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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석가(釋迦) 다보(多寶) 상행보살(上行菩薩) 혈맥(血脈) 상승(相承)이라고 수행(修行)하시라. 결국(結局) 임종(臨終)이 지금(只今)이라고 알아서 신심(信心)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사람을 「시인명종위천불수수(是人命終爲千佛授手)·영불공포(令不恐怖) 불타악취(不墮惡趣)」라고 설(說)하셨느니라. , 일불(一佛) 이불(二佛)도 아니고 백불(百佛) 이백불(二百佛)도 아닌 천불(千佛)까지도 마중을 나오시어 손을 잡으실 것이니·환희(歡喜)의 감루(感淚)를 금(禁)할 길이 없도다.천태(天台)의 지관(止觀)에 가로되 「기(起)는 법성(法性)의 기(起)요·멸(滅)은 법성(法性)의 멸(滅)」이라 운운(云云). 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도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이니라. 그러하므로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존(釋尊)과 개성불도(皆成佛道)의 법화경(法華經)과 우리들 중생(衆生)의 셋은 전(全)혀 차별(差別)이 없다고 깨달아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석가(釋迦) 다보(多寶) 상행보살(上行菩薩) 혈맥(血脈) 상승(相承)이라고 수행(修行)하시라. 불은 소조(燒照)로써 행(行)으로 삼고·물은 구예(垢穢)를 정화(淨化)함으로써 행(行)으로 삼으며·바람은 진애(塵埃)를 털어 없앰으로써 행(行)으로 삼고·또 인축초목(人畜草木)을 위(爲)하여 혼(魂)이 되는 것으로써 행(行)으로 삼으며·대지(大地)는 초목(草木)을 생(生)하게 함으로써 행(行)으로 삼고·천(天)은 윤택(潤澤)케 함으로써 행(行)으로 함이라·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도 또한 이와 같도다·본화지용(本化地涌)의 이익(利益)이 이것이니라. 상행보살(上行菩薩)은 말법금시(末法今時)에 이 법문(法門)을 홍통(弘通)하기 위(爲)하여 출현(出現)하신다는 것이 경문(經文)에는 설(說)해져 있는데 어찌된 일일까. 상행보살(上行菩薩)은 출현(出現)할 것인가·출현(出現)하지 않을 것인가. 니치렌(日蓮)이 먼저 대략 홍통(弘通)하느니라.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강성(强盛)한 대신력(大信力)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임종정념(臨終正念)이라고 기념(祈念)하시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은 이 외(外)에 절대(絶對)로 구(求)하지 말지니라,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란 이것이로다. 신심(信心)의 혈맥(血脈)이 없이는 법화경(法華經)을 가질지라도 무익(無益)하니라. 자세(仔細)한 것은 또 말씀드리겠소, 공공근언(恐恐謹言).
문영(文永)九年 임신(壬申)二月 十一日 상문(桑門) 日蓮花押
사이렌보상인답서(最蓮房上人答書)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은 이 외(外)에 절대(絶對)로 구(求)하지 말지니라,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란 이것이로다. 신심(信心)의 혈맥(血脈)이 없이는 법화경(法華經)을 가질지라도 무익(無益)하니라. 자세(仔細)한 것은 또 말씀드리겠소, 공공근언(恐恐謹言).
문영(文永)九年 임신(壬申)二月 十一日 상문(桑門) 日蓮花押
사이렌보상인답서(最蓮房上人答書)총(總)하여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은 자타피차(自他彼此)라는 마음없이 수어(水魚)라고 생각을 해서 이체동심(異體同心)이 되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더구나 지금 니치렌(日蓮)이 홍통(弘通)하는 바의 구극(究極)은 이것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원(大願)도 이루어질 것이니라.외도(外道)라 함은 불전(佛前)·팔백년(八百年)부터 시작하여 처음에는 이천(二天)·삼선(三仙)이었는데 점차로 나뉘어져서 구십오종(九十五種)이니라. 그 중(中)에는 많은 지자(智者)·신통(神通)의 자(者)·있었지만 한 사람도 생사(生死)를 떠나지 못하였다. 또 귀의(歸依)한 사람들도 선(善)하거나 악(惡)하거나 모두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졌는데·부처께서 출세(出世)하시게 되자, 구십오종(九十五種)의 외도(外道)는 십육대국(十六大國)의 왕신제민(王臣諸民)을 꾀어서 혹(或)은 욕하고 혹(或)은 치고 혹(或)은 제자(弟子) 및 단나(檀那) 등(等)을 무량무변(無量無邊) 살해(殺害)하였지만 부처는 해이(解弛)하는 마음이 없었다. 내가 이 법문(法門)을 여러 사람들에게 협박 당하여 말을 중단해 버리면 일체중생(一切衆生)은 지옥(地獄)에 떨어질 것이라고 강하게 한탄하셨으므로 물러서는 마음이 없었다. 이 외도(外道)라 함은 선불(先佛)의 경(經)들을 보고·잘못 읽은데서 생긴 일이니라.
지금도 또 그와 같으니라. 일본(日本)의 법문(法門)이 많다 해도 근원(根源)은 팔종(八宗)·구종(九宗)·십종(十宗)에서 생겼느니라. 십종(十宗) 가운데 화엄(華嚴) 등(等)의 종(宗)들은 그만 두기로 하고 진언(眞言)과 천태(天台)와의 승렬(勝劣)에 고보(弘法)·지카쿠(慈覺)·지쇼(智證)의 미혹(迷惑)에 의하여 일본국(日本國)의 사람들은 금생(今生)에는 타국(他國)의 침략을 받고 후생(後生)에도 악도(惡道)에 떨어지느니라. 한토(漢土)가 멸망(滅亡)하고 또 악도(惡道)에 떨어진 것도 선무외(善無畏)·금강지(金剛智)·불공(不空)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느니라. 또 천태종(天台宗)의 사람들도 지카쿠(慈覺)·지쇼(智證) 이후(以後)는·그 사람들의 지혜(智慧)에 눌려서 천태종(天台宗)과 같이 되지 못했느니라. 그러하니 그 뿐이겠느뇨.
하물며 니치렌(日蓮)은 그들보다 뛰어나겠느뇨라고 나의 제자(弟子)들은 생각하지만 부처의 기문(記文)과는 틀리지 않는다. 말법(末法)에 들어 와서 불법(佛法)을 비방(誹謗)하여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는 자(者)는 대지미진(大地微塵)보다도 많고, 정법(正法)을 득(得)하는 사람은 조상(爪上)의 흙보다도 적다고 열반경(涅槃經)에는 설(說)하고 있으며, 법화경(法華經)에는 설사(設使) 수미산(須彌山)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 해도·나의 말법(末法)에 법화경(法華經)을 경(經)과 같이 설(說)하는 자(者)는 있기가 어렵다고 기술(記述)하셨느니라. 대집경(大集經)·금광명경(金光明經)·인왕경(仁王經)·수호경(守護經)·반니원경(般泥洹經)·최승왕경(最勝王經) 등(等)에 말법(末法)에 들어 가서 정법(正法)을 행(行)하는 사람이 출래(出來)하면 사법(邪法)의 사람들이 왕신(王臣) 등(等)에게 고소하게 되니 저 왕신(王臣) 등(等)은 타인(他人)의 말에 따라 한 사람의 정법(正法)의 사람을 혹(或)은 욕하고 혹(或)은 책(責)하고 혹(或)은 유죄(流罪)하고 혹(或)은 살해(殺害)하면 범왕(梵王)·제석(帝釋)·무량(無量)의 제천(諸天)·천신(天神)·지신(地神) 등(等)이 이웃 나라의 현왕(賢王)의 몸에 바꾸어 들어가서 그 나라를 멸망(滅亡)시키리라고 쓰셨느니라. 지금의 세상(世上)과 비슷하지 않소.
대저 여러분은 어떠한 숙선(宿善)으로 니치렌(日蓮)을 방문(訪問)하셨느뇨. 곰곰이 과거(過去)를 찾아 보신다면 이렇다 할 일이 없더라도 이번에 생사(生死)를 떠나시게 되리라. 수리반특(須梨槃特)은 삼개년(三箇年)에 십사자(十四字)를 암송(暗誦)하지 못했지만 부처가 되었으며, 제바(提婆)는 육만장(六萬藏)을 암송(暗誦)했어도 무간(無間)에 떨어졌는데 이것은 오로지 말대(末代)의 금세(今世)를 나타냄이니라. 결(決)코 남의 신상(身上)이라고 생각하지 말지어다. 일이 번다(繁多)하므로 멈추겠소. 대저 당시(當時)는 총총(怱怱)한데도 그 후지(厚志)는 말할 나위없기에 중대(重大)한 일을 대략(大略) 말하여 깨우치게 하였소이다. 대각두(大角豆), 청대두(靑大豆)를 받았나이다.
