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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과학 / 최호일
저 허공은 사물이 없는 곳에 두 번 나타난다 소년과 소녀들은 발레를 하고 나는 발레를 피한다
나의 과학은 어처구니가 없다
스포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오렌지를 반대하고
치통을 앓는다
아직도 역사의 선반 위에서 불타는 사과
저녁이 유리 형제들처럼 투명한 과녁을 모두 빛낼 때
빗나간 바람은 달그락거린다
누군가는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두 발은 항상 위험한 폭탄으로 떠 있다
곧 날아오를 것이다
불행은 가끔 장밋빛이며 영리하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할 줄 모른다
열한 마리의 고양이와
열한 명의 축구선수들
공이 없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벽의 세계에서는 벽을 들고 가
벽지에 붙인다
나의 과학은 소리가 나지 않고 겸손하지만
불을 끄고 그 벽에 몸을 기대면
슬퍼진다
-《현대시》 2018년 10월호
최호일 / 1958년 충남 서천 출생. 2009년《현대 시학》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바나나의 웃음』.
<육체의 세 가지 전략 / 서안나> 중 최호일 부분
최호일 시인은 시집 『바나나의 웃음』을 상재한 이후 시적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감각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시 세계를 견지하고 있다. 최호일의 시는 독자들을 미지의 감각으로 이끄는 매력이 있다.
「나의 과학」은 주체와 객체의 전도를 통해 물질문명의 폐해와 현대인의 불안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시의 제목이 “나의 과학”이지만 시에서 과학에 관한 설명이나 진술을 하고 있지는 않다. 이질적인 사건의 배열과 돌연한 상황을 병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호일 시는 쫄깃한 식감을 지닌다. 신선함과 긴장감을 통해 낯선 세계를 우리 앞에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최호일 시는 읽을 때는 신선하고 재미있지만, 막상 시를 분석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그 이유는 시의 행과 행 그리고 연과 연의 비약과 확장과 변주가 있기 때문이다.
시에서 드러나는 시적 정황을 따라가 보면, “허공-발레-오렌지-치통-역사-사과-유리창-바람-러닝머신-불행-고양이와 축구선수-벽과 벽지-과학-슬픔”으로 다양한 사건과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하나의 행, 행과 행, 행과 연, 연과 연 사이가 비유기적이며 폭력적인 이미지의 결합 그리고 돌연한 이미지들의 병렬식으로 배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총 10연으로 이루어진 「나의 과학」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연은 1연과 3연, 6연과 8연이다. 4개의 연에 나타나는 정황을 통해 유추해 볼 때, 1연의 발레와 3연의 스포츠, 8연의 러닝머신에서 시적 화자는 문화센터나 스포츠 센터를 중심으로 시적 사건을 구성하고 있다고 보인다.
특히 시의 1연이 유독 눈길을 끈다. “사물이 없는 곳에서 두 번 나타나는 허공” 그리고 발레로 이어지는 내용은 돌연하고 폭력적이다. 아마도 “나”가 문화센터 유리창을 통해 발레 하는 한 무리의 소년과 소녀를 목격한 것일 수도 있다. “사물이 없는 곳에서 두 번 나타나는 허공”은 발레의 동작 중 손을 머리 위로 둥글게 뻗어 허공을 만들어내는 동작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발레 교실을 지나치는 과정을 “나는 발레를 피한다”라는 감각적인 진술로 구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최호일의 시는 하나의 행에도 여백의 미학을 구현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행과 행, 연과 연 사이에도 간극이 넓다. 독자들은 시인의 상상력 증폭을 따라가며 그 이질적인 결합에 신선함을 느낀다.
시의 후반에서야 유추할 수 있듯이, “나의 과학”은 “벽지를 들고 벽을 붙이는” 전도된 세계를 기여하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나의 과학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며, 불을 끄고 몸을 기대면 슬퍼진다”. 이때 “불”을 끈다는 행위 역시 시의 주제를 응축하고 있다.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사람들의 다리는 폭탄처럼 터질 듯 위험하고, 고양이와 축구선수 모두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사람과 축구선수 등의 신체는 벽지 위에 벽을 붙이는 전도된 세계 속에 결박된 육체이다. 과학과 문명으로 건설된 현대사회의 욕망의 구조의 생산성을 유지하는 것은 속도이다. 시적 화자는 속도 속으로 흡입되어 선택지를 상실한 현대인의 불안과 현실의 모순된 시스템을 “나의 과학”을 통해 날카롭게 저격하고 있다.
