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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 562
■ 2부 장강의 영웅들 (218)
제9권 장강은 흐른다
제 29장 오자서(伍子胥)의 분노 (1)
- 내정은 안영(晏嬰),군사는 전양저(田穰苴).
두 사람이 조화를 이루면서부터 제경공(齊景公)은 한결 손발이 편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복잡한 일에서 벗어나 마음껏 군주 생활을 즐겼다. 날마다 사냥과 술로써 소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齊)나라는 날로 안정되고 부강해져갔다.
지난날 제환공(齊桓公)이 관중과 영척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자신은 실컷 즐긴 것과 흡사했다.
이런 일화가 있다.어느 날, 제경공(齊景公)은 희첩들을 거느리고 술을 마셨다.
그런데 밤이 깊었건만 웬일인지 흥이 나질 않았다. 제경공은 문득 안영 생각이 났다.
측근 시자(侍者)에게 분부했다.
"술과 음식을 재상 안영의 집으로 옮겨라. 내 거기 가서 재상과 함께 이 밤을 즐기리라."
궁중 신하 몇 사람이 먼저 달려가 안영에게 통보했다."주공께서 이리로 행차하십니다."
안영(晏嬰)은 황급히 관복을 갈아입고 띠를 두른 후 홀(笏)을 잡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제경공의 수레가 당도했다. 그가 수레에서 내리기도 전이었다.
안영(晏嬰)이 황망히 그 앞으로 나가 제경공에게 물었다.
"어느 나라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습니까? 아니면 국내에 무슨 변이라도 생겼습니까?"
"아니,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소."
"그러시다면 무슨 일로 이 밤중에 신의 집에 행차하셨습니까?"
"밤도 깊고 한데 혼자 술 마시기가 심심하여 경과 함께 놀고자 왔소."
그러자 안영(晏嬰)이 정색하고 대답했다.
"나라에 관한 일이나 다른 나라 제후에 관한 일이라면 신이 능히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술과 음악과 노는 일에 관해서라면 다른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신은 함께하고 싶지 않습니다."안영의 말에 제경공(齊景公)은 무안하고 쑥스러웠다.
수레를 돌려 사마 전양저의 집으로 향했다. 전양저(田穰苴)도 제경공의 행차 소식을 듣고
갑옷 차림에 창을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가 제경공을 영접했다.
"다른 나라 제후들 중 누가 군사라도 일으켰습니까?
아니면 대신들 중 누가 반역이라도 도모했습니까?"
"그런 일은 없소.""그러시다면 이 밤중에 무슨 일로 신의 집까지 행차하셨습니까?"
"과인이 온 것은 다름이 아니오. 장군과 함께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즐기기 위해서 왔소."
전양저(田穰苴)가 정색하고 대답했다."적군을 막고 역적을 죽이는 일이라면
신을 불러서 상의하십시오. 그러나 좋은 술과 좋은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신하라면
주공 좌우에 얼마든지 많습니다. 어찌 갑옷 입은 신하가 필요하겠습니까?"
제경공(齊景公)은 이내 흥취를 잃었다. 좌우 시자들이 물었다.
"궁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제경공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아니다. 어찌 그냥 돌아갈 수 있겠는가. 대부 양구거(梁丘據)의 집으로 가자."
시자 한 사람이 양구거의 집으로 가 제경공의 행차를 선통했다.
이에 양구거(梁丘據)는 손으로 악기를 타고 노래를 부르며 큰길까지 나와 제경공을 맞이했다.
제경공(齊景公)은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양구거의 집으로 들어가 함께 술과 음악을 즐기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궁으로 돌아갔다.다음날이었다.
안영(晏嬰)과 전양저(田穰苴)는 함께 궁으로 들어가 제경공에게 지난밤의 일을 사죄한 후 간했다.
"앞으로는 밤중에 신하의 집에 찾아가 술을 즐기시는 일을 삼가십시오."
제경공(齊景公)이 대답했다."그대들 두 사람이 없다면 과인이 어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소?
하지만 양구거 같은 사람도 필요하오. 그 같은 사람이 없다면 나는 무료해서 미쳐버릴 것이오.
나는 그대들의 직무를 방해하지 않을 터이니, 그대들도 나의 일에 너무 간섭하지 마오."
