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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속의 봄 이야기
이 홍사
지루한 장마다.
정말 지루하다.
종일 비가 오락가락한다. 창 너머 내다보니 산발적으로 또 가랑비가 흩날린다. 이번 주 내내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마음마저도 쾌청하지가 않고 우중충한 게 습하다. 신문이나 유튜브를 통해서 접하는 소식도 우중충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훑어보아도 간결하면서 깔끔한 소식은 없다. 오늘 받은 소식이라면 강모 아재가 비 오는 날 사무실에서 청승을 떨지 말고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전화했지만, 나가기가 귀찮아 급하게 견적을 넣을 게 있다고 둘러대고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이게 청승인가?
강모 아재는 매일 만나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앉아서 꿰고 있는 눈치다.
홀연~
홀연 도련님 눈썹 위에 내려앉는 청아한 뻐꾸기 울음소리.
난데없이 이 시의 한 구절이 왜 입에 맴도는지 모르겠다.
뻐꾸기 울음소리처럼 청아한 소식을 기다리는 게 아닌가. 그런 심정에서 잊고 있었던 삼박한 구절이 되살아난 것인가.
이 구절은 박정만의 겨울 속의 봄 이야기 한 토막이다. 육십 년대에 신춘문예로 떠오른 시니까,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문장이 간결하면서 암송하기에 운율로 안성맞춤이라 시를 암송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낭송되었던, 아주 오래된 시인데 그 구절이 갑자기 왜 떠올랐을까. 사실이지 문득 청아한 뻐꾸기 울음 같은 소식이 들렸으면 거보다 좋은 일이 없겠지.
오늘의 일상도 비루하고도 지루하다.
비가 오면 매출이 오르지 않는 노가다 직업이라 더욱 비루하게 여겨지는지도 모를 일. 어쩌면 나의 내면에서 이 지루한 일상이 까마득한 겨울이라고 인식하는, 계절과는 동떨어진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구미라는 공단 도시에 일이 이렇게 줄어버린 건 순전히 정권 탓이다. 이 지역을 뭘 해주어도 표가 나오지 않는 지역이라고 정권은 판단하고 있기에 자꾸만 낙후되어 간다고 친구들은 말했다. 정치꾼을 욕하기도 이젠 지겹다. 아무튼, 우리는, 아니 나는 한겨울이라는 긴 터널을 추위에 떨면서 지나가고 있다.
그래서 봄을 기다리는 것인가?
정말 겨울인가?
책상에 팔을 세워 턱을 괴고 눈을 감는다. 눈앞에 겨울의 정경이 펼쳐진다. 빗소리가 겨울의 한풍으로 변한다. 동지섣달 기나긴 밤 문풍지가 바람에 울고 있다.
비는 나를 때린다.
나는 젖고 있다.
빗소리를 들으며 살짝 자기최면에 걸린다.
언 땅이 녹지 않았는데 여울 얼음장 밑으로 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우수도 경칩도 먼 계절인데 가슴에 흐르는 피는 뜨겁다. 자고로 피는 뜨거워야 한다. 겨울 산에 갇히더라도 피는 뜨거워야 한다. 시인은 말했다. 봄을 수태한 여자의 방문 앞에서 나는 청솔과 반짝이는 동전 몇 잎을 흔들며 서성대고 있다고. 그게 봄을 기다리는 뜨거운 심정이라고.
정말 그런가?
이 계절이 정녕 봄을 수태한 계절인가?
나의 피는 과연 뜨거운가?
혼자만 그렇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그 질문에는 고개를 흔든다. 암울하다. 사방은 첩첩산중이고 얼음장이다. 이 빙하의 계절에 우리는 정말 봄의 소생을 기다리는가? 어디에도 눈 뜨는 하나의 나무, 눈을 뜨는 풀꽃들의 건강한 죽음의 소생은 들리지 않는다. 이어지는 건 겨울 산의 가파른 눈길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 산을 지나는 보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산하에 봄은 결코,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가파르고 미끄러운 산을 어떻게 지나갈 것인가.
