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719) - 새 역사를 쓴 U-20 월드컵 축구 대표 팀
호국 보훈의 달, 6월이 중순에 접어들었다. 현충일이 지난 주말 이른 아침에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 묵념하고 묘역을 돌아보며 애국선열들과 호국용사들의 넋을 기렸다. 방명록에 쓴 글, ‘나라와 겨레 위해 목숨 바친 영령들이여, 하늘의 위로와 평안을 누리소서.’ 금년에 달라진 점, 현충원에서는 6월 10일부터 현충탑을 찾는 이들에게 셀프 참배방법을 도입한다고 한다. 현충탑에서 참배객이 전용 스피커나 개인 스마트폰의 방법을 선택하여 분향하고 경례한 후 묵념하는 순서로. 묘역을 찾으며 느끼는 소회, 세간의 혼탁과 불순이 범접하기 어려운 아늑한 분위기로다.
현충탑 앞에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인들의 조화 가운데 김대중 평화센터 이사장 이희호 여사의 조화에 눈길이 머물렀다. 세간의 권력자들 틈에 끼인 옛 영부인의 소슬한 진심이 느껴졌는데 그 며칠 후 영면의 소식을 접하며 하늘에서 겨레와 통일 위해 기도하겠다는 유훈이 큰 무게로 다가온다. 무거운 짐 벗으신 어른이여, 그 기도 힘입게 하소서.
20세 이하 축구 대표 팀이 새 역사를 썼다. 자랑스런 젊은이들이 폴란드 루블린 아레나루블린에서 열린 에콰도르와의 2019년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1대0으로 승리, 남자축구 사상 처음으로 FIFA(국제축구연맹)가 주관하는 월드컵의 결승에 올랐다. 세네갈과의 8강전에서 국제축구역사상 가장 치열한 접전 끝에 극적인 승리를 거두고 4강에 오른 며칠간 우리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이제 그 기쁨이 보다 높은 희망 속에 주말까지 이어질 수 있다니 참으로 행복하다.
지난 9일(일요일) 새벽에 치른 세네갈과의 8강전은 극적 효과를 추구하는 스릴러 영화보다 더 박진감 넘치는 명승부였다. 이 경기가 끝난 후 천혜경로원 강은수 원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방금 끝난 경기를 지켜보았느냐며. 그와는 온 국민을 흥분과 감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2002 월드컵을 광주의 천혜경로원 식구들과 함께 즐기며 행복과 기쁨을 공유한 사이, 천혜경로원 2002년 7월 소식지에 실린 그때의 묘사는 이렇다.
‘월드컵경기가 이곳 경로원에까지도 불어 닥쳤다. 월드컵기간 동안 우리 선수들이 출전할 때 경로원식구들은 강당에서 대형 TV로 시청하였다. 처음에는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만 모였다. 그러나 16강이 확정되고 나서부터는 우리 식구 모두가 열광하기 시작했다. “붉은색 티셔츠도 몽땅 사왔습니다. 입고 싶으신 분은 입으시고, 얼굴에다 그림을 그리고 싶으신 분은 그려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더니 붉은색 티셔츠는 불티나게 나갔고 좀 부끄러워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앞 다투어 얼굴을 내밀며 그려달라고 하였다. ---
우리가 붉은 악마가 되어 얼굴에 태극기를 그리고 응원한다는 소문을 듣고 MBC에서 취재를 하였는데 그날 자정이 넘어서 우리 식구 응원하는 모습이 전국적으로 방영이 되었다. 8강전이 있던 날에도 직원들이 모두 나서서 할머니, 할아버지들 얼굴에 그림을 그렸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얼굴에다 그림을 그리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 우승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자신감까지 생겼으니...
지난 월드컵 때의 그 진한 감동과 기쁨은 아주 행복했던 추억으로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리라. 대~한민국! 짝짝~ 짝~ 짝짝!’
준결승이 벌어진 오늘(12일) 새벽, 3시에 일어나 TV를 켰다. 4강에 이르기까지 전반에는 수비에 역점을 두고 후반에 적극 공세를 편 정정용 감독의 전략이 주효하였다는 평판을 접한지라 오늘도 전반은 소강상태로 지나나 싶었는데 뜻밖에 전반 39분, 이번 대회에서 발군의 실력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끈 이강인의 절묘한 프리킥 패스를 완벽한 슈팅으로 연결하여 골망을 흔든 최준의 득점이 꿈결처럼 이어졌다. 지난 8강전의 연장 전반에 터진 이강인 패스, 조영욱 골인의 매끄러운 득점보다 환상적인 골인 모습을 보인 태극전사들의 원숙한 경기력에 탄성이 절로 터졌다. 경기 내내 선방을 펼친 골키퍼 이강연이 막판 에콰도르 헤딩을 감각적으로 쳐낸 묘기가 빛을 발하였고
박빙의 경기를 승리로 이끈 정정용 감독의 지략과 용병술이 큰 몫을 차지하였다.
가슴 졸이며 지켜본 경기가 1대0의 승리로 막을 내리자 아내와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자축하였다. 우리는 이미 새 역사를 썼으니 차분한 마음으로 결승을 기다리자. 진인사대천명이라니 최선의 노력과 엄청난 투지를 발휘한 선수단 모두에게 큰 박수, 내친 김에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U-20 월드컵 결승에 오른 자랑스런 얼굴들
* 2002 월드컵을 흥분과 감동 속에 지켜본 후 2006년에 그때의 관전기를 묶어 ‘아들아, 대한의 골키퍼가 되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하였다. U -20 월드컵 결승 진출의 감회에 젖어 그 책을 펼치니 그때의 감흥과 행복이 새삼스럽다. 그중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일본기자와 에콰도르 기자가 쓴 월드컵과 한국에 대한 인상은 국제화시대에 우리가 외국에 어떻게 투영되고 받아들여지는지를 살펴보게 하였다. 특히 에콰도르 기자는 한국에 대하여 너무 좋은 면을 부각하여 면구스러운 느낌도 든다.' 에콰도르 기자의 한국체류기, '멋진 한국을 본받자'는 신문기사(조선일보 2002년 6월 10일자)가 인상적이다. 마치 운명적인 미래의 대결을 예견하기라도 한듯.
첫댓글 글을 읽고보니 결승전은 꼭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소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