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태어난 겨털안미는 종족이라면
한 번쯤은 계약직 노예로 끌려가는 곳
군대.
내게도 그런 날이 다가왔다.
일찍한 친구녀석들은 이미 병장
혹은 전역한 애들도 있었고 내가 마지막차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입영까지 3일이 남았고
뭔가 초초해진 나는 무엇을 해도
아무런 재미도 없었다.
생전 안보던 만화책도 빌려다보기 시작했고
할 짓 없이 이른 아침부터 거리를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다음 날 새벽쯤 되서야 기어들어오기도 했다.
입영 하루 전날
친구들이 열어준 마지막 술자리에서
고참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이제껏 겪지 못했던 충격과 공포를 느낄 수 있었고
노래방에 끌려간 나는
김광석 아저씨를 한없이 원망도 했다.
- 입영 당 일.
하늘도 내 슬픔을 알아선지...
하늘은 먹구름이 끼고 가랑비가 오던 날이었다.
춘천의 102보충대로 향해 청량리에서 입영열차를 탔다.
타기 전 한 아저씨가 묻는다.
"입영하나? 기차 어디서 타야되?"
내 짧은 머리에 그렇게 느꼈던 것일까...
슬펐고 모든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아닌데요"
경춘선 열차를 나를 태우고
어디론가 떠나기 시작했고
화랑대역을 기점으로 하여
서울은 내 눈앞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안녕..."
기차 안에선 누군가 폰에 담아온 노래를 틀고 있었고
기차의 덜컥임과 비가 내리는 차창 밖 풍경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춘천가는 기차를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에 내 사랑이 숨 쉬는 고옷~~"
.......
그리하여 남춘천역에 도착한 나는
바가지 택시요금을 물으며 102보 앞에 도착했고
그 곳엔 소년이 남자로 거듭나기 위한 성인식을
축복하고
슬퍼하고
조-_-소하기 위한 많은 인파가 들끓고 있었다.
장사꾼들은 좌판을 차려놓고 저마다 깔창과 시계, 전화카드를 사라며
지랄들이었고
나는 애써 그들을 외면한채 담배만 줄기차게 태우고 있었다.
102보의 정문엔 큼지막한 글씨로 "더 넓은 가슴으로 조국을"이
공포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저 문을 지나면 이제 담배는 잠시 작별.
그렇게 마지막 한가치를 태우고 들어갔다.
군악대가 연주하는 이등병의 편지는 모든 부모와 연인의 눈에
쓰나미를 불러 일으키고
홀로 온 나는 조용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한 여성이 받는다.
나는 말했다.
"입영합니다. 폰 정지시켜주세요"
"네 고갱님 군생활 열심히 하시구요 그럼 정지하겠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당시 마지막 통화해준 LGT 여성 상담원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모두들과 헤어지고 막사안에 들어간 나는 난생 처음
"각잡기" 라는 것을 하며 온 몸에 쥐내림신이 강림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여전히 군인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잠시 후 식사시간이라며 모두들 줄을 서서 밥을먹으러 갔다.
생전 처음 보는 축협우유의 비범한 포스와
마시자마자 느껴지는 비릿함에서 청정유기농 제품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식탁위엔 숟가락만 덜그럭하니 놓여져 있었고 대범하 나는 취사병에게 다가가 한마디 했다.
"젓가락 주세요"
마치 정신나간 이를 보는 듯한 그 녀석의 눈초리와 생각을 읽을 수 있었고
잠시 내가 뭔가를 실수했나 하는 느낌에 멍떄리구 있을 무렵
"아저씨 군대는 젓가락 안씁니다"
한마디에 조용히 찌그러질 수 밖에 없었다.
저녁이 되어 잠자리에 드는데 침구류를 펴보는데...
하....
몇 년.. 아니 몇십년을 안빤걸까
지난 수십년의 세월
오늘의 나처럼 어디선가 끌려온
수많은 불쌍한 젊은 영혼들의
애환과 슬픔, 비통함이 물씬 젖어있는
그 냄새와 느낌이 선명히 살아있는
모포를 덮고 그렇게 잠을 청했다.
그렇게 3일이란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훈련받을 자대발표가 나는 날이 되었다.
벽에 붙은 게시판에는
102보충대에서 갈 수 있는 군부대와 홍보성 문구들이
가득차 있었고 나는 하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푸른방패에 비스듬히 새겨진 딱대기 두개
"이야.. 여기 사단마크 진짜 간지나게 생겼네"
이러고 있는데 같이 온 동기 녀석이 한심하단 눈초리로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마 니 여기가 어딘지 아노"
당연히 알 턱이 없는 나는 물었다.
"뭔데 여긴?"
그 녀석 더 한심하단 말투로 말을 해준다.
"11사단 젓가락부대데이.. 니 여그서는 젓가락하고 이기자만 안가믄 성공한거레이"
군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아무것도 없었던 나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직감상 "빡센 부대" 일 것으로만 추정했을 뿐이다.
오후가 되고 각 부대 발표가 났다.
"49번 체사레보르자. 홍천. 11사단 신병교육대대"
그리고
내 인생의 진정한 지옥이 시작되었다.
첫댓글 지금은 어떻게되셧어요?ㅋㅋ 현역군바리1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