창밖의 비가 제법 굵어졌다.
눈이라고 생각하자. 또 최면을 건다.
소록소록 눈이 내리는 소리.
뒤 울 안에 눈이 온다.
죽은 그림자 먼 기억 밖에서
무수한 어둠을 쓸어내리는
구원한 하늘의 설화.
나는 지금 어둠이 잘려나가는
순간의
분분한 낙하 속에서
눈뜨는 하나의 나무
눈을 뜨는 풀꽃들의
건강한 죽음의 소생을 듣는다.
건강한 죽음의 소생을 듣는다? 그렇다고 치자. 그렇게 생각하자. 그렇다고 치고 주문처럼 소생을 외우자.
엊그제는 분향소를 찾았다. 구미에서 광화문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었다.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분향소를 마련했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갔었다. 비가 오는데 많은 사람이 줄지어 조문하고 있었다. 노병은 죽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그분은 구국 영웅이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치열한 다부동 전투에서 나라를 구한 사람이고 인천상륙작전을 주도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이 그분의 구국정신을 알고 있었다. 아니다. 더러는 그분의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니 알면서 이념의 차이를 빙자해서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니다. 같은 민족을 향해서 총부리를 겨눈 사람이라고 노골적으로 폄훼하는 무리까지 있다. 전쟁이 얼마나 비참하고 앞뒤를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인지 모르는 사람들의 철딱서니라고는 서푼 어치도 없는 소견머리다. 늘 만나는 강모 아재가 꼭 그 꼴이다. 해서 만나면 늘 의견이 분분하고 종내에는 큰소리가 난다.
전쟁?
당해 봤나?
인권이 어디 있고 민족이 어디 있나? 오로지 적과 아군 구분만 있을 뿐이다. 민족? 죽여야 나라를 구할 수가 있고 자신이 산다는 치열하고 냉엄한 현실만 포연 속에 존재할 뿐인데 민족 타령이라니 가당키나 한 것인가? 오죽하고 난리라고 부르겠는가?
민족?
정말 얌생이 숭늉 마신다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네.
욕설처럼 혼자 중얼거린다. 내가 뱉은 욕지거리도 빗물에 씻겨 내려갔다.
전후 세대의 철딱서니라고는, 생각하면 부아가 인다.
공교롭게도 하루를 차이로 두 명의 거물이 유명을 달리했다. 한 분은 구구 영웅이면서 조국 근대화에 참여한 인물이고 하나는 좌익적 세계관을 가지고, 같은 부류의 시민단체를 만들어 시장으로 당선되어 여비서를 추행하다가 성추행의 피소 사실을 알고 자살한 인물이다. 두 사람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면 이 직설적인 말로 요약된다.
구국 영웅의 빈소는 찾지 않으면서 성추행에 피소가 된다고 서둘러 자살한 인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분향소에 가는가? 생각도 없고 자기검열도, 자기주장도 없는 족속들이다. 정말 전율할 노릇은 그 성추행 피의자의 죽음을 두고, 임의 뜻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라고 써서 걸어놓은 현수막이다. 그 임의 뜻은 도대체 무엇인가? 정말 아리송하다. 성추행을 더 진화되게 전문적으로 하겠다는 뜻인가? 내 아둔한 머리로는 그렇게밖에 풀이가 되지 않는다. 그 성추행범의 분향소를 찾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 안에 있는 타자의 눈으로 자신을 보라. 부끄럽지 아니한가? 수치심. 집단이 형성되면 수치심은 사라진다고 했다.
하루 차이로 죽은 두 사람의 사회기여도를 따져보자.
부끄럽지 아니한가?
더 심각한 사건도 있다.
어느 역대 민주를 외치던 대통령 아들이 순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었다. 정말 자신의 능력인가? 아무튼, 그가 국회의원이 되어 처음 한 일이라고는 구국 정신으로 나라를 구한 인사를 찾아가 현충원에 묻히면 묘를 파내는 불상사를 당할 수도 있다고 협박했단다. 그 양반의 관동군 시절을 친일행위로 파악하고 있다고, 국민 정서가 그렇다고 백 세의 노구가 된 영웅에게 협박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이 양반을 멸시하는 것이 매국노고 친일 행각이 된다는 자명한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나는 그 소식을 접하고 또 격분했다.
