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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조선왕조 실록(127편)
소고기를 먹는 자 사형에 처하겠노라.
명목상으로 조선에서의 ‘소의 도축’은 불법이었다.
농우가 부족해지면 벼농사 자체를 하기 힘들어지고, 이렇게 되면 국가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린다는 논리였으니, 조선의 왕들은 개국 초부터 강력한 ‘
소 도축 금지 정책’을 펴나가게 된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전회에 설명한 태종이었다.
이것들이 말야. 먹지 말라면 먹지 말 것이지, 이게 뽕이냐.계속 먹게 안
되겠어 오늘부로 소고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겠다.
앞으로 소고기 잡는 놈들 그러니까 뭐라고 신백정 놈들은 도성 90리 안으로 못 들어온다! 알았지.
소 잡는 놈들이 다시 도성 안으로 기어 들어오지 못하게 금살도감을 만들어서 철저하게 단속해 알았냐.
그랬다.이 당시 태종 과감하게 소를 잡는 것 자체를 규제하였으니,이게 또 공급이 없으면, 수요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니까
그래.명나라 에서도 쇠고기 판매 및 유통 금지령을 내려서 효과를 봤다니까, 우리도 이렇게 하면 꽤 약발이 먹힐거야.
이런 태종의 바람은 얼마가지 못했으니, 이게 말이 됩니까.사람이란 게 먹지 말라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진다니까요!
성매매 금지법 보십쑈! 파는 애들, 사는 애들 모조리 아작 난다고 했지만.
그게 줄어들었슴까. 이건 기본적으로 마인드가 변해야 할 수 있는 겁니다.
지랄을 랜덤으로 떨어라 이 시키야!마인드를 어떻게 바꾸냐? 이미 고기 맛을 본 것들인데.아니 그럼 돼지나,닭,꿩 쪽으로 입맛을 유도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유도한다고 유도가 되냐?
고기를 먹는 것들이 법을 만들고 관리하는 놈들인데 말야.
그렇다고 이대로 소들이 도축당하는 걸 볼 수는 없사옵니다!
특단의 대책을 만드셔야 하옵니다!
육식자(고기 먹는 사람,좀 사는 것들)가 누구던가 사회 기득권층 아니던가.
수요가 있으므로 공급이 있는 것인데, 공급하는 쪽을 계속 막는다 하여,
그 수요가 줄어들까.
이는 성매매 금지법을 보면 알 수 있는 상식선의 문제였는데,
이시키들! 서울 안으로 들어오지 말랬는데, 계속 기어들어와 안되겠어!서울로 몰래 기어 들어온 신백정 놈들을 전부 잡아다가 해안가로 쫓아내!
그리고, 앞으론 소고기를 사는 놈들도 처벌하도록 할테니까,
사먹는놈들.걸리면 죽어!
세종의 강력한 금살령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전시행정의 표본이었다.
백정들이야 쫓겨나도 금방 다음 백정들이 들어와 소를 잡으면 될 것이고
고기를 주로 소비하는 사회 기득권 세력들은 법위에 앉아 있었고,
금살령을 내린 임금부터가 소고기를 먹고 있었으니,
과연 이법이 지켜질 수 있었을까. 금살령을 말한 세종이 거꾸로 소고기가 들어간 요리를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설렁탕의 유래였던 것이다.원래 조선이란 나라가 농업국가가 아니던가.
농업국가란 이유 때문에 해마다 나라에서는 왕이 직접 매년 경칩 절기 후 해일 축시에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내며 풍년을 기원하게 되는데,
이 곳이 어디냐면 바로 제기동(제사 지낸 터)이었다.
선농제라는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는데, 왕과 세자, 문무백관들이 저마다 나아가 직접 소를 이끌고 친경 을 하는 것이었는데,
이 모습을 백성들이 보게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이 모내기를 하는 모습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야기를 다시 세종쪽으로 포커스를 맞추면.세종이 선농제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비가 들이쳤다는 것이다.
오도가도 못하는 와중에 배는 고프고, 몸은 춥고…이때 세종이 결단을 내렸으니,
야야, 오늘 선농제에 썼던 소를 잡아라! 애들 다 얼어죽기 전에 뜨끈한 국물이라도 좀 먹여야 겠다
아니.저기. 지금 양념도 없구요. 결정적으로 금살령을 내리셨는데.
