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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나무
지하 주차장 구석에서 박준 시인의 에세이를 읽는 장면이 눈에 선하네요. 새벽 3시 40분에 일어나 기상 보고를 하고, 사건 현장에는 알아서 가야 했던 수습기자 시절. 택시비를 한 달에 160만 원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생활을 했는지가 그려져요. 비록 강제로 딴 운전면허이지만, 빨간 아반떼와 만나며 자신만의 공간이 생기네요. 단순히 이동수단으로만 여겼던 자동차가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장소라는 걸 배웠어요. 저는 ‘빨간 아반떼’ 이야기의 비중이 더 커지면 좋겠어요. 차 안에서 경험했던 일들을 짧게 설명했는데, 장면으로 풀어 주세요. 지금은 수습기자 시절 이야기의 분량이 절반이에요. (이 이야기는 독립된 글로 써보면 좋겠어요.) 그 장소가 왜 내게 소중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려주는 배경 정보이지만, 한 문단 정도면 충분하겠어요. 마지막 문단에도 ‘빨간 아반떼’라는 장소가 내게 주는 의미를 중심으로 끝나면 좋겠어요. 지금은 수습기자 생활을 돌아보는 주니어 기자의 반성으로 읽혀요. 차가 빨간색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한다니 충격이네요. ‘빨간 아반떼’를 몰았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서 좋았어요.
나오미
“낯선 곳에서 하룻밤, 나 아닌 또 다른 나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일주일에 한 번 숙소를 얻어 일을 놓고 지내보겠다고 결심하셨다니 너무 좋네요. “감행”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그럴 수 없는 이유들이 발목을 잡는데도 실행했다는 게 이 글의 힘입니다. “지금 나는 여기에 있다”는 문장이 와닿았는데요. 일상에서 얼마나 다른 시간, 공간의 일들에 사로잡혀 사는지 환기해 주었어요. 512호실에서 메타포라 학인들을 떠올리는 이야기도 인상 깊었는데요. “이젠 그 기억이 나만의 기억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이 되었다.” “고통이 말이 되게 하는 것을 알려주었다” 메타포라가 나오미에게는 또 다른 512호실이 아닌가 싶네요. 그런데 두 이야기가 매끈하게 이어지는 느낌은 아니에요. 수업 이야기는 따로 독립된 글로 쓰고, 이 글에서는 512호실에 집중하면 좋겠어요. 이렇게 낯선 공간을 찾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수업에서 읽은 책이 자극이 된 걸까요), 512호실의 위치나 외관은 어떤 모습인지, 적당히 준비한 먹고 마실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찾아갔을 때 (<19호실로 가다>에 나온 것처럼) 주인장의 반응은 어땠는지 등 궁금한 게 많았어요.
혜원
“손님들이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고 밥을 먹던 ‘내실’이 순자에게는 유일한 ‘방’이자 ‘집’이었다.” 혜원의 글은 읽고 나면 여운이 길어 잠시 멈추게 돼요. 식당 한 켠 작은 방에서 먹고 자며 일을 했던 ‘순자’의 이야기가 가슴에 콕 박히네요.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도 운영하는 술집에서 먹고 자는 정희가 나오는데요. 장사가 끝난 뒤 그대로 자면 되는데도 괜스레 동네 한 바퀴를 돈 뒤 다시 가게로 돌아가는 정희의 뒷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우리 사회의 수많은 ‘순자’와 ‘정희’ 이야기가 여기 담겨 있네요. 부모님은 장사하는 32년 중 몇 년을 내실에서 지냈을까요? ‘순자’가 몇 살 때 식당을 차렸는지도 궁금했어요. 첫 문장에 “도시”에 구체적인 지역명을 써주면 좋겠어요. 고된 노동의 현장이자 온갖 냄새가 밴 방에 놀러 와 신이 난 아이의 모습이 어른들과 대비되며 생생하게 다가와요. 그 시절 ‘순자’를 만난 듯 훅 빨려들었다가 나왔습니다.
