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흰 장미의 은은한 향기 아무도 그녀를 가리켜 결코 평범한 여가수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 '여름의 마지막 장미' '아테네의 흰 장미'를 들으면서 그녀가 어느새 고희를 넘긴 72세나 되었다고 생각하는 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이 좋을 뿐, 세월의 흔적을 얼굴에 아로새긴 현실의 모습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집안 형편은 넉넉치 못했지만, 조촐하고 평화로운 살림이었고 의좋은 가족이었다. 우리는 영화관 뒤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런 까닭에 많은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집으로 들아와 내가 본 영화의 주인공을 흥내내면서 마음껏 소리를 높여서 노래를 부르고 가사를 외곤 했다. 아테네 방송의 재즈 프로를 듣는 것이 나의 첫 일과였다. 그러나 나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부분의 노래들을 노트에 채보하면서 노래 공부에 열중했다. 나는 정말 학교 공부는 젖혀 놓고 재즈에 미쳐 있었다. 졸업을 불과 몇 달 앞두고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상황을 낳게 한다. 학생의 신분으로 대중가수에 뜻을 두고, 아테네 라디오방송국에서 소편성의 밴드가 반주하는 유행가를 노래한 사실이 물의를 일으켜 규율이 엄격한 음악원 측에서는 그녀의 졸업시험 응시자격을 박탈한 것이다. 로시니의 오페라로 널리 알려진 스페인의 명가수히달고에게 사사한 경력을 갖고 있다. 유로 팝스의 역사상 불후의 위대한 스타를 탄생시킨 전화위복의 결과를 낳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 이 고달프고 기나긴 슬럼프에서 그녀를 구해낸 사람이, 그녀의 평생의 은인이며 친구가 된 위대한 작곡가 마노스 하지다키스였다. 마노스 하지다키스는 영화 '페드라' '희랍인 조르바'의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더불어 현대 그리스 음악계의 최대의 거인으로 손꼽히는 작곡가로, 1960년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 Never on Sunday'의 음악으로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한 최초의 외국인이었다. 이 가냘픈 몸매의 무명가수 나나 무스꾸리를 발견하고 그녀의 대성할 자질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마노스하지다키스 같은 대작곡가의 작품으로 그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 나나 무스꾸리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가수였다. 우승의 그랑프리를 획득, 새로운 스타로 탄생하여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 프랑스 '필립스 레코드'의 디렉터 루이 아장이다. 그는 나나 무스쿠리의 매력을 발굴하여 대스타로 만드는 데 공헌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 당시를 루이 아장은 이렇게 말한다. 파리를 뒤흔들 만큼 굉장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이 곡을 따라 불렀고, 독특한 울림을 전해 주는 그리스의 민속악기 부주키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그리스에서 전해 오는 음악 중에는 보다 색다른 그 무엇인가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많은 시간과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게다가 멜로디가 꽤 아름다운 곡이 몇 곡인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단조롭기 그지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점점 지루해졌다. 나는 넋을 잃고 어느새 그 아름다운 목소리에 도취되었다. 얼마나 맑고 투명한 목소리인가! 때마침 열리고 있는 에레니크 가요제에 참석하기 위해 아테네로 향했다. 나를 사로잡았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미 무대에 나타나기를 얼마나 초조하게 기다렸던지 지금도 나는 그때 일을 잊지 못한다. 번번이 나의 기대는 어긋났고 그럴수록 초조감은 더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검은 드레스로 몸을 감싼 한 젊은 여성이 등장했다. 넓은 미국 무대에의 데뷔는 나나 무스쿠리에게 있어서 하나의 꿈이었지만, 인종 분규가 절정에 이르렀던 미국사회의 분위기는 흑인 가수와 함께 무대에 서는 백인 여성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카네기 홀을 비릇한 미국 각지의 대학 캠퍼스와 극장에서 연주회를 가져 대단한 환영과 절찬을 받았다. 그 후 나나 무스꾸리는 계속해서 그 소녀와도 같은 가련함, 그러면서도 청순한 아름다움을 지닌 풍모와 섬세한 목소리를 과시하면서 숱한 히트송들을 발표해 왔다. 모두 그 목소리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잊을 수 없는 주옥과 같은 히트 송들인 것이다. 하나의 여자로서 그리고 가수로서의 행복을 한몸에 모으고 있는 그녀는 '아테니안스 Athenians'의 리드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남편 조르지 페실라스와의 사이에 세 딸을 두고 있다. 그동안 450여 장의 앨범을 발매, 350여 장을 골드앨범 또는 플래티넘 앨범에 등극시킨 나나 무스꾸리는 팝 역사상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여성가수로 기록(3억장이 넘는 경이적인 기록)되고 있다. 특히 그녀의 음악은 영화, 드라마의 러브 테마곡으로 사용되어 국내에서 수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것이다 사전에도 나와있듯 쿠데타로 집권한 그리스 군사독재정권을 비판하여 추방되는 박해를 받기도 하였다. 1997년에는 가수 40년 기념 공연을 가졌으며, 2005년에서 2008년 사이에는 전 세계 곳곳을 순회하면서 인생 마지막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
첫댓글 나나무스 꾸리를 감동스러운 마음으로 접해 기억 나는 곡이 91년 겨울 " 아베마리아" 지금도 이곡을 듣노라면 그때 그상황이 그대로 추억이 그려집니다. 음악이 특별히 가자고 있는 매력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