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시, 구부정한
햇살이 노인의 등에 앉아 있었다
칼 갈아요. 왼 손으로 손잡이를 돌리며
오른 손으론 뭉특한 날들을 갈아내고 있었다
떨어져나간 무딘 날들이 쌓여
곱사등을 이룬
노인은 이윽고 휘청 일어섰다
칼 날을 벼리는 것이
숫돌의 눈물일까를 생각하다가
나는 내 벽장 속을 열어보았다
하나 둘 꽂아 둔 것이 어느새 수십 자루
칼집 속에서 칼들이 울고 있었다
챙챙 분노에 떨며
손끝만 대도 자지러지다
제 성질에 푸슬푸슬 자멸해 가는 것들도 있었다
호명당한 칼들이 숫돌 위에서 끝내
붉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하오
노인이 건네주는 칼을 받으며
덩달아 자꾸 허리가 휘어지는 것은 아마도
노인의 등 뒤,무덤 때문일 것이다
나는 번쩍번쩍 잘 벼려진 석양 한 자루가
구부러진 산 허리를 베어내는 모습을 보며
이제 그만 내 칼들을 눈부신 저녁 속으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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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문화- 상식
[詩]
칼 - 조연희
드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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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7
05.09.13 17:3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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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늘........감사^^* 님이주신 말씀 작은 행복입니다...
함께 읽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