여름밤
“일부러 부엌을 등져 앉는다” 저도 부엌을 등지고 식탁에서 리뷰를 쓰다 깜짝 놀랐어요.(ㅎㅎ) 일터로서 존재하는 집, “근무를 끝내기 위해서는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기에 카페, 서점, 공원을 찾아 머무는 필자. “집이 아닌 공간이면 나는 또렷해졌다”라는 문장에서 필자에게 집을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드러나네요. 30분 산책만으로도 “애 엄마가 어딜 갔다 오냐”라는 책망을 받았다니 “아이라는 말뚝에 줄이 매달린 말처럼 내 세계가 한정되었다”라는 표현이 정확해 마음을 찌릅니다.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는 모성애라는 단어가 생채기를 냈다”라고 했는데요.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좋겠어요. 필자가 생각하는 모성애는 무엇이고, 그것이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어떤 생채기를 낸 것인지요. 타인들의 기준보다는 자기 기준이 중요하니까요. 저는 두 번째 문단에 나오는 남편의 대사에서 시작하면 좋겠어요. 필자의 마음과 대비되며 둘의 비대칭적인 상황이 선명하게 보여요. 남편은 외출을 더 자유롭게 하는 편인지도 궁금해요. “투고를 하고 나면 내 외출은 끝나는 걸까.” 지금의 외출이 조건부라는 것을 드러내는 마지막 질문을 곱씹게 됩니다.
글월
“주민들이 살기 힘든 마을이 된 곳에서 무엇이 지속 가능하단 걸까. 혹시 저 지속 가능이란 말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자본인 걸까.” 관광지가 되어버린 서울의 한 골목길, 그곳의 옛 거주자로서 필자의 이야기가 새롭습니다. 내가 살던 집이 ‘핫한’ 음식점으로 변한 걸 보는 마음은 필자 말 그대로 씁쓸할 거 같아요. 애초에 벽화를 왜 만든 건지, 관광지가 되어 주민들이 살기 힘들어질 때까지 지자체는 무엇을 한 건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저는 “달동네의 단칸방”에 살던 시절의 이야기가 더 나오면 좋겠어요. 그다음에 살았던 집들에 대한 이야기는 주제와 거리가 있어요. 서두만 보면 필자의 거주지 변천사를 기록한 거 같아요. 아파트에 살며 성곽길의 멋을 느끼지 못했다는 정도만 언급해도 좋겠어요. 오히려 지금처럼 변하기 전에 마을 모습, 지금은 단편 단편 적은 옛 기억들을 더 풀어 써주면 좋겠어요. 그래야 변하게 된 마을을 보며 필자가 느끼는 씁쓸함과 안타까움이 독자에게 더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홍슬기
제목이 “속초의 완벽한 날들”이어도 좋겠어요. 명절 속 성차별 이야기에 속이 터지다가 필자가 속초로 간 순간 속이 확 트이네요. 명절 내내 노동에 시달리던 필자가 “삼삼오오 가족끼리 모인 곳에서 “한 명이요”라고 말하고 청국장 보리밥 정식을 주문”하는 장면이 특히 통쾌합니다. “물놀이를 하는 가족들”을 보며 “경기도 집 부엌에서 힘들게 일할 엄마와 작은엄마를 떠올리”는 장면도 좋았어요. 필자가 누구의 위치에 서 있는지, 누구와 동지애를 느끼는지 보여주는 구절이에요. 이 글이 명절에 홀로 여행을 떠난 필자의 이야기라면, 명절에 있었던 갈등 이야기의 분량을 줄이면 좋겠어요. 글의 반 이상이 장소보다는 명절 이야기여서요. 필자가 명절에 홀로 여행을 다녀온 후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필자의 실천으로 가족들은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요. 마지막에 언급해주면 좋겠어요.
종이
아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새벽에야 수업에 쓸 영상을 찍었다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마음 아프네요. 코로나 시대에 선생님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글이라 반가웠어요. 집에서 종일 원격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생들의 사정도 생각해볼 수 있었고요. 그런데 글의 논점이 여러 가지에요. 재택근무가 시작되며 집과 일터가 분리되지 않는 문제, 코로나 이후 업무 과중으로 힘든 교사들, 실시간 쌍방향 원격수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학생들의 학습 격차 문제까지. 논점을 하나로 잡으면 좋겠어요. 하나하나 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에요. 중반에 “초등학교 6학년 때 - 첫 발령 받았을 때 - 코로나 시대의 교육부 대처에 대한 회의(현재) - 초등학교 6학년 때 - 가정방문 갔을 때” 이렇게 다양한 시간대의 이야기가 교차로 나와 헷갈렸어요.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좋겠고, 반복되는 사례들이 있어서 몇 가지는 빼도 무방하겠어요. “K와 L이라면 지금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독자가 함께 고민할 수 있게 던져주는 이 질문이 좋네요.
