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eart To Heart
dedicated to HMX-12 Multi
PROLOGUE
".....님, .....주인님---"
"........"
"주인니임---, 아침이예요오---"
"........"
"주인니임--, 주인니임--"
데굴
"아앙, 이불속에 파고들지 마세요! 주인님-!"
"........"
"주인님.....이잉, 주인니임....."
"........"
"........"
"훌쩍......앗, 그랬죠. ......히, 히로유키상, 일어나세요......"
화악, 와락.
포옥.
"꺄악"
나는 왼손을 뻗어 멀티의 손목을 잡고는 침대로 끌어당겼다. 잽싸게 오른손은
멀티의 머리에 얹고 <쓰다듬 모드>에 들어간다.
쓰다듬 쓰다듬.....
"아앙, 역시 일어나 계셨쟎아요. 그렇게 짖궂게 굴지 마세요오-"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멀티는 불평을 하면서도, 기분좋은 얼굴로 내
<쓰다듬>에 굴복해있다. 좋았어, 좀더 <쓰다듬 모드(강)>이다.
쓰다듬 쓰다듬.....
"으응......기뻐요, 주인니임."
우뚝. 쓰다듬 모드 해제.
"앗, ......저기, 조금만 더......"
"멀티, 주인님 소린 관두라고 그랬었지?"
나는 약간 차갑게 말했다. 처음에야 '주인님'이란 호칭에 기분 좋아했던
나였지만, 얼마 지나자 위화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름으로 부르도록 멀티에게
당부했지만, 일단 정착해버린 습관은 잘 떨쳐지질 않는지 (그렇게 융통성
없는데도 멀티 답긴 하지만.......), '주인님' 소리가 쉽사리 떠나질 않는다.
"하지만......"
"하지만, 이 아니라니까. 알겠지. 이제 주인님이라고 안하기다."
"하지만 저한테는 역시 주인님이니까......."
"......말을 안듣겠다 이거지.....그럼 또 지난번처럼......."
멀티는 움찔 몸을 떨었다.
표정이 단숨에 굳어지고 입술이 바들바들 떨린다.
지난번의 '벌'이 어지간히 힘들었었나 보다.
그때는 나도 그야말로 '귀신(鬼)'이 되었었으니까. 카시와기 코우이치정도의
'귀신'이 아니지. '치즈루상' 급이라니까.
"그, 그, 그것만은 하지 마세요-, 주인, 아니 히로유키사앙. 훌쩍, 이제
그건 싫어요-."
그때의 괴로움이 떠올랐는지, 멀티는 벌써 눈물이 어른거리고 있다.
"후후후, 멀티 하기 나름이지."
나는 잔혹하게 엷은 웃음을 띄우고, 멀티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움찔, 멀티가 몸을 움츠린다.
"..........."
"..........."
"..........."
"<쓰다듬 안해주기> 벌이 싫거든, 다신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구. 알았지!"
"......예....."
"좋아. 멀티는 착하지. 많이 쓰다듬어 줄께."
쓰다듬 쓰다듬 쓰다듬 쓰다듬.....
"아앙, 기뻐요오-. 아, 그보다 벌써 아홉시 넘었어요. 이제 일어나셔야......."
(번역자 - .......이놈의 '기쁘다'는 말은 한국어에선 이런식으로 안 쓰는데요.
그래도 어떻게 달리 넣을 말이 없군요. '멀티 어'는 정말 번역하기 피곤.
어감을 못 살리겠어요.)
"오늘 일요일이쟎아. 피곤하다구. 좀만 더 자게 해줘......어젯밤에 멀티가
너무 귀엽다보니 좀 무리했거든. 허리께가 뻐근해서 말이야.(싱긋)"
"에엣!(화끈)"
빨개졌다. 빨개졌다. 귀엽다니까. 멀티는.
"그, 그건 죄송해요. 저도 주인, 아니, 저기, 히로유키상한테 부담을 드리면
안된다고 늘 생각은 하는데, 어느틈엔가 저만 편한 자세로 해 주셔서.....에,
기, 기승위인가 하는 방법이면 히로유키상도 편하실 것 같은데,
전 잘 몰라서......아마, 첫날 밤때 두 번째에......"
".....멀티"
"아, 예. 왜 그러세요."
"그, 뭐시기 위인가 하는 얘기는 어디서 듣고 온거야."