지금 그게 문제야. 뜨뜻한 국물이나 좀 먹이자는 건데,
걍 맹물에 고기랑 뼈넣고 끓여!
그리고 내가 왕인데 어떤 놈이 시비를 걸어.
야사에 전해지는 설렁탕의 유래가 바로 이것이었는데, 이런 상황이다 보니 소 금살령이 어디 씨알이나 먹히겠는가.
아울러 나라에 무슨 일이 있을 때 마다 나라의 이름으로 소를 잡았으니,
야야, 요즘 군바리들 졸라 뺑이치고 있는데.소나 한 마리 잡아서 위문이나 가자.
까짓거 소 한 마리 잡으면 다들 좋아하지 않겠어.이번에 대비 마마 생신인데, 너비아니 풀 세트로 한번 돌리자구.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사회 전반적으로 소고기 못 먹는 놈은 없는 놈이란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조금 지나자 소고기가 ‘훌륭한 뇌물’의 역할이 되었던 것이다.
예전에는 쌀이나 비단을 들고 가 뇌물을 주던 것이,대감, 이번에 소 등심으로 한 열근 끊어왔습니다.
어허! 김영감 무슨 돈이 있어서 소 등심을.그나저나 저번에 김영감이 부탁했던 자제분 음서는 내가 긍정적으로 한번 검토해 보겠소.
오늘날 명절 때만 되면 심심찮게 눈에 띄는 ‘갈비 종합선물세트’의 원형이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나라에서 의욕적으로 소고기의 생산, 판매, 유통을 제한하려 하였지만.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이미 한번 고기 맛을 본 것을 말이다 더구나 그 법을 입안하고 실천해야 하는 자들이 가장 고기를 많이 소비하는 사람들인 것을.
어쨌든 조선시대의 소 금살령은 그렇게 조선이 끝날 때까지 쭉 이어져 내려왔었다. 물론 지켜지진 않았지만 말이다.
엽기 조선왕조 실록(128편)
조선시대의 다방을 찾아서
요즘 다방(茶房)이 쇠퇴의 기로에 서있다.젊은이들은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이나, 카페 등을 찾는 통에 다방은 어르신들이 한가롭게 놀러와 앉아 계시는 곳으로 인식 되어지는데여기에 더해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등장으로 약속장소를 굳이 정하지 않더라도 만날 사람은 다 만나는 21세기의 만남의 문화 덕분에 다방이 설 자리는 계속 좁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은 퇴락한 뒷골목 풍경으로 여겨지는 다방이었지만.7, 80 년대에는 청춘문화의 아이콘으로 당당히 그 이름을 말했던 다방.
그러나 이 다방이 조선시대에는 엘리트 관료들을 배출하던 최고의 정부기관 이었다는 사실!
조선시대의 다방은 과연 어떤 곳인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그 뭐시냐.고려 애들이 딴 건 모르겠는데 그 차 마시는 거 하나는 꽤 괜찮았거든, 녹차가 얼마나 좋은지 알어.이게 말야 콜레스테롤을 분해하지.
지방 분해하지.성인병에는 왔다거든.
거기다가 차 마시는 다도.자체가 정신수양에는 최고거든.그래서 말인데, 내가 이번에 왕도 됐구 해서, 경복궁에 쪼그만 다방을 하나 차렸으면 좋겠는데…네들 생각은 어떠냐.
전하! 그게 무슨 개념을 가출시켜버리는 말씀이십니까.다방 이라니요.차를 마시려면 길다방 으로 충분합니다!
자판기 커피가 곧 다방커피의 원조이거늘, 굳이 궁궐 안에다가 다방을 짓겠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시.다방은 다방인데, 티켓다방을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야 이 자식아! 내 나이가 몇인데, 티켓을 끊어 사람이 말야.진심으로 말하면 진심을 받아들여야지 꼭 그렇게 딴지를 걸어야겠어.
내가 이 나이에 테이크아웃 커피점.그래 별 다방이든 콩 다방이든 가서 아이스 모카를 마시겠냐
카페를 가서 파르페를 시켜먹겠냐.네들도 내 나이 되 봐라. 갈데없어서 탑골공원이나 빙빙 돌고 앉아있지.
