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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계획은 '자양2교 → 하폭포 → 상폭포 → 계곡갈림길 → 서북능선 → 큰귀때기골 초입 → 쉰길폭포 → 귀때기골 → 백담계곡 → 백담사 → 용대리'의 대략 8km의 구간을 8시간 동안 탐험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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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계곡(百潭溪谷)
위치: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인제군 북면에 소재하는 백담계곡은 백담사에서 용대리에 이르는 구간을 말한다. 8km 구간에 차도 가 있으나 차량 통행은 막고 있다. 설악 동쪽보다 조용하고 계곡의 아름다움이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또 이 계곡은 설악의 계곡을 거의 모두 합치는 어머니 격으로, 백담이라는 이름 그대로 넓고 깊은 소가 많다.
설악산의 최고봉인 대청봉과 마등령을 잇는 능선을 중심으로 서부 지역을 흔히 내설악이라 한다. 내설악은 십이선녀탕, 백담, 수렴동, 가야동, 백운동 등의 계곡을 거느리고 있는데 그중에서 백담계곡은 시냇물처럼 폭이 넓고 길이도 길다.
깨끗한 암반과 조약돌, 맑은 물, 주위의 울창한 숲과 부드러운 산세가 어우러져 시원스러운 백담(百潭)계곡은 100개의 담(물이 고인 깊은 곳)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백담산장 위부터 수렴동 대피소까지의 계곡은 수렴동 계곡이라 부르지만 사실 백담계곡과 수렴동 계곡은 하나의 계곡이다. 백담계곡 중심부에 자리한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의 자취가 어려 있는 고찰로서 87년의 정치적 사건으로 유명해졌다.
백담계곡 상류로 이어지는 수렴동 계곡도 내설악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골짜기다. 크고 작은 폭포와 소(沼)가 기암괴석과 하모니를 이루면 절경을 노래한다. 백담계곡-수렴동-마등령을 넘어 외설악으로 이어지는 등산도 권할 만하다. 새벽에 출발하면 저녁에 설악동에 도착하는데, 특히 마등령에서의 칼날 같은 공룡능선 조망이 압권이다.
용대리에서 매표소를 지나 계곡을 따라 백담사까지는 약 8km의 거리로서 걸어서 2시간가량 걸리며, 길은 1차선으로 된 시멘트 포장도로이다. 매표소 앞에서 계곡 상류 4km까지는 셔틀버스가 운행되며, 버스에서 내려 3km를(50분 소요) 걸어가면 백담사에 닿게 되고 백담사에서 300m쯤 위에 백담산장이 있다.
셔틀버스를 타지 않고 계곡을 따라 걸어 올라가는 것도 계곡경치를 제대로 볼 수 있어 좋다. 전에는 2시간 이상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점 때문에 계곡의 빼어난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찾는 사람들이 적었으나 셔틀버스가 운행되면서부터는 일년내내 사람들로 붐비게 되었다.
백담계곡을 중심으로 하는 내설악은 속초시 설악동에서 들어서는 외설악에 비해 찾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외설악과 비교해 훨씬 호젓한 편이며, 백담사까지 가는 길이 완만하고 넓어서 어린이나 노인을 동반한 가족 산행코스로 적당하다. - 한국의 산하
<2020년 1월 4일 소간령>
2020년 초 설악산 마산봉 대간령 산행[산행기] 후 전 세계적 코로나19의 유행과 각자 먹고사는 게 바빠 봉 감독과는 같이 산행하지 못했다. 물론 서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텔레그램을 통해 산행에 관한 대화는 지속해서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이대로 가다가는 2020년은 제대로 된 산행 한번 못해 보고 지날 거 같다는 위기감에 일단 숙제처럼 남아 있던 설악산 칠형제봉에 오르기로 했다. 해서 둘 다 모든 일정을 조정해 10월 17일 설악산 칠형제봉을 다녀왔다[산행기]. 첫 시작이 어려울 뿐 다음은 별거 아니듯, 그다음 주 또 하나의 숙제 지리산 도장골을 다녀왔다[산행기]. 그리고 그때 이왕 시작한 거 숙제 중 하나인 설악산 큰귀때기골도 가을철 산불통제 기간 전에 다녀오기로 했다.