"에, 아, 저기, 지난번에 시장보러 갔다가 계산대 옆에 있는 잡지에서
<그이가 좋아하는 밤의 테크닉>이란 기사를 봐서요......"
"......사왔어?"
"아뇨. 서서 읽었는데.....하지만 계산대 언니한테 혼났어요. 좀더 찬찬히
읽었으면 좋았을텐데......."
"......푸웃"
나는 멀티가 진지한 얼굴로 여성 잡지를 읽고있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죄송해요. 다음에 아카리상한테라도 물어볼께요. 아마 아카리상이
그 무슨 위를 잘 하셨었죠."
"............"
"............"
"............"
".....멀티"
"아, 예."
"지금꺼, 취소. 알았지."
"아, 참. 실언이었어요. 제 시나리오가 아닌데다, 그 CG 아직 못보신분도
꽤 계신 모양이고......"
"그럼, 좀 되감자."
휘리릭.
"......푸웃"
나는 멀티가 진지한 얼굴로 여성 잡지를 읽고있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죄송해요. 다음에 타다상한테라도 물어볼께요. 아마 카나코상이 그
무슨위를 잘 하셨었죠."
"............"
"............"
"아, 저기....."
"......멀티."
"아, 예."
".....아니, 됐다. 그저, 앞으로 전파 조심해라."
터벅, 터벅.......
결국 멀티한테 잠을 깨인 나는 떫은 표정으로 아래층 식탁으로 향했다.
"후아아아아아암. 멀티이. 오늘 아침엔 뭘 먹여줄거야?"
"예-. 지금 프렌치 토스트 구울께요-."
윽, 프렌치 토스트란 말이지.....어디보자, 한번, 두 번, 세 번.....그리고
한번 더 있었지. 그럼 오늘 아침으로 다섯 번째군. 응, 이젠 괜찮겠다.
"히로유키사-앙.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냐. 너무 태우지 않게 부탁해."
대개, 멀티는 네 번 연습하면(쉽게 말해 내가 실패작을 네 번 참으면)
거의 그 요리를 마스터한다. 다만 로봇답지 않게도, 매번 약간씩 맛이라든지
마무리가 달라진다. <학습형>이라는 멀티의 특징인걸까.
"루루루, 루루루루루리라- 루루리라라-"
멀티는 명곡 '꿈꾸는 로봇'을 흥얼거리며 아침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갈색의 터틀넥 셔츠에 빨간색 점퍼 스커트. 장난치는 강아지가 그려진 크림색
에이프런. 발에는 나와 페어로 신은 슬리퍼에 하얀색 청초한 양말.....
잘 어울린다. 귀에 달린 센서도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멀티의 옷은 내가 사야한다. 하지만 가난뱅이 학생의 슬픔,
너무 비싼건 사주지 못한다. 대개는 멀티와 함께 양판점에서 물건을 고르곤 했다.
그렇지. 처음으로 같이 옷을 사러갔을 때 멀티가 좋아하던 모습이라니.....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자연히 웃음이 떠오른다.
그건 멀티의 '마음'이 내게 돌아와준 다음 날이었다......
멀티와 둘이서 집안에서 입을 블라우스랑 스커트, 운동복과 파자마등등
(전부 싸구려지만)을 골라 나간다.
"저기이....."
"응?"
"저, 하얀색이 좋은데요......그편이익숙하고, 검정색은 조금....."
"그런가? 어른스럽고 좋쟎아."
"그야, 레미상이라면 검은색도 어울리시겠지만.....저한텐....."
"괜찮아, 괜찮아. 더러움도 눈에 안띄고 좋지."
"하지만 이 레이스.....너무 화려한거 아닌가요."
"멀티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좀 얇고......그리 땀을 흡수 못해줄 것 같아요.....저, 수분을 땀으로
배출하기 때문에....."
"뭐, 내 취향이라니까 말이지."
"......예.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하지만 손수건도 종류가 많네요."
이러저러 떠들어가면서 물건들을 사 모았다.
돌아오는 도중 우연히 지나는 척을 하고서, 근사한 여성복 코너를 들렀다.
희색이 만면한 멀티에게 슬쩍,
"어, 잠깐 구경이나 하고 가자구. 멀티는 어떤게 맘에 들어?"