정말 사회가 제정신인가? 참으로 깊은 겨울이군.
아, 정말이지 겨울이 길어서 슬프다.
이따위 우중충한 고민보다는 사치성 고민을 좀 해보자.
고민에도 사치가 존재한다.
사치성 고민?
책상 위의 반가사유상처럼 사유의 깊이를 더 깊숙이 조절하자.
천박한 고민은 절대 사양이고 사절한다.
사무실 책상 앞에 앉으면 책꽂이 위에 올라앉은 반가사유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길이는 반 뼘 정도 되는, 작은 조각상인데 제법 묵직하고, 보고 있으면 마음도 생각보다는 듬직하다. 사실은 요즘 반가사유상을 보면서 심리적으로 위안을 받는다. 천박한 고민을 좀 깊이 있는 사유로 끌고 가는 물건이 분명하다.
금동이 아니라 청동으로 만든 것인데, 누구네 집 마룻장 밑에서 괄시를 받고 있었는지 청동 녹이 슬어 내 손으로 넘어오면서, 철사로 된 솔로 깨끗이 닦고 금분을 입혀서 금빛이 나도록 만들었는데, 언제 보아도 눈에 쏙 들어오는 물건이다. 보고 있으면 눈이 즐거운 저 반가사유상은 지난주에 골동품 경매장에서 헐값에 낙찰받은 것이다.
생각하면 내 물건을 만들기를 잘했다.
거듭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반가사유상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기 전 태자였을 때 인생무상을 느끼며 고뇌하던 모습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인생무상! 얼마나 사치스러운 고민인가?
무슨 고뇌를 저토록 깊게, 우아하게 할까?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던지는 질문이다.
어쩌면 사치스러운 고민을 즐기는 듯이 보인다.
사유라면, 현대인들은 프랑스 조각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꼽는다. 그러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허리를 너무 굽혀서 사유한다기보다는 절망을 씹는 표정이고 태도다. 우스갯소리로 내 팬티를 누가 가져갔나? 아니 훔쳐갔나? 그걸 생각하니 괴로운 것이지. 그것에 비교해서 반가사유상은 허리를 덜 굽히고 있어서 실의에 찬 모습이 아니라 고상한 시를 구상하는 듯이 보인다. 최소한 조각에 대해서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비친다.
자료를 찾아보니, 반가사유상은 인도에서는 처음 등장하는데 불상의 좌우에 교각보살상과 함께 협시보살상으로 조성되었다. 중국의 경우 명문을 통해 태자사유상, 혹은 사유상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나무 아래에서 혼자 명상에 잠긴 모습으로 표현되거나 이후 나무의 모습이 생략된 채 만들어졌단다.
우리나라에서는 태자사유상으로 조성된 흔적 혹은 명문이 발견된 사례는 아직 없단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반가사유상이 태자사유상보다는 미륵보살상으로 인식되었는데, 그 이유는 일본 야츄우지(野中寺)에 있는 반가사유상의 대좌에 미륵어상(弥勒御像)이라 새겨진 명문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했다.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반가사유상이 역사적으로 미륵신앙과 관련을 보이며 중국 역시 석굴에 조각된 명문 없는 반가사유상이 미륵보살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상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태자사유상과 마찬가지로 미륵보살상이란 명문이 발견된 예가 없으며 미륵보살로 확증할 만한 명백한 자료가 없어 최근에는 미륵보살반가상보다 반가사유상으로 그 명칭을 전환하는 추세라고 했다.
반가사유상.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보다 더 깊은 사유를 깔끔하게 하는 우리나라의 토종 조각 예술품이다. 반가사유상은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안정미와 절제미를 갖추고 있다. 반가사유상은 반가부좌로 앉아 사유하는 형상이라는 말로 풀이된다. 학창시절에는 의미를 모르고 외웠는데 반가사유상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긴 것은 인천공항이었다.