둘이 일정을 조율하다가 11월 7일로 의견 일치를 보았지만, 그날은 이미 한 달 전에 한 산악회의 영남알프스 고헌산, 백운산 연계 산행을 신청한 상태였다. 물론 그 두 산도 꼭 가야 할 산이지만, 안내 산악회에서 가끔 가는 산이라 이번이 아니라도 산행할 기회가 있지만, 설악산 큰귀때기골은 이번이 아니면 다시 일정 잡기가 쉽지 않아 포기했다. 다행이라면 그 합의에 도달한 일자에 산행 신청자가 채 10명이 되지 않아 성원 미달로 취소될 확률이 높았다는 거다. 물론 아직 산행 출발 날짜는 멀었지만, 나의 취소로 인해 그 산행계획이 성원 미달로 취소되는 건 같은 산꾼으로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지켜보고만 있었다. 성원을 이뤄 출발이 확정되는 순간이, 취소에 따른 산악회 환급 시기를 넘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내 예상대로 그 산행은 출발 이틀 전까지 신청자 11명에서 더 늘지 않자, 그날 오후 성원 미달로 산행 계획을 취소한다는 산악회 주인장의 문자가 왔다. 해서 취소에 대비한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던 12월 5일 금수산 산행으로 이동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10월 초 금수산이 취소돼 11월 영남알프스로 이전했는데, 영남알프스가 취소돼 다시 12월 금수산으로 이전한다. 이번에는 취소되는 일이 없기를!
그동안 우리가 큰귀때기골을 설악산의 다른 계곡 뒤로 미뤄뒀던 건 선배 산꾼의 위험하다는 산행기에 따라 감행할 자신이 있을 때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해서 이번에는 그동안의 전례를 깨고 점심을 조리해 먹지 않고 완성된 음식을 들고 가 먹기로 했다. 당연히 그 빈자리는 자일, 하강기 등의 안전 장비로 채운다. 또 다른 이유는 체력이 옛날 같지 않아 가능한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도 있다. 설악산의 미지 계곡을 탐험한다는 기대로 들떠 있는 중에 중기일기예보를 확인하니 산행 당일인 토요일에 강원 영서 지역에 비가 온다는 거다. 산의 다른 지역이라면 우중 산행이라도 감행하겠지만, 계곡에서 비를 만난다는 건 목숨을 거는 행위라 산행 일을 일요일로 연기하는 것도 고려했다. 다만, 중기예보는 변동이 심하니 3일 예보를 보고 연기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었다. 그리고 목요일 기상하자마자 기상청 '산악날씨'를 확인했다. 결과는 새벽녘에 흐리기는 하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는 예보다. 해서 토요일 강행하기로 했다.
다른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용대리 펜션이 아닌 신남 수산리에 있는 봉 감독 지인 농막에서 금요일 저녁을 보내고 토요일 새벽 용대리로 출발하기로 했다. 해서 금 오후 5시 30분경 덕소역에서 만나, 농막으로 출발한다. 당연히 농막에선 삼겹살에 지인이 냉장고에 넣어둔 보드카를 마시기로 했다. 보드카가 두 병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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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 5시 30분에 봉 감독과 덕소역에서 만나기로 한만큼 조기 퇴근 후 마트에 들려 삼겹살과 상추, 페트 빨갱이 하나를 사서 집으로 향했다. 산에서 점심은 과일과 갱, 초콜릿으로 해결하지만, 금요일 저녁은 봉 감독 지인의 농막에서 먹어야 해 두 종류의 김치를 챙겼다. 거기다 오랜만에 운봉표 안주도! 농막에서 먹기 위해 가져가는 김치 등은 따로 포장해, 산에 들고 가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했다. 하다못해 빈 김치통 하나의 무게도 줄여야 살 수 있다! 일단 모든 짐을 배낭에 넣고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선 시각이 4시 10분경이다.
불광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덕소로 향했다. 덕소까지 1시 10여 분은 늘 그랬듯이 패드로 음악을 감상하며 책을 읽었다. 그런데 집에서 불광역까지 교통 혼잡으로 마을버스가 늦는 바람에 약속보다 10여 분 늦은 5시 43분에 덕소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뛰어나가 기다리고 있던 봉 감독 차 트렁크에 배낭을 싣고 패드와 카메라를 들고 봉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바로 봉 감독 지인의 농막이 있는 인제 신남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봉 감독이 농막에 가기 전 막국수를 깔끔하게 잘하는 집이 있으니 먹고 가자고 했다. 아무리 막국수라도 그걸 먹은 후 배가 부른 상태에서 삼겹에 빨갱이는 아니지만, 막국수를 잘한다니 맛을 보기로 했다. 6시 59분 신남 보건소 옆에 있는 '신남 막국수'에 도착해 막국수와 부꾸미, 이슬이를 주문했다. 봉 말대로 막국수는 깔끔했고 부꾸미도 좋았다. 그렇게 이슬이를 반주로 막국수와 부꾸미를 먹었다. 배부르게 먹은(이게 문제다!) 후 남은 이슬이를 들고 7시 30분경 식당을 떠났다.