삼삼장기우사(三三藏祈雨事)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 1471~2쪽부처께서 출세(出世)하시게 되자, 구십오종(九十五種)의 외도(外道)는 십육대국(十六大國)의 왕신제민(王臣諸民)을 꾀어서 혹(或)은 욕하고 혹(或)은 치고 혹(或)은 제자(弟子) 및 단나(檀那) 등(等)을 무량무변(無量無邊) 살해(殺害)하였지만 부처는 해이(解弛)하는 마음이 없었다. 내가 이 법문(法門)을 여러 사람들에게 협박 당하여 말을 중단해 버리면 일체중생(一切衆生)은 지옥(地獄)에 떨어질 것이라고 강하게 한탄하셨으므로 물러서는 마음이 없었다. 이 외도(外道)라 함은 선불(先佛)의 경(經)들을 보고·잘못 읽은데서 생긴 일이니라.생사일대사혈맥초(生死一大事血脈抄)
文永九年二月十一日 五十一歲御作
與最蓮房日淨
서장(書狀)을 자세(仔細)히 읽었소이다. 대저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 함은 소위(所謂)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그 까닭은 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 보탑(寶塔) 안에서 상행보살(上行菩薩)에게 양여(讓與)하신 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는 과거원원겁(過去遠遠劫)으로부터 이래(已來) 촌시(寸時)도 떨어지지 않은 혈맥(血脈)이니라. 묘(妙)는 사(死)요 법(法)은 생(生)이라, 이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이 십계(十界)의 당체(當體)이며, 또 이를 당체연화(當體蓮華)라고도 하느니라. 천태(天台) 가로되 「마땅히 알지어다, 의정(依正)의 인과(因果)는 모두 이는 연화(蓮華)의 법(法)이니라」고 운운(云云). 이 석(釋)에 의정(依正)이라고 말함은 생사(生死)이며 생사(生死)가 있으면 인과(因果) 또한 연화(蓮華)의 법(法)이라고 함은 분명하니라. 전교대사(傳敎大師) 가로되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은 일심(一心)의 묘용(妙用)이요, 유무(有無)의 이도(二道)는 본각(本覺)의 진덕(眞德)」이라는 문(文). 천지(天地)·음양(陰陽)·일월(日月)·오성(五星)·지옥(地獄)·내지(乃至) 불과(佛果)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이 아님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생사(生死)도 오직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생사(生死)로다. 천태(天台)의 지관(止觀)에 가로되 「기(起)는 법성(法性)의 기(起)요·멸(滅)은 법성(法性)의 멸(滅)」이라 운운(云云). 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도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이니라. 그러하므로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존(釋尊)과 개성불도(皆成佛道)의 법화경(法華經)과 우리들 중생(衆生)의 셋은 전(全)혀 차별(差別)이 없다고 깨달아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이 일은 다만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의 간요(肝要)이며, 법화경(法華經)을 가진다고 함은 이것이로다. 결국(結局) 임종(臨終)이 지금(只今)이라고 알아서 신심(信心)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사람을 「시인명종위천불수수(是人命終爲千佛授手)·영불공포(令不恐怖) 불타악취(不墮惡趣)」라고 설(說)하셨느니라. 기쁘도다, 일불(一佛) 이불(二佛)도 아니고 백불(百佛) 이백불(二百佛)도 아닌 천불(千佛)까지도 마중을 나오시어 손을 잡으실 것이니·환희(歡喜)의 감루(感淚)를 금(禁)할 길이 없도다. 법화불신(法華不信)의 자(者)는 「기인명종(其人命終) 입아비옥(入阿鼻獄)」이라고 설(說)해져 있으니 필정(必定)코 옥졸(獄卒)이 와서 손을 잡으리라 가엾도다 가엾도다. 십왕(十王)은 재단(裁斷)하고 구생신(俱生神)은 가책(呵責)하리라.
이제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 등(等)·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에게 천불(千佛)이 손을 내미시라는 것은 비유(譬喩)컨대, 오이나 박이 덩굴손을 내미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라. 과거(過去)에 법화경(法華經)의 결연(結緣)이 강성(强盛)하였기 때문에 현재(現在)에 이 경(經)을 수지(受持)하니 미래(未來)에 불과(佛果)를 성취(成就)할 것은 의심(疑心)할 바 없느니라. 과거(過去)의 생사(生死)와 현재(現在)의 생사(生死)와 미래(未來)의 생사(生死)·이 삼세(三世)의 생사(生死)에서 법화경(法華經)과 떨어지지 않는 것을 법화(法華)의 혈맥상승(血脈相承)이라고 하느니라. 방법불신(謗法不信)의 자(者)는 「즉단일체세간불종(卽斷一切世間佛種)」이라고 하여 성불(成佛)할 종자(種子)를 단절(斷絶)하는 고(故)로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 없는 것이니라.
총(總)하여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은 자타피차(自他彼此)라는 마음없이 수어(水魚)라고 생각을 해서 이체동심(異體同心)이 되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더구나 지금 니치렌(日蓮)이 홍통(弘通)하는 바의 구극(究極)은 이것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원(大願)도 이루어질 것이니라. 더군다나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중(中)에 이체이심(異體異心)의 자(者)가 있다면 예(例)컨대 성(城)안에 있는 자(者)가 성(城)을 파괴(破壞)하는 것과 같으니라.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에게 법화경(法華經)을 믿게 하여 성불(成佛)하는 혈맥(血脈)을 잇게 해 주려고 하는데·도리어 니치렌(日蓮)을 가지 가지의 난(難)을 당(當)하게 하고 결국(結局)엔 이 섬에까지 유배(流配)하였다. 그런데 귀하(貴下)는 니치렌(日蓮)에게 수순(隨順)하여 또 난(難)을 당(當)하시는 것이 심중(心中)으로 애석(哀惜)하게 여겨져서 가슴 아프도다. 금(金)은 큰불에도 타지 않고 큰물에 빠져도 떠돌지 않고 썩지 않으며·철(鐵)은 수화(水火) 공(共)히 견디지 못하는데·현인(賢人)은 금(金)과 같고 우인(愚人)은 철(鐵)과 같으니·귀하(貴下)는 어찌 진금(眞金)이 아니리요. 법화경(法華經)의 금(金)을 가진 까닭이로다. 경(經)에 가로되 「중산중(衆山中)에 수미산(須彌山)이 제일(第一)이고·이 법화경(法華經)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또 가로되 「불도 태울 수 없고 물도 떠돌게 할 수 없느니라」 운운(云云). 과거(過去)의 숙연(宿緣)이 뒤쫓아와서 이번에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가 되셨음인가. 석가(釋迦) 다보(多寶)만은 알고 계시리라. 「재재제불토(在在諸佛土) 상여사구생(常與師俱生)」이란 설마 허사(虛事)는 아닐 것이로다. 특(特)히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상승(血脈相承)에 대하여 물으심은 선대미문(先代未聞)의 일이니 참으로 존귀(尊貴)하도다, 존귀(尊貴)하도다. 이 문(文)에 자세히 써 놓았으니 깊이 깊이 이해(理解)하시라.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석가(釋迦) 다보(多寶) 상행보살(上行菩薩) 혈맥(血脈) 상승(相承)이라고 수행(修行)하시라. 불은 소조(燒照)로써 행(行)으로 삼고·물은 구예(垢穢)를 정화(淨化)함으로써 행(行)으로 삼으며·바람은 진애(塵埃)를 털어 없앰으로써 행(行)으로 삼고·또 인축초목(人畜草木)을 위(爲)하여 혼(魂)이 되는 것으로써 행(行)으로 삼으며·대지(大地)는 초목(草木)을 생(生)하게 함으로써 행(行)으로 삼고·천(天)은 윤택(潤澤)케 함으로써 행(行)으로 함이라·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도 또한 이와 같도다·본화지용(本化地涌)의 이익(利益)이 이것이니라. 상행보살(上行菩薩)은 말법금시(末法今時)에 이 법문(法門)을 홍통(弘通)하기 위(爲)하여 출현(出現)하신다는 것이 경문(經文)에는 설(說)해져 있는데 어찌된 일일까. 상행보살(上行菩薩)은 출현(出現)할 것인가·출현(出現)하지 않을 것인가. 니치렌(日蓮)이 먼저 대략 홍통(弘通)하느니라.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강성(强盛)한 대신력(大信力)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임종정념(臨終正念)이라고 기념(祈念)하시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은 이 외(外)에 절대(絶對)로 구(求)하지 말지니라,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란 이것이로다. 신심(信心)의 혈맥(血脈)이 없이는 법화경(法華經)을 가질지라도 무익(無益)하니라. 자세(仔細)한 것은 또 말씀드리겠소, 공공근언(恐恐謹言).
문영(文永)九年 임신(壬申)二月 十一日 상문(桑門) 日蓮花押
사이렌보상인답서(最蓮房上人答書)지금의 세상(世上)과 비슷하지 않소.
대저 여러분은 어떠한 숙선(宿善)으로 니치렌(日蓮)을 방문(訪問)하셨느뇨. 곰곰이 과거(過去)를 찾아 보신다면 이렇다 할 일이 없더라도 이번에 생사(生死)를 떠나시게 되리라. 수리반특(須梨槃特)은 삼개년(三箇年)에 십사자(十四字)를 암송(暗誦)하지 못했지만 부처가 되었으며, 제바(提婆)는 육만장(六萬藏)을 암송(暗誦)했어도 무간(無間)에 떨어졌는데 이것은 오로지 말대(末代)의 금세(今世)를 나타냄이니라. 결(決)코 남의 신상(身上)이라고 생각하지 말지어다. 일이 번다(繁多)하므로 멈추겠소. 대저 당시(當時)는 총총(怱怱)한데도 그 후지(厚志)는 말할 나위없기에 중대(重大)한 일을 대략(大略) 말하여 깨우치게 하였소이다.
