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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8일
뮤지컬 캣츠를 관람하였다. 마침 부산 공연이 있어서 급하게 표를 예매하였다. 뮤지컬은 처음이다. 솔직히 공연은 처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속한 조직에 행사가 있어서 단체 관람을 한 적은 있지만 스스로 찾아서 공연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뮤지컬은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데 무슨 재미가 있지.’ 이런 생각이 나의 의식 밑에 깔려 있었다. 물론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나라 뮤지컬을 본적도 없었으니, 그냥 핑계일 뿐이다.
부담스러운 가격인건 사실이지만, 과감하게 VIP석을 예매하였다. 이래도 재미없으면 나는 뮤지컬과는 안 맞는 걸로 결론 내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늘 낯선 공간은 약간의 두려움을 선사한다. 솔직히 나는 두려움보다는 남에게 처음 온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그렇게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하는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간 뒤에 공연이 시작되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공연을 보는 구나!” 예술에서 감탄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것은 스토리뿐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감각과 함께하기 때문에 종합예술이라고 칭하는 가 보다. 그렇게 긴 시간의 공연이 끝났다. 솔직히 줄거리는 잘 모르겠다.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런데 그 공연들이 내 몸에 남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음악이 귓가에 머물러 있고, 울림이 가슴을 떨게 하고 있으며, 배우들의 몸짓이 나의 망막에 새겨 있는 듯하다. 캣츠를 떠올릴 때마다 그 느낌은 그때마다 소환되고 있다. 물론 조금씩 옅어지긴 하지만....
2019년 3월 15일
봄이 되면 새롭게 오르곤 했던 집 앞 윤산을 찾았다. 평일 오후 시간이라서 사람이 많지 않다. 등산화 끈을 조여매고 출발하려는 순간 봄 햇살이 담긴 바람이 두 볼을 만지며 지나간다. 따스한 바람에 연신 코를 킁킁 대며 향기를 맡으려 해보지만, 나의 둔한 감각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약수 한잔으로 심호흡을 대신하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간다. 자주 오든 곳이라 낯설지가 않다. 그렇지만 항상 어제와 다른 무언가가 있는 곳이 숲이고 산이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등짝에 셔츠가 밀착되어 있음을 느낄 때쯤 호흡이 가빠진다. 매번 이런 타임에 나의 건강에 대한 생각을 한다. 알 수 없는 걱정에 이 순간을 뺏기기 싫어서 고개를 가로 젓고는 눈길을 자연에게로 옮겨간다. 오래된 산 벚나무에 큰 둥치에 작은 벚꽃 새순이 올라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발은 저절로 걸음을 멈추었고, 눈길은 고정되었으며, 입에서는 아~~하 하는 감탄사가 나온다. 머리는 더 이상 작동을 하지 않고, 왼쪽 가슴은 찌릿한 전기가 흐르는 듯하다. “생명은 저렇게 매년 싹을 틔워 내는 구나.” “저 큰 둥치도 올해 새 꽃을 피우겠네” 갑자기 눈물이 난다. 나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아 소리 없이 감탄하며 한참을 눈물 흘렸다. 그렇게 나무를 껴안아 본다. 따뜻하다. 나무도 따뜻하고 공기도 따뜻하다. 다뜻한 향기에 따뜻한 바람소리 모든 것이 따뜻하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산벗나무를 뒤로 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나는 또 걷는다. 어제의 길을 어제의 내가 걸었다면, 오늘의 길을 오늘의 내가 걷는다. 그렇게 걷는 길에 모든 생명이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낀다. 심장이 요동치고, 눈물이 나는 지금 내가 걷고 있다. 내일은 또 누구를 만날까?
2019년 10월 1일
내가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는 장소를 드디어 찾았다. 조셉 캠벨 교수가 말한 성소이자. 함석헌 선생님이 시로 알려준 골방을 찾았다. 이곳에서 나는 혼자다. 바로 나만의 장소다. 다른 어떠한 것도 필요치 않다. 나만 있으면 된다. 외로움이 가슴을 시리게 하고, 두려움에 피부가 곤두서기도 한다. 혼자 기쁨의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펑펑 울기도 한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 그 순간을 나는 느낄 수 있다. 닦아내어서 감추는 것이 아니라 습기의 흔적을 얼굴에 둔 채로 방울과 손 흔들며 인사한다. 눈으로 들어와 머릿속에 한참을 머물며 이리 부딪치고 저리 치이면서 상처투성이로 견뎌내다가, 너무 힘이 들어 이제 그만하겠다고 선언하고 나니 어느새 가슴이다. 그리고 마음은 눈물을 잉태하여 다시 눈으로 돌려보낸다. 그 긴긴 시간 나의 구석구석은 이미 너와 인사했는데, 새로 태어난 너에게 또 새 인사를 보낸다.
