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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초 대한축구협회 전무로 부임하여 6년째 한국 축구 행정의 중심에 서 있는 조중연 전무(57).
중동고, 고려대, 해병대, 산업은행을 거치며 선수 생활을 했던 조 전무는 지도자 생활(중동고, 고려대, 현대 프로팀)을 거쳐 90년대초부터 KBS 축구해설위원으로 팬들과 친숙해졌다.
전무 취임 후 확고한 소신과 의욕적인 업무추진과는 별개로 한국축구가 겪었던 여러 사건들로 인해 조 전무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축구팬들도 많아졌다.
지난 6년간 한국 축구와 영욕을 함께 하면서 대한축구협회가 비판받을 때마다 팬들로부터 비난의 주 대상이 되곤 했던 조중연 전무.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www.kfa.or.kr)에서는 조중연 전무로부터 평소 팬들의 비판이 집중되었던 부분과 궁금했던 점, 그 동안 이뤄진 일에 대해 들어보기로 했다. 분량 관계로 2회에 걸쳐서 게재한다.
-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축구협회 홈페이지도 그렇고 다른 축구 사이트에 보면 팬들이 조중연 전무님에 대한 비난을 많이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희 세대가 컴퓨터나 인터넷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서 자주 보지는 못합니다만 저도 그런 얘기는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장가간 저희 아들 녀석도 "아버님 욕하는 것이 많아서 축구 사이트 가기가 겁난다"는 말을 하더군요. 제가 농담 삼아 "손자 놈이 인터넷 볼 나이 되면 없어지지 않겠냐"고 그랬죠.
협회 전무라는 직책의 특성상 무슨 사건만 생기면 타겟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협회 행정의 실무 책임자이니까요. 과거에 협회 전무 맡던 선배님들도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인터넷이라는 것이 없었으니까 팬들보다는 축구인들로부터 받는 비난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어떤 분은 입이 돌아갔다는 말도 들었고요.
잘못한 점이 있으면 팬들의 비판도 수용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비난이 겁나 할 일 안하고 가만히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협회 전무를 5년 이상 하면서 항상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했기에 누구와 만나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내가 앞장서서 하고 욕먹을 일이 있으면 내가 먹고, 칭찬 받을 일이 있으면 감독이나 축구협회, 정 회장께서 들으면 된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일했죠.
- 1998년 1월부터 축구협회 전무직을 맡으셨는데, 그때 과정을 말씀해 주시죠.
사실은 1993년 정몽준 회장이 처음 축구협회장 자리에 취임할 때에도 협회 전무 맡을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이 간접적으로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저는 KBS 축구 해설을 막 시작할 때였고 방송일에 재미를 붙여가던 시절이었어요. 또한 행정 책임자 역할을 하기에는 경험이나 연륜도 좀 모자란다고 생각해서 사양을 했습니다. 그 얼마 뒤 세계 청소년 대회 중계 때문에 호주에 가 있는데 김정남 선배께서 협회 전무를 맡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지나 1997년 12월에 김정남 전무가 보자고 하더니 "내가 중국 프로팀 감독으로 가게되어 전무직을 사퇴하기로 했다. 여러 사람을 생각해 봤는데 자네를 전무로 추천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 사이 몇 년 동안 일선 현장에 있으면서, 또 방송일 하면서 이것저것 한국 축구에 대해 생각한 것도 있고, 이제는 축구 행정 쪽에도 일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수락을 했습니다. 그 뒤 정몽준 회장 만나 뵙고 또 이사회 정식 승인 절차 거쳐서 98년 1월부터 전무를 맡게 된거죠.
- 거북하실지 모르겠지만 과거부터 현재까지 전무님과 관련 있는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서 질문 드리겠습니다. 팬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니까 이해해 주십시오. 취임한 뒤 몇 달 안돼 프랑스 월드컵이 있었고 대회 도중 차범근 감독이 경질됐습니다. 경질 과정의 실질적인 주역으로 알려져서 차 감독 팬이나 축구팬들에게 원성이 높았습니다.
그 얘기 꼭 해야 하나요? 잊을만 하면 사람들이 그때 얘기 꺼내더라구요(웃음). 차 감독 이야기 나오면 결국 서로 인신공격하는 꼴 밖에 안되는데 거 참.
