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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큰믿음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겸손
사랑의 통로가 되게 해주소서!
마태복음 14:14
기독교 출판사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출판사는 은혜출판사와 믿음의 말씀사입니다. 믿음의 말씀사에서는 주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책들을 번역 소개하고 있는데 저의 기도가 응답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전에 찰스 피니나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책을 번역할 사람들이 나오게 해 달라고 기도해 왔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지금은 릭 조이너의 책을 번역할 사람들이 나타나게 해 달라고 가끔씩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말씀사’라는 사호에 나오는 '믿음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말씀을 전하기 전, 먼저 ‘믿음의 말씀’과 아직은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잔 오스틴 목사님을 간단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믿음의 말씀'(Word of Faith)은 1950년대에 사역을 시작하신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테이프와 책들을 통해서, 미국과 전 세계에 지난 50년 동안 편만하게 퍼지게 된 '말씀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믿음의 말씀' 운동에 관계된 미국의 목사님들은 이렇습니다. '믿음'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해긴 목사님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이 L. A.에서 대형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프레드릭 프라이스(K. C. Price) 목사님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고백' 분야는 단연 찰스 캡스(Charles Capps) 목사님을 들 수 있는데, 이분은 전직 농부로서 해긴 목사님의 가르침에 도움을 받아 아주 쉽고 분명하게 '말씀의 고백의 능력'을 실천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베다니출판사를 통해 중요한 책들이 거의 다 번역이 되었습니다.
'부요함과 번영'(Prosperity)에 관해서는 현재 미국에서 최고의 시청률과 가장 많은 채널과 황금대 시간의 TV 방송을 하고 있는 케네스 코플런드와 글로리아 코플런드 부부(Copeland)를 들 수 있습니다. 이 분들은 재정분야의 축복과 형통함에 대한 확신과 분명한 가르침으로 미국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제리 사벨(lorry Savelle)같은 제자를 통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기'는 마약 중독으로 감옥에 갔다가 믿음의 말씀으로 치유되어, 지금은 시애틀에서 큰 교회를 섬기고 있는 케이시 트리트(Casey Treat) 같은 젊은 목사님이 있습니다.
'믿음의 말씀'을 들고 전 세계 선교지를 다니며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복음을 전한 사람으로는 티 엘 오스본(Osbom) 목사님과 라인하르트 본케 목사님이 있습니다. 특히 오스본 목사님은 '믿음의 말씀' 중에서도 '병 고침과 표적' 부분에서 세계적인 사역자로 평가를 받는 분입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말씀 운동에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강조하신 잔 오스틴 목사님을 빼 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잔 오스틴은 50여 년이 넘도록 목사, 복음 전하는 자, 교사, 저자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병 고침과 능력의 메시지를 온 세계를 여행하며 사람들에게 전한 분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잔 오스틴 목사님이 쓴 “하나님의 사랑의 흐름”이라는 책을 믿음의 출판사에서 내놓았습니다. 저는 그 책을 읽고 큰 도전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책의 내용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어야 할 필요를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잔 오스틴이 쓴 “하나님의 사랑의 흐름”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1. 예수님은 항상 사랑의 인도를 받으셨습니다.
마 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여기서 무엇이 예수님을 감동시키셨습니까? 예수님을 감동시킨 것은 심령(heart)에서 올라오는 하나님의 동정심(Divine Compassion)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영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의 흐름을 느꼈습니다.
