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편소설 《묵언 씨, 백지를 걷다》
— 제6회. 카페 ‘달빛독서회’, 말 많은 세상에 첫발을 내딛다
카페 ‘달빛독서회’는 낮보다 밤에 더 붐비는 곳이었다.
커피보다는 문장, 음악보다는 문단이 먼저 나도는 공간.
한때 잘나가던 시인,
방황하는 편집자,
은퇴한 국어 선생,
그리고 말수가 적은 독자들까지—
그 밤의 테이블엔 사연보다 ‘침묵’이 더 많이 놓여 있었다.
그날 저녁, 백 선생은 묵서영의 원고 사본 몇 장을
A4용지에 인쇄해서 조심스레 폴더에 꽂아 들고 왔다.
묵언은 처음으로 이곳을 찾았다.
구석 자리,
벽에 등을 기댈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는 카페에 들어선 순간부터 말이 없었다.
그것은 어색함이 아니라,
언제나 그래왔던 자기만의 문장 방식이었다.
—
서영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머리를 질끈 묶은 채, 무릎 위에 노트를 올려놓았다.
“오늘은… 제가 쓴 글 중에서
〈지우지 못한 말 하나〉를 함께 나눠보고 싶습니다.”
카페 주인이 조용히 음악을 낮추었고,
조명도 은은하게 줄었다.
—
한 여자가 글을 읽었다.
쉼표 하나, 숨소리 하나까지
조심스레 아껴가며.
낭독이 끝나자
그 자리에선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카페엔 오래된 마룻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무언의 감탄만이 흐르고 있었다.
—
묵언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하지만
딸의 문장이 낯설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그건 자기 안에 오래 눌러둔 문장의 냄새였고,
한때 그의 원고에서 천천히 피어났던 호흡이었다.
그는 알았다.
딸이,
말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한 유일한 독자라는 걸.
—
그때
카페 구석에서
낯선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이 글… 누가 쓴 건가요?”
백 선생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오늘 처음 온 분의 원고입니다.
하지만 그 글 속에는 오랜 침묵의 연습이 있지요.”
낯선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읽는 내내,
누군가의 묵념을 따라 걷는 느낌이었어요.”
—
그 말에
묵언은
비로소 눈을 들었다.
카페 안의 모든 소리가
잠시 멈춰 있었다.
그리고
그 조용함 속에서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입으로 자신의 문장이 다시 태어나는 순간을 보았다.
—
밖은 이미 밤 10시.
카페 문이 닫힐 시간.
사람들이 하나둘 나가고,
백 선생은 묵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더군요, 대표님.
이제…
백지를 걷는 일이
생각보다 덜 외롭습니다.”
—
묵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카페 한켠 게시판에 적힌 문구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던 그는,
가방 속에서
한 장의 원고를 꺼내
슬그머니
서영의 노트 위에 올려두었다.
—
................
📝 시인의 메모
말이 필요 없는 순간들이 있다.
가만히 숨만 섞어도, 마음이 다 전해지는 순간들이.
묵언 씨는 그저 한 사람의 독자였고, 한 사람의 작가였고,
어쩌면 한 사람의 아버지였다.
말을 꺼내는 대신, 문장을 꺼내는 사람.
백지를 걷는다는 건, 쓰지 않은 말을 품어왔다는 뜻이다.
달빛 아래 모인 사람들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대신 눈빛으로, 숨결로, 침묵으로 그를 읽어주었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낭독이었다.
누군가 당신의 문장을 읽어주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덜 외롭다.
말 많은 세상에서,
말 없이도 전해지는 것을 믿게 되니까.
첫댓글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첫 댓글로 따뜻한 응원을 건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묵언 씨의 침묵이 말없이 전해졌다면, 이미 독자님의 마음이 열린 덕이겠지요.
고맙습니다. 늘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좋은 글 마음에 담아갑니다
마음에 담아주셨다니, 이 글이 조용히 제 길을 잘 찾은 듯합니다.
달빛 같은 공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요한 시간 되시길요.
좋은 작품 글 감사합니다
읽어주시고 감사의 마음까지 건네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말 없는 세계에서도 이렇게 따뜻한 나눔이 가능하다는 걸 느낍니다. 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랍니다
오늘도 행복한 인생 만들어 가세요^^"
참 멋진 말씀 남겨주셔서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묵언 씨도 그 말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였을 겁니다.
행복은 ‘조용히 만들어 가는 인생’ 속에 있음을 저도 배웁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