사람들은 흔히 차 감독하고 저하고 처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차 감독이 고려대 선수 시절에 제가 축구부 코치로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인연이 시작된 거죠. 그 뒤로도 별탈 없이 선후배 사이로 잘 지냈습니다. 저도 나중에 현대팀 감독했었고 차 감독도 현대팀 감독해서 서로 잘 아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차 감독이 프랑스 월드컵 나가기 전에 다이너스티컵에서 일본에게 지고 한때 시끄러웠잖아요. 일부에선 일본한테 두 번 연속으로 졌으니 물러나라 그러기도 했죠. 그렇지만 저는 큰 대회 앞두고 그러면 안 된다, 지금 무슨 대안이 있느냐 하면서 막았습니다.
또 한번은 차 감독이 저에게 대표팀 경기할 때 선수 부인들에게 일반석 티켓 주지 말고 본부석 초청권을 줬으면 좋겠다고 그러더군요. 일반석에 앉으면 관중들이 선수 욕하는 걸 부인들이 옆에서 듣고 마음에 상처를 입는 일이 많았다는 거예요. 차 감독 말이 맞다고 생각해서 그 뒤부터 부인들한테는 무조건 본부석 자리로 주라고 그랬죠.
결국 문제는 프랑스에 가서 연속으로 패하면서 발생한 거예요. 제가 그때 단장 겸 기술위원장으로 갔었는데, 멕시코와의 첫 경기에서 지고 난 뒤부터 팀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았습니다. 선수 기용문제도 불거져 나오고, 벌집 쑤셔놓은 듯한 분위기에서 하필 멕시코전 다음날 아침에 차 감독이 포상금 이야기를 꺼내서 더 분위기가 엉망이 됐죠. 그 상황에서 포상금 이야기가 어디 나올법한 얘기입니까. 네덜란드에 5-0으로 지고 난 뒤에는 이대로 가다가는 더 이상 안되겠다는 생각을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했습니다.
정몽준 회장과 홍명보, 조중연 전무/대한축구협회 홍석균
- 그래도 대회 도중 경질을 한 것은 지나친 결정이 아니었느냐는 말이 있었습니다.
마르세이유였던가요? 네덜란드전. 그 끔찍한 경기를 마치고 밤에 협회 상임 이사들이 모두 호텔에 모여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식 회의는 아니고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으냐 토론을 한 것이었죠. 모두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극약처방 밖에 없다는 쪽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후배인 차 감독을 생각하면 미안한 것이지만 '축구 대표팀이 차범근을 위한 팀이 아니고 온 국민의 팀이다, 이대로 가다간 벨기에전도 대패다, 무기력하게 3패를 하고 가면 한국 축구는 그야말로 끝이다' 하는 것이 모두의 생각이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해오던 분들이라 그런 팀 분위기 하에서는 다음 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지 다들 너무나 잘 알거든요. 제가 94년부터 담배를 끊고 있었는데 그 날밤에 담배 한 갑을 다 피웠습니다. 다음날 파리에 돌아와 기술위원회가 열렸는데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구나 차 감독이 기술위원들과 일체 접촉을 피해 왔었기 때문에 분위기가 아주 강경했죠. 변화를 줘야 한다고 결론이 났습니다.
벨기에전에서의 투혼도 결국 변화를 주고 충격 요법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월드컵이 끝나고 K리그에 관중이 몰린 것도 벨기에전을 보고 '아, 한국 축구가 이런 투혼이 아직도 살아있구나. 비록 실력이 모자라지만 저렇게 열심히 하는구나. 프로축구장에 가서 선수들 응원해서 다음 월드컵 때는 진짜 잘해보자' 이런 생각 때문에 몰린 것 아닙니까.
물론 대회 중에 감독 경질이라는 그런 충격 요법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그때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제가 차 감독하고 무슨 원수질 일이 있겠습니까. 차 감독이 미워서가 아니라 한국축구를 더 생각한 것이죠.
- 이제 2000년으로 넘어오겠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시드니 올림픽에서 8강 진출에 실패하고 아시안컵에서 3위를 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협회나 조 전무님께서는 이전 차범근 감독에 비해 허 감독에 대해서는 굉장히 보호하는 인상을 주어서 일부 팬들이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많이 했습니다.
