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 “죄송” “반성” 고개 숙인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국회청문회
李, 재산신고 누락 등 사과
아빠찬스 의혹에 “사실이면 사퇴”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하고 있다. 박형기 기자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61·사법연수원 16기·사진)가 1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재산신고 누락 의혹 등에 대해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야당은 “현행법을 위반한 사람을 사법부 수장으로 임명할 수 없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을 통해 “재산신고 등과 관련해 미비한 점으로 드러난 부분에 대해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후 야당의 질타가 이어지자 처가 측 회사 비상장 주식 10억 원 상당을 재산신고 때 누락한 경위에 대해 “(취득 후) 처음에는 등록(신고) 대상이 아니었고 처가 쪽 재산 분배였기 때문에 저는 거의 인식을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은 “10억 원 넘는 재산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한 것”이라면서 사퇴를 요구하며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이 후보자는 이날 8시간가량 진행된 청문회에서 “송구하다”는 표현을 11차례, “죄송하다”를 2차례, “반성한다”를 2차례 사용하며 고개를 숙였다. 다만 이 후보자는 아들의 김앤장법률사무소 인턴 채용과 관련된 ‘아빠 찬스’ 의혹에 대해선 “(아들이) 독자적으로 들어간 것”이라며 관여 사실이 드러날 경우 사퇴하겠다고 했다.
이날 청문회에서 야당은 이 후보자의 재산신고 누락과 세금 탈루 의혹을 집중 제기하며 “현행법 위반이 명백해 사법부 수장으로 부적격하다”고 공세를 폈다. 반면 여당은 “사법부 정상화의 적임자”라며 이 후보자를 옹호했다.
이균용, 재산신고 누락엔 “잘못”… 아들 인턴 의혹엔 “문제없다”
대법원장 후보자 청문회
딸 증여세 탈루 의혹엔 “송구”… 농지법 위반 의혹엔 적극 반박
李, ‘재판 지연 해결’ 과제로 꼽아… 與 “사법부 정상화 적임” 野 “부적격”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 후보자의 딸이 증여세를 탈루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 후보자의 배우자가 2018년부터 최근까지 장녀의 해외 계좌로 총 6800만 원을 보냈지만, 장녀가 증여세를 전혀 납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는 “부모로서 도와주는 정도의 생활비였기 때문에 증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딸과 관련해선 “예술가라는 사람들이 대체로 화려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정 수입이 거의 없어 생활이 상당히 어려운 편”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로부터 재산신고 때 자녀의 해외 계좌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지적까지 이어지자 이 후보자는 “(자녀들이 해외에) 별다른 재산이 있다고 인식하지 못했다”며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해외에서 생활하던 장남을 2019년 1월까지, 장녀는 지난해 11월까지 자신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하며 건강보험법을 어겼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제가 외국에 살아본 경험이 없어서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며 인정했다. 이 후보자는 성범죄 감형 판결과 법원노조 다면평가 하위권 점수에 대해서도 “반성적으로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 ‘아빠 찬스’ 의혹은 적극 반박
다만 이 후보자는 아들의 ‘아빠 찬스’ 의혹과 농지법 위반 의혹에 대해선 적극 반박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로스쿨을 다니지 않은 이 후보자의 장남이 20세 때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인턴을 한 것을 두고 ‘아빠 찬스’라고 비판했다. 이에 이 후보자는 “(아빠 찬스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저와 관련해서 들어간 게 아니라 독자적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반박했다. 심 의원이 이 후보자 소유의 부산 동래구 명장동 땅이 농지법 위반이라고 지적하자 이 후보자는 “농지법을 위반한 적 없다”고 맞섰다. 지목은 ‘논’이지만 실질적으로 ‘잡종지’ 상태였다는 해명이었다.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친분을 거론하며 3권분립 훼손 우려도 제기했다. 민주당 김승남 의원은 이 후보자가 “윤 대통령은 제 친한 친구의 친구다”라고 한 걸 언급하며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을 받고 사양한 적 있나”라고 물었다. 이 후보자는 “없다. (윤 대통령과)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다”라며 “사법권 독립을 수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여당은 이 후보자를 적극 방어했다.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은 “대법원을 바로 세울 수장으로서 적임자”라며 “처가댁이 돈 많은 게 무슨 죄인가. 이 후보자가 윤 대통령 얼굴 몇 번 본 걸로 친구라고 한다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내 친구”라고 했다. 같은 당 장동혁 의원도 “서울대를 나오지 않고, 윤 대통령과 함께 근무하거나 식사 한번 같이하지 않은 법관은 대한민국에서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엄호했다.
● “재판 지연 해결 방안 찾을 것”
사법부의 최우선 과제로 이 후보자는 재판 지연 문제 해결을 꼽았다. 다만 원인과 해법에 대해선 “재판 지연은 신화 속 괴물 ‘히드라’(머리가 여러 개 달린 괴물)와 같아서 그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며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도입한 법원장 추천제에 대해선 “(법원) 내부에도 개선 요구들이 있다”며 “사법행정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법원장이 돼 더 나은 법원으로 만들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이 후보자는 이날 정치 현안에 대한 질의엔 대체로 말을 아꼈다. 다만 검찰의 이재명 대표 수사가 지나친 것 아니냐는 야당 질의가 나오자 “제가 아는 범위에서는 (법원이) 나름대로 검찰의 수사권에 대해 상당한 통제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장은지 기자, 장하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