삼삼장기우사(三三藏祈雨事)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 1471~2쪽오백품(五百品)
일본국일체중생(日本國一切衆生) 제목어본존(題目御本尊) 심법색법(心法色法) 번뇌즉보리생사즉열반(煩惱卽菩提生死卽涅槃)
빈(貧) 인(人) 견(見) 차(此) 주(珠)하고 기(其) 심대환희(心大歡喜)함이라 신심(信心)의 모습
이 문(文)은 처음으로 나의 마음이 본래(本來)의 부처라고(신심(信心)의 모습) 아는 것을 즉(卽) 대환희(大歡喜)라고 이름한다,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환희중(歡喜中)의 대환희(大歡喜)이니라.창제행 실천으로 나타나는 현증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온 정성과 일념을 다해서 부르는 순간 제일 먼저 기분이 좋아지고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나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강한 용기와 도전 정신 그리고 주변을 배려하려는 진지한 마음 등이 자연스레 생깁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환희 중의 대환희가 끝없이 솟아나고 몸이 건강해짐을 느끼거나 마음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짐을 느끼면서 살아서 숨쉬고 있다는 자체가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에 괜히 흥이 절로나고 주변에도 자연스레 잘해주게 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손발이 전기에 감전된 것 처럼 찌릿 찌릿하고 그 찌릿 찌릿함을 느끼는 부위가 팔과 다리를 지나서 온몸으로 퍼져 기분좋은 충격과 시원한 안마를 받는 듯한 느낌과 동시에 알 수 없는 기쁨이 계속 솟아나거나, 온몸에 작은 떨림 등의 진동이 계속 일어나 급기야는 몸살이 날 정도를 몇일 겪고 나서 몸과 마음이 한 없이 가볍고 상쾌해지거나, 몸 구석 구석 특히 아팠던 곳에 침을 맞는 것 처럼 따끔거리거나 후끈 후끈 열기가 지나가고 나면 예전보다 훨씬 건강해지고 편안해지거나, 몸에 열이 구석 구석을 돌면서 지속적으로 나고 특정 부위에서는 그 열기가 더욱 강해지면서 그 부위가 자연치유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거나, 가슴 중앙을 따뜻한 파이프를 안고 있는 것 처럼 열기가 훈훈하게 퍼지면서 기분 좋은 상태가 되거나, 몸 곳곳의 열나는 부위가 너무 강한 열기로 일부 화상을 입게 될 정도가 되고 난 이후에 그 부위들이 예전보다 더욱 강해지거나 건강해짐을 느끼게 되거나, 갑자기 눈이 밝아지거나, 머리 곳곳이 소름돋듯이 어떤 알 수 없는 자극이 반복되고 난 후에 머리가 맑아지고 집중력이 훨씬 좋아짐을 실감하거나, 이런 여러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온몸이 날아갈 듯이 가볍고도 상쾌해지거나, 오장육부가 건강해지고 튼튼해짐을 구체적으로 느끼고 튼튼해지는 여부를 실감하게 되거나, 생명력이 강해져서 알 수 없는 활기가 넘쳐나고 지칠줄 모르게 되거나, 알 수 없는 눈물이 한 없이 쏟아지면서 마음이 한 없이 가벼워지고 상쾌해지거나, 왠지 모르게 즐겁고 기쁨에 넘쳐서 계속 웃음이 나오고 그 웃음나오는 정도가 지나쳐서 남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를 의식해야 할 정도로 계속 웃음이 나오고 또 자다가도 자기 웃음소리에 놀라서 깨기도 하거나, 얼굴에 나타나는 인상이 마음이 환희롭고 즐거워지고 행복해짐과 상응하여 호감형으로 바뀜을 자타가 실감하게 되거나, 허공회의식에 참여한 자신을 실감할 때 몸이 구름 위에 뜬 듯한 느낌이 들거나, 주변이 갑자기 황금빛으로 감싸이는 느낌이 들거나, 주변에서 알 수 없는 향기가 나거나, 이 향기는 움직이는 곳을 따라 다니면서 계속 나거나, 천상에서 꽃비가 내리는 듯 하거나, 창제하는 주변이 온통 꽃 천지가 되거나, 아름다운 음악이 우주를 가로지르고 하늘을 가로지르며 황홀한 천상의 소리가 들리거나, 얼굴과 손등과 손바닥 등에 빛나는 작은 물체가 나타나 금빛 은빛 오색찬연한 빛분 등으로 일시에 빛이 반짝이며 나타나서 이루 형언 할 수 없는 황홀한 마음이 들나거나, 방안에서 창제하는데도 살랑 살랑 바람이 불거나, 몸과 마음이 금광불괴.금강보기계로 되어감을 실감하고 확신하게 되거나, 어서말씀대로 묘각의 산에 올라가 아래를 굽어보는 순간 황홀감에 젖어들고 환희에 넘쳐서 크게 소리치고픈 실감을 하거나, 걱정하든 마음이 사라지거나, 편안해지거나, 가족이 다복해지거나, 주변 여건이 갑자기 좋아지거나, 남들을 깊이 배려하거나, 나이와 상관없이 더 크다란 희망에 불타거나, 지혜롭게 되어 다른 사람의 진심-생명상태를 자연스레 알게 되거나, 더욱 깊고도 원대한 서원을 세우거나,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야 말겠다는 일념이 더욱 강해지거나, 실재 생활은 별로 나아진것이 없는 상황인데도 마음이 여유롭고 반드시 의식주 전반에 걸쳐서 풍요로워질건데 뭐하는 마음으로 유유자적하거나, 창제행에 동참하고 있는 법화경행자들을 만나면 너무 반갑고 뭔가 잘해주고 싶고 더 함께 하고픈 마음과 함께해서 즐겁고 행복하여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되거나, 별탈도 없는데 배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몇일동안 시커먼 숙변이 계속 빠져나오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혈색이 몰라보게 좋아지거나, 남의 병 특히 불치의 병을 낫게 하거나, 산에서 창제하는 주변으로 새들이 모여들어 즐거이 지저귀거나, 청설모나 다람쥐들이 모여와서 창제하는 내내 곁에서 놀거나, 더 넓은 북한강 강가에서 무수한 물고기들 특히 엄청나게 커다란 잉어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모여들어 창제하는 내내 주변에서 즐거이 헤엄치며 노니는 장관을 보여주는 등 자연과 주변환경과 생명의 깊은 차원에서 순수하고도 신기하고 신비한 열린 생명의 연대와 교류를 경험하거나 ... 더 나아가 전우주를 조람하면서 삼세제불보살과 제천에게 인사를 나누거나, 광선유포의 서원 달성을 위해 그 불력과 법력 그리고 제천의 가호, 위대한 힘을 느끼고 또 요청하거나, 때론 상락아정의 상태에서 유락.쾌락하거나..예전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무수한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대어본존님과 경지명합.하나되는 창제회의 실천에 대하여
지금 창제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분들은 어떤 분들일까를 생각해보면, 전원이 다쓰노쿠치 형장..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대성인님과 함께 제목을 부르고 있었던 사람들이고 또 그 기적같은 발적현본을 함께 했던 니치렌대성인의 진정한 직제자들이라 확신합니다.
또 사도에서도 함께 하면서 가장 혹독한 환경의 한 가운데서도 환희중의 대환희의 모습을 함께 했고 특히나 대어본존님을 도현하시기 시작한 때에 그 도현하시는 장엄한 일념과 시공을 초월한 전우주의 불보살 부터 제천들을 남김없이 불러서 혼을 대만다라에 물들이는 도현의 순간에도 대성인님 곁에서 물을 길어오고 먹을 것을 장만하고 먹을 갈기도 하고 대만다라 도현을 위한 종이와 천을 펼쳐서 잡아주기도 하고 또 옆에서 전우주의 일체의 불성을 불러 모우는 창제를 대성인님과 함께 진지하게 행하고 있었던 사람들이라 확신합니다.
이 창제회 시간을 이용하여 창제를 시작하시는 순간 부터 무서운 속도 아니 전우주를 아우러는 생명 상태로 자신과 주변이 일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실감할 수 있도록 더욱 진지하게 창제행에 임해 가십시다~!!!
700여년 전에 구원의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함께하며 상수급사했던 자신의 위대한 생명..그 본지를 지금 바로 열어가십시다.
대성인님과 함께 더불어 발적현본 해서 위대한 지용보살의 본지를 열어 가십시다.
*** 창제회 구체적 실천 내용 ***
*** 제1단계*** (창제회 첫 7일간은 다음과 같이 합니다)
1. 매일 아침 6시~6시30분, 밤 9시~9시30분 30분간 씩 실시한다.(각자 시작 3분 전과 창제 후 3분 동안 조용히 눈을 감고 대어본존님께 깊이 감사한 마음으로 사색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제목삼창으로 시작해서 창제하고 제목삼창으로 마칩니다.**
2. 창제 1편 당 2초 속도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또박 또박 혼신을 다해서 부른다.(소리는 중저음으로 한다 / 창제10회를 20초에 하는 연습을 반복하면 속도를 맞추는데 도움이 될 것임) 한번 숨을 쉴 때 마다 본존님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면서 창제에 임합니다.
특히 창제를 할 때 한자 한자를 또박 또박 발음하면서 몸도 마음도 함께 그 음의 속도에 맞추어 따라간다고 생각하면서 본존님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는 제목을 부릅니다.
3. 창제 시 오직 감사한 마음으로 대어본존님과 경지명합-하나가 되겠다는 각오와 목숨을 건 일념으로 온 정성을 다해 창제합니다.
이 30분 동안은 다른 어떠한 기원도 하지 않고 오직 대어본존님에게 온 생명으로 오롯이 다가가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창제합니다.(만일 이때 업무 중이면 마음으로 라도 같이 창제에 동참합니다)
4.창제 시 가능하면 조용한 곳에서 혼자서 행합니다.(각자가 대어본존님과 경지명합 잘 될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서 깊고도 간절한 마음으로 창제에 임합니다)
불단 앞이 아니라도 상관없고 불을 끈 상태라도 상관없이 혼신을 다해 경지명합 잘 할 수 있는 곳과 환경을 각자 연구해서 실천해 갑니다.
*** 제2단계 ***
창제회의 같은 시간에 맞추어 실시하되 창제하는 30분 중 처음 10분은 오직 대어본존님과 하나되는 경지명합 만을 위한 제목을 부르고, 10분~25분은 일념이 최고조로 올라 왔을 때를 이용하여 가족 한사람 한사람에게 제목을 보내고 또 주변의 소중한 분들이나 초신자 또는 그 대상자에게 제목을 보내줍니다. 그냥 최상의 일념으로 진지하게 보내기만 하면 대환희의 생명이 가족이나 그 분들 그리고 보내는 자신의 생명 속에서 자연스레 용됩니다. 이 때 굳이 생년월일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되고 혹시 이름을 몰라도 그 분을 생각하면서 제목을 보내면 모두 통하게 됩니다.(2~3일 후 부터 제목 보내드린 분들이 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또 보내준 자신에게 그 분들이 잘하게 됩니다)
이어서 25분~30분 사이에는 광선유포를 위한 서원을 하나 하나 기원해 갑니다.