언젠가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반가사유상을 본 적이 있다.
국보로 지정된 것과 똑같은 크기의 모형을 만든 것인데 하도 보기가 좋아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그 사진에 내 핸드폰 어디엔가 들어 있을 것이다. 사진을 찍고 유리곽에 들어 있는 반가사유상을 보고 묻고 싶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고. 그때는 탑승 시간이 많이 남았었던 모양이다.
책상 앞에 앉아 반가사유상을 볼 때마다 그 모습을 취하고 싶지만 잘되지 않는다. 어쩌다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자세를 잡아보지만, 무엇에 집중할 수가 없다. 고결한 사유를 해야 할 그런 시간이 생기면 혼란스럽다. 인생무상을 고뇌하거나, 나 자신 내면의 혼란보다는 작금의 시국 현실, 좌우가 극명하게 분리된 이념, 명쾌하게 정립되지 않은 시대가 고귀한 사유를 할 나만의 시간을 침해하여 천박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순전히 암울한 시대 탓이다.
우짤라카노?
이 질문을 던질 때는 언제나 피를 토하는 심정이다. 정말이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나 자신에게 스스로 물으며 가슴을 두드릴 때가 있다.
참말로 우짤라카노?
비가 오는 소리를 소록소록 눈이 내리는 소리로 착각하며 팔을 괴고 책상 앞에 앉아 반가사유상을 보고 물은 말이었다. 작금의 경제 현실과 이념의 혼란은 참담하다 못해 비참한 지경이다. 모든 신체의 장기는 심장에 의존하고 심장은 지갑에 의존한다고 했다. 경제가 죽으면 모든 게 푸르스름하고 물러터진 죽음의 빛깔로 변한다. 인간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즉 끝장이라는 말이다. 그게 자유시장 경제를 채택한 자본주의의 섭리다. 그러나 이 정권은 자꾸 경제가 좋아진다는 유체이탈의 화법을 쓰고 있다. 이 나라를 끌고 가는 수장이라는 작자가 누구에게 어떤 보고를 받는지 현실과는 동떨어진 말만 거듭하고 있다.
경제가 기적적으로 선방하고 있다.
모두가 코웃음을 치는 말을 혼자서 하고 있다. 포스코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분기별 적자를 냈다는 뉴스를 접했다. 도저히 적자가 날 수 없는 회사인데 적자를 냈단다.
큰일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현실을 냉철히 직시하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정치권에서는 상당히 낙관적이다. 무얼 보고, 어디에 기준을 두고 우리 경제가 잘 되고 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입만 열면 경제가 잘 되고 있다는 말이다.
또 천박한 시대 타령이다.
이야기 끝이 왜 항상 이쪽으로 구부러질까?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 영양가 없는 얘기는 그만하자.
내가 걱정을 해도 시국이 어수선하고 경제는 내리막을 타기는 마찬가지다. 내리막에는 가속도가 붙는 법이다.
오로지 입으로, 먹고 사는 걱정은 이제는 시대에 동떨어진 걱정이다. 어지간해서 굶주림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굶주린다면 위장이 팽창되어 포만감을 느끼는 캡슐이라도 만들어 낼 수가 있는 시대로 급부상했다. 얼마만큼의 문화를 누리면서 마음고생을 하지 않고 사느냐가 우리 시대의 관건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어린 시절 굶주리면서 살아온 세대다. 누구는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참으로 의미 있게 듣고 새겼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세대라고 했다. 예측하는데, 그럴 것이다.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세대?
어린 시절 주려보았고, 조국 근대화를 지켜보았고 물질문명이, 즉 인공두뇌가 인간성을 깊숙이 침해하기 직전의 세대를 살다 간다는 말의 다름이 아닐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나에게 동류의식을 느낀다고 했다. 그 말도 전적으로 수긍이다.
