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의 명절
/이춘운
올해의 추석은 예년과 다르게 조용히 지나갔다.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사 출입문이 떨어지면서 발가락이 골절되어 기부스를 하게 되었는데, 오늘 드디어 그것을 풀었다고 한다. 그러나 몇 달간 일을 할 수 없어서, 이번 추석에는 우리 집에 오지 못한다고 했다.
조카딸도 마찬가지였다. 사위 쪽에서 결혼식이 있어 시골로 내려가야 했고, 그 때문에 친정에도 오지 못한다고 했다. 한때는 북적이던 장손의 집이었지만, 올해는 아무도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올해는 경기마저 좋지 않아 하청 업체 22곳이 부도났고, 법정관리에 들어간 곳도 적지 않다고 한다. 누님의 큰아들은 현장 소장이고 둘째 아들은 부장, 여동생의 아들도 차장으로 근무했었다. 그러나 현장이 부도나고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그들 모두 실직한 상태가 되었다. 조카사위도 부장이었는데, 현재는 일용직 목수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 추석을 맞아 조카 결혼식도 겸해 시골로 내려간다고 한다. 그는 명절을 잘 보내라며 30만 원을 입금해 주었다. 다른 아이들도 일을 하지 못해 휴직 급여를 받고 있는데, 돈이 없어 못 온다는 걸 내가 굳이 몰아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옛날에는 술 한 병을 들고서라도 어른들께 인사를 갔고, 돈이 없는 사람은 빈손이라도 어른들을 찾아뵀었다. 사람 사는 도리란 돈으로 살 수 없는 양심과 예의에서 비롯되는 법. 아무것도 없어도 마음만 있다면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 오지 못한다고 하니, "그렇게 해라"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속에 서운함이 맴돌았지만 말이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할 말은 없는 처지다. 작은 어머님께도 안부 전화 한 통 하지 않았으니, 내일은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손님이 없으면 아내가 편해질 테니, 올해의 추석은 아내의 해방의 날로 기념해야겠다. 해마다 손님을 대접하느라 너무 애썼고, 손가락은 휘어지고 팔 인대 수술까지 겪었으니 말이다. 장손이라 손님들이 많이 모였고, 제사상을 차리느라 신경을 쓴 끝에 그렇게 되었다. 올해는 조용히 세 식구가 제사상을 차리고 조상님을 모시게 될 것 같다.
아내는 어깨 인대 두 개가 파열되어 수술을 받았다. 주방 일을 해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매우 힘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양반 교육을 받으며 자랐던 나는 남자가 설거지를 하거나 부엌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그래서 아내가 수술하기 전까지는 물도 스스로 받아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가 팔이 아프다고 했을 때 작은 정형외과를 전전하며 진단을 받다가 결국 대학병원에서 인대가 두 개나 파열되었다는 말을 들었고, 나는 서서히 주방일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나마도 굼떠서 아내의 핀잔을 받기 일쑤였다. 팔이 아픈 게 내 탓인 것 같아 더욱 열심히 도왔고, 수술 후 한 달 반 동안은 주방 일을 내가 모두 도맡아야 했다.
여자가 하는 일은 쉽다고 생각했던 내가 직접 해보니, 그건 중노동이었다. 아침 준비만 해도 오전 6시에 일어나 11시가 되어서야 끝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주방에서 허리를 굽히며 일하다 보면 허리가 아파 일어나기조차 힘들었고, 손가락과 손목이 붓곤 했다. 그렇게 제사상을 차려 놓고 몸살로 앓아눕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추석 명절을 기다리며 좋아할 때, 아내는 그 명절이 겁난다고 했던 것이다.
올해의 추석은 친척들과 친구들이 오지 않을 것 같다. 모두 실직했고, 아내가 어깨 수술을 받은 상태라 음식을 준비할 수 없으니, 그들도 아내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것 같다. 아내는 속으로 기뻐할 것 같지만, 겉으로는 "손님들이 안 오면 준비한 음식은 어떻게 해요?"라며 걱정스레 물었다. 작은 어머님께 명절 선물로 십만 원을 입금했는지 물어보길래, 방금 입금했다고 답했다.
추석 명절, 한 해에 하나밖에 없는 대명절이지만, 올해는 경제난으로 친척들도 실직한 상태다. 큰 조카가 포도 한 박스를 들고 와서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너무 힘들다고 했다. 작년 같았으면 소갈비와 푸짐한 음식들로 상이 가득했을 테지만, 올해는 제대로 된 밥상조차 차리지 못했다. 밥도 못 먹고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니 측은하고 마음이 아팠다. 조금만 더 아껴 쓰고 모았다면 이런 창피한 일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모두가 한가위 보름달처럼 풍성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빌고 또 빈다.
2024년 9월 13일, 구로구 항동 245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