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주유소 점장이 나를 불렀다. 일본에 갔다와서 시간강사를 포기하고, 중장비 임대업을 하면서 주유소에 기름 넣으러 갔을 때였다.
얼굴은 눈에 익었다.
“저 모르세요? 선생님에게 맞았잖아요”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대학교 4 학년 2 학기 때, 일본에 가기 전에 교생실습으로 강릉농고에서 만난 학생 녀석이었다.
교생이라고 녀석은 나를 우습게 알았다. 말도 함부로 해서, 어느 날 나는 돌아 버렸다. 교실에서 두둘겨 패서 아이들이 말릴 정도였다.
그날 저녁 녀석과 술 한잔 하고 기분좋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것이다.
아버지도 고교 교사였다. 삼촌도 사춘형들도 형수들도. 사촌 안에 교사들이 열명은 되었을 거다. 나도 일본에 가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교사가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엽기적인 교사셨다. 산림청을 10 월 유신으로 퇴직 당하시고, 강릉 월대산 밑에서 양계장을 하다가, 닭콜레라로 전부 죽어서 늦은 나이에 교사가 되셨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에피소드는 세가지다.
첫 번째는, 교장실을 설걷이 한 사건이다. 당신의 반 아이의 퇴학을 막기 위해 교장실을 때려부순 것이다.
두 번째는, 군에서 휴가 나왔더니, 아버지가 머리를 빡빡 깍고 눈썹 마저 밀고 밥상에 앉아 계셨다.
어머니에게 물어 보았더니, 두발 자유화를 요구하면서 운동장에서 시위하는 학생들 때문이라고 했다.
세 번째는, 실내 체육관 사건이다. 사업에 실패한 제자를 위해서 학교 체육관을 빌려줘서 옷을 팔게 했다.
그것 때문에 전교조 선생과 싸워서 치료비를 물어주었다.
아버지의 교육 철학은 극우와 극좌를 넘나들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제자들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아꼈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요즘, 교사가 자살 한 사건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이제 교사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풀 수 있는 방법은, 교실을 온전히 교사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국가가 교실에 간섭해서는 안된다. 교실의 권력자는 선생 뿐이다. 그 속에서 어떡하던 진정한 교육과 마음이 싹트는 것이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는 맞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