강모 아재가 찾아온 것은 턱을 괴고 반가사유상을 보며 천박한 고민을 어떻게 하면 사치스러운 사유로 전환할 수가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오후였다. 점심시간이 언제 지나간 줄을 몰랐다. 반가사유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왼쪽 다리는 내리고 그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얹은 자세로, 오른쪽 팔꿈치를 무릎에 놓고 손끝을 뺨에 살짝 대어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을 표현한 형상이다. 저 자세를 취하면 깊이 있는 사유에 집착할 수가 있을까?
볼 때마다 그게 궁금했다. 책상 앞에서 내려와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반가사유상의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 노크도 없이 사무실 문이 열리며 강모 아재가 얼굴을 디밀었다.
“점심 먹었어?”
“아직!”
“거, 잘됐네! 날도 꿀꿀한데 짬뽕 국물에 소주 한잔 어때?”
사무실까지 쳐들어온 이상 마다할 구실을 찾을 수가 없는 일이다. 강모 아재의 사무실은 걸어서 오 분 거리의 공터에 있다. 이삿짐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컨테이너로 만든 사무실에 아줌마 직원과 둘이 있었으니 어지간히 갑갑했던 모양이다. 장마철이라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강모 아재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일 년 후배인데 같은 마을에서 자랐다. 집성촌인 동네라 족보를 펼치면 전부가 친척이 되는 마을인데 항렬이 높아 아재라고 불린다. 정작 항렬을 따지면 할아버지뻘이다. ‘모’자 항렬은 세 계단 위의 항렬인데 강모 할배라고 부르는 게 맞지만, 또래들은 전부가 강모 아재라고 불렀다. 끝 아재비가 올 조카의 장짐을 지는 그런 집성촌이라 나이가 한 살 많은 것과 항렬이 높은 것을 묵언으로 상계하여 친구로 지내고 있다.
“견적은 다 뽑았어?”
“견적?”
“아까 급하게 견적을 뽑는다고 했잖아?”
아, 그랬지. 그렇게 둘러댔었지.
“응 대충 끝났어. 나가자!”
반가사유상을 보며 고상한 척 천박한 고민을 하는 것보다, 이렇게 궂은 날은 짬뽕 국물에 소주 한잔이 정신적으로 따지나 육체적으로 미루어보나, 건강상 이롭겠지. 다만 소주를 마시면서 강모 아재가 정치 이야기를 꺼내서 염장만 지르지 않는다는 단서가 달리면 거보다 즐거운 일이 없겠지. 하지만 그건 사실 기대하기 어렵다. 술이 들어가면 내가 먼저 못마땅한 정치꾼들의 이야기를 꺼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둘은 도로를 건너가 천안문 식탁에 마주 앉았다.
강모 아재가 추천한 식당이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식당은 한산했다. 천안문은 배달은 하지 않고 오는 손님만 받는 배짱 장사를 하는 중국집이다. 맛이 소문이 나서 멀리서 차를 가지고 순전히 짬뽕을 먹기 위해서 오는 무리도 있다. 점심시간이면 가게 앞의 공터에 주차할 공간이 없을 정도다.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
누가 했던 말인지 몰라도 오늘은 이 말을 물고 늘어질 참이다. 음식이 나오기 전부터 이 말이 입에 맴돌았다. 생각하니 강모 아재는 희한한 상대다. 만나기만 하면 치열한 언쟁이 붙고 기분이 상해서 헤어지는데 매일 만난다. 소식이 없는 날이면 시원하기보다는 오히려 섭섭한 마음이 이는 대상이다. 기회의 균등? 웃기고 있네. 항간에서는 이 말을 비꼬아 다른 말이 들린다. 기회는 문재환처럼, 과정은 조북처럼, 결과는 문미향처럼,
좌익적 세계관을 가진 강모 아재가 토를 달거나 수틀리면 이 말도 비꼬아 곁들일 참이다. 강모 아재는 다 좋은데 상실된 국가관을 가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늘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첨예하게 대립한다. 이 인간과 관계를 유지하려면 만만치 않은 인내가 필요하다.
“아재! 히틀러의 수권법 알아?”
먼저 나온 양파 조각을 씹으며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말하자면 선방을 먼저 날리며 허를 찌른 거다.
“수권법?”