차범근, 허정무 두 사람 모두 한국 축구를 빛낸 사람이고 우리 축구계가 보호해 주어야할 큰 재산입니다. 개인마다 선호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한국 축구를 위해서도 앞으로도 계속 일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저도 그렇지만 당시(2000년) 기술위원회에서도 더 이상 대표팀 감독을 소모품으로 버리지는 말자, 성적에 대한 평가는 명확히 하자는 쪽이었죠. 허 감독의 경우 시드니 올림픽에서 2승 1패를 했습니다. 2승이면 역대 올림픽 최고의 성적입니다. 물론 경기 내용이 썩 좋지는 않았죠. 그렇지만 2승을 하고도 골 득실차로 8강에 못올라갔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평가를 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경질까지 연결시킬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올림픽 끝나고 한달 후에 아시안컵이 열리게 돼 있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 새로 감독 뽑고 어떻게 할 시간이 없었어요. 협회가 대표팀 감독을 보호하지 않으면 누가 하느냐는 당위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일정상으로도 어떤 대안이 없었던 거에요. 허 감독 스스로도 아시안컵으로 자신의 진퇴를 평가받겠다고 했고 결국 3위에 그치면서 사퇴를 한 겁니다.
- 2000년 아시안컵 대회 도중에 그 유명한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말을 하셔서 한동안 유행하기도 했는데, 그 말을 하신 의미가 뭔가요.
사표를 내겠다는 뜻이죠. 청명하고 한식이 하루 차이 아닙니까. 사표를 내긴 내는데 아시안컵 대회 도중에 내느냐, 대회 끝나고 내느냐는 별 중요하지가 않다는 말이죠. 그때 현장에 온 기자들이 허 감독이 성적 부진하면 사퇴한다고 하는데 조 전무도 협회 책임자로서 사퇴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계속 따져서 그런 말 한 겁니다.
실제로 대회 끝나고 사표를 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레바논 공항에서 정 회장님 만나 사직서를 건냈더니 한국에 가서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시더군요. 한국에 와서 며칠 뒤 정 회장이 불러서 갔는데 "성적 부진했다고 전부 다 사표내면 일은 누가 합니까. 내가 축구협회장이니까 그럼 나도 사표내야 되겠네요. 딴 생각 말고 계속 일하세요" 그러시는 겁니다.
이런 말하면 저를 싫어하는 사람은 또 뭐라 그럴지 모르지만, 어떤 직책이든 본인이 맡고 싶다고 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떠나고 싶어도 일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냥 떠나면 그만이지 않느냐고 말하기는 쉬워도 그런 상황에 부딪치면 선택에 주저하게 됩니다.
- 아시안컵이 끝나고 있었던 'MBC 100분 토론' 이야기 차례입니다. 그날 호되게 당하셨는데 너무 준비가 부족했던 것 아닙니까.
사실 출연 요청이 왔을 때 처음엔 거절을 했습니다. 주제와 내용, 참석자를 보면 뻔한데 서로 말하다보면 전 국민을 앞에 놓고 축구인들끼리 서로 내가 잘났네, 니가 잘났네 하면서 싸우는 꼴밖에 더 되느냐 이거죠. 2002 월드컵과 축구발전이라는 명분은 좋지만 결국 서로 헐뜯는 모습 나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축구인들 체면이 뭐가 됩니까.
협회 쪽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나와야 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제가 나가긴 했지만 늦게 결정이 되는 바람에 준비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우리 협회 간부들 일이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데 그렇지 않아도 방송하는 그날 파주 NFC 건립 비용 문제 때문에 국회의원들 서명 받느라 계속 돌아다녔고, 오후에는 월드컵 필승 대책위원회 회의가 있어서 저녁 7시까지 문화관광부에서 회의했습니다.
저는 뭐 있는 그대로 축구협회가 추진하는 방침 그대로 편하게 이야기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협회를 공격하는 입장에 선 사람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이것저것 많이 준비했더군요. 사실 그런 토론 프로는 아무래도 공격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주도권을 쥐게 되어있는 것 아닙니까. 맘먹고 나온 사람들한테 무슨 수로 당합니까. 무슨 대답을 해도 먹히지 않지요.
-그때 신문선씨와 박병주씨가 집중 공격을 했죠.
