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를 출발한 열차는 덕소에서 양평까지 남한강을 따라 흐르다가,
지세가 험한 산 속으로 본격 가도를 달린다.
특히 용문에서 원주(동화)에 이르는 구간은 국도 하나 없는 구간으로,
구둔-매곡 사이의 험한 지맥을 정점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악 풍경이 백미인 곳이다.
바로 그런 경기도 오지의 끝이자 산악철도 구간의 1차 정점이기도 한 구둔역.
중앙선 열차가 구둔역을 지나면 산맥 줄기를 처음으로 통과하게 되는데,
그 산줄기 바로 옆에 위치한 덕인지 마을보다 훨씬 높은 고지대에 역이 위치한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오지이지만 여러 곳에서 예쁜 간이역으로 소개되면서,
주말에는 가족끼리 느인끼리 일부러 구둔역을 방문하기도 한다.
비록 일반인에겐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역이지만,
간이역 고유의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지친 일상을 피해 간이역의 낭만과 여유를 한 껏 느끼러 온 사람들.
그러면서도 주변 풍경과 무척 조화가 잘 되어있어 여유는 오히려 배가 되는 역.
숲 속에 차려진 조그만 정원, 구둔역이다.
갈색 지붕의 멋드러진 모양새를 하고 있는 구둔역.
역의 생김새부터가 유럽의 조그만 집을 연상케 한다.
이 역이 지어진 것이 중앙선이 생겼을 무렵이니,
70년 가까운 세월동안 중앙선과 동고동락을 함께했던 것이다.
70년 가까운 세월은 구둔역에게 '낭만'이라는 아름다움을 가져다주었다.
구둔역은 보이다시피 산 속 마을 끄트머리 조그만 오솔길 사이에 위치해있다.
역 앞으로는 지방도로 이어지는 1차선 마을 골목이 이어지고,
그 옆으로는 포장조차 되지 않은 흙길이 이어진다.
마을의 산 속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어서 주변에 키가 큰 나무들로 무성하다.
역 건물과 더불어 70년 세월을 동고동락했던 나무들 또한 어엿한 구둔역의 주인이다.
구둔역 앞은 조그만 계곡이 양 옆으로 이어진다.
계곡 사이로 능선을 따라 마을이 드문드문 펼쳐지는데,
그 풍경은 참으로 진풍경이라 할 수 있다.
이 곳이 정말 '수도권'이 맞는지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깨끗한 청정 자연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어딜 살펴봐도 '숲 속의 작은 정원'이란 표현이 딱 맞아떨어진다.
주말 관광객이 꽤 있기 때문에 역 내부도 상당히 잘 꾸며져있다.
'구둔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찌나 독특한 분위기로 소문이 났는지 일부 연예인들이 찾아와 발자취를 남기기까지 하였다.
이렇게나 유명세를 타고 있는 멋진 역인데, 그 옆에 있는 표지판들이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간직한 구둔역에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달까...
청량리방면 하루 4번, 제천방면 하루 3번.
산비탈에 위치한 조그만 역이기에 정차 열차는 그리 많지 않다.
사실 구둔역의 주 업무는 신호업무이기에 여객비중은 극히 적은 편.
아직까지도 석불역처럼 기본요금이 3,200원 그대로 남아있고 팔당, 만종역 요금표까지 나와있다.
교통이 불편한 관광지인 만큼 열차 이용안내가 무엇보다 절실한데...
이 것 또한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역사 밖을 빠져나와 안을 둘러보면 그야말로 절경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중앙선 철도를 건설할 때 심어놓아 벌써 아파트처럼 훌쩍 키가 커버린 나무들이,
역 곳곳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구둔역을 '명품 정원'으로 만들어준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개중에는 이렇게 역사와 선로 사이에 우뚝 솟은 것도 있다.
짹짹 지저귀는 새소리, 맴맴 귀를 찌르는 매미소리...
이보다 더 한적하고 평화로운 소리가 어디에 있을까...
이보다 더 한적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어디에 있을까...
높디높은 산 중턱에 위치한 역이지만, 선로 반대편에도 마을이 있다.