돌아보면 제경공의 반생은 술과 사냥으로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코 명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는 제환공과 더불어 명군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만큼 제(齊)나라를 안정시키고 부강케 했다.
그는 놀기는 좋아하되 방탕하지는 않았다. 도를 넘지 않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안영의 충간(忠諫)과 가르침 덕분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아마도 안영(晏嬰)은 재상을 역임하는 동안 내내 제경공이라는 평범한 군주를 교육시키며
지내지 않았을까.제경공과 안영 사이에는 술과 관련하여 이런 일화도 전해온다.
어느 날, 제경공(齊景公)은 궁중으로 대신들을 불러 주연을 베풀었다.
안영도 참석했다. 취흥이 절정에 달하자 제경공이 대부들에게 말했다."예의는 필요 없소."
상하 관계를 따지지 말고 신나게 마셔보자는 제안이었다.대부들은 기뻐했다.
그런데 안영(晏嬰)만이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주공의 말씀은 잘못되었습니다."군주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 신하는 힘과 용기를 가지고 있다.
힘과 용기를 가진 자가 그 군주를 해치지 못하도록 장치해놓은 것이 바로 예의다.
그러므로 군주와 신하의 관계는 애초에 예의(禮儀)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셈이다.
"예의를 던져버리면 금수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힘이 센 자가 지배한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죽인다.
그래서 매일 우두머리가 바뀐다. 그러나 사람의 세계는 그렇지가 않다.
"그것은 바로 예의(禮儀)가 있기 때문입니다."안영의 이 직간으로 술자리의 흥은 깨졌다.
제경공(齊景公)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모두들 안절부절 못하는 중에 안영(晏嬰)만이
그 자리에 앉은 채 술잔을 기울였다. 제경공은 더욱 기분이 상했다.'무례하다.'
내궁으로 향하던 제경공이 갑자기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안영(晏嬰)이 어떤 모습으로 술을 마시는가를 봐야겠다."
제경공이 다시 술자리로 돌아왔다. 모든 대부들이 일어나서 맞이했다.
그러나 여전히 안영만은 자리에 앉은 채 술잔을 입에서 떼지 않았다.
제경공(齊景公)은 분노를 삭힌 채 안영 앞에 앉으며 말했다.
"그대가 그처럼 술을 좋아하니, 나와 한번 대작해봅시다."주량으로 안영의 기를 꺾으려는
것이었다. 서로 술잔을 채웠다. 이런 경우 군주가 먼저 마시는 것이 예의였다.
그런데 안영(晏嬰)은 술잔이 차자마자 먼저 훌쩍 마셔버렸다. 마침내 제경공의 분노가 폭발했다.
눈을 날카롭게 치켜뜨며 한마디 쏘아붙였다.
"그대는 조금 전에 예의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소. 그런데 이것이 무엇이오?
그대는 내가 와도 일어나지 않았고, 술잔을 나누면서도 먼저 마셨소. 이것이 그대가 말하는 예의인가?"
그러자 안영(晏嬰)이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올리며 대답했다.
"신이 어찌 스스로 말한 것을 잊었겠습니까. 신은 다만 무례(無禮)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드리려 했을 뿐입니다. 만일 주공께서 예의를 버리기를 바라신다면 모든 대부는
이렇게 행동할 것입니다.
"안영(晏嬰)은 진심으로 제경공이라는 군주에게 애정을 가졌던 것이 틀림없다.이런 일도 있었다.
추운 겨울 아침이었다.
조당에서 얘기를 나누는 동안 제경공(齊景公)은 몸에 냉기가 스미는 것을 느꼈다.
무심코 안영에게 청했다."미안하지만 따뜻한 음식을 가져다주지 않겠소?"
안영(晏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신은 음식을 나르는 관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두꺼운 가죽옷이라도 가져다주시오.""그 일은 신의 임무가 아닙니다. 할 수 없습니다."
제경공(齊景公)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그럼 그대는 무엇을 하는 신하인가?"
"신은 사직(社稷)의 신하입니다."안영의 대답에 제경공(齊景公)이 따지듯 물었다.
"사직의 신하라는 것이 무엇이오?"
"사직(社稷)의 신하는 나라를 존립시키며, 상하의 본분을 판단하며,
도리를 알고 백관의 서열을 정하여 그 역할을 알게 해줍니다. 또한 사령(辭令)을 만들고,
사방에 널리 지키게 합니다. 이것이 신하의 임무입니다."