최호일 시는 카프카의 「어느 투쟁의 기록」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골목길을 따라 뛰듯이 달렸다/ 달려가는 취객처럼/ 발로 공중을 구르면서”
챗 GPT 분석
1. 제목의 의미: 「나의 과학」곧 나의 시
「나의 과학」이라는 제목은 과학이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학문이라는 일반적인 개념과 대조를 이룬다. **"나의"**라는 소유격을 붙임으로써, 시적 화자가 자신의 독특한 방식으로 바라보는 비논리적이고 모순적인 세계를 과학이라고 명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과학적 질서를 비틀고, 개인적인 감각과 직관을 통해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시사한다.
2. 주제
“과학”이라는 말이 주는 객관적·합리적 이미지를 전복시켜, 오히려 불합리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와 내면의 위태로움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이 시의 큰 특징이자 주제의식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과학을 단순히 논리적 체계로 바라보지 않고,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인 것들까지 포함하는 "어처구니없는" 과학으로 재구성한다. 또한,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인간이 겪는 혼란과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3. 상징 분석
이 시에서 사용된 상징들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독창적이고 해체적인 방식으로 활용된다.
허공 → 비어 있음, 부재, 불확실한 세계
소년과 소녀들의 발레 → 조화와 균형의 세계, 그러나 화자는 그것을 피한다 → 질서에 대한 거부
스포츠, 오렌지, 치통 → 질서와 감각(오렌지) vs. 불균형과 고통(치통)의 대비
불타는 사과 → 뉴턴의 사과를 떠올리게 하지만, 불탄다는 것은 과학이 단순한 발견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정임을 암시
유리 형제 → 투명한 존재, 그러나 쉽게 깨질 수 있는 불안정한 요소
러닝머신 → 반복적인 삶, 목표 없는 움직임
폭탄 같은 두 발 → 불안정한 상태, 폭발할 가능성을 내포
불행의 장밋빛 → 보통 불행은 어두운 색채로 표현되지만, 여기서는 모순적으로 ‘밝은’ 색을 띠고 있음. 이는 불행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시사
고양이와 축구선수 → 질서 없이 움직이는 존재들, 목적 없는 질주
벽의 세계, 벽을 들고 간다 →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이동하는 벽 → 안정되지 않는 세계
불을 끄고 벽에 기대면 슬퍼진다 → 어둠 속에서 벽에 기댔을 때(안정을 찾을 때) 오히려 더 깊은 감정을 느끼는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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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문장 분석
첫 연
> "저 허공은 사물이 없는 곳에 두 번 나타난다"
→ 허공은 보통 사물이 없는 공간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두 번’ 나타난다고 말한다. 허공이 두 번 존재한다는 것은 부재의 강조이자 반복적인 공허함을 의미할 수 있다.
빈 곳이 또다시 비어 있는’, 혹은 ‘부재(不在)가 중첩된’ 상황을 암시합니다. 이는 시 전반의 비논리적 기조를 여는 장치로 볼 수 있다.
> "소년과 소녀들은 발레를 하고 나는 발레를 피한다"
→ 발레는 보통 아름다움과 균형, 조화를 상징하지만, 화자는 그것을 피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화자의 모습을 나타낸다.화자는 “나는 발레를 피한다”고 말함으로써, 남들이 하는 ‘미적·규칙적 움직임’과 자신을 분리시킨다. 개인적 논리·세계관(‘나의 과학’)이 일상적이거나 아름다운 움직임(발레)과 맞지 않는다는 상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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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연
> "나의 과학은 어처구니가 없다"
→ 일반적인 과학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이지만, 화자의 과학은 그렇지 않다. 이는 과학적 사고에 대한 비틀기이자, 기존의 질서와 논리를 거부하는 태도를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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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연
> "스포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오렌지를 반대하고 치통을 앓는다"
→ 스포츠(운동)와 오렌지는 건강을 상징하고, 치통은 고통을 상징한다. 하지만 여기서 오렌지를 반대하는 것이 치통과 연결된다는 논리는 비합리적이다. 이는 일반적인 인과관계를 깨뜨리며, 삶에서의 무질서와 비논리를 강조하는 방식이다.이는 일상적 질서와 건강 상식을 깨뜨리는 ‘역설적’ 이미지를 표현해내며, 시 안에서 화자가 느끼는 부조리한 세계관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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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연
> "아직도 역사의 선반 위에서 불타는 사과"
→ 뉴턴의 사과를 연상시키지만, 그것이 ‘불타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이는 과학적 발견이 완결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변화하고 있는 진행형의 개념임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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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연
> "저녁이 유리 형제들처럼 투명한 과녁을 모두 빛낼 때 / 빗나간 바람은 달그락거린다"
→ 유리 형제는 투명하고 깨지기 쉬운 것을 상징하며, 빛을 반사하는 저녁과 연결된다. **"과녁"**은 명중해야 할 목표 지점인데, 여기에 ‘투명한’이라는 형용사가 붙으면서 손에 잡히지 않는 목표, 혹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목표를 암시한다.