그러면 그 흐름이 어디로 흘러갔습니까? 그것은 큰 무리를 향하여 흘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 속에서 무리에게로 흘러갔을 때 예수님은 그 사랑의 흐름을 따라 (Jesus followed the flow of compassionate Love) 그들에게로 가셨습니다. 그 결과, 무리들에게 치유의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동정심이 예수님을 움직였습니다. 사랑이 그분의 삶의 방향을 조정했습니다. 사랑은 주님을 계속 인도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신적인 흐름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원하시는 사람에게로 우리를 움직여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초자연적인 사랑이 일어남을 주의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사랑이 어디로 흘러가든지 따라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가장 눈에 뛰는 구절 중의 하나는 요한이서 6절입니다. 영어확대번역성경에 나오는 것을 여기에 옮겨보겠습니다.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요이 6절)
여기 이 말씀 안에 이 설교의 기초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안내를 받아 사랑을 따라 걷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원리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잔 오스틴 목사님은 “구원받은 것과 성령 세례 받은 것을 제외하고, 이 진리보다 내게 유익을 주고 형통함을 주었던 것은 없습니다.”라고 고백했을 정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따르고 싶습니까? 그러면 사랑을 따르십시오. 성령님의 안내를 받고 싶습니까? 그러면 사랑의 안내를 받으십시오. 사랑의 줄기가 어디로 흘러나가든지 따라가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로 인도하고 계신가? 하나님은 내가 누구를 섬기기를 원하시는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라고 궁금해 할 지 모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따라가십시오. 사랑의 안내를 받으십시오.
이에 관해 잔 오스틴 목사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의 안내를 받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흘러가는 곳, 사랑이 시내가 되어 흐르는 곳이 하나님이 가시는 곳입니다. 사랑을 따라가고 사랑의 안내를 받으십시오.
‘오늘 어디를 갈까?'하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그 사랑이 어디로 나가는지를 보십시오. 당신이 만들어 낼 필요는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의 흐름이 오게 되면 당신은 저절로 남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내 앞에 모든 사람의 이름을 펴놓고 사랑이 누구에게로 인도를 하는지 보아야지’라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사랑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기도하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로 있으십시오. 갑자기 당신의 영에 누군가가 떠오를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당신의 일을 하십시오. 그러다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람에게로 당신에게서 흘러나가는 것을 느끼면 바로 그 때 행동하십시오. 주저하지 마십시오. 전화를 들고 바로 통화를 하십시오. 할 수 있으면 개인적으로 그들을 찾아가십시오.
주님께서 내게 역사하셔서, 어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사랑으로 내 가슴이 넘치게 될 때면, 나는 전화기를 들고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돌립니다. ‘형제님, 형제의 필요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형제에게 오늘 복을 주시려고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형제에게로 흘러가고 있는 인상을 내게 주셨습니다. 형제가 어떤 필요를 가지고 있든지 하나님의 사랑이 형제의 가슴을 비치고 있으므로 형제는 그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주 예수의 이름으로 형제를 섬기라고 나를 인도해 주셨습니다’라고 나는 말합니다.”
한 번은 잔 오스틴 목사님이 유명한 목사님의 잡지를 훑어보고 있다가 자신의 영이 그 사람에게 끌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그 목사님에게 아주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복 주시길, 그는 어떤 분야에 있어서는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었지'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목사님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 잡지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날 그는 하나님의 뜻을 놓쳤습니다. 그는 성령님께 자신을 양보해 드리지 않았습니다.
한두 주 지나서 주님께서는, 그 목사님에 관하여, 그를 다시 다루셨습니다. 지난번에 그랬던 것처럼 그는 그 목사님의 잡지를 집어들었습니다. 그는 영으로 그 목사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따뜻함을 다시 느꼈습니다.
“주님, 그를 축복해 주십시오. 그는 주님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것이 그냥 따뜻한 기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자기 종을 축복하기 위해 자신을 통하여 흘러 나가려고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으며, 이 사랑은 그 목사님이 살고 있는 다른 주를 향하여 산을 뛰어 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화기를 들고 즉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형제, 나는 단지 하나님께서 형제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형제가 주님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형제를 강건케 하셔서 형제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든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기도하고 성령 안에서 그 목사님을 섬겼습니다.
잔 오스틴은 그 목사님이 전화기를 잡고 그냥 울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오스틴 형제, 2주 동안 마귀와 싸움을 했는데 나는 사무실 문을 거의 닫을 뻔했었네. 나의 사역은 거의 다 파괴되었네.”