한마디로,
- 나는 제경공 개인의 신하가 아니라 제경공이라는 제나라 군주의 신하다.라는 것이었다.
제경공(齊景公)은 섬뜩함을 느꼈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얼른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내가 경에게 비례(非禮)를 저질렀소. 용서하시오."
563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563
■ 2부 장강의 영웅들 (219)
제9권 장강은 흐른다
제 29장 오자서(伍子胥)의 분노 (2)
안영(晏嬰)은 춘추시대 중, 후기를 통해 가장 군자(君子)다운 사람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재상으로서가 아닌 인격적인 면에서 이런 평가를 받게 된 것은 온전히 그의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 였다.그 대표적인 일화가 바로 월석보(越石父) 일화가 아닌가 싶다.
지난날이었다.
안영은 진(晉)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하는 도중 중모(中牟)라는 읍 가까이 이르렀을 때,
나무 그늘 아래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몇 사람의 노예를 보았다. 그 중 한 노예가 안영의 눈길을 끌었다.
그 노예는 찢어진 갖옷에 지친 몰골이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여느 노예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겨내고 있었다.
안영(晏嬰)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사람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먼지를 뒤집어쓴 거무튀튀한 얼굴이었으나 과연 눈동자 속에는 비천함이 아닌 당당한 빛이 서려 있었다.
'본래부터 천한 사람이 아니다. 군자의 기색이 엿보인다.'
이렇게 생각한 안영(晏嬰)은 그의 곁으로 다가가 슬그머니 앉아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는 물었다.
- 이름이 무엇이오?- 저는 제나라 태생으로 월석보(越石父)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보(父)는 아무에게나 붙이는 이름이 아니다. 상당한 존칭이다. 그런 존칭을 이름에 붙이고 있는 것을 보면
그전에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사람임에 틀림없었다.안영(晏嬰)이 물었다.
- 어떻게 해서 여기에 오게 되었소?그 노예는 순순히 대답했다.
- 죄를 지은 적이 있습니다. 그 대가를 받고 있는 것이지요.- 얼마나 되었소?- 3년쯤 되었습니다.
얘기를 나눌수록 그 노예의 인품과 지식과 언행이 안영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안영(晏嬰)은 그를 노예의 신분에서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그래서 다시 물었다.
- 속(贖)할 수는 있소? 속이란 돈이나 재물을 주고 그 죄를 씻어주는 일을 말한다.
당시 노예는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원래부터 천민인 경우였고, 다른 하나는 죄 지은 사람을
노예로 삼는 경우였다.죄를 짓고 노예가 된 사람은 그 죄에 해당하는 속(贖)을 바치면
노예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안영의 물음에 월석보(越石父)는 놀라운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 있습니다.- 좋소. 내가 그대를 속(贖)해 주겠소.안영(晏嬰)은 일어나서 노예의 주인과 협상했다.
주인은 안영의 수레를 끄는 좌참(左驂) 말을 요구하였다. 상당히 비싼 대가였다.
그러나 안영은 망설이지 않았다.- 좋습니다.
거래는 성사되었다. 안영(晏嬰)은 월석보를 데리고 임치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월석보(越石父)는 안영의 식객이 되었다.그런데 나라일이 바쁜 관계로 그 뒤 안영(晏嬰)은
월석보와 얘기 나눌 기회를 갖지 못했다. 아예 잊어버린 듯했다.
며칠이 지났을 때 월석보(越石父)가 안영의 방을 찾아와 노한 표정으로 말했다.
- 나는 이집에서 나가겠소.이를테면 절교를 선언한 셈이었다. 안영(晏嬰)은 영문을 알 수 없어 물었다.
- 나 안영은 일찍이 그대를 알지 못하였지만 그대의 죄를 씻어주고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소.
그런데 그대는 또 무엇이 섭섭하다는 것이오?월석보(越石父)가 대답했다.
- 내가 듣건대, 모름지기 사(士)란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굽히고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편다'고 하였습니다.나는 지난 3년 동안 남의 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나를 알아주고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나에게 예의(禮儀)를 갖추어 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한마디 말을 건네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나를 노예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내 어찌 그대 앞에서 몸과 뜻을 펼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밖으로 나가 죄수의 몸으로 있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절교를 선언했던 것입니다."