“히틀러의 광기에 동조하는 여러 사람의 지지에서 탄생한 법이지. 결국, 그 법으로 인하여 자신들이 희생을 당했지만,”
눈치로 미루어 강모 아재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걸 눈치챌 수가 있었다.
대공황 후 독일은 심각한 경기 불황으로 실업률이 급증하였다. 그러나 의회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고, 이에 실망한 독일 국민은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다. 히틀러는 이러한 대중의 지지를 얻어 내각을 구성하였고, 그 직후 착수한 일이 의회에서 ‘민족과 국가의 위난을 제거하기 위한 법률, 수권법(授權法)을 제정하게 한 일이었다. 수권법은 이후 히틀러가 행한 모든 만행, 예를 들어 일당 독재 체제를 확립하고, 반대 세력을 제거하며, 인권을 탄압하였던 일들의 법적 근거가 되었다. 의회의 동의 없이도 법을 제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그걸 설명하는 중에 짬뽕이 나왔다.
소주도 따라서 나왔다.
“강모 아재! 너? 엊그제 서울 시청 앞에 갔다가 왔지?”
강모 아재의 잔에 소주를 채워주며 내가 물었다.
“서울 가는 길이 있어서 잠깐 들러 분향만 하고 왔지. 일부러 올라간 건 아니야?”
“나는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가서 분향하고 왔어. 두 사람이 대비되는 사람 아닌가? 그 사람은 성추행의 가해자야, 평생 했던 말은 다 거짓말로 드러난 위선자였어. 그 사람의 사회에 기여도를 따져봐. 한 게 뭐야? 굳이 기여도를 따지자면 강모 아재와 내가 늘 말싸움을 하게 만드는 데 기여도가 있겠지.”
강모 아재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또 선수를 날렸다.
“좌익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봐! 다른 세계가 보인다구. 그 세계관으로 말을 하면 앞뒤가 맞지 않아. 하나를 논리적으로 맞추어 놓으면 또 하나가 어긋나게 되어 있어. 아재가 한 말을 생각해봐, 앞과 뒤가 논리정연하게 맞아 떨어지나? 하늘의 달을 보고 달이라고 해야지, 왜 물에 빠진 달그림자를 보고 달이라고 우겨?”
이런 말을 하면 강모 아재의 말도 안 되는 소리가 기다리고 있는 줄 안다. 그러나 듣기 싫은 소리를 할 적에 나에게는 비방이 있다. 그 소리를 듣지 않고 속으로 독립선언문을 외우는 거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은 독립국임과 조선인은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로서 세계만방에 고하야.......
꼭 강모 아재가 아니더라도 지겹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자리에서는 외우는 선언문인데 나만의 그 자리를 지키는 나만의 비법이다. 어쩌면, 백 년 전에 운율의 조화가 이렇게 잘 맞는 국한 혼용체의 선언문을 만들었을까?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에 이렇게 훌륭한 독립선언문을 하나 만들었다. 외우면 어떤 시보다 전율이 인다. 세계사를 뒤져보면 독립선언문이 참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독립선언문은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운율의 조화가 적절한 명문장이다. 나는 이 독립선언문을 외우는 것으로 일제 강점기에 대한 정신적 피해의 보상을 조금이라도 받는다고 생각한다.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바로 독립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선언문이 발표되고 26년의 세월이 흘러 독립이 된 점이 못내 아쉽다. 강모 아재가 여차하면, 오등은 자에 아, 이 독립선언문을 속으로 외울 참이었다. 한글로 풀이한 문장을 읽는 것보다 국한 혼용체로 외우는 것이 운율이 잘 맞는다.
“물에 빠진 달그림자를 보고 달이라고 우겨서 미안!”
“얼레? 이제 철이 드나, 그게 무슨 말이야?”
강모 아재는 대답 없이 소주를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 안주로 짬뽕 국물을 마시지 않고 말을 이었다.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수확의 계절 가을인 줄 알았어. 지금에 와서야 엄동설한이라는 걸 새삼 느꼈어.”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구?”
