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곡 지상의 재화와 천상의 재화, 온유함의 예
늦은 햇살이 우리 얼굴을 가득 비추고 있었다.
우리가 산 둘레를 돌아가면서 줄곧
저무는 태양을 향하여 걷고 있던 탓이었다.
그때 갑자기 지금까지 보다 훨씬 밝은 빛이 이마를 때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선생님은 하늘의 천사때문에 눈이 부신 것이니 너무 놀라지 마라 하시며, 그분은 우리를 오르게 하려는 천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축복받은 천사 앞에 섰습니다.
그 천사는 이 길로 가면 아래의 계단들 보다 덜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진다고 했는데 우리는 그를 지나쳐 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자비를 베푸는 자들은 복되도다'와 '질투를 이긴 자여, 즐거워하라'라는 노랫소리가 뒤에서 울려왔습니다.
나는 선생님께 다가가
"그 로마냐의 영혼 구이도 델 두카가 ‘공유할 수 없는 것’ 이라고 했는데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연옥 14곡에서 구이도 델 두카가 ‘지상의 재화와 하늘의 사랑이 가지는 차이'에 대해 이야기 했었습니다. )
그는 질투라는 큰 잘못을 저지른 자로 다른 사람들이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질투의 죄를 꾸짖는 거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각자가 차지하면서 줄어들게 되는
세상의 것들을 욕망의 목표로 삼으니,
질투는 사람들 한숨에 부채질을 하는 거란다.
사람들은 갈라서 차지하면 줄어들게 되는 세상의 것들(지상의 재화)을 욕망의 목표로 삼으나 그러나 사람들의 욕망이 위로 솟구쳐 하늘의 사랑을 향한다면 상실의 두려움이 크지 않을 거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각자가 갖는 선도 더 많아지고
수도원에서는 자비가 더 세차게 타오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 것’은 하느님의 사랑(혹은 공동의 것)을 뜻하고, ‘수도원’은 천국에 있는 엠피레오의 영혼들을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나눌수록 나누는 사람들 각자는 더 많은 사랑을 갖게 되며, 그에 따라 하느님의 사랑은 더 커진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을 나누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커진다는 얘기는 중세 기독교의 근본 개념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많은 영혼들이 소유하는
하나의 선이 소수가 선을 소유할 때보다
우리 영혼 모두를 더 풍요롭게 한다는 말씀인지요?
천국에 사는 무한하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선은 번쩍이는 햇빛이 빛나는 물체로 오듯
사랑을 위해 다가오며,
저 위에서 사랑을 지닌 영혼들이 많을수록
사랑의 가치도 더하여 사랑은 더 자라나니
모든 영혼은 거울처럼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단다.
하늘의 사랑이 가지는 속성은 빛입니다. 천국은 온통 빛으로 반짝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행하는 선은 거울과 같아서 선이 사랑을 행하는 것은 거울이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거울이 많으면 많을수록 선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사랑을 행하는 자들이 많을수록 햇빛 아래 거울처럼 사랑을 행하는 자들이 많아져 모든 영혼은 거울처럼 사랑을 주고받는 답니다.
이제 단테는 세 번째 둘레에 이르렀습니다.
단테는 거기서 갑자기 어떤 황홀한 꿈속인 듯 사람들로 가득 찬 성전을 보았습니다. 단테는 환상 속에서 어떤 일화들을 체험합니다.
예수가 열두 살 때 예루살렘의 한 성전에 부모와 함께 갔는데 갑자기 사라져 마리아와 요셉이 사흘 만에 찾으니 성전에서 박사들과 교리를 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아들아! 왜 이렇게 애를 먹이느냐?”라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말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온유함의 예입니다.
아테네의 왕 페이시스트라토스의 딸을 좋아하던 아는 청년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딸을 껴안자 왕비가 분노하여 그를 벌하기를 간청했으나 왕은 “우리를 사랑하는 자를 벌한다면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부인의 분노를 잠재웠다고 합니다. 분노의 체험인데 인간에 대한 온유함의 예입니다.
페이시트라토스는 귀족들보다 일반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했다고합니다.
최초의 그리스도인 순교자 성 스테파노는 성난 군중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적에 대한 온유함의 예입니다.
'돌팔매를 당하는 성 스테파노(성 스테파노의 순교)입니다.
렘브란트, 돌팔매를 당하는 성 스테파노, 프랑스 리옹 미술관
장 푸케의 '성 스테파노와 함께있는 에티엔느 슈발리에' 입니다.
성 프테파노가 책 위에 돌을 얹고 있습니다. 돌에 맞아 죽은 성 스테파노를 상징합니다.
장 푸케, 성 스테파노와 함께있는 에티엔느 슈발리에, 독일 베를린국립회화관
- 2010년 독일 베를린 여행에서
멜룬 두 폭 제단화에 있는 왼쪽 패널의 그림입니다. 왼쪽 패널에는 '성 스테파노와 함께있는 에티엔느 슈발리에'이고 오른쪽 패널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입니다.
왼쪽 패널은 베를린 국립회화관에 있고(내가 갔을 때는 국립회화관이었는데 미술관 이름이 많이 다르게 나옵니다.) 오른쪽 패널인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는 안트페르펜미술관에 있습니다.
성 스테파노와 함께있는 에티엔느 슈발리에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
장 푸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안트페리펜왕립미술관
장 푸케는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은 북유럽의 첫 번째 화가였습니다. 브뤼주(브뤼헤)에서 제작활동을 한 푸케가 중세 말기의 프랑스 회화를 완결하였습니다.
빨간 아기천사와 파란 아기천사에 둘러 싸인 '마리아와 아기 예수'입니다. 1450년 경 그림으로 너무나 현대적인 그림으로 수수께끼가 많이 담긴 그림입니다. 그림 이야기는 다음에 해야 하겠습니다.
스페인 톨레도 산토토메 성당에 가면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의 그림이 있습니다.
스페인 톨레도 산토토메 성당
엘 그레코가 그린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레오나라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함께 세계 3대 성화로 손꼽힙니다..
산토토메 성당은 아주 작고 특별한 모습의 성당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산토토메성당에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옵니다.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을 보기 위해서랍니다.
오르가스백작의 장례식에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스테파노가 지상으로 내려와 오르가스 백작을 직접 매장했다는 기적의 이야기를 그린 엘 그레코의 명작입니다.
엘 그레코의 아들 모습이 들어있는 입구 안내
2008년에 갔을 때나 2014년에 갔을 때나 똑 같았습니다.
아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중 왼쪽 아래의 아들 모습과 같습니다.
엘 그레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산토토매성당
- 2008년 톨레도 여행 중에서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에서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를 도우려 하늘에서 내려온 성인들입니다. 관을 쓰고 흰수염이 있는 이가 성 아우구스틴 성인이고 옆의 오르가스 백작의 시신을 들고 있는 젊은이(젊어서 순교)가 성 스테파노(에스테반)입니다.
단테는 환상 속에서 온화와 분노와 증오의 일화를 체험하였습니다.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저무는 햇살 속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웬 연기가 우리를 향하여
조금씩 조금씩 어두운 밤처럼 다가왔다.
피해 갈 틈이 없었다.
연기(분노의 연기)는 우리의 시야와 맑은 공기를 빼앗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