- 아..............!안영(晏嬰)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순간적으로 창피함이 일기도 했다. 나는 얼마나 교만했던가!
남의 일은 알지만 자기의 일은 모른다는 말이 맞구나. 그 동안 저 사람은 나를 얼마나 비웃었을까.
안영만큼 자성(自省)이 엄격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한순간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망각하고 있었다. 그것을 안영(晏嬰)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정말 송구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는 그대의 겉모습을 보고 그대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대의 진면목을 알았습니다.
- 모름지기 공(功)과 실(實)을 살피는 자는 명성을 얻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행실을 돌아볼 줄 아는 자는 잘못을 지니고 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이제 나의 불민(不敏)함을 뉘우치겠습니다. 그대에게 사과드리는 바이니,
바라건대 나를 버리지 말아주십시오.안영(晏嬰)은 명쾌하다 싶게 자신의 잘못을 빌었다.
그제야 월석보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읍하며 대답했다.
- 선생께서 나를 예로써 대우하시니, 어찌 감히 명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이때부터 안영(晏嬰)은 월석보를 집안의 최고 귀빈으로 삼아 대접하였다.
안영의 자기 성찰은 가히 이와 같았다.그가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곤액(困厄)을 당하지 않고
평생 자기 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자기 성찰의 덕분이 아니었을까.
안영(晏嬰)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일화가 또 하나 있다.
안영의 작은 키와 연관된 것으로 그의 수레를 모는 마부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사기>의 <관안열전(管晏列傳)> 편에도 실려 있다.
안영의 수레는 네 마리 말이 끄는 사두마차다.
신분이 재상이었으므로 수레에는 큰 차양이 드리워져 있었다.
어느 날, 안영(晏嬰)이 외출을 하려고 하므로 마부가 먼저 나가 수레를 대기시켰다.
그는 수레에 올라 차양막 아래에 앉아 안영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찌나 의기양양했던지 마치 자신이 재상이 되기라도 한 듯한 표정이었다.
반면, 방을 나와 수레에 오르는 안영(晏嬰)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고,
몸가짐도 조심스럽고 아주 겸손했다.그 광경을 마부의 아내가 문틈으로 엿보았다.'한심하다.'
마부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얼마 후 남편이 귀가하자 마부에게 대뜸 청했다.
- 이혼합시다.마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까닭이오?아내의 대답인즉 이러했다.
- 안자(晏子)는 키가 여섯 자도 안 되는데, 제(齊)나라 재상이 되어 제후들 사이에 명성을 날리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그분의 외출하는 모습을 보니, 품은 뜻이 심오하고 자신을 낮추는 겸허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떠했습니까? 키가 여덟 자도 넘는데도 남의 마부 노릇을 하면서
대단히 만족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혼을 청하는 이유입니다.
수레를 관리하는 사람으로는 세 종류가 있다.어(御), 어(圉), 복(僕)이 바로 그것이다.
어(御)는 마부, 즉 운전자다. 어(圉)는 수레를 모는 말을 키우는 관리자다. 복(僕)은 수레 자체를
정비하는 사람이다.같은 수레 관리자도 마부인 어(御)가 신분이 가장 높다.
대개 수레 주인의 심복 가신이 어자(御者)가 된다. 안영의 마부는 이 점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던 것 같다.
그런 중에 아내로부터 이 같은 얘기를 들었다. 마부는 몹시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 날 이후 그는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졌다. 절대로 으스대는 경우가 없었다.
어(圉)나 복(僕)에게도 공손히 대했다. 그의 변화는 안영의 눈에도 띄었다.'이상한 일이로군.'
하루는 안영(晏嬰)이 마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마부는 고개를 숙이며
아내의 말을 그대로 들려주었다.안영(晏嬰)은 마부의 아내에 대해 감탄했다.
아울러 자기 자신을 변화시킨 마부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제경공에게 추천하여 그 마부를 대부로 삼았다.
단순히 재미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숙연케 하는 그 무엇이 담겨 있는 일화다.
<사기>를 쓴 사마천(司馬遷)은 춘추시대 여러 인물 중 안영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
- 만약 안자(晏子)가 지금 살아 있다면 나는 그를 위해 마부가 되어 채찍을 드리는 일도
서슴치 않았을 것이다.얼마나 흠모했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
564편에 계속
첫댓글 초나라 출신 오자서의 대활약이 시작되겠네요.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