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시 스포츠타운길399번길 25 (삼천동 223-2)
KT&G 상상마당 춘천 아트센터
전시 <A에서 시작되는 울림>
참여 작가 : ableNature, 유리, 손선경, 안부, 최종운
전시 시간 : 2022년 4월 8일(금) ~ 6월 8일(수)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 시간 : 11:00-18:00 (입장마감 17:30)
관람료 : 무료
문의 : 070-7586-0550
먼저 어머니와 아내를 상상마당 아트센터 앞에 내려주고
다시 밑으로 내려와 도로와 맞닿은 입구쪽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걸어 올라갔다.
건물의 구조가 예사스럽지 않다.
공기업이 운영하는 곳이라면 비록 무료 관람이더라도 그냥 믿고 가는 편이다.
더군다나 담배와 인삼의 독점회사가 엄청난 이윤을 바탕으로 운영하는 곳이라면 당연히 방문해 봐야 하는 곳인거다.
KT&G의 상상마당 운영의 뜻과 의지가 담겨있는 문구다.
‘소리가 울리는 방’이라는 어원을 지닌 에코체임버(Echo chamber)는 본래 클래식 연주 공간을 뜻하나 현대에 이르러
파편화된 나노 사회와 이들이 해시태그를 통해 다시 재조합되는
태그니티(Tagnity)의 과정을 빗대어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자신이 속한 소수 집단의 논리만이 사실이라고 믿는 ‘에코체임버 현상’은
소리는 있으나 방향성 없이 부유하는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한자리에서 공명하고, 진동하는 소리들은 서로의 합이나 짝없이 벽에 부딪히거나 바닥으로 떨어져 버리고 만다.
이번 전시 제목 <A에서 시작되는 울림>에서 ‘A’란 악기 조율을 위한 기준 음으로 건반 라를 의미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기준 음 A(라)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음에도
시대마다, 그리고 지역마다 주파수(Hz)를 실정에 맞추어 유연하게 사용해왔다는 것이다.
같은 음을 누르지만 미세하게 다른 주파수를 가지는 현상은,
한 곳에 모여있음에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현대 사회의 이면과 맞닿아 있다.
전시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기준과 목소리가 난무하는 혼란의 시대 속에서도
자신만의 소리로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이는 5인의 작가(신승재, 유리, 손선경, 안부, 최종운)와 함께한다.
각각의 공간에서 연주하듯 표현되는 5악장의 교향곡(Symphony)을 통해
저마다 다른 소리의 방향을 이해하고 새로운 내면의 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시 취지에 맞춰서 박여사의 피아노 연주가 덧붙여진다.
A관람을 마치고 B로 들어가기 전에 중간에 잔디마당으로 나왔다.
KT&G 상상마당은 서울에 홍대와 대치 두 군데가 있고
이곳 강원도 춘천, 그리고 충남 논산과 부산 총 다섯 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춘천스테이와 부산스테이 숙소도 운영하고 있고 논산 아트캠핑도 운영하고 있다.
의암호 수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아트센터 건물의 구조가 아주 인상적이 모습이다.
이 건축물이 원래는 어린이회관이었다. SKIP FLOOR 라는 형식을 사용했다.
스킵플로어는 한층에서 바닥의 일부를 높게 꾸며 입체적인 바닥 구성법으로 반층씩 바닥을 어긋나게 하여
현재 몇 층에 있는 지 모르도록 애매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시물을 마치 숨박꼭질하듯이 찾아다녀야 하는 수고로움이 불편하지 않은 놀이로 다가온다.
건물 안에서 걷다보면 몇 층 건물인지 현재 몇층에 있는 지가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공중에 있는 전시물이 유독 눈에 띤다.
높이에 따라서 다른 느낌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반듯한 길은 도대체 찾을 수가 없다.
미로 같기도 하고 복잡한 피라미드의 길을 헤메고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건축가는 아이들의 상상에 상상을 더한 커다란 놀이터를 선물해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 멋진 건물은 현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작품이다.
원래는 사격장이었는데... 1979년 세계 아동의 해를 맞이해 춘천이 전국소년체전 9번째 개최지로 지명되면서
호숫가에 피어나는 끝없는 동심의 세계라는 슬러건으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계단을 타고 반 층씩 오르락내리락하는 스플릿 레벨(Split level)에 의해 높이가 다른 공간들이 끊임없이 연결된다.
좁고 답답한 공간 속에 있다가도 코너를 돌면 열린 공간이 나오고,
어두운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천창에서 빛이 쏟아지는 복층 공간이 눈앞에 펼쳐지는가 하면,
절묘하게 배치된 창들을 통해 스며드는 빛은 층층이 쌓인 벽돌의 촉감을 살려낸다.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공간을 한참 오르내리면, 내가 어느 층에 있는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심지어 어느 시간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나는 더 이상 시각적인 공간이 아닌 촉감적인 공간을 걷고 있다.
빛이 들어오는 창문의 모습도 절묘하다.
전체 공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눈의 공간’이 아니라,
빛과 그림자로 활성화된 촉감적인 공간을 걸으며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 ‘몸의 공간’인 것이다.
