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에게는 총 8명의 아들이 있었죠
첫째 부인 한씨 6명
둘째 부인 강씨 2명
한씨에게서 나온 장성한 왕자들을 두고 강씨 부인소생 그것도 최고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을 하죠
파격적인 인사였고 왕자의난의 원인이 됩니다.
공적을 따진다면 이방원이 세자가 되어야 되고 적장자승계의 원칙으로 하면 첫째 이방우가 세자가 되는게 맞는거지만
적장자승계 원칙에 따라서 만약 첫째 이방우를 세자로 책봉했다면 이방원은 왕자의난을 일으켜서 임금이 되었을까요
고려를 일으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건 이방원이고 힘도 가장 쎘었죠 그렇지만 이방우가 세자가 되었고 이성계의 대통을 이어받았다면 과연 왕자의난을 일으켜 왕이 될수 있었을까요
아무리 이방원이 야심이 있고 힘이 있는 인물이었지만 명분이라는게 있어야지 되는데 이방우가 세자가 되었다면 명분이 딱히 보이질 않기는 하네요
실제 세자책봉과정에서 이방원이 본인이 공적을 따져서 세자책봉을 받기를 원했다기보단 강씨소생 여덞째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려는 정도전을 비롯한 개국공신들에게 첫째 방우형님을 세자로 책봉해야된다고 주장을 하기는 했었죠
첫댓글 세자 책봉을 고민할 시기에 이미 이방우는 고인이였습니다..
이미 고인이었던 데다가 살아있어도 권력에 욕심이 없어보여서 세자로 받들기는 힘들었을 것 입니다.
그럼 막내를 세자로 책봉한 이유는 무엇이죠?
금실이 좋던 신덕왕후 강씨 소생중 방번에게 세자책봉을 하려고 했지만 방번의 성격이 좋지않은 점이 많아 막내인 방석에게 세자자리를 주었다고합니다. 물론 거기에는 정도전등 신료들의 입김도 있었겠죠
@번거로운녀석 그 이유가 무엇이죠??
@흑비 정도전은 신권정치를 추구하였고, 그 신권정치를 구현하려면 방원 같이 강력한 군주제를 지향하는 왕보다는 자신들이 조종할 수 있는, 약한 왕이 더 낫기 때문이죠.
정도전이나 조준 등의 사대부들은 나이, 공로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얘기했을뿐, 열살짜리 막내를 세자로 책봉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세는 맏아들이냐, 방원이냐 둘중 하나였는데 여기서 태조가 신덕왕후의 소생으로 세우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나타낸거죠. 태조의 의지가 완강하니 정도전등은 거기에 따랐을뿐이라 보는게 옳습니다. 그중에도 막내로 한건 방번은 자질이 너무 부족하니 신덕왕후의 소생으로 정할거면 막내로 해야한다는 신하들의 의견을 태조가 따랐던것이죠.
가장 유력한건 강씨의 입김이겠죠. 강씨가 역성에 직접 참여하진 않았지만 막후에서 이성계가 고민할때 결단을 내리게 조언도 마다하지 않았고 당여들을 규합시키는 등 꽤 큰 역할을 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이성계가 강씨와 그의 아들을 너무나도 사랑했어요. 정도전 남은은 방석책봉에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그냥 받아드렸습니다. 정도전이 바라던 신권중심의 재상정치를 위해서는 역성에 동참한 방과 방원같은 왕자들보다 어린 방석이 나았죠.
@전자랜드김상규짱 그리고 이건 지배적인 썰은 아니지만 북방출신인 이성계가 북방족(여진 몽골 등)의 풍습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공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막내를 후계자로 삼은게 아닌가? 하는 말도 있습니다.
이방우는 원래부터 권력욕이 없는 캐릭터라 그다지 세자로 받들기 힘들었지만 정도전일파는 몰라도 조준, 배극렴같은 非정도전 일파 신료들은 이방원을 추대했었죠 그냥 이방원을 추대했다면 왕자의 난은 일어나지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대신, 신덕왕후, 정도전의 암살기도 이런건 있었을거 같고요
세자 잘못 세우면 여러 사람 피 본다는 걸 후백제의 견훤, 고려의 선종이 이미 보여줬는데 왜 하필 방석이었는지...