그렇게 내가 전부인 곳, 나만 아는 곳, 그렇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그 곳이다. 창문을 만들지 않아도, 문을 내지 않아도, 열려있는 곳이다. 문득 문득 내가 아닌 다른 이의 방문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방문하지 않아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조금 더 자주 느낀다.
2020년 2월 5일
가족과 함께 스위스 여행을 왔다. 그리고 지금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고향 스탐파에 와 있다. 스위스 알프스 남동쪽 부근의 작은 마을 스탐파는 자코메티 가족들의 오랜 보금자리였다. 2년 전 진욱이와 함께 관람한 자코메티 전시회 이후 꼭 와보리라 마음먹었던 곳이다. 나의 손에는 자코메티 전시회의 도록에 실려 있던 자코메티 가족사진이 들려져 있다. 그리고는 마을을 다시 본다. 같은 곳을 찾는 게 아니라, 자코메티가 가졌던 자연과 생명의 감탄을 같이 느끼고 싶다.
가는 곳곳에서 탄성을 멈출 수가 없다. 모든 자연은 위대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나의 탄성이 고개 숙여 지는 느낌은 처음이다. 묘사하는 건 사치다. 10미터만 움직여도 내 눈에 들어오는 풍광이 다르다. 우리의 시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알 수 있다. 멀리서 보이는 산은 나에게 경외감을, 옆을 지나치는 풍경은 친밀감을, 그리고 자세히 본 나무는 무심한 숨결로 나를 응원해준다. 오랜 시간 자연을 마음껏 음미하고 난 후 나는 책을 읽고 있다. 정말 무겁게 들고 온 사기를 펼쳐 들었다. 마지막으로 읽지 못했던 사기본기를 읽으면서 난 내 삶의 황제가 된다.
이때부터 여행은 나에게 루틴한 일정이 되었다. 일 년에 한 번 이상 꼭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렇게 여행은 나의 친구로 남아있다.
2021년 12월 31일
새벽 5시 거실에서 이제야 완성된 나의 첫 책을 보고 있다. 간간이 지나는 자동차 소리와 가로등 불빛, 냉장고 소음, 보일러 소음이 여전히 공기를 감싸고 있지만, 내가 느끼고 있는 건 어둠뿐이다. 책을 완성한 기쁨 보다 이후 감당해야 할 삶의 어둠이 더 크게 밀려오는 느낌이다. 아침이 되면 아마 완성의 기쁨을 더 누리겠지만, 그리고 그 이후의 아픔을 겪어내겠지만, 지금은 그냥 차분하다.
이 책이 오롯이 나의 책이듯 지금 이 자리에서 나는 혼자서 책을 바라보고 있다. 뒤집어도 보고, 책장의 감촉도 느껴보고, 어둠속에서 동공을 확장해보고 있다. 책을 처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가 떠오른다. 멋모르고 250여장의 글을 출력해서 스승님에게 들이 밀었던 날, “잠재력은 대단하지만, 책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나에게 해준 최고의 배려였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에 첫 책을 만나긴 했지만 여전히 ‘세상의 쓰레기’하나를 추가한 것 같은 두려움은 어쩔 수 없다.
이제 나의 첫 책을 첫 독자로서 읽어보아야 한다. 내가 멈출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이 첫 번째 읽기가 끝나면 나의 책은 세상에 나가든지, 마지막에서 엎어질지가 결정 날것이다. 그 결정의 경계에서 나는 책 첫 장을 펼친다.
2022년 12월 31일
나의 간략하고도 루틴한 일상을 찾았다.
하루의 일상
8시간 숙면
2시간 독서
8시간 업무
1시간 산책
5시간 놀기(혼자 놀기, 같이 놀기, 글쓰기)
한 달에 한 번 전시회
분기에 한 번 나홀로 여행, 공연관람
1년에 한 번 가족여행
3년에 한 번 해외여행
이제 나의 삶은 간략해졌다.
그러나 나는 더 많은 것을 감각하며 살아간다.
무엇을 얼마나 하느냐에 했느냐 보다는,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에 좀 더 관심을 두리라
2022년 10월 18일
코웨이에서 교육담당자가 나의 책을 읽고 강연요청이 들어왔다. 코웨이에서 근무할 때부터 꿈꿔왔던 순간이다. 시간은 2시간이고, 월례 조회 때 실시하는 ‘착한교육’에서 책 이야기를 해주면 된다고 한다. 임원과 직원들이 같이 듣는 교육이다. 두 팀 모두를 만족 시키려면 일반적인 사는 이야기를 하면 되고, 임원을 만족시키려면 성과를 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이야기 하면 될 것이고, 직원을 만족시키려면 직급간의 갈등을 통해 리더십이야기를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내가 만족하는 강의를 하고자 한다. 내가 코웨이에서 지내왔던 시간을 회상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바로 내가 나에게 하는 강의를 준비할 것이다.