하고 물어본다. 의도를 눈치채이지 않게 주의해가며.
"으~응. 저, 이런게 괜찮을까 싶은데요"
멀티는 거울을 보며 몇가지 옷을 몸에 대본다. 조금 망설이고 난 뒤, 마음을
뺏긴듯한 눈초리로 가리킨 것은 약간 큼직한 하얀 소매, 밝은 핑크색에 작은
무늬가 든 원피스. 좀 비싸긴 했지만 그 자리에서 샀다.
"아, 안돼요~~. 그러려고 한 얘기가 아니라니까요~~"
하고 당황해서는 안절부절하는 멀티에게
"바-보. 멀티가 나한테 돌아와준 보답이야. 이 정도는 하게 해 달라고. 자, 여기."
라고 어거지로 원피스가 든 봉지를 떠넘겼다. 사실 나도 약간 쑥스러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주인님......"
갑자기 얼굴을 바꾸어 표정에 꾹하니 힘을 준 멀티는 (물론 눈물을 참고
있었던 거다.), 집에 도착할 때 까지 내가 무슨말을 해도 그 원피스가
든 봉지를 끌어안고는 놓질 않았다.
멀티의 프렌치 토스트는 경험칙적 데이터 대로, 충분히 '괜찮은' 맛이었다.
"맛있는데. 표면은 아삭하고, 속은 폭신한게 밸런스가 절묘해."
"정말이세요? 좋아라.....또 만들어 드릴께요."
멀티는 음식을 섭취할 필요는 없지만, 식사할때는 항상 같이 식탁에 앉아서
이야기를 한다든지, 식후의 커피나 과일을 준비해 준다든지 한다.
"너도 같이 먹을수는 없는건가?"
"으-응. 지금도 먹는 흉내는 낼 수 있는데요......아깝쟎아요. 나중에
세정하기도 귀찮고......"
"맛이라도 알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야."
"하지만, 주인....어흠, 히로유키상이 맛있게 드시는걸 보면, 저도 맛있는
기분이 들거든요."
"흐음. 그럼 열심히 맛있게 먹어야겠구만."
"에헤헤, 그래주시면 좋죠."
따르르르르릉......따르르르르릉.....
"예. 후지타씨 댁입니다. 예, 아, 마사시상. 안녕하셨어요. 앗, 그러네요.
죄송해요. 바로 바꿔드릴께요."
"주인....아, 히로유키사-앙. 전화왔어요. 마사시상한테서예요."
"헤, 어쩐일이야."
나는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마사시와 통화하는건 오랜만이다.
"여, 잘 있었어? 슬슬 U-22 예선 아니야? 이번엔 네가 대표팀 주장이라며. 대단해."
'히로유키, 좀 할 얘기가 있는데. 지금 나올수 있겠어?'
"좋지. 그보다는 우리집에 안올래? 멀티가 맛있는거 만들어줄거야."
'나올수 있느냐고 물었쟎아.'
"아, 아아. 그럼 어디로 할래. 역전에 찻집이라. 리프로 하지."
'응, 그럼 30분 후에'
딸깍
왜 저러는거야. 마사시.
"주....아니, 히로유키상...."
"응? 왜 그래?"
멀티가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있다.
"저, 마사시상이 화낼말을 한건가요? 마사시상이 '로봇한테 전화건게 아니다.
당장 히로유키 바꿔'라고....훌쩍."
"바-보. 그럴 리가 있겠냐. 그냥 기분이 좀 안좋아 그런거겠지. 그보다 지금
마사시좀 만나고 올게. 점심은 마사시랑 밖에서 먹고올테니 준비 안해도 돼"
"예......조심해 다녀오세요."
찻집 <리프>
가게 안에 흐르는 뛰어난 음악, 귀여운 아가씨, 그리고 뭣보다 시나리오,
가 아니고, 요리의 맛이 절묘해서 팬이 많은 가게다.
마사시는 아직 안왔군.
".......어서오세요."
꺼질듯한 작은 목소리로 주문을 받으러 온건, 윤기나는 스트레이트의
검은 머리칼을 한, 단발머리 여자아이다.
"아, 블렌드 커피...."
도리도리......
"......아니, 역시 블루마운틴으로 하죠."
아차........이게 소문에 듣던<도리도리 매직>인가......자기도 모르게
비싼걸 주문하고 만다는......