이 말을 들으며 잔 오스틴은 생각했습니다. ‘2주전에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내 가슴에 두었지만 나는 그것을 놓쳤구나. 나는 사랑을 따르지 않았다. 나는 사랑으로 안내를 받지 않았다.’
이어서 그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가 내게 전화한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형제는 결코 알 수 없을 겁니다. 결코 모를 겁니다. 이런 전화를 전에는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오스틴 형제, 형제의 전화는 정말 내게 너무나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모든 것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사실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안내를 받으십시오! 사랑 안에서 행하십시오! 사랑의 물줄기의 안내를 받고 따라 가십시오. 왜냐하면 사랑이 흘러가는 곳이 하나님이 가시는 곳이며 하나님이 일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도 때때로 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거나, 방바닥을 닦거나, 직장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어떤 사람을 사랑과 부드러움 마음을 가지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생각을 따르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이런 축복을 놓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 순간 하나님을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은 여러분이 그 순간 생각하고 있는 대상의 집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차를 몰고 그 흐름을 따라가십시오. 가장 빨리 그리로 가십시오. 그 사람에게 전화하든지 만나러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슴에서 일하고 계시는 동안 그를 섬기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며, 사랑의 안내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안내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너무 단순해 보이는데요.” 그렇습니다. 단순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단순한 사랑의 임재를 받기보다 무언가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기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사랑의 부드러운 흐름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2. 사랑의 흐름을 따라가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마 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본문은 마헤시 챠브다 목사님의 책제목을 생각나게 합니다. 바로 “사랑만이 기적을 만든다”라는 책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따라갔고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케 되어 사랑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을 보게 되는 비결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천국에서 상급을 누리고 계실 한 유명한 목사님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주 특별한 상황 아래서 어떻게 자신으로부터 흘러나갔는지를 말한 일이 있습니다.
이 목사님은 자연을 사랑하고 사냥을 즐기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늘 자연 가운데 있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그가 들판을 걸어가고 있는데 들소 한 마리가 그를 보더니 앞발로 땅을 긁기 시작했습니다. 즉시 그는 들소를 향해 총을 겨누었습니다. 그의 처음 충동적 반응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 사랑이 그의 내부로부터 샘솟는 듯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가슴으로부터 그 황소에 대한 큰사랑을 느꼈습니다. 나는 마음으로 황소에게 말했습니다.
'오 복된 소야, 너는 어리석구나. 넌 내가 네 영역을 침범하려고 하는 게 아니란 것을 모르는구나. 나는 네게 아무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고 너를 해치려고 온 것도 아니란다. 나는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그의 마음속에 지나간 생각이었고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이 그에게서 흘러나갔습니다.
그러나 황소는 여전히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고 겨우 백 미터쯤 떨어져 있었습니다. 황소가 점점 가까워오는데도 이 목사님은 아무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단지 조용히 서서 동정심을 느끼면서 이 동물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황소가 몇 미터 앞에까지 달려오더니 갑자기 멈추어 서서, 머리를 낮추고는 한 나무 밑으로 가서 거기 누워버린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사랑으로 행할 때 우리는 상상치도 못한 놀라운 기적들을 보게 됩니다.
잔 오스틴 목사님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열린 길, 즉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인도를 허락하셨습니다. 나는 이 사랑으로 인도를 받도록 자신을 허락합니다. 나는 사랑으로 안내를 받아왔습니다. 이 사랑을 따라 가다가 멈추는 곳에 서면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기 위해 거기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랑을 따를 때 일하십니다...