태조는 조선을 개국하자마자, 다방 이란 관청을 만들겠다고 신하들에게 말했으니,
고려왕조가 남긴 또 하나의 문화적 유산이었다.일단 뭐 왕이 되가지고, 내가 해보고픈 거 한번 못해보면 그것도 억울하거든.
아니꼽고 더러우면 네들이 왕 하세요.나는 다방 만들어서 차나 마실 테니까.이리하여 태조는 이조 소속으로.다방을 만들게 되는데,
네들이 하는 일은 다례를 담당하는 거야.걍 차만 만들고, 내가 차 배달 넣으면 달려와서 차 만들면 돼. 알았지.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그래, 네들이 이조 소속이잖아.
그러니까 외국 사신들 오면 차 대접도 하고, 꽃이나 과일, 술,약, 채소 같이 여하튼 물장사에 관계된 모든 일은 네들이 알아서 다해.
이리하여 본격적인 다방의 업무가 시작되었는데 이들은 왕이 언제 어느 때건 부르는 즉시 달려가 차를 대령하였고,
나름대로 외교관 노릇도 하게 되었다.
이런 다방의 관원들을 태조는 꽤 이뻐 했는데,자식들이 말야, 빠릿빠릿해. 시키면 득달같이 달려오고, 차도 아주 맛있어.
녹차도 티백이 아니라 직접 걸러내고 말야.기특해.태조의 이런 총애를 받으며, 어느새 다방은 신진관료들이 가장 선호하는 부서가 되었으니,
뭐 다른 거 있겠어? 일단은 말야.신임 공무원들 뽑으면 제일 먼저 다방에 배치해.거기서 차도 만들고, 꽃도 가꾸고 하면서 인격수양을 좀 시키고
그 다음에 실무에 투입 시키자고.
일단 사람이 돼야지 안 그래.
태조의 이런 바램에 따라 다방은 어느새 신진관료들의 통과 코스가 되었고,
태조 역시 개인적 취향에 의해서인지 지방 수령을 뽑을 때면, 다방 출신을 대상으로 하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조선에는 때 아닌 다례 열풍이 불게 되는데.
이런 다도 문화는 태조 이후 면면히 흘러내리게 되었는데,
나라에서 제사 지내는데, 언제까지 부어라 마셔라 할 거야.술 그거 많이 마신다고 좋은 거 아니거든.
차 얼마나 좋냐? 깔끔하게 차 올리고 좋잖아 술은 꼭 뒷탈이 있거든.
별로 좋지도 않은 술 계속 퍼 마시느니, 이참에 차를 보급하는 거야. 어때.
태조에 이어 태종, 세종에 이르기 까지 조선 초창기의 왕들은 너나할 거 없이 차에 대해서 호의적이었으니다방은 단순히 차를 끓여 내오는 관청이 아닌 공무원 문화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
야, 네들 서양놈들이 커피 브레이크 가지는 거 봤냐.그게 놀고먹는 거처럼 보이는데, 업무 효율을 높이는데는 커피 브레이크만한 게 없대.
한참 일하다가,피곤해졌다 싶으면 커피 한잔 쫙 들이키고, 농담 따먹기도 하면서 긴장도 풀고 한 다음에 다시 일을 하는 거지.어때.
조선시대 에도 서양의 커피 브레이크와 티타임 같이 차를 즐기는 시간을 갖자는 주장! 과연 조선에도 티타임이 도입될 수 있었을까.
초특급 대하 역사 사극 ‘조선시대의 다방을 찾아서’는 다음회로
엽기 조선왕조 실록(129편)
조선시대의 다방을 찾아서.
서양의 커피 브레이크와 같은 조선 판 티타임을 가지자는 의견.
아니, 영국놈들만 티타임을 가진다는 법이 있어.우리도 우리식의 티타임이 필요하다니까!
홍차 대신에 녹차! 쿠키 대신에 인절미! 딱 이다!이리하여 만들어 진 것이 조선 판 티타임인 다시 였으니.
서울의 각 관청은 업무가 끝날 무렵에 맞춰 관원들끼리 하루의 업무를 정리하는 티타임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차 마시는 걸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다.
각 관청마다 자판기를 갔다놓을 수도 없는 일이고.그렇다고 티켓다방에 티켓 끊어서 다방레지를 불러 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거 참, 무슨 방법이 없을까.
아예,다방레지를 각 관청마다 두는 건 어떨까요.