건물 중간중간 수시로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래서 미로형의 폐쇄성이 느껴지지 않고 끊임없는 외부와의 대화와 소통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렇게 작품 전시 공간은 숨겨져 있으면서 사실 서로 통로로 연결되어 A에서 시작되는 울림이 끊임없이 연결된다.
뭉치고, 이윽고 다시 공명하는 방랑자
태그니티로 나뉘어진 우리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 서로 이어지길 원하는 마음이 강할지도 모른다.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에코체이버(Echo chamber, 같은 해시태그 안에서만 목소리를 내고 뭉치는 현상)를
사회 현상학적으로 분석하여 소개한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는 태그니티와 비슷한 개념인 나노 사회(Nano Society)의 단면인
트렌드의 미세화, 긱노동 세대, 루틴이 등의 현상은 모두 포개진 우리에서 시작된 것이라 설명한다.
더불어 이 나노사회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공감 능력을 키우고 인문학적 경험의 폭을 넓히며 공동체적 휴머니즘 정체성을 가꾸어나가길 강조한다.
안부(ANBUH) 작가는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친숙한 환경에서
'나'를 둘러싼 다양한 관계에 관해 사진, 음악 등의 매체로 재해석한다.
마치 우리에게 안부인사를 건네오는 듯한 일상적 이미지들은 어딘가 낯선 느낌을 자아낸다.
식탁 위헤 놓여있는 꽃 한송이, 깨진 도자기 등의 소재는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극적인 색감 사용, 이질적인 빛 투과방식 등의 기법으로 묘한 긴장감과 서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이렇게 묻는다. "잊어버린 것은 없습니까?"
이처럼 작가는 '상실'에 관한 노래를 이어가고 있다.
항상 무언가를 쫓으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사실 언제 잃어버린지도 모르는 것들을 발견하려는 과정이라고 역설한다.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모순 같은 작품을 통해 상실된 타자와의 관계, 그리움의 노스텔지아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최종운 작가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변주와 합주'에 관한 인터렉티브(interactive) 작퓸을 선보인다.
본디 조각을 공부한 최종운 작가는 재료의 물성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
각 재료들의 조합을 통해 일상에서 발견하는 특별한 순간을 체험할 수 있는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영국 유학 시절 가만히 놓여있는 쇠파이프를 보며 '고요한 긴장(Calm tension)'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작가는
이후 개인이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재미있는 균열과 긴장의 순간을 포착하고
이를 통해 사회 현상을 직조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번 전시 출품작인 "This is Orchestra"라는 작품은 제목처럼 단순 명료하게 메시지와 현상학적 질문을 동시에 던지고 있다.
이것은 오케스트라이다. 당신은 연주를 한다. 악기들은 연주된다. 그리고 연주는 계속해서 변주된다.
곧 연주-변주-합주-또 다시 연주라는 4개의 과정 끝에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여러 사람의 목소리, 하나의 악기가 아닌 여러 악기, 여러 사람, 여러 연주...
곧 멀어진 섬과 섬이 만나 함께 공명하는 에코체임버 홀(Echo chamber Holl)에서의 연주가 시작될 것이다.
일상의 오브젯으로 음악을 구성하여 균형과 타협, 그리고 그 대척점인 균열과 긴장이 공존하고...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고 경험하면서 작품의 일부라고 느낄 수 있도록 연출한 클래식 음악과 미술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의미를 완벽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지만
아티스트의 설명으로 자칫 일방적으로 전달되거나 제멋대로 해석하는 단절된 불통의 관람이 아닌
쌍방 주고받는 소통의 언어로서 A에서 시작되는 울림이 음악적 리듬을 타고 온몸으로 느껴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전시 관람을 모두 마치고 이동 중에 건물이 다시 외부와 연결하는 또 다른 소통의 공간을 발견했다.
다양한 풍경들이 각자 매달려 불어오는 바람에 자기만의 소리를 내고
이내 그 소리들이 어우러져 또 하나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다소 높은 기온이었지만 바람이 시원해서 어머니도 그늘에 앉아 잠깐 쉬시고...
맞은 편 벽에 "괜찮아 잘 될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이한철의 <슈퍼스타>의 가사 일부가 붙어있다.
괜찮아 잘 될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괜찮아 잘 될거야 우린 널 믿어 의심치 않아.
힘들고 고통스러운 방황으로 좌절해 하고 있는 친구에게 이 순간이 바람처럼 휙 지나갈 거라며 용기를 주는 듯하다.
오페라 극장의 돌출 박스석같은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 외부와의 소통을 강조한 구조를 보여준다.
그렇게 A와 B 건물은 서로 연결되어 각자의 이야기를 섞고 나누어 공존한다.
춘천 KT&G 상상마당 아트센터는 건축가 김수근의 비밀스러운 미로와 소통의 건축물을 둘러보며
전시회 관람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런 작품 사진 하나 찍으면 직접 사진작가도 되어보는 거지 뭐.
아내도 좋은 곳이라며 다음에 지인들과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상상마당 스테이 숙소의 모습이 보여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숙박할 수 있다.
Calligrapher 강병인 쓴 상상마당 글귀가 여기도 있다.
글귀의 울림이 마지막 귓가에 부드러운 멜로디로 속삭인다.
the end
postscript 기회가 되면 다른 상상마당도 방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