"여어, 마사시. 오랜만인데."
잠시 기다리자 마사시가 가게에 들어왔다.
"야, 히로유키도 괜찮아뵈는데. 아, 나는 밀크티."
도리도리.....
"미안. 갑자기 불러내서.......아, 왜 그러죠?"
스윽......아까의 웨이트레스보다 연상으로 보이는 길고 검은머리의 여성은,
약간 상처 입은듯한 기색으로 사라졌다.
".........."
".........."
얼마간 이런저런 적당한 얘기를 나눈 뒤, 드디어 마사시가 하려던 이야길 꺼냈다.
"히로유키. 너, 아카리짱을 어쩔 참이야?"
".........."
솔직히 말해서, 제일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화제였다.
"언제까지 로봇한테 빠져있을거냐 말야. 이쯤해서 정신을 차리는게 어떻겠어.
아카리짱, 히로유키를 계속 기다리고 있다구."
".........."
"히로유키. 뭐라고 말을 해봐."
"........난, 더 이상 아카리하고 사귈수는 없어."
"어째서?"
".........."
"히로유키. 너, 진짜로 그 로봇하고 놀아나고 있는거야? 그런게 어디가 좋으냐고.
프로그램으로 움직이는 것 뿐이쟎아. 전기가 꺼지면 끝인거쟎아. 아이를 낳을수
있는것도 아니고, 물론 결혼도 못하는 그저 기계쟎아. 지껄이는 섹스 돌하고
매일 소꿉장난이나 하며 뭐가 좋으냔말야!"
쾅, 나는 나도 모르게 테이블을 쳤다. 가게 안의 시선이 모인다.
"마사시. 지금 그 말 취소해. 아니면....."
"....아니면 뭐야."
자기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퍼억, 우당탕, 쨍그랑........
"꺄악-----"
"미안, 마사시. 나도 모르게 열이 뻗쳐서......"
공원에서 마사시에게 사과했다. 마사시는 입술이 좀 찢어졌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손수건으로 피를 닦고 있다.
마사시가 반격하지 않아서 결국 그 한방으로 끝나고, 우리들은 가게에다 사과하고
깨진 컵등을 변상하고는 나왔다.
"됐어. 히로유키의 마음은 잘 알았으니까. 신경 건드리는 소릴 해서 미안했다.
그럼, 아카리짱은 이제 아무래도 좋다는건가?"
"......솔직히 말해 그렇지. 나한테는 멀티가 있으니까......"
"아카리짱이 가엾다고는 생각 안해?"
"......그야 생각은 하지. 그 녀석 마음은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어쩔수가 없지......"
".................."
".................."
"알았어. 난 이만 가보지. 아카리짱한테 지금 이 얘기, 해도 되겠어?"
"아아. .....저기, 마사시. 네가 아카리하고 사귀어보는건......."
휘익, ......퍼억.
갑자기 마사시의 킥이 내 배에 꽂혔다.
"크헉.......가, 갑자기 무슨 짓이야......"
"........히로유키, 아카리짱을 뭘로 아는거냐."
저벅저벅......
일본 대표급의 킥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나는 꽤 오랫동안 일어나질 못했다.
"후우- 맛있었다. 잘 먹었어."
"우후후, 아침, 점심 연속으로 칭찬받았어요. 저녁도 칭찬받으면
신기록이예요-."
"오, 저녁엔 뭘 만들어줄거야?"
"비밀이예요-. 몰래 연습해둔 메뉴가 있거든요. 벌써 완벽하게 마스터
했으니까 기대해주세요."
마사시와 점심을 먹을 예정이 틀어진 나는 결국 집에 돌아와 멀티가 해준 식사를
했다. 급히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멀티가 해준 덮밥은 괜찮은 수준이어서,
멀티의 성장이 돋보였다. 저녁도 기대하고 있었지만 내가 그것을 맛보게 되는
것은 아주, 아주 나중의 일이 되었다.
달그락, 달그락.....멀티가 설거지를 하고 있다.
시각은 정각 한시. 나는 리모콘을 들고는 TV를 켰다.
'1시 뉴스입니다.......일본 노동당계열의 노동조합조직인 총노(總勞)는, 완전
실업률이 15%를 넘는 현 상황에 관하여 자유당 정부의 무대책을 탄핵하며......'