수년 동안 나는 이런 일들이 수 없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내가 회중 앞에 서면, 이 하나님의 사랑의 물줄기가 회중의 각 사람에게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 이 흐름을 따르므로 주님께서 이미 다루어 놓으신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께서 기적으로 손을 대실 사람들을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다시 한 번만 더 말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당신이 이 하나님의 사랑의 흐름을 느낄 때면 당신은 하나님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흐름을 따라 안내를 받으십시오! 이 하나님의 흐름을 따르십시오! 이 흐름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도와주기를 바라는 그 사람에게로 당신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당신이 그 장소에 이르면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말씀을 확증하셔서 구원을 주시기 위해 거기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좇아 행할 때 우리는 기적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사랑을 좇아 행할 때 가장 많이 보게 될 기적은 신유의 기적입니다. 잔 오스틴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흐름”이라는 책에서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좇아 행했을 때 일어난 여러 가지 기적들을 간증했는데 모두가 치유에 대한 기적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의 영혼의 유익을 위해 그 중 몇 가지를 읽어드리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흐름 즉 하나님의 능력의 솟구침을 처음 느꼈던 때를 나는 잘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에 한 침례교회를 맡아 목회하고 있을 때... 나는 병을 고치는 예배를 드리려고 애를 썼지만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 남자를 위해 기도했었는데 그는 죽어버렸습니다. 아무 것도 바로 되는 것이 없는 듯이 보였습니다. 나는 몇 번의 끔찍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왜 당신의 말씀을 표적으로 확증해 주시지 않습니까?’...
그러던 어느 수요일 밤 하나님은 내게 특별한 기름부음을 주신 것 같았고, 내 가슴에서 회중에게로 말이 쏟아져 나올 때 성경 구절은 생명을 띠는 듯했습니다. 내가 성경의 예수님에 관해서 말하기 시작할 때 성령님이 나를 통하여 설교를 했습니다... 믿음이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나는 교회 맨 앞에 앉아 있던 열 두 세살쯤 되어 보이는 작은 지체장애 소녀가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소녀는 발목 관절이 마비되어서 특별히 제작된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그 소녀의 발목은 나무처럼 단단히 굳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내 가슴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의 흐름이 흘러나와서 이 소녀에게로 흘러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랑으로 가득한 황금 그릇 같은 것이 내 안에서 샘솟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소녀가 아프며 장애자인 것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소녀가 아픈 것과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별로 의식하고 있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나는 단지 초자연적인 동정심 같은 것을 느낄 뿐이었습니다. 이 사랑이 내게서 그 소녀에게로 흘러 넘쳤습니다. 나는 그 소녀에게로 가고 싶었고 내 팔로 그 소녀를 안아들고 싶었습니다.
바로 그날 밤 그 소녀에게 손을 얹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그 소녀의 발목이 순간적으로 정상으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교회에서 일어난 최초의 기적 중의 하나였습니다.”
“내가 성령세례를 받고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섬기던 교회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주일 아침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은혜 받기 위해 강단 앞에 나올 사람들을 초청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열두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나는 그 소년에게 주님이 무엇을 해 주기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오스틴 형제님, 나는 한 쪽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주님이 내 눈을 치료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무 경고도 없이 갑자기 무엇인가 초자연적인 것이 내 영(heart)으로부터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의 인간적인 불쌍히 여기는 마음(human sympathy)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초자연적인 것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의 흐름을 느꼈습니다. 내가 이것을 느꼈을 때 주님께서 마치 내게 ‘오스틴 형제, 나는 눈이 멀었다!’라고 말씀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 말은 마치 온 세상을 가득 채운 듯이 보였습니다. 이 말은 나를 강렬하게 움직이도록 만든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이 되었습니다. 이 말이 나로 하여금 울고 싶도록 만들었습니다. ‘오스틴 형제, 나는 눈이 멀었다!’ 나는 이 흐름을 인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흐름을 통해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강단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어린 소년에게로 흘러나갔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 하나님의 흐름을 따라서 하나님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를 치료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눈이 열려 완전하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내가 텍사스에서 전도 집회를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의 흐름을 느꼈습니다. 집회 도중에 나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행하기로 결단을 했었는데 이것은 내 생애의 실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행하기만 한다면 즉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담대하게 요구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들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란 결심을 하였던 것입니다. 어느 날 밤 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기도를 받으러 앞으로 나왔습니다. 이 소녀의 한 쪽 다리는 다른 쪽 보다 일 인치 반정도 짧아서 뒷 굽이 더 높은 구두를 신고 있었습니다. 어린 아기 때부터 그 소녀는 밤에는 착용이 자유로운 틀을 착용하고 잠을 잤었습니다.