*** 제3단계 ***
창제회 30분 동안 대어본존님과 하나가 되는 경지명합이 된 상태에서 수시로 가족이나 제목을 보내드리고 싶은 분들을 생각하면서 진지하게 제목을 보내드리고 또 틈틈이 경지명합을 시도하여 일념이 최고조에 오를 때 광선유포의 서원을 기원하는 등 자유롭게 실시합니다.
*** 따라서 개인적으로 일념이 좀 처진다 싶으면 1단계를 염두에 두고 일념을 최대한 끌어 올리고 일념이 만족스러울 때 그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2, 3단계를 행하면 됩니다.
*** 창제 전 후 3분간씩 사색하는 것도 개인에 따라 자연스레 행하면 될 것이고 이 시간을 이용하여 기원할 꺼리를 미리 일념에 정하고 창제에 임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 이 창제회는 단순한 제목회가 아닙니다. 깊은 일념으로 대어본존님과 경지명합해서 창제해보면 자연스레 그 불력과 법력의 정도, 그리고 환희 중의 대환희가 어떤 경애인지를 자연스레 알게되고, 창제의 진면목을 알게 되어 몸과 마음이 깊은 감동으로 전율하게 됩니다.
*** 이 창제행으로 조석근행을 대신해도 충분합니다.
지금까지 조석근행이라고 해온 독경과 창제와는 차원이 다른 각자가 지구촌 뿐만 아니고 우주만상 삼천대천세계의 일체의 생명을 책임지고 그 불성을 열어주고 열어가는 본불로서의 창제행이기에 자연히 스스로 깊이 감사하고 환희하고 만족하는 근행임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창제를 더 하고 싶으면 자신의 여건에 맞추어 시간을 앞뒤로 늘려서 행하면 됩니다.
독경은 하지 않고 시작 때 제목삼창 마칠 때 제목삼창으로 하고 관념문의 경우는 창제행 속에 전부 다 들어있어서 굳이 하지 아니해도 무방합니다.믿음은 즉(卽) 묘법(妙法)이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지혜(智慧)이니라 운운(云云).
약왕품(藥王品)
시진정진(是眞精進)이니라 시명진법(是名眞法) 공양여래(供養如來)라 함이라
이 문(文)은 색향중도(色香中道)의 관념(觀念) 해태(懈怠) 없음을 즉(卽) 진법공양여래(眞法供養如來)라고 이름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유유일승(唯有一乘)인 고(故)로 진법(眞法)이고 세간(世間)도 출세(出世)도 순일실상(純一實相)이니라 운운(云云).
묘음품(妙音品)
신부(身不) 구원(久遠) 동요(動搖)하여 적광토(寂光土) 이입삼매(而入三昧)니라
이 문(文)은 즉(卽) 구원(久遠)을 깨달음을 신부동요(身不動搖)라고 하느니라. 혹장(惑障)을 단진(斷盡)하지 않고 적광(寂光)에 들어가는 것을 삼매(三昧)라고 하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삼매(三昧)이니라 운운(云云).
보문품(普門品)
자안시중생(慈眼視衆生)하시니 복취(福聚) 복지(福智) 해무량(海無量)이니라.
이 문(文)은 법계(法界)의 의정(依正)이 묘법(妙法)인 고(故)로 평등일자(平等一子)의 자비(慈悲)이니라, 의정(依正) 복지(福智)가 공(共)히 무량(無量)이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복지(福智)의 이법(二法)이니라 운운(云云).
다라니품(陀羅尼品)
공(共)히 무량(無量)이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복지(福智)의 이법(二法)이니라 운운(云云).
다라니품(陀羅尼品)
수행시경자(修行是經者)는 미래현(未來顯) 영득안온(令得安穩)이니라 현재현(現在顯)
이 문(文)은 오종묘행(五種妙行)을 수행(修行)하면 오달(悟達)의 도(道)에 들어가 험로(嶮路)에 들어가지 않으니, 이것은 안온(安穩)이라고 함이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즉안온(南無妙法蓮華經卽安穩)이니라 운운(云云).
엄왕품(嚴王品)
순복심후(宿福深厚)하여 생치불법(生値佛法)했느니라
이 문(文)은 일구(一句) 묘법(妙法)에 결연(結緣)하면 억겁(億劫)에도 소실(消失)되지 않고, 대승무가(大乘無價)의 보주(寶珠)를 연마(硏磨)하여 나타냄을 생치불법(生値佛法)이라고 하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불법(佛法)이니라.
권발품(勸發品)
시인명종(是人命終)하여 위천불수수(爲千佛授手)하고 영불공포(令不恐怖) 불타악취(不墮惡趣)라
이 문(文)은 묘법(妙法)을 개오(開悟)하면 분단(分段)의 신(身) 즉(卽) 상적광(常寂光)으로 나타남을 명종(命終)이라고 하며, 천불(千佛)이란 천여(千如), 어수(御手)란 천여구족(千如具足)이니라. 고(故)로 불타악취(不墮惡趣)이고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어수(御手)이니라.이십팔품(二十八品)에 일문(一文)씩의 대사(大事) 합(合)하여 이십팔개조(二十八箇條)의 대사(大事) 비장(秘藏)할지니라 운운(云云)
서품(序品)
어무(於無) 루(漏) 실(實) 상(相) 십계야(十界也) 시각(始覺) 심(心)에 이(已) 득(得)했노라 통달(通達)함을
묘법(妙法) 불변(不變) 수연(隨緣)
이 문(文)은 나의 마음이 본래(本來)부터 각(覺)이니라고 처음으로 깨달음을 성불(成佛)이라고 한다,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비로소 깨닫는 제목(題目)이니라.
방편품(方便品)
진제(眞諦) 주(住) 법위(法位)하여 속제(俗諦) 세간(世間)의 상상주(相常住)니라.
적문(迹門) 하면 도 본문(本門)
이 문(文)은 중생(衆生)의 마음은 본래(本來) 부처라고 설(說)함을 상주(常住)라고 하며, 만법(萬法)이 원래(元來)부터 각(覺)의 체(體)이니라.
비유품(譬喩品)
수지인(受持人) 대백우거(大白牛車) 범부즉극(凡夫卽極)
승차(乘此) 보승(寶乘)하여 직지도량(直至道場)함이라 제목(題目) 극과(極果)의 처야(處也)
이 문(文)은 자신(自身)의 불승(佛乘)을 깨닫고 자신(自身)의 궁전(宮殿)에 들어감이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자신(自身)의 궁전(宮殿)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신해품(信解品) 일념삼천(一念三千) 무상(無上)의 보주(寶珠) 불구자득(不求自得)했느니라. 제목(題目) 마음대로 얻었노라 이 문(文)은 무시색심본시이성묘경묘지(無始色心本是理性妙境妙智)이므로 기심(己心) 이외에 실상(實相)을 구(求)하지 말지어다,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불구자득(不求自得)이니라.
약초유품(藥草喩品)
삼세(三世) 제목(題目) 일체중생(一切衆生)
우제불자(又諸佛子) 전심불도(專心佛道)하고 상행(常行) 자비(慈悲)하여 자지(自知) 작불(作佛)함이라고 마음대로 함 항상 스스로의 지혜를 만들어 부처로 함
이 문(文)은 당래(當來)의 성불(成佛)이 현연(顯然)하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수기품(授記品)
십계실상불(十界實相佛) 삼세상주(三世常住) 번뇌즉보리생사즉열반(煩惱卽菩提生死卽涅槃)
어제불소상수범행(於諸佛所常修梵行)하고 어(於) 무량겁(無量劫) 봉지불법(奉持佛法)함이라
일체업장(一切業障)
이 문(文)은 상(常)이라 하고 무량겁(無量劫)이라 함은 즉(卽) 본유소구(本有所具)의 묘법(妙法)이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화성유품(化城喩品)
삼천진점(三千塵點)
관피구원(觀彼久遠)하니 유여금일(猶如今日)이라
재세(在世)
이 문(文)은 원초(元初)의 일념(一念) 일법계(一法界) 이외(以外)에 결코 육도사성(六道四聖)이란 있을 수 없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삼세일념(三世一念)이며 금일(今日)이란 말법(末法)을 가리켜서 금일(今日)이라고 하느니라.
오백품(五百品)
일본국일체중생(日本國一切衆生) 제목어본존(題目御本尊) 심법색법(心法色法) 번뇌즉보리생사즉열반(煩惱卽菩提生死卽涅槃)
빈(貧) 인(人) 견(見) 차(此) 주(珠)하고 기(其) 심대환희(心大歡喜)함이라 신심(信心)의 모습
이 문(文)은 처음으로 나의 마음이 본래(本來)의 부처라고(신심(信心)의 모습) 아는 것을 즉(卽) 대환희(大歡喜)라고 이름한다,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환희중(歡喜中)의 대환희(大歡喜)이니라.
인기품(人記品)
일부(一部) 제목(題目)
안주(安住) 어불도(於佛道)하여 이구무상도(以求無上道)라
광략(廣略) 요(要)
이 문(文)은 본래상즉(本來相卽)의 삼신(三身)의 묘리(妙理)를 처음으로 각지(覺知)하는 것을 구무상도(求無上道)라고 하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법사품(法師品)
당지여시인(當知如是人)은 자재(自在) 적광(寂光) 소욕생(所欲生)이라
이 문(文)은 우리들의 일념(一念)의 망심외(妄心外)에 불심(佛心)은 없다, 구계(九界)의 생사(生死)가 진여(眞如)이므로 즉(卽) 자재(自在)이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즉(卽) 자재(自在)이니라.