신남면 소재지에서 10여 분 떨어진 소양강 부근에 있는 지인의 농막에 도착한 시각이 7시 41분이다. 농막은 TV에서 가끔 보던 컨테이너 집으로 나도 저걸 하나 장만할까 고민하고 있던 거였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보일러를 가동하고 상을 차려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했다. 물론 냉장고를 뒤져 두 병의 보드카를 꺼내는 걸 잊지 않았다. 봉 감독이 상추를 씻는 동안 내가 삼겹살을 구웠다. 먹고 마실 준비가 끝난 후 식당에서 남겨 온 이슬이를 비우고 내가 들고 간 빨갱이도 비웠다. 마시는 동안 심심하지 않도록 블루투스 스피커를 이용해 음악을 감상하며 암벽 등반과 인생사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빨갱이를 비우고 나서 부족한 술을 보드카로 채웠다가는 다음날 계곡 산행이 불가능할 거 같아 가볍게 마실 만한 술이 있나 냉장고를 뒤지다 냉장고 위에 있던 "매취순" 12년산 3ℓ를 발견했다. 알콜 도수는 18도, 이슬이보다 세다! 배가 불러 삼겹살을 못 먹어, 감과 사과를 꺼내 안주 삼아 매취순을 마셨다. 배가 부르고, 적당히 취하기도 해 술자리를 파하고 보니 남은 음식이 많았다. 일단 김치 두 종류가 남아 있었고, 구운 삼겹살도 몇 점 있었다. 물론 안주용 사과도. 애초 점심을 과일과 갱, 초콜릿으로 때울 생각이었으나 남은 음식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두 종류의 김치를 한 용기에 넣고 구운 삼겹살도 같이 넣었다. 그리고 아침에 기상해 이 집에 차고 넘치는 햇반을 하나 돌려 가져가기로 했다. 냉장고와 찬장에 가득한 얼린 밥과 햇반, 라면을 그리고 술을 보니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는 주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3시경 나는 2층에서 봉은 1층에서 잠이 들어, 봉 감독이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깼다. 정확히는 추워서 잠이 깼지만, 억지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마치 대피소에서 자는 거처럼! 볼일을 보고 씻은 후 가능하면 우리가 묵었다는 모든 흔적을 깔끔히 지우고 집을 나선 시각이 5시 40분경이다. 계획에 따르면 아침은 원통 버스터미널 부근에서 먹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터미널 부근이라고 하지만, 그 시각에 문을 연 식당이 있을 거 같지 않았다. 봉 말에 의하면 꼬마 김밥집이 그 시각에 문을 연다고. 원통 터미널에 도착해 부근에 주차한 후 식당을 찾아 돌아다녔다. 문을 연 식당은 몇 개 있었지만, 다 음식 준비 중이라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와중에 꼬마 김밥집은 문을 열지도 않았다. 둘 다 당황한 상태에서 2019년 9월 선현과 설악산 천제단을 오른[산행기] 후에 하신주를 마셨던 식당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메뉴는 많은 준비가 필요 없는 백반! 아침을 먹고 식당을 나온 시각이 6시 48분이다. 주차한 차로 가 배낭을 꺼내 식당 앞에 있던 택시를 타고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자양 2교로 달렸다. 처음으로 원통 터미널을 베이스캠프로 한 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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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왈 "ㅇㅎㅎ 아싸 VS 망연자실..">
7시 10분경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자양 2교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상투바위골은 이번 두 번째로 첫 탐험은 2018년 9월 26일로 소승골로 올라 상투바위골로 하산했었다[산행기]. 지난번에는 서북능에서 상투바위골로 하산했지만, 이번에는 서북능으로 올라간다. 등산과 하산을 다 해본 계곡은 지리산 한신계곡 외에는 첫 계곡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니구나, 십이선녀탕과 구곡담이 있다. 굳이 더 넣자면 천불동도! 설악산이 산이 작고 거의 모든 등산로가 계곡을 따라 나 있어, 등산과 하산을 같이 할 수밖에 없구먼! 지난 태풍으로 망가진 계곡을 따라 쉬엄쉬엄 올라 7시 49분에 아래 폭포에 도착했다. 2018년 이 계곡으로 하산 시 폭포 상단에 설치된 밧줄까지 암릉을 따라가기에는 둘 다 간이 작아 밧줄을 잡고 하강하는 걸 포기하고 우측 암봉을 넘어 우회했었다. 그리고 폭포를 내려간 후 밑에서 밧줄을 잡고 폭포로 올라가며 "별거 아니네!" 했었다[당시 산행기]. 그런데 밧줄이 없었다! 이런 황당할 때가! 위의 마지막 세트 사진 위가 2018년, 허탈하게 쳐다보고 있는 게 이번 산행이다. 동일 인물!