이런 말 하면 사람 욕하는 것 같지만 신문선씨나 박병주씨나 축구계에서는 입으로만 먹고사는 인물, 불평불만의 대표적인 사람들이죠. 축구팬들께서는 저만 욕할 것이 아니라 축구계에서 두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주변에 한번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그때도 그랬지만 저는 지금도 두 사람을 아예 상대를 하지 않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현재 축구협회 집행부가 잘못했다 쳐요. 그럼 90년대 초반에 김우중씨가 축구협회장 할 때 두 사람 모두 협회 이사하면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는데 그때 그 사람들은 한국 축구 위해서 도대체 뭐했냐 이거예요. 트레이닝 센터를 만들었습니까? 유소년 상비군을 만들고 해외 전지훈련, 해외 유학을 보냈습니까? 아니면 공식 후원사 영입해서 돈을 벌었습니까? 변변한 축구협회 건물이 있었나요? 프로축구 제일 암흑기는 그 시절이었어요.
신문선씨는 정 회장 취임 이후에 한국 축구가 후퇴했다고 계속 그러는데 김우중 회장 시절에 한국 축구가 더 발전했는지, 정몽준 회장 때 더 발전했는지 사람들한테 한번 물어보세요. 자꾸 정몽준 집행부 욕만 하지 말고 자신들이 집행부였을 때를 반성해 보라 이겁니다.
한국축구가 당장 일본에 먹힐 것처럼 신문선씨는 그때 말했는데 어째서 2002 월드컵에서는 우리가 더 잘했고, 왜 지난번 아시아 청소년 대회에서 우리는 20세, 17세, 14세 다 우승할 때 일본이 우리보다 못했습니까. 자만해서도 안되겠지만 누구를 공격할 목적으로 그렇게 일방적으로 말하면 안되는거죠. 사심이 들어있다 이거예요.
지금 한국 축구의 위상을 생각하고 돌이켜 봤을 때, 그때 <100분 토론>에 나와서 트집잡고 한국 축구를 깎아내리던 그 사람들이 말이 맞았는지, 아니면 어렵지만 한국 축구는 각 분야에 걸쳐서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한 제 얘기가 맞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면 될 겁니다.
인터뷰 중인 조중연 전무/sportal
- 아시안컵이 끝난 뒤 이용수 교수가 기술위원장이 되고, 곧바로 히딩크 감독이 영입됐습니다. 인터넷에 가끔 보면 조 전무께서는 외국 지도자 영입을 반대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별로 대꾸할 가치가 없는 얘기 같은데요. 한국축구가 위기에 처해있고 2002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당장 난리가 날 판인데 협회 전무가 내국인, 외국인 가릴 정도로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은 아니죠. 설사 제가 반대한다고 칩시다. 다른 사람들이 전부 외국인 지도자 영입해야 한다고 하는데 전무 혼자 반대하면 영입 못하는 겁니까.
팬들은 축구일이라면 조중연이 뭐든지 다 결정하는 걸로 아는 것 같아요. 제가 전무의 위치에 있지만 모든 것을 제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엄연히 분과위원회가 있고, 이사회가 있고, 모여서 의논해서 결정하고 또 정 회장께 보고해서 의견도 듣고 합니다. 행정이라는 것이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 언론이나 축구팬들 중에는 한국 축구의 병폐로 감독, 선수 선발할 때 학연, 지연에 의해 좌우된다는 말을 은연중에 많이 합니다. 그런 말을 할 때 조 전무님도 자주 거론되는 것 같은데요.
제가 중동고, 고려대 나왔는데 고려대 출신 감독을 대표팀 감독에서 자르긴 했어도 앉혀보진 못했습니다.(웃음) 중동고 나온 후배들 많은데 그러고 보니 아직 청소년 대표 감독 자리도 한명 앉히지 못했습니다.(웃음) 역대 감독들한테 내가 압력 넣어서 청소년 대표든지 무슨 대표선수 된 적 있으면 대보라고 하십시오.
제가 가장 답답하고 열 받을 때가 학연, 지연 이야기 나올 때입니다. 근거를 대보라고 하면 말도 못합니다.
우리 나라 대표팀 감독들이 어떤지 아십니까. 좋은 선수가 있어서 뽑고 싶어도 주변에서 뭐라 그럴까봐 겁나서 뽑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어느 학교에서 많이 뽑으면 특정 학교 출신들이 많다고 욕하고, 그게 겁나서 각 학교에서 골고루 뽑으면 나눠먹기라고 또 그러죠.
히딩크 감독이 4강 올리고 나서 성공 요인으로 학연, 지연 파괴다 그러면서 언론에서 많이 그랬는데요. 그럼 그 전 대표팀 감독들은 학연, 지연으로 선수 선발했습니까? 이미 한국 축구에서, 적어도 대표팀은 학연, 지연이 파괴된 지 오래예요. 히딩크가 학연, 지연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 이미 파괴됐다는 것을 입증한 거죠.