좌석에 앉아 있던 침례교 목사인 워드 챈들러 목사님이 강단에 올라와서 내가 그 소녀의 다리를 재어보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성령세례를 받지 않았었습니다. 그는 ‘바로 되고 있는 지를 내가 직접 봐야 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소녀의 무릎을 가지런히 하고 길이를 재어보고는 한 쪽 다리가 다른 쪽보다 일 인치 반정도 짧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나는 그 소녀에게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이 아이를 치료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나중에 그 소녀는 내게 말하기를 내가 그 소녀에게 손을 얹고 기도할 때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원자로 영접하였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소녀의 다리가 자라나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나의 믿음이 별로 강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다리가 자라날지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단지 그 소녀를 위해 기도나 해주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둘 생각이었습니다.
‘됐다. 소녀야, 일어나라.’ 내가 어린 소녀에게 말을 했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우리에게 알려주렴.’ 소녀는 절룩거리면서 강단 위를 지나갔습니다. 물러가는 그 소녀를 바라보고 있는데, 나는 사랑의 물줄기가 흘러나와 그 소녀에게로 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 소녀에게 가서 그 소녀를 들어 팔에 안고서 ‘오, 나는 네가 고침 받기를 바란다! 난 네가 축복 받기를 바란다. 난 네가 새로 산 좋은 옷을 입게 되기를 바란다. 네가 먹을 좋은 음식도 풍족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내게서 흘러나와 그 아이에게로 흘러 들어간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물줄기였습니다. 그 소녀가 걸어갈 때 내 가슴에서 그 소녀에게로 뻗어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랑의 물줄기가 뻗어 나가서 그 소녀에게 닿은 듯이 보였습니다. 그 소녀는 내게서 약 십 미터쯤 떨어지더니 갑자기 멈추고 뒤돌아 섰습니다. 내 앞에 수 백 명의 관중이 앉아서 보고 있는 가운데 그 소녀가 말했습니다.
‘다리가 자라고 있는 것이 느껴져요!’
‘너 지금 뭐라고 말했지?' 내가 물었습니다.
‘다리가 자라고 있는 것을 느꼈어요! 난 내 다리가 자라고 있는 것을 느꼈어요!’라고 그 소녀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 소녀를 내게로 불러서 의자에 앉게 한 다음 다리 길이를 다시 재어보았습니다. 침례교 목사인 워드 챈들러는 다시 벌떡 일어나 강단에 올라와서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다리를 재어봤을 때 두 다리 길이가 똑같은지 그리고 속임수는 없는지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 소녀의 무릎을 나란히 놓아보니 그 소녀의 다리는 확실히 똑같았습니다! 그리고 관중들에게서 기쁨의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날 밤 워드 챈들러 박사는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다!”
신유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오랄 로버츠 목사님입니다. 오랄 로버츠는 아프고 병든 사람에 대한 동정심으로 가득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오직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시는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한번은 그가 자기를 위해 일하는 직원의 아기가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일어난 일을 간증한 일이 있습니다. 그 아기는 산소텐트 아래 놓여 있었는데 죽음이 임박했습니다. 면회도 허락되지 않았지만 로버츠 목사님은 그 병실에 들어갈 허락을 받았습니다. 산소텐트를 들고 손을 얹어 기도할 수가 없었으므로 그는 산소텐트 모서리로 손가락 하나를 넣어 아기의 작은 발에다 대었습니다.
그가 오랜 시간 서 있는 동안 무엇인가가 그에게서 아기에게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통하여 그 아기에게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아기는 낫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기적을 만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기적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이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기적을 목적으로 사랑을 추구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설사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랑을 추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기적은 무의미(고전 13:2)하지만 기적이 없는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기적을 행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면 기적은 덤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는 사랑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거듭났다면, 여러분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가슴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일 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만일 여러분이 성령 세례를 받았다면 그 사랑은 훨씬 더 자유롭게 흘러나갈 것입니다.