철길에서 바라보는 마을은 그렇게 높아보이지는 않지만,
밑의 계곡에서 바라보는 마을은 산 꼭대기에 있다해도 믿을 정도로 높아보이기만 할 것이다.
바로 저 마을을 외지로 연결시켜 주는 것도 '구둔역'이다.
선로 너머에는 마을뿐 아니라 조그만 논과 밭도 있다.
사진에 담진 않았지만 저 논에선 역무원 분들이 주민들의 농삿일을 거들어주셨다.
비록 현재의 철도 추세는 '사람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지만,
적어도 구둔역에서만큼은 그런 얘기가 일절 통하지 않는다.
주민들과 화합하고 같이 어우러지는 조그만 안식처인 것이다.
중앙선이 다른 노선보다 더욱 매력적이고,
구둔역이 다른 중앙선 역들보다 더욱 매력적인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조그만 철도 간이역들 중 가장 주민들과 가까운 곳에서 호흡하는 역,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면서 화합의 꽃을 피우는 역.
이렇게 사람, 자연 모두와 조화를 이루는 곳은 구둔역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건너편의 승강장.
중앙선에서 구둔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곳은 원덕역과 신림역인데,
원덕과 신림의 건너편 승강장이 흙으로 이루어진 반면 구둔역은 자갈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자갈밭은 여러 잡초들로 조그만 숲을 이루고 있다.
아쉽게도 80년대말의 은색 철제역명판이 아닌 90년대 중반형 검은 역명판이다.
개인적으로는 KTX도입과 함께 바뀐 파란색 역명판보다 더 매력없다고 느껴지는 역명판.
크기는 가장 거대한 반면 간이역의 매력과는 가장 동떨어진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열차가 정차하는 역건물쪽 승강장또한 고운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 속에 숨어서, 자연과 한 몸을 이루는 구둔역에선 신선한 시골의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신선한 공기, 수려한 경치, 포근한 흙길 모두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더 없이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하고 있다.
구둔을 비롯해 아신, 원덕, 판대, 반곡, 신림과 같은 역들의 특징은 승강장이 무척 길다는 것이다.
양 옆으로 다른 방향에 승강장이 나 있어, 끝에서 끝까지의 길이가 거의 KTX역과 맞먹는다.
그래서 양 끝 선로의 풍경이 전혀 다른 이색적인 모습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양평-용문-석불역 방면으로는 높이 솟아오른 산등성이를 향해 왼쪽으로 굽어친다.
그 주변으로는 아무리 둘러봐도 푸른 나무의 숲밖에 보이지 않는다.
반면 매곡-양동-원주 방면으로는 화려한 곡선의 향연이 펼쳐진다.
바로 앞의 저 ㄱ자 곡선을 크게 돌고 나면, 드디어 산줄기를 넘는 터널이 나온다.
중앙선에서 가장 먼저 산줄기를 넘는 구간이 바로 이 곳으로,
양평에서 올라오기 시작한 철길이 정점을 찍는 구간이기도 하다.
원주-제천 구간에 비교할 바는 되지 않겠지만,
여기도 꽤나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수려한 경치와 고즈넉한 분위기는 절정을 이룬다.
사람들이 여유롭게 쉬며 이야기를 나누기에 전혀 아깝지 않은 멋진 곳이다.
매곡역방면 끝쪽 승강장에서 구둔역을 쳐다보면 역은 아예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그만큼 구내가 무척 길고 넓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주변의 푸른 숲 덕분인지 전혀 삭막하다거나 위압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로 시골의 말로 표현 못할 매력이 솔솔 풍겨올 뿐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구둔역...
비록 이설이 되면 이런 화사한 분위기도 모두 사라져 버리겠지만,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 건물은 멀쩡히 남아있을 것이고,
개발을 할 일도 없는 지역이라 철길도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면 또다른 관광자원으로 개척되어 꾸준히 손님들이 찾아와줄 것이다.
숲 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정원, 구둔역.
주민들도 역무원분들도 모두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다른 간이역에선 느끼기 힘든 그 무언가의 매력을 구둔역에서 맘껏 쐬어본다.
비록 열차가 더 이상 다니지 않게 되더라도,
아름다운 정원의 화사한 풍경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아주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첫댓글 수도권가까이 이런 곳이 있다니,,반드시 찾아봐야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