당연히 있을 거로 생각했던 밧줄이 제거된 상태라 어쩔 수 없이 우회해야 했다. 당시에는 등산 기준 폭포 왼쪽을 이용했지만, 이번에는 오른쪽이 편해 보여 오른쪽으로 봉우리로 올랐다. 그런데 지난 태풍의 영향인지, 땅이 안정되어 있지 않아 무너지고, 쌓인 낙엽이 미끄러워 위험했다. 어쩔 수 없이 상단 나무에 자일을 설치하고 올라와야 했다. 그리고 봉우리를 넘어 다시 계곡으로 접근하자 그쪽은 산사태로 반 정도나 잘려 나간 상태였고, 발을 디디면 무너져 내렸다. 조심조심 다시 계곡을 내려와 둘이 이 상황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누가 밧줄을 제거했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제거했을 거라는 게 상식이다. 그럼 문제가 심각하다! 위 폭포의 밧줄도 제거했을 거고, 큰귀때기골도 역시!
힘겹게 폭포를 우회한 후 상단에 앉아 커피를 한잔하며 얘기를 마치고 다시 배낭을 메고 문제의 위 폭포를 향해 갔다. 그리고 8시 59분에 위 폭포 하단에 도착했다. 역시 우리의 예상대로 누군가 밧줄을 제거했다. 두 번째 사진 세트의 위 사진이 2018년 하산[당시 산행기] 시고, 아래 사진이 이번 산행에서 허탈하게 암벽을 쳐다보는 순간! 그 허탈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어쩔 수 없이 우회해야 해 폭포를 중심으로 좌와 우를 살펴봤지만, 그나마 오를 수 있을 거 같은 게 오른쪽이라 그쪽으로 기어오르기를 시도했지만, 산사태의 영향으로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상태였다. 이제 방법은 안전도구 없이 폭포로 기어오르거나 돌아가는 거다. 해서 일단 암벽을 기어올랐다. 5부 정도 오르자 암벽에 박힌 앵커가 보였다. 그리고 기억이 났다. 이 폭포는 세 개의 앵커가 계단식으로 박혀 있었고, 각 앵커에 밧줄이 있어 교대로 잡고 내려왔었던 게!
첫 번째 앵커에 손이 닿는 위치까지 올라 슬링을 꺼내 걸었다. 그리고 그 슬링을 이용해 두 번째 앵커가 있는 곳까지 올라야 하는데 배낭이 부담되어 뒤에 있는 봉 감독에게 배낭을 넘기고 슬링과 자일을 들고 두 번째 앵커로 기어갔다. 다시 슬링을 설치하고 가장 큰 난관인 마지막 앵커로 돌진해 두 앵커에 설치한 쇠사슬을 잡았다. 쇠사슬을 잡고 앉아서 가쁨 숨을 몰아쉬고 긴장된 근육을 풀었다. 그리고 슬링을 쇠사슬에 걸고 손목에 감은 후 자일을 설치한 후 밑으로 내렸다. 먼저 내 배낭을 올린 후, 봉 감독이 올라오는 거로 상투바위골 난관은 무사히 통과했다. 자일을 회수해 정리한 후 이 코스의 가장 힘들고 지루한 서북능까지의 남은 길을 갔다. - 참고로, 용대리에서 원통으로 가는 동안 택시 기사의 말에 의하면 그 앵커도 철거할 예정이라고 함.