갈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여러분, 절대로 증오심을 따르지 마십시오. 절대로 악한 생각을 따르거나 앙갚음을 하고 싶은 충동을 따르지 마십시오.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자기중심적이거나 욕심이나 탐욕에 가득 찬 생각을 따르지 마십시오.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기적이고 비열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흘러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탐욕스럽고 신경질적으로 다툰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흘러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쓴 뿌리나 악한 뜻을 가슴에 품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추한 감정들을 가슴에 품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흐름을 동시에 느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잔 오스틴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흐름을 느끼고 그것을 따라가는 삶을 살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일 예로, 그는 아내와의 사이에 다툼이 발생하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 4:26-27)는 성경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여러 번 그는 그런 날이면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곤 집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여보, 해가 지고 있어요. 나를 용서해 줘요, 제발 나를 용서해 줘요”라고 용서를 구하며 화해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가 왜 이렇게 했을까요? 왜냐하면 나쁜 의도나 악한 감정을 품고 있으면서, 동시에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역사 하시도록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막힘이 없는 사랑의 통로가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의 가슴에 쓴 뿌리가 있다면 제거해 버리십시오. 다툼과 쓴 감정을 피하십시오. 어떤 더러운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게 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나 의롭고, 사람과는 화평을 유지하면서 사십시오.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질러도 즉시 용서해 주고, 어떤 서운한 감정도 가슴속에 품고 있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적대감이 전혀 없도록 자신의 영을 깨끗하게 지키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슴을 채워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순수한 동기와 동정심이 가득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 기대도 하지 않는데 누군가가 우리 마음에 떠오르고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하거나 만나러 가고 싶은 인상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롬 5:5)
마치 이 말씀과도 같이 우리의 마음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동정심과 하나님의 사랑의 흐름이 우리의 심령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격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것은 순간적으로, 그리고 초자연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슴에 심겨져서 우리 안에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서 각 사람에게로 흘러나가는 것입니다. 제가 믿기로는 이것이 바로 주님이 약속하신 생수의 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의 통로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로 강물처럼 흘려 보내야 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혜의 통로, 능력의 통로, 축복의 통로가 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통로가 되길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지혜, 능력, 축복의 통로가 되길 원하는 것은 사람의 영광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사랑하는 자는 사랑의 통로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축복이 나타나면 우리는 사람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고 사람들에 의해 높임을 받습니다. 반면에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게 되면 하나님과 천사들의 주목의 대상이 됩니다. 즉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심판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의 통로가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사랑의 통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기도 제목으로 기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제목을 저는 릭 조이너의 책에서 발견했습니다.
얼마 전 저는 릭 조이너가 쓴 “종교의 영을 몰아내십시오”라는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 책의 결론에서 릭 조이너는 종교의 영에서 자유케 될 수 있는 핵심적인 비결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다 중요하지만 오늘 설교와 관련하여 두 가지가 특별히 저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첫째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셨던 것과 동일한 사랑이 우리 안에도 있게 해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주 예수님께서 친히 아버지께서 자기를 사랑하셨던 것과 동일한 사랑이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시도록 기도하셨습니다(요 17장). 아버지와 완전하신 조화 가운데 있는 하나님 아들의 이 기도는 응답될 것이지만, 우리는 우리가 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라는 제안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우리의 이웃들에 대해 가지고 계시는 그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도록 주님께 요청 드리십시오. 오직 그렇게 할 때만, 그들에 대한 우리의 증거와 사역이 순결하게 될 것입니다.”라는 제안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기도 제목은 만약 성경에 그것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가 감히 바라기도 어려운 기도제목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이것이 분명히 나오므로 우리는 담력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는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셨던 것과 동일한 사랑이 우리 안에도 있게 해 주옵소서.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의 이웃들에 대해 가지고 계시는 그 사랑을 우리에게 주옵소서.”
이 시간 다같이 이 두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