→ "빛낸다"는 것은 빛이 닿아 가시화됨을 뜻하지만, 투명한 과녁은 본래 보이지 않는 것이므로, 과녁이 빛에 의해 드러나는 순간조차도 모호하고 덧없는 상태라는 점이 강조된다.
"투명한 과녁"이란 목표는 존재하지만 실체가 없는 듯하며, 결국 "빗나간 바람"처럼 예상치 못한 변수가 개입하여 모든 것이 어긋날 수 있다.
빛으로 질서를 형성하려 해도, 결국 바람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그 흔들림이 소리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완전한 조화는 불가능함을 암시한다.
그러나 바람이 ‘빗나간다’는 표현은 모든 것이 조화롭게 빛나는 순간에도 어긋난 요소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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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연
> "누군가는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 두 발은 항상 위험한 폭탄으로 떠 있다 / 곧 날아오를 것이다"
→ 러닝머신은 끊임없는 반복과 변화 없는 삶을 상징하며, 폭탄은 불안정한 상황을 의미한다. 즉, “두 발은 항상 위험한 폭탄”으로 떠 있다는 비유는 일상적 운동조차 잠재적 폭발(위험) 가능성을 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나’가 속한 세계에선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활동마저도 뭔가 위태롭고 낯설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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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연
> "불행은 가끔 장밋빛이며 영리하고 / 주변을 깨끗이 정리할 줄 모른다"
→ 불행이 장밋빛이라는 것은 모순적인 표현이다. 이는 불행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가오며, 혼란스럽고 다루기 어려운 성질을 가졌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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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째 연
> "열한 마리의 고양이와 열한 명의 축구선수들 / 공이 없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 축구선수들은 보통 공을 향해 뛰지만, 여기서는 공이 없는 방향으로 달린다. 이는 목표가 사라진 상태에서 질주하는 인간의 모습을 은유한다. 목표(공)를 상실한 채 운동 자체에만 매몰된 모습은 부조리, 무의미, 혹은 허무를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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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째 연
> "벽의 세계에서는 벽을 들고 가 / 벽지에 붙인다"
→ 벽은 보통 고정된 것이지만, 여기서는 이동 가능하다. 이는 세계의 안정성과 질서가 흔들리고 있음을 상징한다.상식의 벽에 갖힌 세계에 대한 통렬한 시인의 일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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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연
> "나의 과학은 소리가 나지 않고 겸손하지만 / 불을 끄고 그 벽에 몸을 기대면 / 슬퍼진다"
→ 화자의 과학은 조용하고 겸손하지만, 결국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 불을 끄고 벽에 기댄다는 것은 안정감을 찾으려는 행위지만, 오히려 슬픔을 느낀다는 것은 기대했던 질서나 안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일 수 있다.나의 과학이 일반과학의 객관세계와는 달리 사실은 매우 고독하고 쓸쓸한 내면의 체계를 반영한다는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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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이 시는 논리와 질서를 벗어난 세계를 탐구하면서, 인간이 겪는 혼란과 불안을 담고 있다. 「나의 과학」은 기존의 과학적 논리와는 다르게, 비논리적이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를 보여준다. 현실에서 벗어난 상징적이고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은 우리의 삶이 필연적으로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 차 있음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