정종이 방원을 세제로 책봉하니까 이성계가 "하라고 할 수도 없고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라고 했다죠?
뜬금없지만 저희 파의 시초가 저분이라...사극에서 많이 다뤄진 적이 없는거 같은데 보니깐 방갑네요
이성계가 실수한거죠. 이방원을 제치고 책봉하기엔 이방원의 파워가 넘 쎄서...
이방원이 쿠데타를 일으킨 명분이 적자후계가 아니어서 였죠.그래서 왕자의난 성공 이후에도 직접 왕위에 오르지 않고 둘째형 방과를 보위에 올립니다. 만일 방우나 방과가 세자가 됐다면 쿠테타의 가장 큰 명분이 없어지죠.
하지만 제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방우 방과이 세자 였어도 어떻게든 왕위를 물려받건 뺐건간에 차지 했을 것같습니다. 아버지도 내쫓은 사람입니다. 형이었으면 오죽했을까요.
동의합니다.
아버지가 죽은 상태에서 가신들이 막내를 왕으로 옹립한 상황도 아니고 아버지가 직접 앉힌 세자인데 '맞이가 아니니까 내가 인정 못한다' 이건 말도 안되는 억지죠.
그냥 이방원은 권력의 화신이고 이방석이든 이방우든 자기 목적에 어긋나면 죽였을 인물입니다.
뭐든 왕자리에 앉았을 사람이라봅니다. 명분이야 만들기 나름이고 중요한건 힘이죠
궁금한게 이성계가 이방원을 세자로 책봉했다면 과연 이방원은 정도전을 제거했을까요? 아님 그냥 서로 투닥거리고 싸우면서 그냥 저냥 지냈을까요? 둘 다 워낙 능력들이 대단하고 뜻하는 바가 너무 틀리지만 반대로 둘 다 서로의 능력을 잘 아니...과연 한쪽이 결국은 죽었을지 아니면 윈-윈 했을지 궁금하네요.
이성계가 이방원을 책봉했어도, 결국 정도전은 죽음을 피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가기엔 방향이 너무 달라서 절충이 되지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정도전과 이방원은 둘중 하나는 죽어야 했습니다. 정도전과 이성계는 그걸 몰랐고 이방원은 알고 있었다는게 차이점이겠지요.
뭐 그랬겠죠.....참 슬픈 일이네요, 역대급 재능을 가진 인재들이 각자의 의견이 맞지 않아 결국 한쪽이 소멸되다니, 그래도 조선시대 반정중에 왕자의난이 가장 성과가 있는 난이였다고 생각되서 그나마 접할때 마음이 편합니다, 청나라에 망테크 타게 한 인조반정이나 결과가 아주 나쁘진 않았으나 그래도 과연 반정을 해서 얻을만한 성과였느나? 하는 의문을 남게 한 계유정난의 세조 모두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한데, 태종은 아무리 피바람을 일으켜도 나중에 역대급 결과물 세종대왕이 떡하니 나오니 접하면서 맘은 좀 편하더군요.
뜬금없이 궁금한데 세종은 왜 세종대왕이라고 불리나요? 업적의 위대함때문인가요 아니면 다른게 있었나요 궁금하네요.
@hello.hi 현대에서는 그 위대함 때문에 특별히 대왕 붙이는 것인데 당시에는 선왕들 얘기할 때 다 대왕이라 불렀습니다. 문종대왕께서, 인조대왕께서 등등요.
뭔일울하던간에 정도전은 이방원이가눈길에 방해가됫을사람이죠 정도전도 자기뜻굽힐사람도 전혀아니기에 결국 죽엇을것같네요
@hello.hi 세종대왕의 어원은 사실 .. 교육적인 목적으로 편하게 부를려고 세종대왕이라고 부르죠 .. 역대왕중에 세종대왕하면 어린아이때부터 배우는왕인데 세종이라고 그러기에도 이상하고 세종대왕이라고 부르기가 부르기가 편해서 그랬다고 그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