월드컵에 나간 23명중에 그전에 청소년 대표, 올림픽 대표, 국가대표 한번씩 안한 선수 있습니까. 히딩크만이 학연, 지연 파괴해서 선수 뽑았다면 월드컵에 나간 선수들은 전부 생소한 선수들이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잖아요. 실력도 없는 선수들이 인맥에 의해 대표선수가 되었다면 그 실력이 천하에 다 드러날텐데 언론이나 팬들이 가만히 있었겠어요?
- 이제 월드컵 이후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대표팀 포상금 문제인데요. 대부분의 팬들은 균등지급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는데, 전무님은 차등 지급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요?
그렇습니다. 그 소신에는 변함없습니다. 저 역시 그때 당시의 분위기나 국민 정서상 똑같이 지급해야 한다는 팬들의 주장이 이해는 갑니다. 그렇지만 여러 개의 대표팀을 운영해야 하고 직접 행정을 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두고두고 그것이 전례가 되어서 걸림돌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에요. 팬들은 그런 일까지는 책임을 지지 않으니까 쉽게 말할 수 있죠.
두고 보십시오. 다음에 무슨 대회 나가서 기대 이상의 중요한 성적을 냈다, 그러면 또 포상금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 그때 가면 2002 월드컵 때는 이렇게 했는데 왜 지금은 그때처럼 주지 않느냐, 우리도 힘들게 고생했다, 뭐냐, 이렇게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극단적일지 모르지만 팀을 운영하다 보면 여러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엔트리에는 들었지만 후보로 밀려난 선수들이 있어요. 이런 선수들이 대회 나가면 분위기 흐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선수들이 열심히 해서 주전에 들 생각은 하지 않고 '엔트리에만 들면 놀아도 어차피 나중에 돈은 똑같이 받으니까' 하는 심리가 생깁니다.
프로팀들을 비롯해서 모든 팀들이 메리트 시스템을 적용하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자극을 주자는 거죠. 월드컵 후에 차등 지급하기로 협회 이사회에서 결정이 났는데 세분 정도 반대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찬성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사분들은 팀을 운영해본 사람들이라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잘 알거든요.
프로팀들도 우승하고 나면 보너스 지급할 때 출전 횟수나 기여도에 따라 차등 지급합니다. 이번 월드컵 대표팀과 같은 논리라면 각 프로구단 서포터스들도 선수들 전부 고생했으니 균등 지급하라고 요구해야 되는데 그건 하지 않는 걸 보면 좀 이상하네요.(웃음)
포상금 문제 때문에 시끄러울 때 (홍)명보가 찾아와서 자기들은 협회가 차등지급 하더라도 똑같이 나눠 갖겠다고 했습니다. 협회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긴 했지만 다른 동료들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런 정신이 있었기에 4강을 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마음이고 행정은 행정이죠.
정 회장님 결단에 의해 다시 균등지급으로 번복되고 나서, 제가 한 사흘 협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언론에는 '조 전무 사의 표명'이라는 기사가 나기도 했는데, 사실은 수년동안 지켜온 원칙과 관례가 지켜지지 않은데 대한 섭섭함의 표현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차등지급이 올바른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용수 위원장 이야깁니다. 이용수 교수가 기술위원장 되고 나서 월드컵 끝날 때까지 조 전무님과 서로 합심해서 일을 잘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판에 이 위원장 개인 포상금 문제 때문에 사이에 금이 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개인간의 이야기가 나오면 제가 이것저것 전후사정을 다 이야기 해야할지 망설여집니다. 같은 일도 당사자의 생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니까요.
이용수 위원장은 기술위원장 취임할 때부터 월드컵 끝날 때까지만 일한다고 여러 차례 선언을 했지요. 그래서 물러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월드컵 끝나고 난 뒤 어차피 올해까지 교수직은 안식년으로 쉬니까 아시안 게임때까지만 좀 더 해줄 수 없느냐고 협회에서 연장 요청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본인이 거절을 했습니다. 제가 잘은 몰라도 거절 이유가 앞서 말한 자신의 약속을 그대로 지킨 것이라 생각합니다.
-> 2편에 계속.
정리=스포탈 2003-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