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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생인 딸아이가 학교에서 나누어 준 이번 달 학습 주제 ‘힘 내! 지구야’가 적힌 종이를 들고 집에 왔다. 여름 방학 전까지 약 한 달간 하루에 한 가지씩 아픈 지구를 위해 지구를 살리는 실천들을 각자 수행하고 학부모들은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려달라는 요청이 실려 있었다.
달력처럼 만든 일정표에는 ‘과자 먹지 않기’, ‘반찬 남기지 않기’, ‘음식 만들어 이웃과 나누기’, ‘비누로 머리 감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에어컨 대신 선풍기로 버티기’ 등등 참 다양한 과제들이 적혀 있었다. 아이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과제들을 놀이처럼 재밌어하며 해냈다. 물론 사진을 찍어 올리는 재미도 있었겠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저건 아이의 과제가 아니라 부모의 과제이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결국은 이 아이들이 고스란히 감당하게 될 아픈 지구의 미래에 대하여 상당한 불안감과 부채의식이 밀려들었다. 공교롭게도 딱 그 즈음 ‘밥상의 전환’이라는 책에 대한 서평을 부탁 받았다.
서평을 써 본 적도 없고 글 솜씨도 자신이 없어 참으로 거절하고 싶었으나, 한 5년? 나름 오랜기간 생협밥을 먹었으면서도 고민의 영역을 먹을거리에서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로까지 확장해본 적이 별로 없었음을 떠올렸다. 그래서 반성하면서 그냥 ‘벌’로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나서 나의 실천 과제들을 정리해보자고 결심하면서.
<밥상의 전환>은 기후변화가 무엇인지 얼마나 심각한지 꼼꼼히 알려주며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기후변화가 농업·먹을거리와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받는지 다양하게 보여주면서 그간 기후변화에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농업이 이젠 해결자로 나서야 할 때임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또한 그 길에서 협동조합은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지 등을 풍부한 국∙내외 사례들을 제시해가며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런 수고로움을 생협 내부에서 먼저 시작하지 못했다는 것이 읽는 내내 죄송할 만큼, 이 책은 생협이 이제 먹을거리의 전환에서 에너지의 전환으로, 밥상의 전환을 통해 지구를 살리는 길에 책임있게 나서야 함을 구구 절절이 증명하고 있었다.
이 책은 그간 우리나라에서 기후변화와 에너지에 관한 여러 문제들을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제기하고, 그 대안을 마련하는데 필요한 정책과 제도와 사례를 제시하고,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여온 연구 집단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우리나라 생활협동조합의 상징이자 그 이름 자체가 정체성인 한살림의 ‘모심과살림연구소’가 같이 펴낸 책이다.
책을 만든 이들이 이미 기후·에너지 분야와 농업·협동조합 분야의 중요한 주체들이기에 이만남만으로도 아픈 지구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소중한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생협들이 아직은 먹을거리의 영역에 주로 머물러있지만, 한살림의 햇빛발전협동조합이나 울림두레생협(구 마포두레생협)의 돌봄두레 어깨동무 방문요양사업과 같은 사례에서 보듯이 조금씩 조금씩 지역을 향해, 지구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으니 머지않아 기후변화나 에너지 영역으로도 폭넓게 확대되리라 믿는다. 그 과정에서 이 <밥상의 전환>은 참 고마운 길잡이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생협을 이용하여 먹을거리를 공급받는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굳이 ‘기후변화’라는 용어를 빌려오지 않아도 지구가 점점 더워져가서 심하게 아프다는 것을 안다. 10년 넘게 멀쩡하던 복숭아 나무가 어느 해 춘삼월에 불어닥친 100년만의 한파로 얼어죽는가 하면, 밤낮으로 추웠다 더웠다하는 기온차가 너무 심하게 벌어져 익어야할 열매는 채 맺히지도 못하고 아예 알이 없거나, 턱없이 작은 농산물들이 태반인 요즘이다.
제 때를 알고 제철에 나오는 농산물들이 어느 해부턴가 일주일씩 이주일씩 앞서서 나오고 있고, 과일의 주 생산지는 점점 북상하고 있으며, 점점 일찍 피는 꽃들 때문에 벌들은 꿀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두레생협은 ‘계약 생산–책임소비’를 핵심 운영 원리로 하여, 매년 초 생산자와 함께 그 해 1년 동안 소비할 물량과 가격을 미리 협의하여 결정하고, 그렇게 생산된 물량에 한해서는 반드시 책임지고 소비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생산자는 생산자끼리만, 소비자는 소비자끼리만 협동조합을 결성하는 경우들이 다수인 외국과 달리, 협동조합 안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두 주체가 서로 얼굴이 보이는 ‘호혜’적 관계로 거래하며 독자적인 시장을 구축해온 두레와 같은 한국형 생협은 이렇듯 예측할 수 없는 농업이 가져다주는 결과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년 초에 미리 예정한대로 출하 시기나 물량을 지켜서 공급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므로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신뢰 관계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가 갈수록 예약한 날짜를 지키지 못하는 매실이나 김장배추가 많아지고, 알맹이가 없고 크기나 중량이 턱없이 작은 농산물들은 조합원 경력이 수 년 차인 조합원들조차 ‘생협을 계속 이용해야 하나’ 하는 시험에 들게 한다.
