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준 자동빵 절단기는 1928년에 처음 생산됐다. 제2차 세계 대전 중미국은 전시물자 절약 차원에서 자른 빵 판매를 규제하려다 석 달 만에 철회했다. 필자 제공
제2차대전 중 미국 정부, 물자절약한다며 엉뚱한 규제
시민과 뉴욕 시 반대로 석 달 만에 불필요한 규제 철회
“앞으로 미국의 모든 빵 공장과 식품점, 제과점에서는 식빵을 먹기 좋게 가지런히 잘라서 판매할 수 없다. 식빵은 자르지 않고 덩어리 형태로 판매해야 한다. 이 규정은 1943년 1월 18일부터 적용된다.”
1943년 새해 벽두부터 클라우드 위카드 미국 농무부 장관이 뜬금없는 발표를 했다. 반듯하게 자른 식빵을 만들지도, 팔지도 말라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도대체 왜 이해할 수조차 없는 이런 엉뚱한 행정규제를 발표한 것일까?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1943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절정을 향해 치닫던 때였고 위카드 농무부 장관은 전시 식품청(War Food Administration) 청장을 겸직했다. 전시 동안 국민이 먹고살 식량관리를 담당한 책임자였다.
자른 식빵의 판매를 금지한 이유는 빵 때문에 전쟁물자 조달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군수물자로 쓰이는 기름종이의 수요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빵을 비닐로 포장하지만, 예전에는 기름종이에 싸서 팔았다. 그 때문에 빵을 잘라서 포장하면 덩어리째 포장하는 것보다 더 빨리 부패하므로 더 두꺼운 기름종이를 사용해야 하고, 그만큼 군수물자 부족을 가져온다는 논리다. 포장지도 많이 들어가고 운송도 불편하니 전시라는 비상시국에 불필요하게 빵을 잘라서 팔지 말라는 것이다.
이유는 또 있었다. 전시에는 쇳조각 하나도 아쉽다. 쇳덩어리는 모두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빵을 자르는 칼날, 자동 빵 절단기를 설치하는 데 들어가는 쇠를 아껴서 군수품 생산 공장으로 보내자는 것이다. 또 빵을 자를 경우, 같은 크기의 빵이라도 밀가루가 더 많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덩어리로 먹을 때보다 빵을 더 먹게 된다는 것이다. 밀가루 소비는 물론이고 전시 물가상승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얼마 전까지 빵은 덩어리째 먹었을 뿐, 반듯하게 잘라 먹지 않았으니 전쟁 중에 자원을 낭비하면서까지 식빵을 잘라 먹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빵 자르는 기계가 발명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은 덩어리 식빵이 먹기에 오히려 불편하다. 식빵은 일정한 크기로 자른 규격화된 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먼 옛날부터 이런 식빵을 먹어왔을 것 같지만, 규격화된 자른 식빵이 등장한 것은 불과 86년 전이다.
자동으로 빵을 자르는 기계는 미국의 로베더라는 사람이 처음 발명했다. 하지만, 화재로 발명품과 설계도가 모조리 불타 버렸다. 이후 12년 동안 처음 만든 발명품을 개량하면서 빵 자르는 기계를 첫 상업 생산한 것이 1928년이다. 1943년을 기준으로 보면 역사가 불과 15년 남짓이다. 그러니 옛날처럼 빵을 자르지 말고 통째로 먹으라는 것이었고, 전시 전쟁물자 조달이라는 핑계로 갖가지 이유를 들어 자른 식빵 하나에 대해 행정규제를 펼쳤다.
빵을 주식으로 먹는 서양에서 기계를 이용해 일정한 크기로 반듯하게 자른 식빵이 불러온 일상생활의 변화는 혁명적이었다. 영어에 “자른 식빵 이후 최고의 발명품(The greatest thing since sliced bread)”이라는 숙어가 생겼을 정도다.
무엇보다 가정주부의 일손이 크게 줄었다. 예전에는 빵을 사다 식구가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놓는 것도 종일 걸리는 가사노동이었다. 식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바쁜 아침 시간에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먹고 출근하거나, 아이들도 학교 갈 때 땅콩 잼을 바른 샌드위치 도시락을 싸 갔다. 빵에 바르는 땅콩버터와 과일 잼 소비도 크게 늘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에서 자른 빵의 판매를 금지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시민들, 특히 주부의 반발이 심했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고는 하지만 불필요한 행정규제고 지나친 일상생활의 간섭이라는 것이다.
전시 체제의 배급제도 등 정부 통제를 잘 따랐던 미국 시민들이지만, 자른 식빵 판매금지 조치에 대해서는 너무하다고 여겼는지 언론에 비판의 편지가 쇄도했다.
그러자 지방정부인 뉴욕 시 당국에서 예외 조치를 발표했다. 뉴욕 시장이 기존의 빵 자르는 기계를 사용 중인 제과점에서는 종전처럼 빵을 잘라서 판매해도 좋다고 발표했다. 있는 장비는 그대로 사용해 시민에게 불편을 주지 말자는 것이다.
이번에는 전시 식품청에서 반발했다. 규정대로 빵 자르는 기계를 사용하지 말라고 명령하면서 기존 업체가 빵 절단기를 그대로 쓰게 되면 사용을 중지한 신규 업체에 대한 불공정 거래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논란 끝에 자른 빵의 판매금지 조치는 결국 발표 석 달 후인 1943년 3월 9일, 전시 식품청이 백기를 들면서 막을 내렸다. 농무부 장관 겸 전시 식품청 청장이 직접 발표했다.
“자른 빵 판매금지 조치는 기대했던 것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또한, 빵 포장용지가 충분히 확보됐기에 금지조치를 철폐한다.”
전쟁이 만들어낸 촌극이었다. 전시 물자를 조금이라도 절약하려는 의식, 그리고 노력이 지나쳐 불필요한 규제로 이어진 사건이었다. 하마터면 식빵의 형태가 지금과 많이 달라질 뻔했다.
<윤덕노 음식문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