보탑품(寶塔品)
칙위질득(則爲疾得) 무상불도수지야(無上佛道受持也)했느니라고 범부즉극야(凡夫卽極也)
이 문(文)은 지자즉(持者卽) 원돈(圓頓)의 묘계(妙戒)이므로 등묘이각(等妙二覺) 일념개오(一念開悟)이기에 질득(疾得)이라고 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질득(疾得)이니라.
제바품(提婆品)
홀연지간(忽然之間) 변성남자(變成男子)함이라
이 문(文)의 뜻은 삼혹(三惑)의 전체(全體)가 삼제(三諦)라고 깨달음을 변(變)이라고 설(說)하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삼혹즉(三惑卽) 삼덕(三德)이니라.
권지품(勸持品)
아불애(我不愛) 신명(身命)하고 색법심법(色法心法) 단석무상도(但惜無上道)라 아끼지마저도
이 문(文)은 색심환화사대오음(色心幻化四大五陰) 원래(元來) 악습(惡習)이라, 그런데 본각진여(本覺眞如)는 상주(常住)이고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안락행품(安樂行品)
일체제법(一切諸法)은 공(空)이고 무소유(無所有)이며 무유(無有) 상주(常住)이고 역무(亦無) 기별(起滅)이니라.
이 문(文)은 원래(元來) 상주(常住)의 묘법(妙法)인 고(故)로 육도(六道)의 생멸(生滅)은 본래(本來) 불생(不生)이라고 설(說)함이라, 고(故)로 기멸(起滅)이 없다.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본래(本來) 무기멸(無起滅)이니라 운운(云云).
용출품(涌出品)
주야상정진(晝夜常精進)함이라 위구(爲求) 불도고(佛道故)로
이 문(文)은 일념(一念)에 억겁(億劫)의 신로(辛勞)를 다하면 본래(本來)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 염념(念念)에 일어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정진행(精進行)이니라.
수량품(壽量品)
여래여실지견(如來如實知見) 삼계지상(三界之相)하시며 무유생사(無有生死)니라
이 문(文)은 만법(萬法)을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라고 보는 것을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 하며 무작(無作)의 각체(覺體)이므로 무엇에 의하여 생사(生死)가 있다고 할 것이뇨.
분별공덕품(分別功德品)
지차일심복(持此一心福)하여 원구무상도(願求無上道)했느니라 이 문(文)은 일체(一切)의 만행만선(萬行萬善)은 단일심본각(但一心本覺)의 삼신(三身)을 현현(顯現)하기 위(爲)함이니라, 선악일여(善惡一如)이므로 일심복(一心福)이라고 하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일심복(一心福)이니라.
수희공덕품(隨喜功德品)
언차경심묘(言此經深妙)하여 천만겁난우(千萬劫難遇)이니라
이 문(文)은 일체즉묘법(一切卽妙法)이므로 일심(一心)의 원저(源底)를 나타내는 일이 심묘무외(深妙無畏)이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이니라.
법사공덕품(法師功德品)
정산(靜散) 입선출선자(入禪出禪者) 문향실승지(聞香悉能知)함이라
불변사(不變死) 수연생(隨緣生) 십계(十界)
이 문(文)은 일심(一心) 안정시(安靜時)는 입선(入禪), 일심(一心) 산란시(散亂時)는 출선(出禪), 정산즉본각(靜散卽本覺)이라고 아는 것을 실지(悉知)라고 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입선출선(入禪出禪)이니라 운운(云云).
불경품(不輕品)
응당일심광설(應當一心廣說) 차경(此經)할지어다 세세치불질성불도(世世値佛疾成佛道)하리라
이 문(文)은 법계(法界)가 모두 본래(本來) 삼제일심(三諦一心)에 구족(具足)하는 것을 나타내면 기심(己心)의 염념(念念)에 부처를 만나는 것을 즉(卽) 세세치불(世世値佛)이라고 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가 이것이니라.
신력품(神力品)
시인어불도(是人於佛道) 결정(決定) 단파원품무명(斷破元品無明) 무유의(無有疑)니라 십여시(十如是)
이 문(文)은 십계각각(十界各各) 본유본각(本有本覺)의 십여시(十如是)이므로 지옥(地獄)도 불계(佛界)도 일여(一如)이므로 성불결정(成佛決定)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수지(受持)이니라 운운(云云).
촉루품(囑累品)
신여래지혜자(信如來知慧者)에게는 당연설차법화경(當演說此法華經)하라
이 문(文)은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오달(悟達)과 같으며 일체중생(一切衆生)의 깨달음과 부동(不同)이 있을 수가 없다. 고(故)로 여래(如來)의 지혜(智慧)를 믿음은 즉(卽) 묘법(妙法)이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지혜(智慧)이니라 운운(云云).
약왕품(藥王品)
시진정진(是眞精進)이니라 시명진법(是名眞法) 공양여래(供養如來)라 함이라
이 문(文)은 색향중도(色香中道)의 관념(觀念) 해태(懈怠) 없음을 즉(卽) 진법공양여래(眞法供養如來)라고 이름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유유일승(唯有一乘)인 고(故)로 진법(眞法)이고 세간(世間)도 출세(出世)도 순일실상(純一實相)이니라 운운(云云).
묘음품(妙音品)
신부(身不) 구원(久遠) 동요(動搖)하여 적광토(寂光土) 이입삼매(而入三昧)니라
이 문(文)은 즉(卽) 구원(久遠)을 깨달음을 신부동요(身不動搖)라고 하느니라. 혹장(惑障)을 단진(斷盡)하지 않고 적광(寂光)에 들어가는 것을 삼매(三昧)라고 하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삼매(三昧)이니라 운운(云云).
보문품(普門品)
자안시중생(慈眼視衆生)하시니 복취(福聚) 복지(福智) 해무량(海無量)이니라.
이 문(文)은 법계(法界)의 의정(依正)이 묘법(妙法)인 고(故)로 평등일자(平等一子)의 자비(慈悲)이니라, 의정(依正) 복지(福智)가 공(共)히 무량(無量)이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복지(福智)의 이법(二法)이니라 운운(云云).
다라니품(陀羅尼品)
수행시경자(修行是經者)는 미래현(未來顯) 영득안온(令得安穩)이니라 현재현(現在顯)
이 문(文)은 오종묘행(五種妙行)을 수행(修行)하면 오달(悟達)의 도(道)에 들어가 험로(嶮路)에 들어가지 않으니, 이것은 안온(安穩)이라고 함이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즉안온(南無妙法蓮華經卽安穩)이니라 운운(云云).
엄왕품(嚴王品)
순복심후(宿福深厚)하여 생치불법(生値佛法)했느니라
이 문(文)은 일구(一句) 묘법(妙法)에 결연(結緣)하면 억겁(億劫)에도 소실(消失)되지 않고, 대승무가(大乘無價)의 보주(寶珠)를 연마(硏磨)하여 나타냄을 생치불법(生値佛法)이라고 하며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불법(佛法)이니라.
권발품(勸發品)
시인명종(是人命終)하여 위천불수수(爲千佛授手)하고 영불공포(令不恐怖) 불타악취(不墮惡趣)라
이 문(文)은 묘법(妙法)을 개오(開悟)하면 분단(分段)의 신(身) 즉(卽) 상적광(常寂光)으로 나타남을 명종(命終)이라고 하며, 천불(千佛)이란 천여(千如), 어수(御手)란 천여구족(千如具足)이니라. 고(故)로 불타악취(不墮惡趣)이고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어수(御手)이니라.
이상품품별전필(已上品品別傳畢)세상(世上)살이가 힘겨울 때도 금생(今生)의 괴로움조차 슬프니 하물며 내세(來世)의 고(苦)에 있어서랴고 생각해서라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시라. 기쁠 때도 금생(今生)의 기쁨은 꿈속의 꿈이며 영산정토(靈山淨土)의 기쁨이야말로 진실(眞實)한 기쁨이라고 생각하시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퇴전(退轉)없이 수행(修行)하여 최후(最後) 임종(臨終)의 때를 기다려 보시라,산탕상승사(産湯相承事)
닛코(日興) 이를 기(記)함
칭명(稱名)하신 일, 처음에는 제쇼(是生)·실명(實名)은 렌초(蓮長)라고 하셨느니라·후(後)에는 니치렌(日蓮)이라고 자칭(自稱)하신 것은 비모(悲母) 우메기쿠뇨(梅菊女) 동녀(童女)의 이름이니라 평(平)의 전산전(畠山殿)의 동족이셨느니라 운운(云云) 법호(法號) 묘렌젠니(妙蓮禪尼)의 이야기에 말씀하시기로는 나에게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현몽(現夢)이 있었느니라, 세이초사(淸澄寺)에서 밤샘하였을 때 그대의 신심(信心)은 참으로 신묘(神妙)하니라, 일염부제제일(一閻浮提第一)의 보물(寶物)을 수여(授與)하고자 생각하노라, 도조가타우미(東條片海)에 미쿠니(三國)의 다유(太夫)라고 하는 자(者)가 있으니 이를 남편(男便)으로 정(定)하라고 운운(云云). 그 해의 봄·삼월이십사일(三月二十四日)의 밤이었는데 지금도 정확(正確)하게 기억(記憶)하느니라.
나 조실부모(早失父母)한 이후(已後) 할 수 없어 유녀(遊女)와 같이 되었을 때 그대의 부친(父親)에게 출가(出嫁)하였노라. 어느 날 밤의 영몽(靈夢)에 가로되, 에이산(叡山)의 정상(頂上)에 앉아 오우미(近江)의 호수(湖水)로써 손을 씻고 후지산(富士山)으로부터 일륜(日輪)이 솟아 오름을 품에 안아 받았다고 생각하며 깜짝 놀란 후(後)·월수(月水) 멈췄다고 꿈 얘기를 말씀드리니 부친(父親)인 다유(太夫)가 나도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현몽(現夢)을 받았느니라, 허공장보살(虛空藏菩薩)이 예쁜 유아(乳兒)를 어깨에다 세우시고, 이 소인(少人)은 나를 위(爲)해서는 상행보리살타(上行菩提薩埵)이며, 천하(天下)의 사람들을 위(爲)해서는 생재마하살타(生財摩訶薩埵)이니라, 또 일체유정(一切有情)을 위(爲)해서는 미래(未來)에 삼세상항(三世常恒)의 대도사(大導師)로다, 이를 그대에게 수여(授與)하겠노라고 말씀하시는 꿈을 꾼 후(後)에 회임(懷妊)하셨다는 것을 들었노라고 서로 이야기하였었다, 그러하니 그대는 성인(聖人)이로다.
