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출 날을 그리며 / 한정숙
작년에 마우스 클릭이 늦어 미끄러진 연수를 이번에는 기어코 받고야 말겠다며 벼르고 있었다. 일정이 마음에 들었을 뿐 아니라 얼른 떠나기 어려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인천시 교육청에서 전국 초중등학교 관리자들에게 기회를 준 ‘강화 에듀투어’이다. 인천을 넘어 더 큰 교육공동체와 담론을 만들어 다채로운 미래 교육을 열고자 연수생들에게 강화의 역사, 평화, 생태, 문화 교육을 체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공정하게 선발하려고 접수순으로 연수 대상자를 뽑는다. 여러 날 전부터 신청서가 올라오는 날과 시간을 확인하고 지정된 날, 컴퓨터 시계가 오전 10:00으로 바뀌자 잽싸게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성공이다. ‘우와!’ 이럴 땐 기쁨의 환호와 성공의 박수와 어깨춤이 절로 난다.
4월 4일 오전 10시 20분, 인천 검암 역에서부터 시작되는 연수는 1박 2일의 체험형이다. 연수생들의 나이가 책상 앞에 앉아 온종일 강의를 듣는 것은 무리지 싶은데 많이 걸으면서 보고 느끼는 현장 체험이라니 이보다 좋을 순 없다. 2019년 폐교 된 난정초등학교에 자리 잡은 인천난정평화교육원에서 개강식을 하고 전시관을 들러 강화 사람들이 살아 온 이야기를 들었다. 전쟁 중 피난하여 마을을 꾸린 교동 사람들의 평화와 통일을 그리는 염원이 잔잔하게 전달된다. ‘난정’이라는 지명은 우물 속에서 난초가 피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다.
탐방지의 첫 장소는 강화도 교동의 화개산 중턱에 자리 잡은 고즈넉한 화개사 로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고려 말 3은 이었던 목은 이색이 공부했던 곳이란다. 200년이 넘은 보호수 소나무가 긴 쇠막대의 부축을 받고 서있다. 통일을 기다리며 버티는 교동 사람인 양 대견하고도 애잔하다.
절에서 맨발로 30여분 오솔길을 걸어 내려와 한국 전쟁 피난민들의 애환이 서린 대룡 시장을 돌아보니 마치 흑백 영화를 보는 것처럼 예스럽다. 알이 꽉 찬 옥수수에 아이 얼굴을 덮어 그려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며 가족계획을 독려하는 포스터엔 웃음이 터진다. 오래 된 영화 포스터, 향수를 부르는 간판과 처마 밑의 제비집 앞에서는 발길이 오래 머물렀다. 웬일인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6.25때 황해도 연백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생계를 위해 고향 시장을 본 떠 만들었다니 당연한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잠시 머물렀다 돌아가려했던 이곳 대룡 시장은 이제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일이다.
뜻하지 않게 교동초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는 후배를 만나는 행운도 있었다. 대룡 시장 길목에 그이가 근무하는 학교가 있었으니 말이다. 기름 냄새가 고소한 호떡집에 들러 수고하시는 교직원 분들의 간식으로 씨앗호떡을 예약하였다. 사장님께서 당신이 동창회 회장이라며 더욱 살갑게 한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소식을 듣고 뛰어 나온 후배가 이름 값하는 강화도 쌀로 만든 말랑한 가래떡을 한 보따리 연수 버스에 올린다. 홍 선생과는 2000년대 초에 같은 학교에서 근무를 했는데 사표를 내고 올라와 인천 선생이 된 지는 20년이 되었다. 떡 맛을 본 연수생들이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교동 사람들도 어느 날 갑자기 두고 온 가족과 이웃을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분 좋은 내색도 조심스러웠다.
첫날의 마지막 탐방지는 대룡 시장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망향대이다. 도로에서 50m쯤 올라가면 망향대라는 커다란 비석이 있는데 2.6km 건너편 황해도 연백 땅의 건물을 볼 수 있는 망원경이 두 대 서있고 한국 전쟁 때 교동으로 피난 온 실향민들이 두고 온 고향을 향해 제사할 수 있는 제단도 마련되었다. 푸른 들녘 너머 철조망이 가로막히고 바다 건너 저편에 연백평야와 북한 사람들 사는 곳이 보인다. 날이 흐려서인지 건물만 보일 뿐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아 답답했다. 북한을 보고 있자니 내 피붙이가 그 곳에 있는 양 가슴이 떨리고 아팠다.
망향대를 두르고 있는 철조망에 다녀간 사람들의 마음이 대롱대롱 걸렸다. 1년에 한 번 제사를 모시러 온 실향민들의 바람과 이러저러한 이유로 둘러보러 온 관광객들의 응원과 위로의 글이다. 오래되고 바람에 날려 떨어진 카드를 보도라면 눈이 흐려진다. 6.25 한국전쟁 당시와 북한의 실상을 담은 사진도 마음을 내리누른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이름이 라르고(LARGO)다. 음악 악상기호로 ‘느리게’라는 뜻이다. 발걸음이 자꾸 느려진다. 화개산 오솔길과 대룡 시장을 지나 망향대를 다녀오는 길이 숙소 이름과 겹쳐 생각이 많아진다.
문득 교동사람들은 그리던 북쪽의 가족을 만나게 되면 그 기쁨을 어찌 표현할까? 그려 본다. ‘환호하고, 서로 얼싸안으며 춤을 추겠지?’ 북한 사람들이 큰 행사가 있을 때 광장에 나와 한복을 입고 짝을 지어 춤추는 장면을 보도 자료로 본 적이 있다. 텔레비전에서 본 그들의 춤은 음악도 경쾌하고 동작도 활발했다. 그런 춤을 교동에서 볼 날이 있을까? 그렇게 되는 날 다시 이곳에 온다면 숙소의 이름이 바뀌어 있으면 좋겠다. 지오코소(GIOCOSO), ‘즐겁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