산사태로 엉망인 지역을 올라가다 계곡에서 의외의 얼음을 보고 놀라 사진을 찍었다. 겨울이다! 아무리 설악산이지만, 11월 초에 얼음을 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하긴 10월 말에 지리산 반야봉에서는 상고대를 즐겼으니[산행기]! 저 앞에 보이는 서북능선을 향해 올라가다 계곡 중간 나무에 산악회의 리본이 걸려 있는 걸 보고 우리 등산방의 펜던트도 하나 달아줬다. 다시 이 계곡에 올 거 같지는 않고 혹시 친구 중 누군가 오게 된다면 참고하라고. 지난번 하산 시에도 이 구간에서 미끄러져 뒤로 꽈당한 일이 있었지만, 등산은 더 힘들었다 해서 중간에 귤을 꺼내 먹으며 잠깐 휴식했다. 휴식 후 다시 산사태로 흔들리고 무너지는 계곡 바위와 돌을 조심하며 위로 올라 10시 41분에 계곡 마지막 물을 지났다. 서북능에서 물이 떨어지면, 여기 와서 보충하면 된다는 얘기를 나누며 계곡을 벗어나 너덜 길로 11시 8분에 서북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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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청 바로 아래 서북능에는 나에 앞서간 봉 감독과 남교리에서 출발해 대청으로 가고 있다는 부부로 보이는 한 쌍이 쉬고 있었다. 남교리에서 대청이라, 대피소가 영업하지 않는 코로나 시기에는 오색이나 천불동으로 하산해야 하는데, 가능할까? 서북능에서 우리의 하산 코스인 큰귀때기골의 들머리가 어딘지 알 리 없는 내가 봉 감독에게 들머리가 어딘지 물었다. 과거 대충 본 산행기에 따르면 안산 쪽으로 조금 가면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봉 말에 따르면 내 기억과는 반대로 귀청으로 올라가다가 너덜지대에서 "탐방로 아님" 입간판이 서 있는 곳이 들머리라고 했다. 그런데 지난 지리산 불무장등 산행[산행기] 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무법자들의 이정표 "탐방로 아님" 입간판을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제거하고 있다는 거다! 지리산에서 제거했으니 설악산에서도 없앴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부부가 먼저 귀청으로 출발하고 우리는 조금 더 휴식 후 귀청으로 올랐다. 강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너덜 200여 미터를 올라가니 갈림길이 나왔다. 저 건너로는 구름?, 미세먼지에 쌓인 가리봉이 희미하게 보였다. 어떤 렌즈를 가져갈까 고민하다가 계곡 산행이 주고, 날이 흐리다는 예보에 무겁기만한 줌 렌즈를 두고 온 게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역시 내 예상대로 입간판은 없었다. 문제는 입간판이 없음에도 뚜렷한 갈림길이었고, 왼쪽 길의 나무에는 리본까지 달려 있었다. 물론 귀청으로 가기 위해서는 좌회전이 아니라 직진해야 한다. 바람을 피해 바위 뒤에서 가리봉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귀청에서 3명의 등산객이 내려왔다. 이번 산행에서 산에서 만난 5명 중 3이다. 나머지 둘은 그 부부다! 먼저 간 봉 감독을 따라 큰귀때기골 들머리를 지나 너덜의 능선을 따라고 가고 있는데 앞에서 봉 감독이 누군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였다. 해서 큰귀때기골에서 올라오는 팀 아니면, 내려가는 팀이라는 생각에 반갑기까지 했다. 올라오는 팀이라면 그쪽의 밧줄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고, 내려가는 팀이라면 초행에 동행이 있으면 아무래도 안심이 되니!
그런데 아래로 봉 감독과 두 남녀가 보였고, 남자가 내 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해서 계곡에서 올라오는 팀이라고 생각해 인사를 하고 보니, 서북능에서 만났던 부부 중 남편이었다. 아니 이 부부가 왜 여기에? 비법정 갈림길에서 아무 표지가 없어 생각 없이 리본이 보이는 길로 접어들었다는 거다. 그리고 한참 가다 보니 오르는 게 아니라 내려가는 게 이상했었는데, 바로 따라서 온 봉 감독이 알려줘 다시 귀청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안내 표지는 없고, 비법정 길의 상태가 좋으니 발생한 해프닝이다! 길 상태가 양호하기는 했지만, 길 대부분이 너덜이라 걷기는 좋지 않았다. 귀청 자체가 다 너덜이니 당연한 얘긴가? 너덜 관목 지대를 지나자 전망이 좋은 너덜에 도착했다. 강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주변 절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각자 인증도 남겼다.