또 태어나던 날 밤의 꿈에 후지산(富士山)의 정상(頂上)에 올라 시방(十方)을 보건대 분명(分明)하기가 장중(掌中)을 보는 것 같고 삼세명백(三世明白)하니라, 범천(梵天)·제석(帝釋)·사대천왕(四大天王) 등(等)의 제천(諸天)이 모두 내하(來下)하여 본지자수용보신여래(本地自受用報身如來)의 수적(垂迹)·상행보살(上行菩薩)의 존신(尊身)을 범부지(凡夫地)에 겸하(謙下)하시니 어탄생(御誕生)은 바로 지금이니라, 무열지(無熱池)의 주(主) 아나파달다용왕(阿那婆達多龍王)·팔(八) 공덕수(功德水)를 바로 길어와야 하느니라, 즉시 산탕(産湯)으로 목욕(沐浴)시켜 드릴지어다 라고 제천(諸天)에게 고(告)하셨느니라. 따라서 용신왕(龍神王)·즉시(卽時)에 청련화(靑蓮華)를 한 그루 가져오더니 그 연(蓮)으로부터 청수(淸水)를 받아 존신(尊身)을 목욕(沐浴)시켜 드렸느니라. 그 나머지 물을 사천하(四天下)에 뿌리니 그 물기를 받은 인축(人畜)·초목(草木)·국토세간(國土世間)·하나같이 모두 금색(金色)의 광명(光明)을 발(發)하고 사방(四方)의 초목(草木)은 꽃이 피고 열매를 맺더라.
남녀(男女)가 병좌(並座)하고 있어도 번뇌(煩惱)가 없으며, 어니(淤泥)속에서 나왔지만 진니(塵泥)에 물들지 않으니, 비유(譬喩)컨대 연화(蓮華)가 수렁에서 나와서 수렁에 물들지 않는 것과 같다. 인천(人天)·용축(龍畜)·함께 백련(白蓮)을 각기(各其) 손에 받쳐들고 태양(太陽)을 향(向)해 금차삼계(今此三界)·개시아유(皆是我有)·기중중생(其中衆生)·실시오자(悉是吾子)·유아일인(唯我一人)·능위구호(能爲救護)라고 봉창(奉唱)함을 보고 놀라니 즉 성인(聖人)이 출생(出生)하셨느니라. 매자작시념(每自作是念)·이하령중생(以何令衆生)·득입무상도(得入無上道)·속성취불신(速成就佛身)이라고 고아(苦我)하며 우시더라.
내가 잠시 졸고 있었을 때·범제(梵帝) 등(等)의 제천(諸天)·일동음(一同音)으로 불러 가로되, 선재(善哉) 선재(善哉)·젠니치동자(善日童子)·말법교주석가불(末法敎主釋迦佛)이라고 세 번 부르며 작례(作禮)하고 떠나셨음을 현실(現實)로 견문(見聞)하였노라고 확실(確實)히 얘기하심을 들으시고 그렇다면 본인(本人)은 니치렌(日蓮) 이라고 말씀하셨느니라.
성인(聖人) 거듭 말씀하시되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들은 비모(悲母)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말라, 즉(卽) 금언(金言)이니라·그 까닭은 나의 수행(修行)은 이미 모친(母親)의 영몽(靈夢)에 있었느니라· 니치렌(日蓮)은 후지산(富士山)의 자연(自然)의 명호(名號)로다, 후지(富士)는 군명(郡名)이며 실명(實名)을 다이니치렌게산(大日蓮華山)이라고 하느니라. 내가 중도(中道)를 수행(修行)하는 고(故)로 이와 같이 나라를 일본(日本)이라고 하며 신(神)을 일신(日神)이라 말하고 부처의 동명(童名)을 일종태자(日種太子)라고 말하며 나의 동명(童名)을 센니치(善日)·가명(假名)은 제쇼(是生)·실명(實名)은 즉(卽) 니치렌(日蓮)이니라.
구원하종(久遠下種)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수호신(守護神)이 아국(我國)에 하강(下降)하시기 시작(始作)한 지방(地方)은 이즈모(出雲)이니라, 이즈모(出雲)에 히(日)노미시카(御崎)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천조태신(天照太神)이 처음으로 하늘에서 하강(下降)하셨으므로 히(日)노 미사키(御崎)라고 하느니라.
우리의 석존(釋尊)은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해 나타내신 이래(已來) 십나찰녀(十羅刹女)라고 호칭(號稱)하였다. 십나찰(十羅刹)과 천조태신(天照太神)과 석존(釋尊)과 니치렌(日蓮)은 일체(一體)의 이명(異名)이며 본지수적(本地垂迹)의 이익(利益) 광대(廣大)하니라. 일신(日神)과 월신(月神)을 합(合)쳐서 문자(文字)를 훈독(訓讀)하면 십(十)이니라, 십나찰(十羅刹)이라고 함은 제신(諸神)을 일체(一體)로 묶어 합(合)친 심의(深義)이니라. 니치렌(日蓮)의 니치(日)는 즉일신(卽日神)·낮이며, 렌(蓮)은 즉월신(卽月神)·밤이니라, 달은 물을 연(緣)으로 하고 연(蓮)은 물에서 생(生)하기 때문이니라, 또 제쇼(是生)란 일(日)의 하(下)의 인(人)을 생(生)한다고 썼느니라.
니치렌(日蓮) 은 천상(天上)·천하(天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주군(主君)이고 부모(父母)이고 사장(師匠)이니라. 지금 구원하종(久遠下種)의 수량품(壽量品)에 가로되 「금차삼계개시아유(今此三界皆是我有) 주군(主君)의 의(義)이니라 기중중생실시오자(其中衆生悉是吾子) 부모(父母)의 의(義)이니라 이금차처다제환난(而今此處多諸患難) 국토초목(國土草木) 유아일인능위구호(唯我一人能爲救護) 사장(師匠)의 의(義)이니라」고 했느니라. 삼세상항(三世常恒)으로 니치렌(日蓮)은 금차삼계(今此三界)의 주(主)이니라. 니치렌(日蓮)은 대은이희유사(大恩以希有事)·연민교화이익(憐愍敎化利益)·아등무량억겁수능보자(我等無量億劫誰能報者)일 것이니라.
만약 니치렌(日蓮)의 현재(現在)의 제자(弟子) 및 미래(未來)의 제자(弟子) 등(等) 중(中)에 일문자(日文字)를 실명(實名)의 상(上)의 자(字)로 놓지 않으면 자연(自然)의 법벌(法罰)을 입는다고 알지어다. 나의 일기(一期)의 공덕(功德)은 일문자(日文字)에 남겨 놓는다고 설법(說法)하신대로·닛코(日興) 삼가 이를 받들어 기술(記述)하노라.
성인(聖人)이 이르시되 이 상승(相承)은 니치렌(日蓮) 적(嫡) 적(嫡) 일인(一人)의 구결(口決)·유수일인(唯授一人)의 비전(秘傳)이니라, 신묘(神妙) 신묘(神妙)라고 말씀하시고 그치셨느니라.
산탕상승사(産湯相承事) 미노부에서 53세에 술작 878~880쪽천여구족(千如具足)이니라. 고(故)로 불타악취(不墮惡趣)이고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어수(御手)이니라.