그렇구만. 나도 내년엔 4학년, 취직활동도 해야 되겠지만 금년은 공전의
취직난. 내년엔 더더욱 악화될 전망이라는데.
'......이러한 실업자 급증의 원인을, 근래 급속히 보급되고 있는 메이드 로봇의
직장 진출에 있다고 보아, 메이드 로봇 사용 규제를 조급히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총노에서는 메이드 로봇 생산의 최대 업체인 쿠르스가와
일렉트로닉스에 대한 항의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산하의 조합원에 대하여 메이드
로봇의 직장진출을 실력으로 저지하라는 지령을 비롯하여, 불퇴전의 각오로
실업자구제에 나설 뜻을 표명하고 있으며,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인 자유당
일부에도 이에 동조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어 메이드 로봇 규제 문제는 급격히
이번 국회에서 쟁점으로 부상했습니다.'
'다음도 메이드 로봇 관계 뉴스입니다. 메이드 로봇을 사용하는 기업에 대한
반대파의 비방과 중상이 크게 문제시되고 있습니다만, 메이드 로봇 그 자체에
대한 파괴활동도 더욱 격렬해져가고 있습니다. 어젯밤 S구 K동의 JR(일본
지하철 노선)의 M역 앞에서.....'
바로 옆 역이쟎아!
'M가의 상점가내 전자상점에 전시중이던 쿠르스가와 일렉트로닉스제의 HM-12형
메이드로봇 3대가 누군가에 의해 가게 밖으로 반출, 파괴되었습니다. 침입자를
알리는 경보를 듣고 달려온경비원이 가게 안팎을 조사한 결과, 상점가의 입구
부근에 파괴된 3대의 메이드 로봇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여......'
화면에는 피해를 당한 전자상의 부서진 셔터가 비춰지고 있었지만, 화면이
바뀌어 파괴된 세대의 메이드 로봇의 영상이 나타났다.
그 순간, 나는 토할뻔했다.
세대의 '멀티'는 모두 목이 절단되어 있었다.
불을 질러버렸는지, 옷은 검게 탄 재가 되어 표피에 들러붙어있었다.
세 개의 목은 한방향을 향해 나란히 놓여져, 페인트 같은 것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허억....."
등 뒤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쨍그랑----
커피 컵을 얹은 쟁반이 멀티의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와같은 메이드 로봇에 대한 파괴활동은, 19세기 영국에서 성행하던
럿다이트 운동을 상기시키는군요'
'선생님. 그 럿다이트 운동이란건......'
'예. 그 당시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어서, 섬유공업에 기계 도입이
대폭 늘어났지요. 그 때문에 직업을 빼앗긴 노동자들이 무리지어서 기계를
파괴했던 운동입니다. 이 동안에 부서진 기계는 도합......'
파앗
겨우 나는 TV를 끌 생각을 해냈다.
멀티는 바들바들 떨며 멍하니 서있다. 나는 당황해 멀티의 어깨를 붙잡고
끌어안았다. 멀티는 초점을 잃은듯한 눈으로 나를 보고는, 쥐어짜내듯
말을 이었다.
"주, 주인님. 저, 제, 동생들, 동생들이...왜, 왜 이렇게...어째서, 어째서,
누가 저런 짓을....동생들이......동생들이, 아아아------"
"멀티, 멀티, 정신차려!"
덜컥, 휘청......
차단기가 작동한 것일게다. 멀티는 천천히 내게 몸을 기울이고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게 되었다. 어쨌거나 멀티를 소파에 눕혔다. 돌봐주고 어쩌고 할 수도
없다. 그저 손을 잡고서는 재기동할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웅, 날씨 좋구만. 역시 이런 좋은 날에 방안에 박혀있긴 아깝다니까."
나는 멀티를 데리고 근처 공원에 나와 있었다.
"그러네요. 정말 날이 좋아요. 아, 주인......., 아참, 히로유키상, 저기요,
저기. 저거 무슨 새예요? 예쁜 깃털이예요. 저기요---. 이쪽으로
안오실래요----. 빵 드릴께요오---."
멀티가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든 빵을 보이자, 경계심이 강할 터인 저 새들이
멀티 발밑에 내려와 먹이를 받아먹기 시작했다.
멀티는 개나 고양이,작은 새등에게 묘하게 '반응'이 좋다. 인간들보다
훨씬 안심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느끼는건지도 모른다.
