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정도의 차이
1. 강한 믿음과 약한 믿음
구원을 얻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믿음이 강한 사람이 있고 약한 사람이 있다(롬 14-1장 참조). 신앙생활을 오래하여 말씀으로 연단을 받아서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은 믿음이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갓 태어나서 아직 젖이나 채소만을 먹는 어린신앙인을 믿음이 연약한 자이다. 믿음이 연약한 자는 말씀과 기도와 삶 속에서의 연단을 통해 믿음을 강하게 키워나가야 한다. 믿음은 정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라는 것이다. “너희 믿음이 자라고”(살후 1:3중).
교회에는 항상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으며 서로가 신앙의 성숙도가 다르기 때문에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안목도 달라서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연약한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믿음이 강한 자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롬 14:3). 서로가 사랑으로 허물을 덮어 주고 서로를 이해하여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롬 14:19).
서로 사랑으로 행하여서 형제에게 거칠 것이나 부딪칠 것을 두지 않는 배려가 필요하다. 보수주의자들은 은사주의자들을 비판하고 정죄하기 이전에 형제로서 사랑의 동기로 가르치고 권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은사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의 체험과 생동감 부족을 업신여기기 전에 먼저 자신의 잘못을 살피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의 적은 혈과 육을 가진 형제가 아니라 마귀와 그의 사자들이 아닌가?
2. 믿음과 행위와의 관계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이다. 행위로 구원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면 과연 믿음은 행위를 배제하는가? 아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받아들이고 의존함에 있어서 믿음은 칭의의 유일한 방편이다.
그렇지만 믿음은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 안에서 단독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모든 다른 구원의 은사를 수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
바꾸어 말하면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그 믿음이 진짜라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행위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말이다.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약 2:20-26).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3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0-26).
문자 그대로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는가? 아니다. 아브라함을 자신의 믿음이 진짜라는 것을 행위를 통해 증명해 보인 것이다. 믿는다고 하면서 그에 합당한 행위의 열매가 없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믿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과실나무가 때가 되면 과실을 내듯 믿음이 진짜라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행위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다. 믿음의 결과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행위가 따르듯 회개도 진정한 회개하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어떤 교리를 입술로 시인하고 말로만 회개하고 머리로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회퍼는 입술로 시인하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는 ‘값싼 은혜’(cheap grace)를 배격한다. 반드시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회개와 믿음이 진짜라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마 3:8).
3. 믿음의 열매
그러면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하는가? 성경에서 가르치는 모든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열매와 직 간접으로 관련된 내용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⑴ 말씀에 순종하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사와 이적을 행하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고 불법을 저질렀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천국에 간다.
순종은 “하지 말라는 것 하지 않는 것”은 물론 “하라는 것 하는 것”도 순종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모두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이다. 내가 저지른 죄를 회개할 뿐만 아니라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없이 예수 이름으로 능력만 나타낸다고 해서 천국 가는 것은 아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열매를 맺는 사람이 천국에 간다.
⑵ 인격과 행실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천국의 혼인 잔치가 비유가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혼인잔치에 참석했는데 예복을 입지 않고 참석한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님은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의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운 데로 던져 버리셨다.
예복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계 19:7). 즉 삶 속에서 회개와 믿음에 합당한 옳은 행실을 보이지 못하는 사람은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다. 삶 속에서 신앙인격의 열매를 맺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바깥 어두운 곳 즉 지옥으로 던져진다.
⑶ 주어진 재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주인이 종들에게 그 재능대로 금 5, 2, 1 달란트를 맡겼다. 주인이 나중에 와서 회계를 할 때, 5 달란트 받는 자는 5 달란트를, 2 달란트를 받은 자는 2 달란트를 남겨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는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1 달란트 받는 자는 남긴 것이 없다. 게으름을 부린 것이다. 그래서 주인은 이 종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를 내어 좇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무익한 종이 믿음이 있었다면 과연 그런 게으름을 피웠을까? 진정한 믿음의 없었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운 것이다.
⑷ 전도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누가복음에는 한 사람 당 한 므나씩 나누어 주셨다. 이것은 전도의 사명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한 므나를 사용하여 10 므나를 남겼고 어떤 사람은 5 므나를 남겨서 “착한 종”이라고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한 므나도 남기지 못한 종에게, 예수님은 “악한 종”이라고 책망하신 후 벌을 내리셨다. 나를 죄악에서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죽어 가는 영혼을 그냥 내버려둘 수 있단 말인가?
칭찬 받고 천국에 간 사람은 그들의 행위로 천국에 간 것이 아니다. 그들의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라면 반드시 이러한 행위의 열매가 나타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행위의 열매를 맺지 못한 자들은 참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돌아가신 예수님, 부활 승천하셔서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받아들인 사람이라면 반드시, (1) 말씀에 순종하는 열매, (2) 옳은 행실의 열매, (3)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쳐 하나님을 섬기고 (4) 예수를 모르고 죽어 가는 영혼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행위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