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자,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요청합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 군대가 잠시 퇴각했지만 다시 돌아와 예루살렘을 함락할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6-8절 하나님의 말씀이 시드기야가 파견한 두 사절을 통해 그에게 전달됩니다. 하나님은 시드기야의 기대와 달리 애굽의 군대는 돌아가고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함락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의 허망한 낙관론을 철저히 깨뜨리고, 일시적인 호전에 들떠 상황을 오도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오만과 오판은 금물입니다. 자신을 기만하는 신앙이나 반성없는 긍정 신학 역시 경계해야 합니다.
1,2절 경고대로(36:31) 바벨론에 의해 유다의 국운이 기울고 있습니다. 유다 왕이 침략국 바벨론의 총독 신세로 전락하고,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켜야 하는 상황임에도, 왕과 백성은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40년 가까이 하나님의 심판을 수용하라고 끊임없이 외쳤지만 유다 왕과 백성은 끝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말씀을 무시하고 무사한 역사는 없었습니다. 듣지 않음이 멸망을 부릅니다.
2-4절 예루살렘 명망을 선포할 때는 잡아 가두더니 말씀이 실현되자 예레미야에게 중재를 요청합니다. 불순종으로 나라의 위기를 자초한 자들이 이제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듣지 않는 기도는 가증하고, 아쉬울 때만 찾는 하나님은 경외의 대상이 아닌 이용의 대상일 뿐입니다. 시온 불패의 거짓 신학도 문제지만, 우리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잘못된 신학은 더 큰 문제입니다. 문제가 사라지길 구하기보다 문제의 원인이 나 때문은 아닌지 돌아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9,10절 바벨론 군대는 아주 떠난 것이 아니라 잠시 떠난 것입니다. 유다가 바벨론에 대항하여 아무리 용감하게 싸워도 함락은 기정사실입니다. 이것은 군사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허망한 낙관으로 스스로 속이기 보다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말씀을 통한 정직한 현실 인식이 없으면 미래에 대한 장밋빛 기대는 오히려 우리의 내일을 더욱더 절망적인 자리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매일성경, 2024.07/08, p.80-81, 다시 돌아오다, 예레미야 37:1-10에서 인용).
①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자,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요청합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 군대가 잠시 퇴각했지만 다시 돌아와 예루살렘을 함락할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시드기야가 파견한 두 사절을 통해 그에게 전달됩니다. 하나님은 시드기야의 기대와 달리 애굽의 군대는 돌아가고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함락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의 허망한 낙관론을 철저히 깨뜨리고, 일시적인 호전에 들떠 상황을 오도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오만과 오판은 금물입니다. 자신을 기만하는 신앙이나 반성없는 긍정 신학 역시 경계해야 합니다.
② 경고대로(36:31) 바벨론에 의해 유다의 국운이 기울고 있습니다. 유다 왕이 침략국 바벨론의 총독 신세로 전락하고,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켜야 하는 상황임에도, 왕과 백성은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40년 가까이 하나님의 심판을 수용하라고 끊임없이 외쳤지만 유다 왕과 백성은 끝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말씀을 무시하고 무사한 역사는 없었습니다. 듣지 않음이 멸망을 부릅니다.
③ 예루살렘 명망을 선포할 때는 잡아 가두더니 말씀이 실현되자 예레미야에게 중재를 요청합니다. 불순종으로 나라의 위기를 자초한 자들이 이제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듣지 않는 기도는 가증하고, 아쉬울 때만 찾는 하나님은 경외의 대상이 아닌 이용의 대상일 뿐입니다. 시온 불패의 거짓 신학도 문제지만, 우리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잘못된 신학은 더 큰 문제입니다. 문제가 사라지길 구하기보다 문제의 원인이 나 때문은 아닌지 돌아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④ 바벨론 군대는 아주 떠난 것이 아니라 잠시 떠난 것입니다. 유다가 바벨론에 대항하여 아무리 용감하게 싸워도 함락은 기정사실입니다. 이것은 군사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허망한 낙관으로 스스로 속이기 보다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말씀을 통한 정직한 현실 인식이 없으면 미래에 대한 장밋빛 기대는 오히려 우리의 내일을 더욱더 절망적인 자리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