코웨이 강의 날이다. 교육준비를 하는 모습이나, 사람들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사장님에게 인사하고, 임원중에 아는 사람과 차를 한잔했다. 내가 근무하던 13년이 장면 장면으로 스쳐간다. 아직 직원으로 근무하는 분 중에서도 아는 얼굴이 있다. 반가워서 포옹을 했다. 당황한 얼굴이지만 별로 개의치 않고, 인사말을 나누었다. 처음 인사를 하고, 박수를 받고, 소개를 하고 강의가 시작되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이 순간을 상상할 때는 나의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많이 초점이 맞추어 있었는데, 막상 강의에서는 나의 추억이 있는 곳에서 담담히 이야기한 느낌이다. 자주 꿈꾸던 순간이었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는 순간임에도 나는 별다른 느낌이 없다. 그렇게 우리는 무언가를 완성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완성해나가는 과정을 위해 살아가는 것인가 보다.
2023년 12월 23일
아버지 제삿날이다. 나에게 제사는 형식이다. 종가집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내가 이제껏 가져온 성향도 그러했던 것 같다. 오늘부터 나에게 제사는 의례이다. 조셉캠벨이 이야기한 의례를 우리 집 제사와 연결해서 나는 제사를 경험하고 한다.
첫 번째 나는 제사를 통해 돌아가신 분과의 연결을 꿈꾼다. 당신이 살아 내었던 시대를 읽어내는 시간을 나는 가질 것이다. 생전에 뵈었던 분의 제사는 나에게 추억일 것이고, 뵙지 못한분의 제사는 나에게 역사이다. 아버지의 제사는 부자간의 추억이고, 경험이고, 그래서 여전히 연결되어 기억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형식은 의례의 완성이 아니다. 형식은 의례의 출발이다. 그래서 형식은 무시되어서도 안 되지만 절대적이어서도 안 된다. 형식이 무시되면 출발이 어렵다, 형식이 절대적이면 출발이 전부가 되어 과정과 마무리에 이르지 못한다.
제사가 나에게 의례로 다가온 그 첫 번째 날에 아버지가 내손을 잡아주셨다. 형수와 웃으며 인사했다. 돌아오는 운전중에 아내의 왼손을 살짝 잡아 본다. 엄마는 여전히 날보고 걱정이다. 아들과는 화상으로 연결 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2025년 4월 5일
자연스러운 삶 연구소 연구원(여우와 늑대)들의 야유회 날이다. 이번으로 10기 여우와 늑대들이 함께 하고 있다. 10주년을 기념해서 이번 야유회는 여우숲이다. 너무나 익숙하다고 할 수 있지만, 여우와 늑대에겐 여우숲이 제일 잘 어울린다. 온 천지에 반가운 얼굴들이다. 나의 유일한 두 선배, 근영샘과 준호샘.. 준호형님은 이제 좀 늙었다. 나? 나는 거울 안본지가 좀 오래 되었다. 근영샘은 자꾸 이뻐진다.
동기들은 더할 나위없다. 강전샘, 호철샘, 시언샘, 혜정샘, 재경샘, 다들 밝은 얼굴로 인사를 나눈다. 각자들 자기 자리에서 너무도 치열하게 그리고 묵묵히 잘들 살아가고 있다. 처음 연구원을 시작할 때, 낯설었던 경험에서,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간 오랜 시간들, 남들에게 인정받기 좋아하는 나는 솔직히 동기들에게 질투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켜켜이 쌓여갈 때쯤에 내 삶의 전부를 솔직히 열어 보일 수 있는 친구로 여겨지는 순간이 있었다. 아직도 부끄러운 순간을 계속 가지고 있지만, 그 부끄러운 순간을 그냥 한번 씩 웃고 지나쳐 줄 것이다. 뒤로는 전부 후배다. 물론 연구원 기수로만 후배이지 삶으로는 오히려 선배처럼 느껴진다.
여우와 늑대들의 야유회는 따로이 일정이 없다. 각자 도착해서 서로의 일정을 만든다. 유일하게 모두 함께 하는 일정은 식사시간이다. 나머지 시간은 각자의 뜻대로 진행한다. 책을 읽는 사람, 기타를 치는 사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등등 나? 나는 지금 졸린다. 잠시 졸아야겠다.
2052년 3월 18일
나의 마지막날
나는 인사한다.
아내에게 "미안하오!, 고맙소!"
진욱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서 행복했다"
호진에게 "너 덕분에 아버지가 참 즐거웠다"
보성이에게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이가 너라서 참 좋다"
연구원에게 "좀 더했으면 잘할 수 있었을까?"
나와 함께 한 모든 존재에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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