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이기적인 이재명의 단식
지난달 31일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결국 19일째인 18일 오전 병원에 실려갔다. 이 대표의 병원행 직후 날아온 검찰의 구속영장에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고 용산 대통령실 앞으로 달려가 인간 띠를 만들고 항의 시위를 벌였다. 친명(친이재명) 지도부는 이 자리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짐승 같은 정권이 끝내 부당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민주당이 똘똘 뭉쳐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했다. 사실상 부결을 예고한 것이다.
‘개딸’ 등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체포동의안 표결 시 ‘부결’표를 던지겠다는 약속을 받아 인증샷을 공유 중이다. 이들에게 민주당 의원들은 “부결시키는 것이 무도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는 하나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위기일수록 당을 중심으로 단합된 힘으로 뭉쳐 싸워야 합니다” 등 일제히 부결을 약속했다. 발빠른 의원들은 한발 더 나아가 스스로 SNS에 부결을 다짐하는 글까지 올리고 있다.
결국 이 대표의 단식은 자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이기적 수단이었다. 보통 정치인의 단식은 사회적 약자 등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또는 특정한 정책이나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1980년대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와 지방자치제 시행 등을 요구하며 단식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4년 세월호 유가족과 동조 단식을 하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2018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였던 김성태 전 의원은 ‘드루킹’ 특검을, 2019년 황교안 당시 대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반대 등을 요구했다.
이 대표가 단식을 시작하며 내걸었던 요구사항은 △민생 파괴,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 천명 및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 쇄신 및 개각 등 세 가지다. 성격이 다른 여러 현안을 묶으려니 단식의 명분은 두루뭉술하고, 요구조건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문제는 단식을 선언한 시점이다. 이 대표는 단식 선언 직전까지 검찰과 추가 소환 일정 조율을 두고 팽팽한 기 싸움을 벌여왔다. 시점상 ‘방탄 단식’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단식을 시작하던 날 “검찰 수사에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이 역시 결국 허언이 됐다. 이 대표는 단식 10일째이던 9일 휴식 시간을 포함해 8시간 조사를 받던 중 건강상의 이유로 조사 중단을 요청하고는 12일 한 번 더 조사를 받았다. 결국 자신이 원했던 대로 ‘쪼개기 출석’을 한 것이다. 이 대표는 이달 15일에 예정돼 있던 대장동·위례신도시 특혜의혹 재판도 ‘건강상의 문제’ 등을 이유로 다음 달 6일로 연기했다.
결국 국민만 무슨 볼모마냥 이 대표가 밥을 굶다가 병원에 실려 가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인사말이 “밥은 먹었냐”일 정도로 ‘밥심’으로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명분 없는 단식 투쟁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였다. 가뜩이나 기분 좋은 뉴스도 없는 마당에 올해 추석 밥상엔 이 대표의 건강 상태까지 오르게 생겼다. 제1야당 대표의 지극히 이기적인 단식이 힘없는 약자들을 위한 최후의 투쟁수단이라는 단식마저 한없이 불편하게 만들어버렸다.
김지현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