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주님과 일상의 연합
09/30토(土)갈 2:19-21 / 요 14:18-23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갈 2:20)
주님과 연합이 최고의 복음이고 능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에게 최고의 복음을 주시기 위해 내가 죽음을 체험하도록 이끄십니다. 내게 환란을 주시는 것은 자아가 죽어 주님과 연합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내 인생의 동역자이십니다. 그분이 사는 삶을 내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미 승리하신 주님과 연합한 나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하면 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요,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요 14:23). 이제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내 속에서 주님이 나대신 내 삶을 사십니다.
주님과 일상에서 연합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날마다 고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이제 내 속에 사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고백합니다. 이제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나를 날마다 죽음의 자리로 들어갑니다. 기도는 내 자아를 죽음의 자리로 몰아갑니다. 성도의 환란은 날마다 죽음의 자리로 가라는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감히 단언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하신 그 일로 내가 여러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입니다”(고전 15:31). 예수를 믿는데 아직도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날마다 죽는 자리로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는 자리에 가게 되면 영이 혼을 다스리며 임재를 체험하고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죽음의 자리에는 고통이 없습니다. 살아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 안에 있는 믿음은 예수님이 가진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장애물에게 명령하면 옮겨집니다. 내 일이 주님의 일이기에 기도하면 응답받습니다. 무슨 일이든 주님이 주신 믿음으로 기도하면 뚫고 나갈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은 상황을 보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절망, 좌절, 염려, 두려움을 주님이 가져가셨습니다. 나는 축복받은 자녀입니다. 이렇게 믿고 선포하면 저주가 떠나갑니다. 이것이 언어의 능력입니다.
▣대면(對面)의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대면의식이란 날마다 주님의 얼굴을 맞대고 사는 것처럼 사는 의식입니다. 내가 날마다 주님 앞에서 산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주님을 먼저 대면하고 인간을 만나면 그 만남은 아름다운 만남이 됩니다. 칼빈은 늘 주님과 손을 잡고 사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다윗은 늘 주님이 앞에, 옆에 계신 것처럼 대면의식으로 살았습니다.
▣섬김 의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섬김 의식은 주님이 나의 주인이고 나는 주님의 종이라는 의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인생을 자유롭게 사시도록 합니다. 내 속에 계신 주님이 편히 사시도록 합니다. 이렇게 살면 삶 속에서 지혜가 번뜩입니다.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계속 대화를 해야 합니다.
주님께 지금 상황을 올려드립니다. 주님께서 받으시면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근심, 걱정을 있는 그대로 말합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주시는 감동에 순종합니다. 주님이 응답 주시면 그 상황에서 주님께서 일하시도록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최고의 결과를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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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복은 자원이 많거나 잘나서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믿음이 좋을 때 인생이 풀리게 됩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잘 믿어야 신앙의 진보가 일어납니다. 신앙이 성장할 때 문제해결 능력이 생깁니다. 성도의 승리의 조건은 주님과의 연합입니다.
중동에서 선교하고 있는 선교사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을 때가 가장 두렵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인식이 유지되어야 두려움이 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면 은밀한 죄를 짓게 됩니다. 죄가 쌓이면 하나님과 단절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면 허랑방탕한 삶을 살게 됩니다. 허랑방탕한 삶은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삶입니다. 즉 하나님과 계산될 것이 없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크로노스의 삶을 산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통제가 싫어 유산을 받아 집을 떠났습니다. 가진 재산을 다 탕진하고 나중에 주려 죽게 됩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떠났기에 은밀한 죄를 짓습니다. 아버지를 떠난 인생은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탕자가 아버지의 통제 안으로 들어오니 신분, 재산, 관계가 회복됩니다.
주님과 연합하면 임재 의식이 있습니다. 연합의 전제조건은 자아 죽음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와 연합하는 것이 하나님 임재 의식입니다. 하나님은 내 자아가 죽도록 나를 이끌어 연합으로 인도하십니다.
때로는 너무나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억울하다는 것은 내 감정, 내 편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멀리서 문제를 바라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생각해 보면 내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의 자리로 억울함 그대로 가지고 나갑니다. 상황을 다 말씀드리기 전에 하나님께서 마음을 열어주십니다. ‘그래도 그보다 네가 낫다. 반응에서 죽어라.’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로 싸워봐야 득이 없습니다. 어떤 반응에서도 죽는 사람이 가장 큰 이득을 봅니다. 나아가 죽을 때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머뭅니다. 기도할 때 성령에 매여 어쩔 수 없이 죽음의 자리로 나갑니다. 살아서 마음 불편함보다 차라리 죽어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 편이 훨씬 낫기 때문입니다.
죽는 것이 내게 유익함은 주님이 내 주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어야 내 안에서 예수가 사십니다. 내가 죽을 때만 주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내 삶을 인도하십니다. 이러한 삶이 일상에서 연합입니다. “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도 이렇게 고백하며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
https://youtu.be/87zJzbJgDpo?si=uSNtbzrAU4Ck6r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