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이름만을
이사야 26:7-13 2024/09/29 성령강림 후 제19주
26:7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
26:8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26:9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26:10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자의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26:11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오나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불이 주의 대적들을 사르리이다
26:12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의 모든 일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
26:13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는 주만 의지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와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가진 하나님의 예언자 이사야입니다. 아모스의 아들로 소개 된 이사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능력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계시를 보는 능력이었습니다.
사1:1 유다 왕 ①웃시야와 ②요담과 ③아하스와 ④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그래서 우리가 아모스와 같은 예언자를 보는 사람, 선견자(seer)
또는 알아채는 사람, 선지라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계시된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선견자, 선지자 이사야 눈에 들어 온 것은 범죄 한 나라, 범죄 한 백성,
이스라엘의 죄악이었습니다.
사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발 딛고 살아가는 땅마저 황폐하게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죄악을 본 이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또 다른 능력을 부여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 예언, 대언의 능력이었습니다.
사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사1:16 너희는 ①스스로 씻으며 ②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③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④행악을 그치고,
1:17 ①선행을 배우며 ②정의를 구하며 ③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④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하지만 북 왕국 남 왕국 할 것 없이 이스라엘이 택한 길은 회개가 아니라 배신이었습니다.
사2:6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①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②그들이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③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이스라엘은
북 왕국 남 왕국 할 것 없이 최대의 시기(위기)를 맞이합니다.
먼저 시련을 겪은 것은 북 왕국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주전 722년 신흥제국 앗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B.C.E 745년 즉위)에 의해 사마리아 성이 함락되면서 북 왕국 이스라엘은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 때 남 왕국을 다스렸던 통치자는 아하스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왕국을 짓고 살아가는 아하스
그가 살기 위해,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주 만군의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의지합니까?
혜성처럼 나타난 신흥제국 앗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겨야할 예루살렘의 왕이 앗시리아 왕의 신하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앗시리아의 신하가 된 아하스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있을 수 없는 역사의 오점을 남깁니다.
첫째 아하스가 남긴 역사의 오점은 하나님의 집 곧 예루살렘 성전 안에 이방신을 섬기는 제단을 설치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병행본문 왕하 16장입니다.
(새)왕하16:10 아하스 왕은 앗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왕을 만나려고 다마스쿠스로 갔다. 그는 그 곳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단을 보고, 그 제단의 모형과 도본을 세밀하게 그려서, 우리야 제사장에게 보냈다.
16:11 그래서 우리야 제사장은, 아하스 왕이 다마스쿠스로부터 보내 온 것을 따라서, 제단을 만들었다. 우리야 제사장은 아하스 왕이 다마스쿠스로부터 돌아오기 전에 제단 건축을 모두 완성하였다.
더 참담한 것은 아하스가 행한 둘째 만행이었습니다.
유다 왕 아하스가 성전의 예배를 변질시킵니다.
(새)왕하16:12 왕은 다마스쿠스로부터 돌아와서, 그 제단을 보고 제단으로 나아가 그 위로 올라갔다.
16:13 그리고 거기에서 그가 직접 번제물과 곡식제물을 드렸고, '부어 드리는 제물'을 따르기도 하였다. 또 제단 위에 화목제물의 피도 뿌렸다.
16:14 그리고 그는 주님 앞에 놓여 있는 놋제단을 성전 앞에서 옮겼는데, 새 제단과 주님의 성전 사이에 있는 놋제단을 새 제단 북쪽에 갖다 놓았다.
16:15 아하스 왕은 우리야 제사장에게 명령하였다. "아침 번제물과 저녁 곡식예물, 왕의 번제물과 곡식예물, 또 이 땅의 모든 백성의 번제물과 곡식예물과 부어 드리는 예물을, 모두 이 큰 제단 위에서 드리도록 하고, 번제물과 희생제물의 모든 피를, 그 위에 뿌리시오. 그러나 그 놋제단은, 내가 주님께 여쭈어 볼 때에만 쓰겠소."
아하스 왕의 망행과 악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셋째 성전으로 들어가는 모든 출입구를 봉쇄합니다.