너덜과 관목지대를 교차 통과해 12시 16분에 급경사의 너덜에 도착했다. 급경사를 내려가면 큰귀때기골이다. 이 글을 쓰며 확인한 바에 의하면(트랭글 기준), 급경사의 시작 고도가 1,306m, 쉰길 폭포 하단이 816m 거리는 대략 1.2km다. 고로 1.2km 동안 460m의 산사태 너덜 지역을 내려와야 했다. 무너지는 사태 지역을 미끄러지며 내려오다 보니, 이 코스에 안내 산악회가 온다는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어쨌든 조심조심 내려가자 요란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더 아래로 내려가니 왼쪽으로 흰 물줄기가 보였다. 쉰길폭포다. 도량형 '길'이 어느 정도 길이인지는 모르겠지만, 50길 폭포라는 얘기다. 그런데 폭포가 가까워질수록 하단에 하얀 눈 같은 또는 얼음 같은 게 보여 내가 잘 못 본 거로 생각하고 갔다. 상투바위골에서 약간의 얼음을 보기는 했지만, 폭포 아래가 얼어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폭포에 도착해서 보니 눈이 얼어붙은 얼음이 맞았다. 겨울이다! 먼저 수량은 좀 부족해 보이지만, 장엄한 쉰길폭포를 동영상으로 남기고, 머그를 들고 폭포로 달려가 그 물을 받아 마셨다. 장엄한 폭포를 보면 행하는 나만의 신성한 의식이다! 이후 이번 산행 처음으로 둘의 인증을 남겼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앉아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봉 감독이 가져온 빵과 치즈, 농막에서 돌려온 햇반과 어제 먹다 남은 삼겹살과 김치가 우리 점심이다. 폭포 아래에서 저 바로 앞에 보이는 산사태 지역을 어떻게 통과할 건지 고민하며 점심을 먹고 1시 30분경 쉰길 폭포를 떠났다.
쉰길폭포 아래에 있는 삼중폭포까지의 산사태 지역 계곡을 내려가는 거 자체가 모험이었다. 아직 땅이나 돌이 제자리를 찾지 못해 심하게 흔들렸고, 무너지기까지 했다. 해서 가능하면 계곡 중앙으로 큰 바위를 밟고 첫 폭포를 향해 갔다. 그렇게 내려가 1시 50분에 계곡 합수부이자 삼중폭포의 제1폭에 도착했다. 하산 길은 1폭으로 내려가 2폭 상단을 우회한 다음 3폭으로 내려가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1폭 하단으로 내려가기는 길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이런 때 쓰자고 자일을 들고 온 만큼 주저하지 않고 누군가 과거에 밧줄을 맸던 나무에 자일을 설치하고 폭포 하단으로 내려갔다. 1폭 하단에 도착해 인증을 찍고 2폭 상단을 가로질러 왼쪽 봉우리에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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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봉 옆으로 길을 개척한 선배들에게 감탄하며 횡단해 갔지만, 길 자체는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오른쪽 나무 사이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2폭을 감상하며 초긴장 상태로 길을 내려가 2시 21분에 2폭 하단이자 3폭 상단에 도착했다. 그런데 우리가 아슬아슬한 우회로로 내려오는 동안 3명의 산꾼이 계곡으로 바로 2폭으로 가는 게 보였다. 대단한 암벽꾼들이다! 2폭 하단이자 3폭 상단에서 여기를 어떻게 내려갈까 고민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생각 같아서는 폭포로 뛰어내려도 될 거 같았지만, 물의 깊이를 알 수 없었고, 그러기에는 너무 추웠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저쪽에 아래로 늘어뜨린 밧줄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밧줄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지나야 할 암벽에 물이 흐르고 있어 미끄러울 거 같아, 자일을 꺼내 바위에 설치하고 이미 설치된 밧줄까지 접근했다. 자일을 회수하고 밧줄을 잡고 하산하며 속으로 별거 아니네 했지만, 별거는 아직 보지를 못해서 나온 생각이었다.