".....에헤헤, 맛있으세요. 예쁜 깃털이네요. 그 쪽 새님은 부인이세요.
안녕하세요오. 멋진 남편이시네요-. 하지만, 우리 주이...아, 히로유키상도
멋있고, 좋은분이세요. 게다가 자상하시구요."
새를 붙잡고 뭘 자랑하는거냐.
뭐, 조금은 기분이 나아진 모양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서 멀티는 재기동했지만, 감정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채, 쉽게 눈물을 멈추질 못했다.
".....훌쩍, .....주인님. 어째서, 어째서 저렇게 끔찍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는거예요? 어째서....흐흑, 그 애들, 제 동생들은 아직 첫 기동조차 못해본
애들일텐데.....어째서, 그렇게....꾸지람듣거나 할만한 일도 아무것도
안했을텐데....."
이런식이었다.
나는 멀티를 납득시킬만한 대답을 아무것도 해줄수가 없었다. 물론
'주인님'이라고 부른다고 야단치치도 못했다.
"멀티, 잠깐 마실것좀 사올게."
"아, 제가 갈께요."
"됐어, 됐어. 바로 저기야."
"그럼, 같이 가요. 괜찮죠? 에헷"
"어, 그럼 가자구. 저기도로변 자판기야."
"............"
"왜 그래?"
"저, 저기, 손, 잡고가도 돼요?"
"응, 그래"
멀티의 손은 작다. 인간하고 똑같아 보이지만, 얼마동안 만져보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나는 멀티의 손을 좋아한다. 이유야 간단, 그게 멀티의
손이니까.
......'지껄이는 섹스 돌하고 매일 소꿉장난이나 하며 뭐가 좋으냔말야!'
마사시가 이해해 줄거라고는 생각진 않는다만.
그러면, 카페오레를.....이런, 매진일세. 그러고보니 길건너편에 편의점이 있었는데.
"멀티,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길 건너 저기 편의점에 좀 갔다올게.
이상한놈 따라가면 안돼."
"예-. 그럼 여기서 기다릴께요. 차 조심하세요오-"
나는 좌우를 둘러보고, 오른쪽에 검은색의 왜건이 정차 상태인 것을 확인하고는
길을 건넜다. 편의점에 들어간다. 음료수 종류는 주로 팔리는 상품이라
반드시 가게 안쪽에 있다.
조금이라도 가게 안을 둘러보게 하려는 목적이다.
도로 반대편에서 나를 기다리는 멀티의 귀 센서가 빛을 반사하고 있다.
그때였다.
부르르르르르........끼끼끼이이익-----. 콰당.
"꺄아아아아아---. 주인님......"
콰당, 끼끽, 부우우우웅---.
차가 급발진하는 소리에 이어, 갑자기 멀티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당황해서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기다리고 있어야 할 멀티의 모습이 없다!
아까 그 차다!
멀티를 끌고 갔다고 생각되는 검은색 왜건이 달려가고 있다.
이럴수가! 아까 보았던 뉴스에서 파괴된 메이드 로봇의 영상이 머리에 스친다.
뱃속이 갑자기 차가와지는 느낌이 든다.
나는 도로에 뛰쳐나갔다.
끼이이이이익! 눈 앞에 새빨간 RV카가 급정거했다.
"어딜 보고 다니는거야, 이 자식!"
운전하던 젊은 남자가 문을 열고는 소리질렀다.
됐다!
나는 그 남자의 멱살을 쥐고 차에서 끌어내렸다. 엔진은 걸린 채로다.
운전석에 뛰어들고는, 나는 그대로 액셀을 있는대로 밟았다.
"으아아앗, 무슨 짓이야! 도둑이야아아아아아"
목소리가 작아진다. 검은 왜건은?
저기 있다!
일요일이라 도로가 트여있는게 다행이었다. 꽤 앞서가고 있지만 아직 보인다.
나는 페달이 찌그러질만치 액셀을 밟아넣었다.
상대는 내가 쫓아오는걸 아직 눈치 못채고 있다. 단숨에 거리가 좁혀들었다.
전방에 건널목이 보인다. 마침 고맙게도 차단기가 내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검은색 왜건은 차단기가 내려온 건널목을 앞두고 잠깐 망설였다.
