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춘대(蕩春臺) / 홍가신(洪可臣, 조선 중기)
芳草溪邊坐(방초계변좌) 풀 내음 향긋한 개울가에 앉으니,
靑山影裏身(청산영리신) 푸른 산 그림자 속에 이 몸이 있구나.
斜陽無限恨(사양무한한) 지는 해가 무한이 한스러운데,
殘柳故宮春(잔류고궁춘) 버들만 남은 고궁의 봄이여.
전란(임진왜란 등)으로 황폐해진 궁성 밖을 읊은 시로, 만당(晩唐)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절창(登樂遊原) 중 명구 '夕陽無限好'를 연상케 합니다. 홍가신(1541~1615)은 중종 말~선조 대의 문신으로 의금부지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합니다. 그는 특히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에 심취했다고 합니다.
탕춘대 자리에 있었던 장의사(藏義寺)
조선 초기에는 자하문 밖 장의사(藏義寺)가 주변의 멋드러진 풍광과 함께 온존하고 있었습니다. 세종~성종 연간 한양에서 시로 읊기 좋은 10군데 풍광(漢都十詠) 중 남산 꽃구경(覓木賞花), 마포 뱃놀이(麻浦泛舟) 등과 함께 '장의사로 스님 찾아가기(藏義尋僧)' 가 있네요. 당대의 문장가 강희맹(강희안의 친 동생), 월산대군(성종의 친형), 이승조 등이 한도십영을 지어 책으로 냈는데, 여기에서는 그 중 서거정의 시 한 수 붙입니다.
장의사로 스님을 찾아(藏義尋僧)-일부 / 서거정(徐居正, 조선 전기)
三峰亭亭削寒玉(삼봉정정삭한옥)
세 봉우리 우뚝 솟아 경옥을 깍아 놓은 듯,
前朝古寺年八百(전조고사연팔백)
지난 왕조의 옛 절(藏義寺) 8백년이 흘렀구나.
古木回巖樓閣重(고목회암루각중)
고목과 둘러선 바위 속에 누각은 겹겹인데,
鳴泉激激山石裂(명천격격산석렬)
냇물 소리 세차 산과 바위를 갈라 놓았구나.
사찰의 누각이 겹겹이라 표현한 걸 보면 그 규모가 꽤 컸으리라 집작됩니다. 시의 제목에서 '장의사로 스님을 찾아' 간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봐, 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으로 개국한 조선이지만 초기에는 절과 중은 그리 멀리할 대상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대학자이자 문장가이며 정치가인 서거정(徐居正, 1420~1488)에 대해서는 그동안 수차에 걸쳐 올렸기에 여기에선 부언치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