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떠난 신자들
한때 신자였지만, 지금은 믿음을 잃어버린 자가 있다.
한때 교회를 다녔지만,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한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경도 읽고 예배도 드렸지만, 더 이상 그런데 시간을 사용하지 않는다.
한때 경건한 삶을 목표로 순결한 삶을 지향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젠 자유롭게 살아간다.
한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신분에 감사했지만, 이젠 자유로운 삶에 만족하며 떠나기를 잘했다 생각한다.
한때 하나님의 백성이요 천국의 시민이었지만, 지금은 천국의 시민권이 박탈당했다.
이들은 모두 잃어버린 자들이다.
잃어버린 자의 비유에서 탕자가 그랬다.
그는 허랑방탕하게 살아가다 돈을 잃고 아버지도 잃었다.
탕자들은 왜 떠났을까?
탕자는 세상을 멋지게 즐기고 싶어 아버지를 떠났다.
어떤 신자는 세상의 향락에 서서히 빠져 떠나갔다.
어떤 신자는 교회와 신자들에게 실망하거나 상처를 받아 떠났다.
어떤 신자는 먹고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신자는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침묵에 실망하여 떠났다.
어떤 신자는 처음부터 믿음이 작아 작은 시험거리에도 실족하여 떠났다.
어떤 신자는 세상이 주는 다양한 사상과 신념에 설득되어 떠났고 심지어 반기독교 활동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정신이 돌아왔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란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미친 삶을 살아가고 있지?
내가 어쩌다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지?
죄 때문에 타락한 자신의 실상을 똑똑히 보았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거룩함을 기억한다.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크고 책망받아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자신이 떠나게 만든 동기가 바닥났거나 그것들의 실상을 보았을 때 비로소 정신이 든다.
"그들은 아버지께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물론 탕자도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것을 영원히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 수 있을까요?"
자기 각성이 있을 때 회개로 돌이킬 수 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 돌아 갈 수 있다.
"아버지에게 돌아가자"
참된 회개는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참된 회개는 자신이 죄인임을 솔직히 시인하는 것이다.
"회개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면 용서하실 것이다.
"만일 그가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서 '회개합니다' 하고 말하거든 그를 용서해 주라" (눅 17:4)
하나님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탕자가 돌아오는데 장애물도 있었다.
탕자의 형은 아우가 회개하고 돌아오는데 분노했다.
"많은 재산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을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았습니까?"
큰 아들은 계속 작은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에 대해 분노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회개는 직접 해야 한다.
참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용서를 해 주시는 것으로 회복될 수 있다.
용서가 매우 쉬운 과정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한 번의 회개로 바코드처럼 즉시 용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때로는 간절한 회개로 며칠이나 몇 달이 걸려야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다는 싸인을 받을 수도 있다.
떠나기는 쉬웠을지 모르지만 용서는 쉽게 결재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돌아오는 자는 겸손하고 낮아져야 한다.
이전의 잘 나갔던 자리를 내려놓고 비어져야 한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일치시켜야 한다.
최종적인 용서는 하나님의 주권이지 우리의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방탕한 기간이 수년이나 수십 년이 되었는데 어떻게 간단히 기도 한번 했다고 용서를 바라겠는가!
각성과 회개하는 마음의 강도가 클수록 용서도 커질 것이다.
탕자는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자들은 아버지에게 돌아가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더 회개할 시간을 갖지 못하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
한계시간은 비단 종말의 시간을 의미할 뿐 아니라
죄악의 한계도 있어 용서받지 못하는 상태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회개의 필요성이나 각성을 갖지 못하는 상태까지 타락하게 되면 돌아올 수 없다.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눅 15:32)
하나님은 지금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계신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