이상품품별전필(已上品品別傳畢)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弟子)는 제난(諸難)이 있을지라도 의심(疑心)이 없으면 자연(自然)히 불계(佛界)에 이르리라. 천(天)의 가호(加護)가 없음을 의심(疑心)하지 말 것이며 현세(現世)가 안온(安穩)하지 않음을 한탄(恨歎)하지 말지어다.대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불성(佛性)이며 불성(佛性)이란 법성(法性)이고 법성(法性)이란 보리(菩提)이니라. 소위(所謂)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상행(上行)·무변행(無邊行) 등(等)·보현(普賢)·문수(文殊)·사리불(舍利弗)·목련(目連) 등(等), 대범천왕(大梵天王)·석제환인(釋提桓因)·일월(日月)·명성(明星)·북두(北斗)·칠성(七星)·이십팔수(二十八宿)·무량(無量)의 제성(諸星)·천중(天衆)·지류(地類)·용신(龍神)·팔부(八部)·인천(人天)·대회(大會)·염마법왕(閻魔法王)·상(上)은 비상(非想)의 구름 위로부터 하(下)는 나락(那落)의 불길 바닥까지 모든 일체중생(一切衆生)이 갖추고 있는 바의 불성(佛性)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이름하느니라. 법계(法界)의 상(相)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와 다름이 없느니라. 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라 함은 묘법(妙法) 등(等)의 오자(五字)로 부터 용(用)의 이익(利益)을 베푸실 때·사상(事相)으로 이불(二佛)로 나타나 보탑(寶塔) 속에서 서로 수긍(首肯)하시었다. 이와 같은 법문(法門)은 니치렌(日蓮)을 제외(除外)하고는 말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느니라. 천태경(經)에 가로되 「여래비밀신통지력(如來秘密神通之力)」이 이것이로다. 여래비밀(如來秘密)은 체(體)의 삼신(三身)으로서 본불(本佛)이고 신통지력(神通之力)은 용(用)의 삼신(三身)으로서 적불(迹佛)인 것이니라. 범부(凡夫)는 체(體)의 삼신(三身)으로서 본불(本佛)인 것이며 부처는 용(用)의 삼신(三身)으로서 적불(迹佛)이니라. 그러므로 석가불(釋迦佛)은 우리들 중생(衆生)을 위해서는 주사친(主師親)의 삼덕(三德)을 갖추셨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런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부처에게 삼덕(三德)을 갖게 해 드린 것은 범부(凡夫)이니라, 제법실상초(諸法實相抄)
文永十年五月 五十二歲御作
與最蓮房日淨
물어 가로되, 법화경(法華經)의 제일(第一) 방편품(方便品)에 가로되 「제법실상(諸法實相) 내지(乃至)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 운운(云云). 이 경문(經文)의 의(意)는 어떠하오. 답(答)하여 가로되 하지옥(下地獄)으로부터 상불계(上佛界)까지의 십계(十界)의 의정(依正)의 당체(當體)가 모두 일법(一法)도 남김없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상(相)이라고 하는 경문(經文)이니라. 의보(依報)가 있으면 반드시 정보(正報)가 주(住)하느니라. 석(釋)에 가로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가 항상 묘경(妙經)을 말함이라」 등(等) 운운(云云). 또 가로되 「실상(實相)은 반드시 제법(諸法)이요, 제법(諸法)은 반드시 십여(十如)요, 십여(十如)는 반드시 십계(十界)요, 십계(十界)는 반드시 신토(身土)라」. 또 가로되 「아비(阿鼻)의 의정(依正)은 전부(全部) 극성(極聖)의 자심(自心)에 처(處)하고 비로(毘盧)의 신토(身土)는 범하(凡下)의 일념(一念)을 넘지 않느니라」 운운(云云). 이들의 석의(釋義)는 분명(分明)하니 어느 누가 의심할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법계(法界)의 상(相)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와 다름이 없느니라. 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라 함은 묘법(妙法) 등(等)의 오자(五字)로 부터 용(用)의 이익(利益)을 베푸실 때·사상(事相)으로 이불(二佛)로 나타나 보탑(寶塔) 속에서 서로 수긍(首肯)하시었다. 이와 같은 법문(法門)은 니치렌(日蓮)을 제외(除外)하고는 말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느니라. 천태(天台)·묘락(妙樂)·전교(傳敎) 등(等)은 마음에는 알고 계셨으나 말로써 나타내시지는 않고 가슴속에 간직해 두셨느니라. 그것도 도리(道理)였으니 부촉(付屬)이 없는 고(故)로·때가 아직 이르지 않은 고(故)로·부처의 구원(久遠)의 제자(弟子)가 아닌 고(故)로. 지용(地涌)의 보살(菩薩) 중(中)의 상수창도(上首唱導)인 상행(上行)·무변행(無邊行) 등(等)의 보살(菩薩) 이외(以外)는 말법(末法)의 초(初)의 오백년(五百年)에 출현(出現)해서 법체(法體)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홍통(弘通)하실 뿐만 아니라, 보탑(寶塔) 중(中)의 이불병좌(二佛並座)의 의식(儀式)을 만들어 나타낼 사람이 없느니라. 이는 즉(卽) 본문(本門) 수량품(壽量品)의 사(事)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법문(法門)인 까닭이니라. 그러니 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라 해도 용(用)의 부처이며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야말로 본불(本佛)이시니라. 경(經)에 가로되 「여래비밀신통지력(如來秘密神通之力)」이 이것이로다. 여래비밀(如來秘密)은 체(體)의 삼신(三身)으로서 본불(本佛)이고 신통지력(神通之力)은 용(用)의 삼신(三身)으로서 적불(迹佛)인 것이니라. 범부(凡夫)는 체(體)의 삼신(三身)으로서 본불(本佛)인 것이며 부처는 용(用)의 삼신(三身)으로서 적불(迹佛)이니라. 그러므로 석가불(釋迦佛)은 우리들 중생(衆生)을 위해서는 주사친(主師親)의 삼덕(三德)을 갖추셨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런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부처에게 삼덕(三德)을 갖게 해 드린 것은 범부(凡夫)이니라, 그 까닭은 여래(如來)라 함은 천태(天台)의 석(釋)에 「여래(如來)라 함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제불(諸佛)·이불(二佛)·삼불(三佛)·본불(本佛)·적불(迹佛)의 통호(通號)이니라」고 판정(判定)하시었다. 이 석(釋)에 본불(本佛)이라 함은 범부(凡夫)이고 적불(迹佛)이라 함은 부처이니라. 그러나 미오(迷悟)의 부동(不同)으로서 생불(生佛)이 다름에 의(依)하여 구체(俱體)·구용(俱用)의 삼신(三身)이라고 함을 중생(衆生)은 알지 못하느니라. 이러한 까닭으로 제법(諸法)과 십계(十界)를 들어서 실상(實相)이라고 설(說)하시었소. 실상(實相)이라고 함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이명(異名)이요, 제법(諸法)이라 함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말하는 것이니라. 지옥(地獄)은 지옥(地獄)의 상(相)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 실(實)의 상(相)이요, 아귀(餓鬼)로 변(變)하면 지옥(地獄)의 실(實)의 상(相)은 아니로다. 부처는 부처의 상(相) 범부(凡夫)는 범부(凡夫)의 상(相), 만법(萬法)의 당체(當體)의 상(相)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당체(當體)라고 하는 것을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고 하느니라. 천태(天台) 가로되「실상(實相)의 심리(深理) 본유(本有)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운운(云云). 이 석(釋)의 의(意)는 실상(實相)의 명언(名言)은 적문(迹門)이 주체(主體)가 되고 본유(本有)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 함은 본문상(本門上)의 법문(法門)이니라. 이 석(釋)을 깊이 깊이 심중(心中)에 생각하도록 하시라.
니치렌(日蓮)이 말법(末法)에 태어나서 상행보살(上行菩薩)이 홍통(弘通)하시게 될 묘법(妙法)을 앞서서 대략(大略) 홍통(弘通)하고 만들어 나타내시게 될 본문(本門) 수량품(壽量品)의 고불(古佛)인 석가불(釋迦佛)과 적문(迹門) 보탑품시(寶塔品時)에 용출(涌出)하신 다보불(多寶佛)과, 용출품시(涌出品時)에 출현(出現)하신 지용(地涌)의 보살(菩薩) 등(等)을 먼저 만들어 나타내 드린다는 것은 나의 분수로는 중대(重大)한 일이로다. 니치렌(日蓮)을 미워하지만 내증(內證)에는 어찌 하여 미칠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니치렌(日蓮)을 이 섬까지 원류(遠流)한 죄(罪)는 무량겁(無量劫)을 지나도 소멸(消滅)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노라. 비유품(譬喩品)에 가로되 「만약 그 죄(罪)를 설(說)한다면 겁(劫)을 다해도 진(盡)하지 못함이라」고 함은 이것이니라. 또한 니치렌(日蓮)을 공양(供養)하고 또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가 되심은 그 공덕(功德)을 부처의 지혜(智慧)로써도 다 헤아리지 못하느니라. 경(經)에 가로되 「부처의 지혜로써 주량(籌量)할지라도 다소(多少)의 그의 변(邊)을 알지 못함이라」고 하였느니라.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선구(先驅)는 니치렌(日蓮) 일인(一人)이로다.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수(數)에도 들어가리라. 만약 니치렌(日蓮)이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수(數)에 든다면 어찌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지용(地涌)의 유류(流類)가 아니리오. 경(經)에 가로되 「능(能)히 은밀하게 한 사람을 위하여 법화경(法華經)의 내지 일구(一句)를 설(說)한다면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람은 곧 여래(如來)의 사자(使者)요, 여래(如來)가 보낸 바로서 여래(如來)의 사(事)를 행(行)함이니라」고, 어찌 다른 사람의 일을 설(說)하셨겠느뇨. 그러므로 너무나 남이 나를 칭찬할 때는 어떻게라도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느니라. 이는 칭찬하는 바의 말에서 일어나느니라. 말법(末法)에 태어나서 법화경(法華經)을 홍통(弘通)하는 행자(行者)는 삼류(三類)의 적인(敵人)이 있어 유죄(流罪)와 사죄(死罪)에 이르리라. 그러할지라도 참고 견디어 홍통(弘通)하는 자(者)를 옷을 가지고 석가불(釋迦佛)이 덮어 주실 것이로다.
제천(諸天)은 공양(供養)을 할 것이로다. 어깨에 올려 놓고 등에 업을 것이로다, 대선근(大善根)의 자(者)로다,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위(爲)해서는 대도사(大導師)일지니라고.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살(菩薩)·천신(天神)·칠대(七代)·지신오대(地神五代)의 신(神)들·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사대천왕(四大天王)·범천(梵天)·제석(帝釋)·염마법왕(閻魔法王)·수신(水神)·풍신(風神)·산신(山神)·해신(海神)·대일여래(大日如來)·보현(普賢)·문수(文殊)·일월(日月) 등(等)의 제존(諸尊)들에게 칭찬받음으로써 무량(無量)의 대난(大難)마저도 참고 견디었느니라. 칭찬을 받게 되면 자신(自身)이 손상(損傷)되는 것도 돌아보지 아니하며 비방(誹謗)을 당할 때는 또한 자신(自身)이 파멸(破滅)됨도 알지 못하고 행동(行動)하는 것은 범부(凡夫)의 예상사(例常事)니라.
