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본 들꽃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었다 십이월 첫날부터 추위가 기승을 부려 올 겨울이 심상치 않다. 첫째 토요일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날이 밝아오는 즈음 집을 나서 창원대학 앞으로 갔다. 그곳에서 창원중앙역으로 가서 철길 굴다리 밑을 지나 용추계곡으로 들었다. 주말 아침 용추계곡은 산행객들이 드물어 한산했다. 응달 계곡 낙엽활엽수들은 나목이 되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었다.
등산로 들머리가 지난 가을 용추계곡을 들었을 때와 달라 보였다. 길섶에 허물어진 배수로를 다시 설치하고 무궁화를 심어 놓았더랬다. 제법 쌀쌀한 주말 아침이라 산행객은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낙엽이 진 나뭇가지에는 직박구리 족속들이 분주히 날아 앉았다. 여름엔 보이질 않던 직박구리들이 영역 다툼인지 사랑싸움인지 뭐라 뭐라 종알댔다. 어디선가 딱따구리소리도 들려왔다.
가을까지 계곡엔 맑은 물이 좀 흘렀으나 겨울이라 바짝 말라 자갈과 바위들만 드러나 있었다. 우곡사 갈림길에서 포곡정을 향해 올랐다. 아까 계곡 들머리서는 인적이 없었는데 하나 둘씩 단독 산행을 나선 사람들이 보이길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앞세우고 서둘지 않고 느긋하게 걸었다. 공룡 화석발자국 바위를 지나 포곡정에 이르렀다. 그곳 갈림길에서 진례산성 동문 터를 향해 올랐다.
산성 동문 터에선 오른쪽은 철쭉 군락지로 비음산을 오른다, 왼쪽 산등선은 산성 석축이 제법 남은 지역으로 용추고개와 정병산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고개를 바로 넘어 가파른 비탈을 내려섰다. 사람이 잘 다니질 않은 희미한 등산로는 가랑잎이 수북하게 쌓여 등산화가 미끄러지다시피 했다. 비탈을 내려서니 시례에서 신월로 이어지는 길고긴 임도가 나타났다. 인적이 끊긴 길이었다.
나는 시례 방향으로 걸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저만치 산중의 평지마을이 보였다. 그 마을은 온 동네가 백숙촌이다. 외지 사람들이 한방 닭백숙을 먹으려고 많이 찾는다. 임도를 걸어 산모롱이를 돌아가니 정자가 나왔다. 가끔 산악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이들을 볼 수 있는데 그돌도 보이질 않았다. 산비탈을 내려가 다시 평탄한 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저 멀리 들판과 마을들이 보였다.
의성 김씨 선산 곁을 지나다가 삭은 참나무등걸에 붙은 상황버섯을 몇 줌 땄다. 차로 끓여먹는 영지와 엄나무와 감국에 넣으면 될 듯했다. 송정마을로 내려서는 임도 들머리에서 평지마을로 향하는 등산객을 몇 명 만났다. 그들은 예전에도 임도를 걸었던 적 있는 사람들인 듯했다. 마을로 내려서니 저수지가 나타났다. 저수지를 돌아가다 들깨를 수확한 밭둑에 달래가 있어 한 줌 캤다.
저수지 아래는 도강마을이었다. 추수를 끝낸 논에는 볏짚 더미가 보였다. 어린 감나무가 심겨진 밭뙈기에는 이맘때 냉이가 자라는데 생태계가 바뀌어 있었다. 잔디와 다른 무성한 풀들이 시들어 있었다. 마을로 드는 안길에는 시멘트 포장이 오래되어 근래 아스팔트로 깔아 놓았다. 소나 돼지를 키우는 축사도 한 동 없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일철이 아니어서인지 주민들을 볼 수 없었다.
마을을 지나다가 남향집 앞 텃밭 가장자리에서 광대나물이 피운 자주색 꽃을 보았다. 광대나물은 이른 봄에 피는 들꽃인데 때로는 한겨울이나 초겨울 양지 바른 곳에서 볼 수 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앞뜰에서도 보는데 거기는 두세 송이만 피어 있었다. 볕이 바른 자리여서인지 광대나물 꽃이 무더기로 피어났다. 길섶인지라 아스팔트 시공 때 검은 아스콘을 뒤집어 쓴 꽃도 보였다.
송정마을이 지나 면소재지에 이르렀다. 버스를 타면 진영으로 가도 되고 장유로 가도 되었다. 버스가 도착하려면 아직 시간이 제법 남았더랬다. 창원까지 가면 점심때가 늦을 것 같았다.전통시장 장터 입구에서 있는 추어탕 집에 들렀다. 탁자엔 누가 앞서 점심을 들고 간 흔적이 있었다. 추어탕을 시켜 맑을 술을 반주로 점심을 들었다. 창원터널을 지나 집에 닿으니 남은 해가 있었다. 17.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