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키즈, 노 아줌마, 노 실버..... 하늘도 도울 수 없는 나라가 되어가고있다 “제발 조용히, 깨끗하게, 남과 섞이지 않고 지내고 싶다!!” 타인은 지옥이다. 나를 불쾌하게 하는 존재들, 내 영역을 침범하는 자들, 나와 다른 인간들을 경멸하고 배척한다. 그건 내 자유이자 권리니까. 좁아터진 땅에서 촘촘한 관계의 의무에 질식된 사람들이 더 작은 땅에 구획을 지어 특정 집단을 출입금지시킨다. 노키즈존, 노아줌마존, 노시니어존, 노외국인존, 노다른아파트주민존.... ‘노(No) 썸바디(Somebody) 존(Zone)’의 백가쟁명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가 서로의 지옥이 되는, 지독히 슬픈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아줌마·노인... 싫다 싫어. 최근 인천의 한 헬스장에서 ‘아줌마 출입 금지’ 안내문을 내걸었다. “교양 있고 우아한 여성만 출입 가능”하단다. 전국의 아줌마들 벌컥 할 일인데, 업주에겐 확신이 있었다. “나이를 떠나 공짜 좋아하면, 어딜 가나 욕먹는데 왜 욕먹는지 본인만 모르면, 대중교통 임산부 배려석에 앉으면, 음식물 쓰레기를 공중화장실 변기에 버리면, 판단력 흐려져 한 말 또 하면” 여자가 아니라 아줌마란다. 이에 “일부 아줌마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해서 특정 성별·연령대를 통째 매도하는 공지문은 혐오를 양산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준다면 출입 금지당해 싸다” “저런 아줌마들 꼴 보기 싫었는데 속 시원하다”는 호응이 더 높았다. 외국이라면 혐오 발언으로 지탄받을 일이지만 이 헬스장은 ‘우아한 여성’만 올 수 있는 곳으로 검증돼 인기가 높아졌다고 한다.
그럼 이런 수질 관리는 어떨까. 충북 제천의 공공수영장에서 67세 여성이 의식을 잃어 응급처치를 받았다. 아팠을 뿐인데 이게 ‘불쾌의 방아쇠’를 당겼다. 일부 회원이 “그러잖아도 노인들이 물속에서 소변을 누기도 하고 너무 천천히 수영해 방해된다”며 이곳을 ‘노시니어존’으로 만들자고 했다. 대구의 한 호텔 피트니스센터는 ‘76세 이상 고객 출입 금지’를 공지해 도마에 올랐다. 간혹 지병으로 쓰러지는 노인들 때문에 직원의 부담과 젊은 회원들 불만이 크다는 것이다. 부당한 노인 차별이라고? “노인 보호를 위한 합리적 조치”라며 호응하는 여론, 만만치 않다. 무례와 불쾌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더럽고 뻔뻔하고 느려터진 누군가를 욕하던 나도 모르는 새 무례를 범할 수 있으며, 언제든 ‘합리’의 명분을 쓴 혐오와 차별에 당할 수 있다.
본지가 14세 이상~60대 국민 1600여 명에게 물었다. ‘노△△존’을 직접 겪어봤다는 이는 18%에 불과했다. 주로 뉴스로 접한 이런 관행을 ‘업주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15.6%)거나 ‘사안에 따라 필요하다’(40.4%)고 보는 이들, 즉 찬성이 56%로 과반이었다. 남의 일이라면 괜찮다는 얘기다. ‘차별과 혐오를 담고 있어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은 4명 중 1명 (26%)정도였다. 특히 ‘노△△존’으로 막아야 할 1·2위로 꼽힌 존재는, 설문 대상에도 못 끼는 반려동물과 아기·어린이였다.
초저출산 시대의 노키즈존. ‘노썸바디존’ 시대를 열어젖힌 원조는 10여 년 전 노키즈존 확산이다. 2010년대 초반 식당·카페 내 어린이 안전사고에 대해 업주의 배상 책임을 물린 판결이 이어지고, 똥 기저귀를 식탁에 올려두거나 공짜 키즈 메뉴를 요구한 일부 ‘맘충’에 대한 혐오가 들끓을 때였다. 노키즈존을 명시한 식당·카페·호텔 등 사업장은 전국 약 600곳으로 추산된다. 외국도 휴양지나 비행기 내에 ‘성인 전용(Adult-only)’ ‘조용한 구역(Quiet zone)’을 내건 곳이 간혹 있지만, 한국처럼 애들은 가라는 표지가 곳곳에 당당히 걸린 나라는 드물다.