어떻게 하여서라도 이번에 신심(信心)을 다하여 법화경(法華經) 행자(行者)로서 일관(一貫)하고 끝까지 니치렌(日蓮)의 일문(一門)이 되어 나아가시라. 니치렌(日蓮)과 동의(同意)란다면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이 아니겠느뇨. 지용(地涌)의 보살(菩薩)로 정(定)해진다면 석존(釋尊)의 구원(久遠)의 제자(弟子)라 함을 어찌 의심하리오. 경(經)에 가로되 「나는 구원(久遠) 이래(已來) 이들 중(衆)을 교화(敎化)하였다」라고 함은 이것이니라. 말법(末法)에 와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홍통(弘通)하는 자(者)는 남녀(男女)를 가리지 말지니라. 모두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출현(出現)이 아니고서는 부르기 어려운 제목(題目)이니라. 처음엔 니치렌(日蓮)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불렀으나 이인(二人)·삼인(三人)·백인(百人) 이렇게 차례로 불러서 전(傳)하느니라. 미래(未來)도 또 그러하리라, 이 어찌 지용(地涌)의 의(義)가 아니리오. 더구나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때는 일본일동(日本一同)으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게 될 것은 대지(大地)를 과녁으로 하는 것과 같으리라.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에다 이름을 세우고 몸을 맡기시라.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살(菩薩)·허공(虛空)에서 이불(二佛)이 서로 수긍(首肯)하여 정(定)하신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오로지 말법(末法)의 영법구주(令法久住) 때문이니라. 이미 다보불(多寶佛)은 반좌(半座)를 나누어서 석가여래(釋迦如來)께 드릴 때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기(旗)를 꽂아 나타내시고, 석가(釋迦)·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 대장(大將)으로서 정(定)하신 일이 어찌 헛되리오. 이는 오로지 우리들 중생(衆生)을 성불(成佛)시키고자 하는 담합(談合)이시니라.
니치렌(日蓮)은 그 자리에는 없었지만 경문(經文)을 보건대, 조금도 흐림이 없도다. 또 그 자리에도 있었겠지만 범부(凡夫)이므로 과거(過去)를 알지 못하노라. 현재(現在)는 뚜렷하게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이니 또한 미래(未來)는 결정(決定)코 당예도량(當詣道場)이 되리라. 과거(過去)도 이로써 미루어 생각하건대 허공회(虛空會)에도 있었으리라. 삼세각별(三世各別)은 있을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노라니 유배(流配)의 몸이지만 희열(喜悅)은 한량(限量)없도다. 기뻐도 눈물이오, 괴로워도 눈물이라, 눈물은 선악(善惡)에 통(通)하는 것이니 저 천인(千人)의 아라한(阿羅漢)들이·부처님의 일이 생각이 나서 눈물을 흘렸고, 눈물을 흘리면서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고 부르시니, 천인(千人)의 아라한(阿羅漢) 중(中)의 아난존자(阿難尊者)는 울면서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고 대답하시었다. 나머지 구백구십인(九百九十人)은 눈물을 벼루의 물로 하여 또 여시아문(如是我聞) 위에도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고 써 두었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도 그와 같도다. 이와 같은 몸이 된 것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 칠자(七字)를 홍통(弘通)하기 때문이로다. 석가불(釋迦佛)·다보불(多寶佛)이 미래(未來)의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위(爲)하여 남겨 놓으신 바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이와 같이 나도 들었기 때문이니라. 현재(現在)의 대난(大難)을 생각하는데도 눈물이오, 미래(未來)의 성불(成佛)을 생각하여 기뻐함에도 눈물을 막을 길이 없느니라. 새와 벌레는 울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데 니치렌(日蓮)은 울지 않지만 눈물이 마르지 않느니라. 이 눈물은 세간(世間)의 일이 아니라, 다만 오로지 법화경(法華經) 때문이로다. 만약 그렇다면 감로(甘露)의 눈물이라고도 해야 하리라. 열반경(涅槃經)에는 부모(父母)·형제(兄弟)·처자(妻子)·권속(眷屬)과 이별하여 흘리는 눈물은 사대해(四大海)의 물 보다 많을지라도 불법(佛法)을 위하여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고 쓰여 있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가 되는 것은 과거(過去)의 숙습(宿習)이니라. 같은 초목(草木)이라도 부처로 만들어지는 것은 숙연(宿緣)이며 부처라도 권불(權佛)이 되는 것은 또한 숙업(宿業)이니라.
이 문(文)에는 니치렌(日蓮)의 중대(重大)한 법문(法門)들을 썼으니 차근 차근히 읽고 해석(解釋)하여 이해(理解)하도록 하시라. 일염부제(一閻浮提) 제일(第一)의 어본존(御本尊)을 믿으실지어다.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신심(信心)을 강성(强盛)히 하여 삼불(三佛)의 수호(守護)를 받도록 하시라. 행학(行學)의 이도(二道)를 힘쓸지어다. 행학(行學)이 끊어지면 불법(佛法)은 없느니라. 나도 행(行)하고 남도 교화(敎化)하시라. 행학(行學)은 신심(信心)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 힘이 있는 한 일문일구(一文一句)라도 설(說)할지니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공공근언(恐恐謹言).
五月 十七日 日蓮花押
추신(追伸)하외다. 니치렌(日蓮)이 상승(相承)한 법문(法門)들을 전(前)에도 써 보냈는데 특히 이 문(文)에는 중대(重大)한 일들을 써보내니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계약(契約)이로다. 육만항사(六萬恒沙)의 상수(上首)·상행(上行) 등(等)의 사보살(四菩薩)의 변화(變化)인가, 필정(必定)코 연유(緣由)가 있으리라. 대체로 니치렌(日蓮)의 일신(一身)에 해당(該當)한 법문(法門)을 써보냈노라. 니치렌(日蓮)은 아마도 육만항사(六萬恒沙)의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권속(眷屬)일 것이로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불러서 일본국(日本國)의 남녀(男女)를 인도(引導)하려 생각하기 때문이니라. 경(經)에 가로되 일명(一名) 상행(上行) 내지(乃至) 창도지사(唱導之師)라고 설(說)하여져 있지않소. 참으로 숙연(宿緣)에 의(依)하여서 나의 제자(弟子)가 되시었다. 이 문(文)을 깊이 깊이 간직하시라. 니치렌(日蓮)의 기증(己證)의 법문(法門)들을 써놓았소이다. 각필(擱筆)하오.
사이렌보답서(最蓮房答書)말법(末法)에 와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홍통(弘通)하는 자(者)는 남녀(男女)를 가리지 말지니라. 모두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출현(出現)이 아니고서는 부르기 어려운 제목(題目)이니라. 처음엔 니치렌(日蓮)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불렀으나 이인(二人)·삼인(三人)·백인(百人) 이렇게 차례로 불러서 전(傳)하느니라. 미래(未來)도 또 그러하리라, 이 어찌 지용(地涌)의 의(義)가 아니리오. 더구나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때는 일본일동(日本一同)으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게 될 것은 대지(大地)를 과녁으로 하는 것과 같으리라.제천(諸天)은 공양(供養)을 할 것이로다. 어깨에 올려 놓고 등에 업을 것이로다, 대선근(大善根)의 자(者)로다,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위(爲)해서는 대도사(大導師)일지니라고.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살(菩薩)·천신(天神)·칠대(七代)·지신오대(地神五代)의 신(神)들·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사대천왕(四大天王)·범천(梵天)·제석(帝釋)·염마법왕(閻魔法王)·수신(水神)·풍신(風神)·산신(山神)·해신(海神)·대일여래(大日如來)·보현(普賢)·문수(文殊)·일월(日月) 등(等)의 제존(諸尊)들에게 칭찬받음으로써 무량(無量)의 대난(大難)마저도 참고 견디었느니라. 칭찬을 받게 되면 자신(自身)이 손상(損傷)되는 것도 돌아보지 아니하며 비방(誹謗)을 당할 때는 또한 자신(自身)이 파멸(破滅)됨도 알지 못하고 행동(行動)하는 것은 범부(凡夫)의 예상사(例常事)니라.「여래(如來)라 함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제불(諸佛)·이불(二佛)·삼불(三佛)·본불(本佛)·적불(迹佛)의 통호(通號)이니라」고 판정(判定)하시었다. 이 석(釋)에 본불(本佛)이라 함은 범부(凡夫)이고 적불(迹佛)이라 함은 부처이니라. 그러나 미오(迷悟)의 부동(不同)으로서 생불(生佛)이 다름에 의(依)하여 구체(俱體)·구용(俱用)의 삼신(三身)이라고 함을 중생(衆生)은 알지 못하느니라. 이러한 까닭으로 제법(諸法)과 십계(十界)를 들어서 실상(實相)이라고 설(說)하시었소. 실상(實相)이라고 함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이명(異名)이요, 제법(諸法)이라 함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말하는 것이니라.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에다 이름을 세우고 몸을 맡기시라.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살(菩薩)·허공(虛空)에서 이불(二佛)이 서로 수긍(首肯)하여 정(定)하신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오로지 말법(末法)의 영법구주(令法久住) 때문이니라. 이미 다보불(多寶佛)은 반좌(半座)를 나누어서 석가여래(釋迦如來)께 드릴 때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기(旗)를 꽂아 나타내시고, 석가(釋迦)·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 대장(大將)으로서 정(定)하신 일이 어찌 헛되리오. 이는 오로지 우리들 중생(衆生)을 성불(成佛)시키고자 하는 담합(談合)이시니라.실상(實相)이라고 함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이명(異名)이요, 제법(諸法)이라 함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말하는 것이니라. 지옥(地獄)은 지옥(地獄)의 상(相)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 실(實)의 상(相)이요, 아귀(餓鬼)로 변(變)하면 지옥(地獄)의 실(實)의 상(相)은 아니로다. 부처는 부처의 상(相) 범부(凡夫)는 범부(凡夫)의 상(相), 만법(萬法)의 당체(當體)의 상(相)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당체(當體)라고 하는 것을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고 하느니라. 일염부제(一閻浮提) 제일(第一)의 어본존(御本尊)을 믿으실지어다.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신심(信心)을 강성(强盛)히 하여 삼불(三佛)의 수호(守護)를 받도록 하시라. 행학(行學)의 이도(二道)를 힘쓸지어다. 행학(行學)이 끊어지면 불법(佛法)은 없느니라. 나도 행(行)하고 남도 교화(敎化)하시라. 행학(行學)은 신심(信心)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 힘이 있는 한 일문일구(一文一句)라도 설(說)할지니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