밧줄 바로 아래는 폭포 하단으로 바로 물이라 내려갈 수가 없었다. 물론 허리 이상 빠질 각오를 한다면 내려가도 무방하다.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암벽을 따라 옆으로 설치된 줄을 잡고 횡단해야 했다. 물론 발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아 여차하면 줄에 매달리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중간 정도에 있는 줄을 잡고 밑으로 내려온 후 마지막으로 그 옆에 설치된 줄을 잡고 내려와야 물이 아니라 바위에 안착한다. 내려와서 둘이 나눈 얘기지만, 앞선 꾼이 횡으로 줄을 설치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내려올 엄두가 안 나는 코스다. 물론 줄이 있다고 해도 아슬아슬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이 줄은 철거하지 않아 내려올 수 있었지, 제거했다면 폭포로 뛰어들든가, 우회로를 찾아 암봉을 넘든가, 왔던 길로 돌아 다시 서북능으로 올라갈 뻔했다.
어쨌든 가장 위험하다는 삼중폭포를 무사히 내려왔다. 이제부터는 백담계곡 합수부까지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간간이 볼만한 경치와 작은 폭포와 소가 있기도 했지만, 서북능에서 삼중폭포까지 체력 소모가 심했고, 거대한 태풍 이후라 계곡이 안정되지 않아 발 디디기가 쉽지 않았다. 안전한 돌이라고 생각해 밟으면 흔들리거나 무너졌다. 덕분에 미끄러져 넘어지기를 여러 차례, 와중에 제방이 무너지기도 했다. 고로 이 길도 급경사의 너덜이나 삼중폭포와 다름없이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쓰러진 나무를 밟았다가 아주 처절하게 넘어지기도 하며 길을 가 3시 25분에 적당한 소를 발견해 모든 걸 벗어 던지고 물로 들어갔다. 호기롭게 들어가기는 했지만, 너무 추워 10초 이상을 견디지 못했다. 알탕을 마친 후 여기저기 자잘하게 난 상처에 밴드를 붙이고 다음 목표인 축성암터를 향해 갔다.
3시 29분에 과거 축성이라는 암자가 있었다는 터에 도착했다. 축성암터에 관해서는 몇 년 전 산악구조요원인 택시 기사에게 들은 얘기가 있어 둘 다 감회가 새로웠다. 축성암터에서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긴 후 백담계곡을 향해 내려갔다. 그렇게 내려가다 봉 감독 배낭 멜빵 보조 주머니에 넣어 뒀던 핸드폰이 없어진 걸 발견했다. 통신이 안되는 지역이라 전화해서 위치를 찾을 방법은 없고, 왔던 길을 돌아가 찾는 방법밖에 없었다. 우리가 핸드폰이 떨어졌을 거로 의심한 지역은 먼저 축성암터로 그곳에서 봉 감독이 사진을 찍기 위해 배낭을 벗어 땅에 뒀었다. 다음은 알탕을 한 곳으로 당연히 모든 걸을 벗어 둔 곳이다. 이 두 곳에 없다면, 아주 심각한 상황이 되는 거다. 해서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나아 둘이 배낭을 벗어 두고 아래를 주시하며 기억을 더듬어 왔던 길을 되돌아 먼저 축성암터로 갔다. 없었다. 해서 더 위인 알탕을 한 소로 가보니 암반에 아주 잘 모셔 있는 핸드폰을 볼 수 있었다.
핸드폰을 찾아 배낭을 벗어 둔 곳으로 다시 내려와 배낭을 둘러메고 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화전민터를 구경하고 송진 채취를 위해 거의 반이 벗겨진 전나무를 지나 4시 30분에 작은귀때기골 합수부에 도착했다. 이 부근이 나름 꾼에게는 유명한 야영지로 우리도 시간이 되는 여름에 2박 3일 정도 야영하며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합수부 다음부터는 태풍의 영향이 미미했는지 길 상태가 양호해 쉽게 내려갈 수 있었다. 마침내 4시 54분에 저 앞에 계곡을 따라 나무로 만든 길이 보였다. 백담계곡이다! 그 다리 위에는 단풍놀이를 온 등산객, 관광객이 버스를 타기 위해 줄지어 내려가고 있었다. 이미 단풍철이 지난 시기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에 가볍게 놀랐다. 애초 17시 차를 타고 용대리로 나갈 생각이었지만, 도저히 5시까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수 없어 생각이 많았는데, 그 많은 사람을 보자 고민이 사라졌다.