“애들 없는 줄 알고 갔는데 휴가를 망쳤다”며 노키즈존을 제대로 관리 않는 숙박지를 질타하는 유명 공유 숙박 업체 TV광고가 버젓이 공중파를 타고 있다. 노키즈존은 투표권도 경제력도 없는 약자인 아동에 대한 차별이란 비판이 있었다. 개별 아동이 실제 하지 않은 행위 때문에 미리 배제당하는 경험은 일반화의 오류이자 비교육적 낙인찍기란 것이다. 그러나 “버릇 없는 아이를 통제 않는 몰상식한 부모가 더 나쁘다”는 논리가 앞섰다. “꼬우면 딴 데 가든가” “애는 집에서 보라”고도 했다.
고삐 풀린 노키즈존 옹호론이 ‘아이 키우는 건 힘들고 불쾌하며 남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란 인식, 즉 아이 갖기 혐오에 기여한 바는 지대했다. 엄마들은 ‘내가 맘충인가?’란 자기 검열에 시달렸고, 많은 여성이 아예 맘충 안 되고 어른끼리만 살기를 택했다. 제주도 등 젊은 층의 인스타 감성과 리뷰에 목매는 관광지를 중심으로 노키즈존이 퍼지기 시작한 게 2014~2015년이다. 이때만 해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OECD 평균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1.24명이었다. 그런데 이후 출산율이 급전직하하더니 8년 만에 0.76명으로 거의 반 토막 났다. 노키즈존과 저출산의 상관관계는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분명한 건 대한민국 전체가 신생아조차 입장하지 않는 거대한 노키즈존이 돼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혐오·차별의 쓴맛을 못 봤다면.... 노키즈존은 연령과 계층, 직업과 행위별로 세분화된 온갖 ‘노△△존’으로 진화했다. 중2병 걸린 영혼들이 스터디카페에서 까불었다고 ‘노중학생존’이 생겼다.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이 카페에서 죽치고 공부해 회전율을 떨어뜨리자 ‘노카공존’ ‘노20대존’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일부 식당과 캠핑장에선 직원을 성희롱하거나 고성방가하는 이들을 겨냥해 ‘49세 이상 출입 금지’ ‘노아재존’을 써 붙였다. 애정 행각 벌이는 연인이나 단체 손님이 불편하다는 ‘노커플존’ ‘노단체존’이 생겼다. 다른 아파트 주민이나 행인은 우리 단지에 들어오지 말라는 현수막도 흔해졌다.
대학원생들 가는 카페는 ‘노교수존’, 시끄러운 래퍼들 창피 주는 ‘노래퍼존’, 유튜브 녹화·중계를 금하는 ‘노튜브존’, 급증하는 외국인 응대하기 귀찮다는 ‘노외국인존’ 등 끝이 없다. 반려동물에 기겁하는 ‘노펫존’도 노키즈존 뺨치게 급증세다. 내 새끼를 남도 예뻐하기란 어렵다. 민법상 계약 자유의 원칙이 있기 때문에 사유 업장이 손님을 골라 받는 행위를 규제할 수는 없다. 자영업자들의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러이러한 매너 없고 위협적인 행동은 하지 말아주세요, 퇴장시키겠습니다’처럼 특정 행위를 제재하는 것과, 어떤 집단을 싸잡아 ‘노△△존’이라며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건 다른 문제다. 업주에겐 간편하고 구경꾼에겐 쾌감 주는 ‘노’란 단어, 당하는 이에겐 무력감과 분노를 일으킨다.
BBC와 CNN, 워싱턴포스트, 르 몽드 등 서구 외신들은 한국에 만연한 혐오와 불관용을 놀라워한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선진국은 특정 인종·계층·이민자 차별에 따른 학살과 내전 등 큰 대가를 치른 역사가 있어 혐오 발언을 극도로 조심한다. 반면 한국은 단일민족이라 ‘우리끼리 웬만한 혐오·차별은 해도 된다’는 이상한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썸바디존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급속 성장했지만 평등·포용 등 공공선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했다. 일본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차별의 감정은 배워서 습득하는 것으로, 동조자가 많아질수록 그 감정을 확고하게 구축한다”며 “타인을 불쾌하게 여기고 경멸하는 건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고 더 나은 집단에 소속되고 싶다는 바람과 결합돼 있다”고 했다. ‘노썸바디존’, 난 아니라고 안심 마시라. 당신이 딛고 설 땅이 점점 좁아진다는 얘기니까. (출처, 조선일보 정시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