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하여 “외국에서 돈을 빌려 와 이 땅에 조선소를 짓겠다.”고 말해 주인공 꼬마들로부터 미친00으로 불리기도 했던 정주영 회장은 ‘미친 짓’을 여러 번 했었다. 이 ‘미친 짓’을 통해 대한민국의 건설과 중공업을 여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걸 바꿔 놓았습니다.
박정희대통령이 정 주영회장에게 조선소건설에 이어,
타건설사가 모두 불가능하다던,
중동건설 진출을 맡겼을 때 "정회장은 역발상으로 낮에는 그늘에서 잠자고, 야간에 햇불을 들고 작업' 하는 걸로 대 성공을 거두면서 오늘날의 중동건설은 한국의 건설사가 앞장섰다는 유명한 일화와 아산만 방조제의 마지막 물막이로 유조선공법의 기상천외한 일을 포함하여 숱하게 많다.
그릇이 큰 왕회장님은 무수히 많은 여자와 자녀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평생동안 잊지 못하는 세 분의 여자가 있다고 합니다. (시사저널 2012년 3월 1주, <사나이 정주영>을 울린 세 여인‘ 기사)
한 분은 현대그룹의 어머니라 불리는 부인 변중석 여사고, 또 한 분은 청년 사업가 정주영에게 마음을 주고 정주영이 어려울 때 항상 도와주었으며, 끝에는 빚까지 내 정주영에게 자금을 준 후 자살로써 그 빚을 안고 떠난 요정 마담이 있습니다. 그분의 마지막 편지는 유서였다고 합니다. 사업 실패로 자살하려던 정주영은 그 분의 돈으로 기사회생하였습니다.
한 남자에게 마음이 꽂힌 그녀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요정의 왕언니로서, 자기 자신의 모든 것과 자신의 생명까지 바쳐 가면서까지 바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그릇 안에 담긴 게 사랑이든 사람을 보는 안목이든. 그런 그릇 큰 여자를 평생에 두 명이나 (변중석 여사와 요정마담) 두었다는 사실은 운명이 아니었을까?
세 번째는 정주영 회장이 ‘흙수저’이던 어린시절 동네 이장집의 2살 연상의 소녀 였다고 합니다.
이광수의 ‘흙’을 읽으며 열광했던 소년 농사꾼 정주영은 새벽같이 그 집에 달려가서 동아일보를 받아 오는 것과 달덩이처럼 밝고 싱그러운 미소의 그 집 따님을 만나는 것 입니다. “경성에서 변호사가 돼서 저 소녀 앞에 나타나리라.” 정주영은 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훗날 공장 하나 차리고 웬만큼 돈을 벌어 고향을 찾은 정주영에게,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를 둘이나 낳은 유부녀가 되어 맞았습니다.
그녀는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어릴 적 친구에게 뜨뜻합 밥과 남편을 소개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첫사랑과의 인연은 끝났는데, 정주영회장의 가슴속에는 오롯이 남아 있었던지, 여든이 넘어 대북사업의 일환으로 고향을 찾았을 때
그의 수족 같은 이익치사장에게 . “김정일 위원장에게 그때 그녀를 꼭 찾아달라고 하게. 내 그녀를 남한으로 데려와야겠네.” 그리고는 세상에 그녀를 맞을 준비를 휘황찬란하게 했다고 하게.
안타깝게도 그녀는 정주영 회장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그녀를 찾아 주오’ 호소하기 2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나이 여든넷의 검버섯 피어난 노인 정주영은 근 1시간 동안이나 어눌한 발음으로 난처해하는 북한 관리에게 얼굴 바싹 들이밀고 “어떻게 죽었숨미까? 많이 앓다 죽었숨미까? 무슨 병이었숨미까? 잘 살았숨미까? 굶지는 않았숨미까?”라면서 애달파하는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요 ?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외치면서 한국 현대 경졔사의 한 획을 그었고, 남북 분단의 철조망을 넘어서 옛 첫사랑까지 ‘도전’하려고 했던 한 남자의 '주마등 같은 회한을 보면서 많은 걸 생각합니다.
인터넷에서 퍼온 글(축약 및 일부 정정하였음을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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