버스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자 여유가 생겼다. 해서 일단 백담계곡에서 탁족을 하기로 했다. 발바닥이 심하게 아파 열기를 식혀줄 필요가 있었다. 대략 20분간 탁족을 하며 노닥거린 후 새로 만든 다리 길을 따라 백담사로 갔다. 5시 36분 백담사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해 봉 감독 배낭 무게를 재봤다. 14kg! 한 번도 꺼내 보지 못한 삼각대, 슬링, 렌즈 등의 무게다! 투철한 직업의식이 만든 무게라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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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보니 출발 직전의 버스가 보였다. 빈자리는 3자리, 우리가 두 자리를 차지하고 관광객 한 명이 나머지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셔틀은 용대리를 향해 출발했다. 용대기로 향하는 버스는 마치 비포장도로를 달리듯 덜컹거렸다. 포장도로였으나 이번 태풍으로 길이 망가져 비포장도로로 변했고, 백담계곡에 있던 다리가 망가져 임시 다리로 통행하고 있었다. 사실 이 도로를 개방할 여건이 안 됐지만, 지역 경제를 위해 단풍철 막바지에 임시로 개방한 거였다. 이후 산불통제 기간에 나머지 공사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 택시 기사에게 들은 말이다! 애초 용대리에서 버스를 타고 원통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완전히 지친 상태라 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 나가는 거리와 추위에 버스를 기다리는 게 힘들어 봉 감독이 셔틀에서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타고 원통 버스터미널로 가 봉 감독 차로 인제로 향했다. 밥을 먹고 가기 위함이다. 인제 감자탕집은 2018년 8월 화채능선 산행[산행기] 후 하산주를 마셨던 식당이다. 이후 나는 다시 갈 기회가 없었지만, 설악산을 수시로 드나드는 봉 감독은 자주 들러 단골이 돼 있었다. 뼈해장국과 이슬이를 시켜 운전해야 하는 봉 감독은 빼고 혼자 자작하며 저녁을 먹었다. 산행 후 뼈해장국은 최고의 선택인 듯했다. 인원이 좀 된다며 감자탕이! 각자 뼈해장국 한 뚝배기씩 비운 후 내가 전철을 타야 하는 덕소를 향해 달렸다.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생각보다 많이 막히지 않은 도로를 달렸다. 와중에 한영애의 Behind Time의 수록곡 '사의 찬미'에서 시작된 음악이 러시아 민요 카츄사, 김부자의 카츄사에 이어 '렐릭트 트리오 - 낙엽을 흩뿌린 단풍나무'까지 가는 놀라운 기적도 있었다. 음악을 즐기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달려 8시 40분경 덕소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도로 상태가 좋아 예상보다 빠른 도착으로 8시 51분 전철을 타고 집으로 향해 10시 17분에 집에 도착하는 거로 이번 설악산 14번째 오지 탐험 산행을 마쳤다.
처음 계획대로 '자양2교 → 하폭포 → 상폭포 → 계곡갈림길 → 서북능선 → 큰귀때기골 초입 → 쉰길폭포 → 삼중폭포 → 축성암터 → 화전민터 → 작은귀때기골 합수구 → 백담계곡 → 백담사 → 용대리'의 12.5km(트랭글 기준), 10시간 26분의 설악산 오지 탐험이었다. 이동 8시간 7분, 휴식 2시간 19분!
이번 큰귀때기골 산행으로 2020년 해야 할 숙제는 다 한 기분이다!
큰귀때기골을 탐험하고 나니 나머지 계곡이 싱겁게 느껴질 정도다!
앞으로 상투바위골이나 큰귀때기골을 탐험할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업로드 제한에 따른 유튜브 추가 영상]
<상투바위골 아래폭포>
<상투바위골 위폭포>
<큰귀때기골 쉰길폭포>
<큰귀때기골 3중폭포 중 1폭 & 합수부>
<큰귀때기골 3중폭포 중 2폭>
<큰귀때기골 3중폭포 중 3폭>
첫댓글 산행 다음 날 다리가 아닌 팔이 아픈 건 과거 아이젠 없이 한겨울 북한산에 올랐다가, 다리가 아닌 팔로 산행을 마친 다음 날 이후 처음이다!
살겠다고 암벽에서 팔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리라!
정확히는 팔뿐만 아니라 팔다리!
여한이 없는 그런 산행이었다. 고생했다. 너가 없었으면 그 곳을 어째 가보겠누...죽기전에 어쩌면 한두번은 더 가볼지도..
또 간다고?
언젠가 또 그리워질지도. 근데지금은 안가고싶어 ㅎ
산행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