장학생으로 3년 동안 학비 없이 다닐 수 있었습니다. 낮에는 성수동에 있는 오리엔트 시계회사에서 조립공으로, 밤에는 성동기계공고에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고등학교를 다녀야 했기에 고등학교 3학년 10월 군에 입대하게 되었고, 군에서 제대하고야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제 앞길이 막막해졌습니다. 어려서부터 목회자가 되는 꿈을 가졌는데 이것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찾다가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결단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현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경제적인 뒷받침이 없었을뿐더러 실력 역시 전혀 갖추지 못했습니다. 영어의 기본인 5형식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I am a student’라는 문장도 해석할 줄 모를 정도였으니 말하면 무엇 하겠습니까? 수학의 인수분해도 국어의 고어 역시 그랬고, 물리, 화학, 생물 등은 더 깜깜했습니다.
그런 제가 경희대학교 경제학과를 입학했습니다. 이것은 전적인 은혜입니다. 당시에는 예비고사 제도가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제가 준비하고 아는 것만 출제되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예비고사 점수로 전형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절대적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함을 받았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신학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웠던 과정을 말없이 따라 주었던 아내가 있었기에 오늘을 이룰 수 있었음을 생각하니 위로는 하나님께 그리고 아내에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 아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