다방레지.이게 지금 개념을 바겐세일 해 버렸나.
신성한 업무시간에 다방레지를 불러서 희희덕 거리겠다고 너 죽을래.
아니, 그런 의미의 레지가
아니라, 순수한 의미로 차를 끓이고 차 시중이나 드는 그런 여자를 두자는 거지요.
저는 그저 순수한 의미로 가볍게 어드바이스 해 드린 겁니다!.
흠, 순수한 의미로 차 끓이고,
차 시중하는 여자라.아무래도 남자가 끓이는 것 보다는 여자가 끓이는 차가 맛있지 않겠습니까.
또 사기진작을 위해서도 여자가 훨씬 낫죠.
오케이바리 거기까지!
이리하여 등장한 것이 바로 다모였던 것이다.차 문화의 확산과 다례(茶禮)를 권장하기 위한 정부의 히든카드인 다모는 차 문화의 확산과 함께 급속도로 각 관청에 퍼져 나갔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는데, 일반적으로 다모 하면 하지원이 나온 좌포청의 여형사로 생각하는데.
원래 초창기의 다모는 일반 서민 여성들이나 의녀들 중에서 성적이 나쁜 애들을 골라서 다모를 만들었었다
그러던 것이 차 마시는 문화가 후퇴하게 되면서 다모의 성격도 변질, 급기야 여자 형사로 180도 변질되게 되었던 것이다.
자, 그런데 말이다. 갑자기 차 문화가 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조선판 티타임인 다시에 국가적으로 차 끓이는 관청인 다방까지 두면서 의욕적으로 다례를 권장하던 조선이 일순간 이 모든 일이 없었던 일인냥 차에 관한 모든 기억을 깡그리 지워버린 이유.
그것은 바로 차 문화를 위협했던 술 문화와 조선의 기본 컨셉인 숭유억불 정책 때문이 었으니.
차가 몸에 아무리 좋으면 뭐하냐고.
그래봤자 차지.그걸 마신다고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술은 그래도 취하기라도 하잖아.
안그래 그리고 말야.이 험난한 세상에 그까이거 차 마신다고 세상일이 해결돼 걍 술이나 빨면서 한세상 잊는 거야!
좋아 가는 거야!그 맹숭맹숭한 차 마시면 뭐가 달라져 그래봤자 녹차 티백이지. 걍 소주나 마시면서 사는거야.
차 녹차 그런 건 양반네들이나 마시는 거지.우리 같은 무지랭이야 탁주
한사발이면 그만이지.
차 같은 건 배우고,배부른 양반들이나 마시는 거지 여기까지는 뭐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겠다.
자, 그런데 진짜 문제는 바로 숭유억불이란 정책적 키워드였으니.
원래 한반도의 차 문화는 불교에 의해 번성된 문화였다.
원래 차라는 게 말야.졸음 예방에는 짱이거든. 커피보다 카페인이 더 많은게 녹차란 말야.
그리고, 이 차라는 게 말야.성질 자체가 깨끗해,욕되지 않고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딱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게 바로 다도란 말이지.이랬던 것이었다
이 덕분에 국교를 불교로 채택한 고려왕조 시절에는 차 문화가 번성하게 되었지만,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부터는 이야기가 살짝 달라지 게 되는데,
아무리 왕들이 나서서 다방도 만들고 다시도 정해 놨다.하지만, 이제까지 불교와 함께 달려온 다도 문화였기에 불교를 때려잡으니
다도문화도 자연 쇠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나마 조선 초에는 불교에 대해 호의적으로 생각한 왕들이 많았기에 그럭저럭 버텨 나갈 수 있었지만
조선 중기 이후엔 신권이 왕권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자.
불교를 보호할 최소한의 버팀목도 사라진 상황.
결국 차 문화는 술 문화에게 잠식 되게 된 것이다.태조가 경복궁에 다방까지 차리며 권장했던 다도 문화 이건만지금 후손들에겐 드라마 속에 나오는 좌포청 비밀 여형사 다모 로만 기억 되어진다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대목이다.
조선의 다방 처럼 21세기 대한민국의 다방도 하나 둘 역사의 뒤편으로 넘어가는 걸 보면서 역시 시간 앞에서는 그 어떤 문화도 이겨낼 수 없다는 걸 확인 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