한편 소위 ‘유기농’. 자연 그대로의 방법, 아버지의 농사법대로 농사를 지어왔던 생협의 생산자들은 화학 비료와 화학 농약의 도움 없이 온전히 자신의 노력과 땅의 힘만으로 제 철에 제 모양과 중량을 채우는 농산물을 생산하기는 너무도 버거운 한계에 부딪치면서 ‘이런 식으로 유기농사를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힘들어 하고 있다.
이렇듯 기후변화로 인해 농업이, 농업으로 인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상황이니 생협은 이제 생존을 위해서라도 시급하게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이 된 것 같다.
이미 생협은 불과 30여년 전 화석 연료와 과학 기술의 힘으로 대량생산과 규격화가 가능한 산업이 되어, 땅과 물을 오염시키고 소농과 유기농을 해체해버린 대규모 관행농업에 대한 대안으로 작은 규모이지만 유기농업을 되살려낸 역사가 있다. 안전안심한 농산물을 먹겠다는 소비의 힘으로 관행농업에서 유기농업으로의 생산을 바꾸는 실험에 성공한 것이다.
물론 그 바탕에는 ‘내가 안전안심한 먹을거리를 먹기 위해서는 생산자가 안전안심하게 농사지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산자와 소비자 두 주체간의 호혜의 마음, 협동의 정신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30여 년 전보다 훨씬 더 가파르게 상승하는 현재의 지구온난화 속도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시금 생협의 두 주체간에 존재하던 ‘호혜의 마음과 협동의 정신’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이 호혜와 협동의 힘을 기반으로 먹거리와 농업의 위기를 해결해 나갔던 경험에서 이제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의 해결에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누구라도 부담 없이 읽을 만한 분량의 <밥상의 전환> 한 권을 다 읽고 나자 머릿속에는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생협에서 먹을거리가 순환-생산(농업)에서 운반(물류), 공급(매장, 배송)까지-하는 전 과정에서 에너지와 연관되지 않는 단계가 하나도 없는데, 어쩌면 단 한 번도 먹을거리와 에너지를 함께 고려하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이 가장 먼저 들었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생협에서 당장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과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서 단계별로 시작했으면 하는 일들을 하나 둘씩 정리해 보았다.
제일 처음은 우선 생협 내부에서부터 온실가스를 줄일 방법들을 찾는 것이다. 생협 안에서 이루어지는 먹을거리 생산∙물류∙공급까지 여러 단계를 꼼꼼이 살피면서 크고 작은 실천과제를 찾아내었으면 좋겠다.
<밥상의 전환>의 제안대로 생협의 주체들 모두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크고 작은 실천에 나설 수 있도록 일단 생협 주체들에 대한 교육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고맙게도 이 책이 좋은 교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조합원 개인 차원에서 혹은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자세히 안내하고, 생협 조직 차원에서 실천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찾아내어 실행에 옮겨야 한다.
생협이 직접 운영하는 물류센터나 각 매장, 배송 차량 등 생협의 사업체에서부터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자. 먼저 각 사업체에서의 에너지 사용 실태를 조사하여 구체적인 에너지 절감 목표와 정책을 마련하고, 나아가 사업체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도록 중장기 계획을 마련하자. 한살림의 햇빛발전 협동조합처럼 생협의 기반을 적극 활용하여 조합원들의 에너지 생산·판매 협동조합을 추진하는 것도 매우 좋은 사례이다.
두레생협의 경우는 강원도 원주나 화천의 생산지에서 농사를 지을 때 나오는 볏짚 같은 부산물들을 한우의 사료나 깔개로 쓰고, 한우의 분뇨는 지렁이와 미생물을 이용하여 퇴비로 만든 후 다시 농사에 투입하는 소위 ‘유축복합 지역순환농업’을 실천하고 있다. 농업과 축산업이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지역에서 순환하는 이와 같은 사례는 지역내 먹을거리 자립을 위한 중요한 계기이니 내친 김에 에너지 자립으로까지 나아가보면 어떨까?
