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탄생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했으며 수익 모델을 확립했던 수전 워치츠키(56) 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9일(현지시간) 폐암으로 56세를 일기로 사망한 사실은 국내 언론들에서 많이 다뤘다. 그런데 지난 2월 열아홉 살 아들 마르코 트로퍼가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기숙사 자신의 방에서 약물 과용으로 세상을 떠난 사실을 언급한 매체는 거의 없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지난 2년 동안 폐암 투병을 해 온 워치츠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가 추모의 글을 올렸다고 다음날 전했다. 피차이는 “그녀는 누구보다 구글 역사의 핵심이며, 그녀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다”며 “나는 그녀를 알게 되면서 더 나아진 수많은 구글러 가운데 한 명”이라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워치츠키는 회사 밖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가장 중요한 구글 직원으로 유명했다. 하버대 대학을 졸업하고 인텔의 마케팅 담당자로 일하다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설득에 16번째 구글 직원으로 입사했다. 페이지와 브린에게 자택 차고를 빌려주고 구글 초기 작업을 함께한 것이 고인이었다. 그와 자매인 앤 워치츠키는 23andMe의 창업자 겸 CEO이며 브린과 2007년 결혼해 2015년까지 부부 관계를 유지했던 인연도 있다.
2006년 구글이 자체 제작한 플랫폼을 앞질렀던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를 인수하라고 촉구한 것도 고인이었다. 결국 16억 5000만 달러란 헐값(?)에 유튜브를 매입했다. 고인은 2014년 유튜브 CEO로 취임해 9년 동안 재임했다. 잡지 타임이 선정한 2015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뽑혔다.
폴란드계 미국인으로 스탠퍼드대 물리학과 교수였던 아버지를 둔 워치츠키는 어린 시절 마시멜로 실험에 참여했다. 스탠퍼드대에서 이뤄진 이 실험은 마시멜로를 15분간 기다렸다 먹었던 어린이의 성적이 좋았다는 내용으로 워치츠키의 어머니는 ‘성공적인 사람을 키우는 법’이란 책에서 그가 다른 어떤 학생보다 강한 자제력을 보였다고 썼다.
워치츠키는 자신의 야망대로 “텔레비전을 재창조한” 유튜브를 키웠다. 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20억명을 넘어설 정도로 유튜브를 성장시킨 동시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콘텐츠 단속에도 힘을 기울였다.
1998년 데니스 트로퍼와 결혼해 다섯 자녀를 뒀는데 이제 네 자녀만 남았다. 여성의 유급 출산휴가 권리 확보를 위해서도 애쓴 것으로도 기억된다.
남편 데니스 트로퍼는 "고인이 우리 가족과 세계에 남긴 영향력은 측량할 길이 없다. 우리는 마음 아프지만 고인과 함께 보낸 시간에 감사하고 있다. 우리가 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마음으로 우리 가족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