오늑
“잘 사는 집” 제목이 좋네요. 은연중에 썼던 “잘 산다”라는 말을 돌아보게 돼요. 돈이 전부가 아닌데 돈이 많으면 “잘 산다”고 생각하고 살았네요. 저에게 일산은 늘 아파트 많은 ‘잘 사는 동네’였는데 누군가에게는 음침한 동네라니 충격이었어요. 그러면서 나도 지역의 급을 나눠 사고했구나 반성하게 됩니다. 첫 문단에 “어렸던 나”라고 했는데 몇 살 때였을까요. 두 번째 문단에서 주변 사람들의 경제 상황(집 두 채에 벤츠 두 대)은 나오는데 필자 집의 경제 상황이 나오지 않아 궁금했어요. 살았던 지역이 어딘지 처음부터 나오면 좋겠어요. “평온하게 우리들만의 삶을 물씬 느끼며 사는 우리들”이라고 했는데요. 이 대목이 구체적이면 좋겠어요. 친구들과 관계라든가, 평상시 대화 주제라든가 오늑의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대로 ‘잘 사는’ 삶은 어떤 삶인지 적어 주세요.
고쌤
저도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공감하며 읽었어요.(저희 강아지도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잡니다 ㅎㅎ) “이불 속 유니버스”라니 적확하면서도 재치 있는 제목이네요. 아빠가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를 때마다 대피하던 호랑이 담요. “사납게 포효하고 있는 호랑이가 지켜주는 담요 속에서” 바깥과 완벽히 차단되어 안전함을 느끼는 아이의 감정이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부드럽고 포근해 만지기만 해도 잠이 솔솔 오는 요정 이불”까지. 이불 속에서 고쌤이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여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숨죽여 우는 법과 내 체온으로 나를 위로하는 법을 배우며 조금씩 나이를 먹었다”, “마치 터질 것 같은 상자에 굳이 들어가 몸을 구기고 앉은 고양이처럼”, “이불 한 장만 있으면 어디서든 펼쳐지는 평화의 세계” 좋은 문장이 많아 밑줄을 그었어요. 마지막 리뷰라니 아쉽네요. 서점 가서 고쌤 책부터 찾아봐야겠어요.
아임
열람실에 암막 블라인드가 있어서 낮인지 밤인지 몰랐다니 충격이네요. 1층 개방 공간에 앉아서 해 지는 걸 보는 게 “새로운 즐거움”이었다니 임용고시 준비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겠어요. 초등 임용은 불합격률이 얼마나 되는 걸까요. 경기도 초등 임용 자리는 얼마나 되고, 지원자는 몇 명인지도 궁금했어요. 서로 비교하는 분위기 속에서 “사람 말고” 시간과 경쟁하기로 한 필자의 선택이 인상 깊네요. 제목은 “나의 치열했던 날들, 나의 도서관”이어도 좋겠어요. 첫 문단은 주제와는 거리가 있어요. 두 번째 문단부터 시작하면 좋겠어요. 교대 다닐 때 일이라는 게 서두부터 나오면 좋겠어요. 저는 시험 준비를 한다고 해서 학원인가 싶었어요.
홍주
이 글에서 중요한 건 일터에서 느끼는 괴로움인데요. 글쓰기는 자기 욕망을 들여다보는 일이잖아요. 이렇게 힘든데도 나는 왜 계속 출근을 할 수밖에 없는지 질문해보면 좋겠어요. 일을 관둔다면 어떤 일이 펼쳐질 것 같은지도요. 이 상황을 무엇이 필자를 직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지 적어보면 필자가 처한 상황이 거리 두고 보일 거 같아요.. 3년 차 신입에게 무거운 과제를 던져놓고 정시에 퇴근해버리는 차장의 모습에 화가 나네요. “꿈에서도 못 끝낸 일들이 날 괴롭”히고, “눈물도 경제적으로 흘려야” 한다는 표현이 필자의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첫댓글 강아지까지 이불을 덮는다니 ㅎㅎ
저야말로 도리님의 리뷰를 이제 못 본다니 너무 아쉽습니다. 도리님 리뷰 보면서 저도 글쓰기 수업 때 이렇게 정성껏 해야겠다 반성 많이 했어요. 공감하며 읽고 도움이 되는 비평을 해주는 게 늘 쉽지 않은데, 도리님 글 보면서 배웁니다.
제 책은 오프라인 서점에는 없을 텐데 ㅎㅎ 두 번째 책은 서점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저희 강아지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야 잘 자거든요 ㅎㅎ 답답할 거 같은데 좋아하더라고요. 온라인 서점에는 책 있던데요? 저희 동네 도서관에도 있더라고요 ㅎ
도리님 그동안 매번 첨예한 리뷰 너무 감사했습니다!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