조합원을 상대로 원주에 있는 두레생협 생산자들의 도정공장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자고 제안해보자. 캠페인을 벌이면서 원주지역을 두레생협의 먹을거리 자립과 에너지 자립의 시범지역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조합원들은 이미 태양광 전기로 도정한 쌀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작더라도 눈에 보이는 사례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두 번째는 <밥상의 전환>에서 누누이 강조한 대로 소농과 유기농의 육성이다. 소농과 유기농은 그동안 기후변화에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농업이 해결자로 전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조직된 소비의 힘이 기능하는 한 생협은 소농과 유기농을 지키고 확산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이미 그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언젠가부터 생협도 규모가 커지면서 친환경농산물의 물량 확보에만 급급해지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이런 현상은 유기농의 규모화를 초래하여 ‘과정’으로서의 유기농이 아니라 생산물만 ‘유기농 인증’을 받으면 되는 이상한 결과를 낳고 있다. 전체 농산물 중에서 유기 인증 농산물의 비율이 커지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규모화 되는 것에 대한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유기농과 소농이 지속가능하려면 일단 책임 소비를 통해 생산자에 대해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그 지역안에서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먹거리 자립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당장은 그 지역의 생협과 가까운 생산지를 직접 연결하여 일정한 간격으로 제철에 나는 채소를 무작위로 공급받는 제철꾸러미 사업과 같은, 생협 시스템을 약간만 변형하여 실천할 수 있는 로컬푸드 사업도 실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이 진짜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 두 주체간의 호혜와 협동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오이가 나는 철에는 오이만, 시금치가 나는 철에는 시금치만, 심지어 태풍이 온 후에는 빈 박스를 받더라도 생산자에게는 매달 꼬박꼬박 송금을 하여 자신이 사는 지역의 유기농업을 지켜온 일본 생협 조합원들의 사례가 있다. 적어도 그 정도의 각오는 있어야 진정한 소농과 유기농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즉 자기 텃밭처럼 작은 밭에 쭈그리고 앉아 오뉴월 뙤약볕 아래서 일일이 풀 뽑고 김 메서 보내주는 생산자들의 소중한 먹거리라면 무엇이 오더라도, 볼품없고 좀 작고 비싸더라도 감사히 받아 먹을 줄 아는 소비자의 마음과, 이렇게 믿고 먹어주는 소비자들을 위해서라면 많이 심어서 수확을 많이 하겠다는 욕심보다 번거롭더라도 다작과 윤작을 하고 거름을 직접 만들어 쓰면서 땅의 힘을 키우고 시설이나 하우스보다는 노지와 제철 농산물을 더 많이 재배하려는 생산자의 마음이 더욱 서로 북돋아져야 한다. 진정한 유기농업을 위해서라면 생협은 무엇보다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관계성을 강화하는데 특별히 힘써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생협 밖으로도 시야를 확장하여 더 크고 장기적인 사회적 실천 과제들을 고민하였으면 한다.
지구가 더워지면 북극곰 이전에 가난한 사람들이 먼저 피해를 입게 된다. 선진국들이 설탕이나 커피, 초콜렛 같은 기호식품들을 값싸게 생산하기 위해 제 3세계 국가들에 엄청난 규모의 플랜테이션 농업을 시작한 이후, 제방 역할을 하던 열대 우림들을 밀어내어 농지를 조성함에 따라 매년 쓰나미에 몇 만 명씩 속수무책으로 휩쓸려가는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주민들이 실은 더 큰 피해자일 수 있다.
특히 요즘은 석유를 대체할 연료로 각광받는 바이오 연료 생산을 위해 사탕수수나 옥수수 같은 식량 작물을 대규모 플랜테이션으로 재배하는데, 이 덕분에 브라질 아마존 같은 열대 우림 지역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이고, 식량은 넘쳐나는데도 정작 지구상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10억명이 넘는 사람들의 배를 채울 식량은 없다. 더 많은 이윤을 내기위해 자동차를 굴리고 소들에게는 먹일지언정 기아 상태의 아이들이 먹을 식량은 없는 것이다.
그리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례는 많다. 해마다 극심해지는 혹한기나 혹서기에 혼자 지내시다 돌아가시는 독거노인들에 대한 뉴스가 늘고 있다. 에너지 효율 제로인 쪽방촌 같은 곳에서 난방비가 없어 전기담요 한 장으로 버티거나, 선풍기 한 대로 버티다가 돌아가시는 것이다. 이렇듯 가장 약하고 소외된 이들이 실은 기후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과거 배고프던 시절에 먹을거리가 국민의 기본권이었듯이 이제는 에너지도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국민의 기본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에너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에너지 기본법 제정 등의 법, 제도 개선에 관심을 가지는 것. 에너지 협동조합을 준비할 때 지역 차원의 에너지 자립을 위한 목표를 세우거나 지역의 소외계층을 지원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것 등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지역차원에서는 법과 제도로 해결하기 이전에 협동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도 많다. 사회적 차원의 협동, 지역을 책임지는 협동을 실천하는 일도 이제는 생협의 과제이다.
하루하루 일 속에 갇혀서 먹을거리 하나밖에 보지 못하던 내가 <밥상의 전환> 덕분에 기후변화 시대에 생활협동조합이 할 일들을 고민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고마운 점은 초보자도 알기 쉽게 쓰여졌고 사례도 많아서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해 지금이라도 무언가를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생협의 조합원들에게는 너무도 친절한 안내서이자 길잡이가 될 것이다.
아픈 지구에게 조금이라도 빚이 있다고 느끼신다면, 이제 막 시작했지만 나부터라도 뭐든 하고 싶다고 느끼신다면, 협동조합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으신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읽으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