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가 1631년에 그린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아파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어 돌아가시는 장면은 모든 복음사가들이 기록한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그래서 <마27:33-50, 막15:22-37, 눅23:33-46, 요19:17-30>이 이 그림의 배경이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성경에 적힌 대로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는 죄명패가 붙어 있다. 그것은 히브리어, 라틴 말, 그리스 말로 쓰여 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제외하면 주변은 온통 어둠뿐이다. 성경에 낮 열두 시쯤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사람들이 배척했으니 태양마저 빛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기독교의 사상이 숨어 있다. 이것은 세상은 온통 어둠에 휩싸여 있지만 오직 예수님만이 ‘세상의 빛’이라는 것을 대조적으로 강조한 것이고, 나는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만을 전한다는 사도 바울의 신학이 배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몸에서 빛이 발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나약하시다. 그분의 입술은 갈라졌고, 그분의 입은 부르텄으며, 그분의 목은 타들어가 침조차 삼킬 수 없는 지경이 되셨다. 그분의 미간은 찌그러졌고, 그분의 손과 발은 못으로 찢겨 나갔으며, 그분의 팔과 다리는 고통으로 인해 뒤틀어졌다. 그분은 고통 속에서 일곱 마디 말씀을 남기시고 숨을 거두셨다. 그렇다면 그분은 왜 이렇게 무력하게 죽으셨을까?
렘브란트의 그림을 다시 살펴보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어 아무 것도 하실 수가 없으셨다. 그 분은 다른 인간들처럼 고통스러워하며 나약하게 죽으셨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을 보고 백부장이 신앙고백을 하였다.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드님이셨다.”(마27:54)그분은 힘은 있으나 그 힘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고통과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그분은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시기 위해 연약하게 태어나셨고, 연약하게 죽으셨다. 그분의 연약함은 무능력, 굴복, 자학, 패배감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자기희생, 자기부정, 겸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분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셨다. 이것이 바로 연약함을 선택한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이었다. 하나님은 십자가 뒤에 숨어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