“엊그제 서울 시청 앞 분향소에 갔었지”
그렇게 시작한 강모 아재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그날은 구미에서 일산으로 가는 이삿짐이 있었단다. 원래 그렇듯이 강모 아재 소유의 사다리차는 따라가고 이삿짐을 실은 화물차는 영업용을 이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인부들은 짐을 꾸린 인부가 그대로 따라가서 짐을 풀어서 정리까지 해 주는 것이 요즘 이삿짐센터의 서비스다. 오랜만에 들어온 장거리 이삿짐이라 신경이 쓰여 강모 아재는 그날 인부들을 따라서 일산까지 갔단다. 인부들이 짐을 어지간히 정리하는 것을 확인하고 혼자서 기차를 이용해서 내려올 요량으로 지하철을 타고 시청 앞 분향소를 찾았다는 것이다.
긴 줄 끝에 서서 차례를 기다릴 때는 몰랐는데 막상 분향소에 들어가서 죽은 자의 영정사진을 보자 난데없이 회의와 더불어 의심이 들었다는 것이다.
과연 이게 정의인가?
혹시, 성추행범은 아닌가?
위선으로 점철된 인간은 아닌가?
이건 정말 아닌데?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희한하다고 느끼면서 강모 아재는 영정사진만 응시하고 그날 분향이나 헌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다음에 분향소를 나와 광화문으로 갔다는 것이다.
그곳에도 구국 영웅의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라 했다.
구국 영웅의 분향소에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그곳에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분향하고 묵념을 하고 기차를 타고 내려왔다는 게 이야기의 요지였다.
기차를 타고 구미로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생각이란 갈등과 다른 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 수가 있었다.
그랬었구나.
“그런데 손을 자르고 싶다는 얘기는 뭐야?”
“지난번 총선에서 나는 저쪽 후보자를 찍었거든.”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강모 아재는 입이 말랐는지 소주를 한 잔 털어 넣고 짬뽕 국물로 입맛을 다시고는 말을 이었다.
“보수에서 하는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나는 너무 편향된 생각을 했었어. 진보라고 하면 어딘가 모르게 지식인이고 진취적인 성향의 뉘앙스를 풍기잖아. 나는 정책보다는 그 뉘앙스에 편향되고 도취해 있었던 거야. 아무런 자기검열 없이.”
“이제 철이 드는군!”
“맞아. 철이 들고 보니 마당은 상당히 기울어져 있는 거야. 마당은 기울어져도 장구는 바로 쳐야 하지 않겠어? 집에 와서 밤을 새워 우파 유튜브를 훑어보았지. 모두가 맞는 말이야. 그런데 나는 외면하고 있었지.”
“궁극적으로 철이 든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재는 알고 있어?”
내가 힐책을 날렸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던 인간이 마당이 기울어졌음을 스스로 감지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풍성한 가을인 줄 알았는데 엄동설한이라고 했잖아? 나라가 곧 망하겠다.”
“강모 아재처럼 바뀌는 사람이 많으면 나라는 망하지 않을 거야.”
강모 아재의 잔에 소주를 채워주면서 박정만의 겨울 속의 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 시가 있다고 의미를 새기며 읽어보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제 철이 든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다. 인터넷에 찾으면 금세 검색이 되어 전문을 읽을 수가 있을 터인데 그 시에 나오는 계절을 지금의 정치 현실에 덮어씌우기를 해서 읽으면 세상이 달라져 보일 터인데, 이미 철이 든 사람에게 그 시가 무슨 소용이랴.
홀연 도련님 눈썹 위에 내려앉는 청아한 뻐꾸기 울음소리 같은 말을 오늘 들었다. 내 앞에 놓인 잔을 마시고 나서 겨울 속의 봄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외웠다.
울 안에 눈이 온다.
수태한 여자의 방문 앞에서.
가가호호 입춘대길이라 방을 붙이고.
강모 아재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듣고 있었다.
중국집 문밖의 빗줄기가 더 굵어졌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푸근하며 안온했다. 계절이 지나면 분명히 봄은 올 거라는 생각이 푸근함에 한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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