(새)왕하16:18 또 그는 앗시리아 왕에게 경의를 표하려고, 주님의 성전 안에 만들어 둔 왕의 안식일 전용 통로와 주님의 성전 바깥에 만든 전용 출입구를 모두 없애 버렸다.
그러니 이것을 목격한 하나님의 선지자 이사야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참담함 그 자체였습니다.
참담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던 이사야는 백성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설교합니다.
사26:1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①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②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26:2 ③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앞으로 유다 땅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망을 품고 불러야할 노래가 있다면, 이런 내용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①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견고한 성읍’, 누구를 비유합니까?
앗 시리아의 왕 디글랏빌레셀입니까?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입니까?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입니다.
그 분이 우리가 믿고 의지할 견고한 성읍 곧 시온(요새)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망을 품고 불러야할 노래가 있다면
②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셨다
시온(요새)이신 하나님이 친히 성벽과 방어벽이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믿고, 찬양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585장입니다.
1.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망을 품고 불러야할 노래가 있다면, 예배의 회복입니다.
③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 곧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의로운 백성들이 성전 안으로 들어 올수 있도록 모든 문들을 열고 다시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회복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26장 3절의 말씀처럼 이방인에게 빼앗겼던 예루살렘의 평화를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26: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그러자 백성들이 화답으로 드린 희망의 기도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첫째 기도의 내용은 의인의 길 곧 정직한 자의 길을 곧게 트이게 하시는 하나님의 대한 희망이었습니다.
(새)사26:7 주님, 주님께서는 의로운 사람의 길을 곧게 트이게 하십니다.
의로우신 주님, 주님께서는 의로운 사람의 길을 평탄하게 하십니다.
26:8 주님, 우리는 주님의 율법을 따르며, 주님께 우리의 희망을 걸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사모하고 주님을 기억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희망을 상실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입니다. 어느 것 하나 정리 정돈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은 아모스 선지자의 말처럼 ‘공의가 물처럼 흐르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는’ 질서의 세상입니다. 그 세상에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공의와 정의를 가로막는 세력이 영원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져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심판의 날이 이르면, 공의와 정의를 가로막는 세력은 시편126편 6절의 말씀처럼 ‘지붕 위의 풀같이 말라 버리고 말 것’(시129:6)입니다.
그러니 노래하듯, 고백하듯, 기도하듯이 이렇게 선포하십시오.
①주님께서는 의로운 사람의 길을 곧게 트이게 하십니다.
②의로우신 주님, 주님께서는 의로운 사람의 길을 평탄하게 하십니다.
③주님, 우리는 주님의 율법을 따르며, 주님께 우리의 희망을 걸겠습니다.
④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사모합니다.
⑤주님을 기억하겠습니다.
둘째 남은 백성들이 드린 희망의 기도는 평화입니다.
(새)사26:12 주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성취한 모든 일은 모두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26:13 주 우리의 하나님, 이제까지는 주님 말고 다른 권세자들이 우리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우리가 오직 주님의 이름만을 기억하겠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암흑의 시대 의인의 길 다시 말해 예배자로 남아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린 기도의 고백들, 결단의 단어들이 특히 눈에 들어옵니다.
걸겠습니다.
사모하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확신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첫째 의인의 길을 걷는 우리가 우리 주님께 무엇을 걸어야 할까요?
우리의 희망입니다.
26:8 주님, 우리는 주님의 율법을 따르며, 주님께 우리의 희망을 걸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아 있기 원하는 우리가 무엇을 사모해야할까요?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이름입니다.
26:8 주님, 우리는 주님의 율법을 따르며, 주님께 우리의 희망을 걸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사모하고
셋째 주님의 이름을 사모하는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할까요?
오직 주님입니다.
26:8 주님, 우리는 주님의 율법을 따르며, 주님께 우리의 희망을 걸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사모하고 주님을 기억하겠습니다.
넷째 희망이 사리진 이 시대, 오늘 우리가 어떤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할까요?
26:12 주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다섯째 우리가 꼭 다시 기억해야할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26:13 주 우리의 하나님, 이제까지는 주님 말고 다른 권세자들이 우리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우리가 오직 주님의 이름만을 기억하겠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