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하철 사당역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매일 지하철을 타면서도 제대로 몰랐던 사실인데, 2호선 사당역은 플랫폼의 높이와 전동차 탑승문의 높이가 좀 심하게 차이가 난다. 신형 전동차 도입 이후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플랫폼과 탑승문 사이의 거리가 먼 것 같으면 이건 그나마 사람이 주의를 하면 되는데, 이게 높이가 차이가 나 버리면 휠체어는 탑승 자체가 상당히 어려울 정도로 불편해진다.
공교롭게도 그 날 내가 섰던 문이 열리자 마자, 한 장애인이 전동휠체어를 탄 상태로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몇 번씩 탑승 시도를 했지만 전동휠체어가 슈퍼카도 아니고 그 높이차를 극복할 토크가 나올 리가 만무했다. 나는 사람들 틈바구니 사이에 묻혀 약간 뒤쪽에 있었는데, 문 앞에 서 있던 젊은 청년 남녀 두 분이 곧바로 도와주려 하였으나 왠지 휠체어는 잘 올라오지 못했고, 그 와중에 지하철 문과 스크린도어가 사정없이 닫히는 바람에 외려 도와주던 청년들이 문에 끼어 다칠 뻔 했다.
결국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휠체어는 탑승을 하긴 했지만... 결국에는 말이다, 전장연이 그렇게까지 욕을 먹어 가면서도 우직하게 사람들 출근길을 방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결국 그들에게도 있었던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전장연의 출근길 시위에 관해 유명한 영상이 하나 있다. 이 사람들이 지하철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자, 어떤 사람이 할머니 임종을 보러 가야 한다고 울부짖는데, 시위 중이던 장애인 한 사람이 버스를 타시라, 라고 무표정하게 이야기했던 영상이다. 이 영상은 삽시간에 퍼져 전장연의 시위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는 데에 일조했고, 이준석과 같은 정치인들이 '비문명적' 이라는 용어까지 써 가며 그들을 때리기에 아주 좋은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어제 사당역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 그렇게 급하다면, 지하철 말고 버스를 타고 가시라는 그 무표정하면서도 지침에 찌든 그 목소리, 그리고 플랫폼과 지하철 출입문 사이의 10cm도 되지 않는 그 공간을 절대로 넘어갈 수 없었던 그 휠체어가 겹치면서, 그 작은 공간조차 절대로 넘어갈 수 없는 세월을 평생을 살게 되면, 사람이 결국 그렇게 무표정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실제로 대한민국 사회라는 곳은 그 10cm 라는 공간을 장애인들이 장애가 없는 사람만큼 쉽게 넘나들게 하기 위해 특별히 뭔가를 알아서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을 넘어가는 것은 오직 장애가 있는 그들의 책임이자 과제였고, 지하철역에서 장애인이 2명이나 사망하는 사고가 잇달아 터지고 나서야 정부는 못 이긴 듯 인프라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장애라는 것이 그들이 갖고 싶어서 가진 것이 아닐진대, 그들이 평생을 사는 동안 국가와 사회는 오직 그들에게 냉담하기만 하였다. 그런 대접만을 받고 살던 사람들이, 비록 안타깝기는 하나, 누군가의 임종을 지키러 가야 한다는 호소에 말이다.
과연 우리와 같은 수준으로 살갑게 대응해야만 할 그런 이유가 그들의 삶에 있기는 했던 것일까 싶다는 것이다.
장애라는 것이 사실 그렇게 어렵게 찾아 오는 것도 아니다. 멀게 가지 않고, 당장 열흘 전에 태어난 우리 아이도, 병원에서 조금만 자궁 수축을 늦게 발견했다면 태중에서 무호흡이 발생하여 높은 확률로 뇌손상을 지닌 상태로 태어났을 수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 부부는 평생을 죄책감을 이고 살면서, 아이의 장애를 고통 속에 책임지면서 살다가. 죽을 때 눈도 편히 감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회에 애정을 가지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고.
하버드 나오시고 집권 여당 당대표도 해보시고, 이제 뱃지도 다신 어떤 분은 이런 것들이 다 비문명으로 보일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되묻고 싶다. 그 조그만 틈새를 넘어가는 것도 도와주지 않는 공동체가 과연 존속할 자격은 있냐고 말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그 날 그 휠체어가 그 틈새를 넘어갈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도 젊은 청년들이었다는 것이다. 같은 공동체 구성원들을 그저 야만인으로 후려치는 사람이 국회에까지 입성하는 어불성설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지만, 꼭 젊은이라고 해서 그처럼 살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나는 그날 그 틈새에서 정말 많은 것을 또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