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의 노다지?… ‘꿈의 비만약’ 위고비
지난달 31일 덴마크 정부는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GDP) 전망치를 0.6%에서 1.2%로 올렸다. 이례적으로 전망치를 올린 근거는 이랬다. 제약사 ‘노보노디스크’, 그리고 그들이 만든 비만치료제 ‘위고비’. 15일 기준 노보노디스크의 시가총액은 4284억 달러(약 570조 원)로, 지난해 덴마크 국내총생산(GDP) 4060억 달러보다 크다. 이달 초 명품기업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를 제치고 유럽 증시 시총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 나라의 경제 전망까지 바꿔 놓을 정도로 위고비는 역대 가장 효능이 좋은 비만치료제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13kg을 감량한 비결로 단식과 함께 위고비를 꼽았고, 이후 유명인들의 ‘간증’이 잇따랐다. 임상시험 결과 참가자들은 68주간 체중을 평균 15% 감량한 것으로 나타났다. 1주일에 한 번 스스로 주사를 놓는 방식인데, 주사기 4개 1세트의 가격이 1350달러(약 180만 원)로 비싸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한다. 한국에는 내년 상반기(1∼6월)에 출시될 전망이다.
▷위고비는 100년 동안 당뇨병에만 집중한 노보노디스크가 우연히 발견한 행운이다. 당뇨병 임상시험 도중 참가자들의 체중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당뇨병 약이 체내 호르몬인 GLP-1의 역할을 해 포만감을 늘리고 식욕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심장병 치료제로 개발되던 비아그라가 발기부전 치료제가 된 것과 비슷하다. 2014년 이 회사는 매일 주사하는 방식의 비만치료제 ‘삭센다’를 내놨고, 이어 1주일에 한 번으로 투약 주기를 늘린 당뇨치료제를 ‘위고비’로 바꿔 2021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최근 전 세계 제약·바이오 업계의 화두는 ‘해피 드러그’다. 비만, 탈모, 성기능 장애, 우울증 등을 치료해 삶의 질을 높여주는 약이다. 많은 이들이 고민하는 질병이라 시장성이 높다. 비만치료제 시장은 2030년 70조 원, 탈모치료제는 2028년 15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앞다퉈 비만치료제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데, 주사약 대신 먹는 약이 싼 가격으로 나오면 시장이 뒤집어질 것이다.
▷하지만 맹신해선 안 된다. 메스꺼움, 구토, 복통, 설사, 우울증 등의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다. 투약한 뒤 사용을 중단하면 1년 이내에 빠진 체중의 대부분이 되돌아온다는 연구도 있다. 영국 의료 당국은 위고비 처방을 최대 2년으로 제한하도록 권고한다. 평생 약을 입에 달고 살 수도 없으니 결국은 생활 습관을 바꿔야 한다. 안전성과 효과가 검증된 유일한 다이어트 방법은 아직까지는 식이요법과 규칙적인 운동뿐이다.
김재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