브레이크 램프가 깜박인다.
완전히 따라잡는데는 그걸로 충분했다.
차에 다가가자 뒤쪽 창을 넘어 저항하고 있는듯한 멀티의 모습이 순간 보였다.
틀림없다.
건널목 직전, 나는 RV카를 오른쪽으로 대고, 그 차와 나란히 서는 순간, 왼쪽으로
핸들을 꺾어 왜건의 운전석부분에 RV카의 왼쪽 앞을 충돌시켰다.
콰직, 상당한 충격이 온다. 멀티는 충격에는 꽤 강할테지.
기어를 L로 넣고, 그대로 액셀을 밟아 왜건을도로 옆의 전신주에 밀어붙였다.
끼가가가각....왜건의 엔진이 멎었다.
나는 차에서 뛰어내려 왜건으로 달려갔다.
"멀티!"
운전석은 우그러들어 있었고, 운전하던 남자는 핸들과 문짝 사이에 끼어
신음하고 있었다.
"멀티, 괜찮아?"
나는 뒷좌석을 들여다보았다. 정신을 잃은 멀티는 하얀 가슴이 드러나 있었고,
찢어져버린 멀티의 스웨터와 금속 절단용의 휴대용 커터 머신.
순간 내 자제심은 완전히 날아갔다.
"이 새끼들!!!!"
뒷 좌석에 타고 있던 남자가 문을 열고 나오려고 했다.
나는 그 남자가 문을열고 몸을 절반 차 밖으로 내민 순간을 노려서,
체중을 담아 문을 닫아버렸다.
으드드득! 자동차 문과 차체에 끼인 그놈의 가슴부위에 이상한 소리가 울린다.
"끄아악!"
한번 문을 열어준다. 남자가 균형을 잃고 무너지는 틈에 다시 한번 혼신의 힘을
담아 문짝을 부딛친다. 이번에는 머리가 끼였다.
우득!
둔한 소리가 울리고는, 남자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다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으아아아아악, 살려줘!"
뒷 좌석 반대편에 타고 있던 남자는 억누르고 있던 멀티의 손을 놓고는,
왼쪽문을 열고는 도망나갔다. 판단력을 잃은 거겠지. 건널목까지 뛰어간
남자는, 차단기 밑으로 기어들어가 철로 안으로 들어갔다.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앙,
마침 열차가 지나는 타이밍이었다. 남자는 열차에 받혀 날아가, 원 바운드,
투 바운드 하고는 길바닥에 굴렀다. 그 다음은 볼 생각도 나지 않는다.
나는 왜건 뒷좌석으로 들어가서는 멀티는 안아 일으켰다.
"멀티! 멀티! 멀티-------!"
"으, 우....웅, 주, 주인님......"
"멀티! 무사하구나! 대행이다......"
단숨에 긴장이 풀어진다. 눈 앞이 눈물로 어른거린다.
"우욱, 주인님.....따, 딸꾹, 무 무서웠어요-. 주인님-----. 우와아아아아앙"
"그래 그래. 이제 괜찮아......그래, 무서웠지.....자, 이제 안 울어도 돼."
"아아아아아앙. 주인니임------."
쓰다듬, 쓰다듬......
"빌어먹을, 저 개새끼들이.....멀티가 무사해서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주위에는 어느 틈엔가 경찰차와 구급차, 제복 경찰과 구급 대원, 그리고
구경꾼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체육관만치 넓지는 않은 실내. 조금 높은 천장. 마당으로 난 창문에서
들어오는 광선이 비춰주는 너저분한 벽.
지방법원 제 2법정은 왠지 내 고등학교 시절 학교 식당을 생각케 한다.
"피고인은, 성명, 생년월일, 직업을 말하세요."
"후지타 히로유키. 쇼와......" (쇼와(昭和) : 일본의 연호.)
살인 미수, 상해등의 죄로 기소된 나는, 몇번인가 지방 법원의 피고석에 서게
되었다. 멀티를 유괴하여, 파괴하려 든 놈들은 하나가 오른팔 절단, 경추 손상,
한명이 두개골 골절과 늑골 4대 골절, 한명이 척추 손상에 전신 타박상으로 생명은
겨우 건졌다. 그러나 한명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보낼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고,
큰 후유증과 장해를 갖고 살아야 한다고 한다. 역시 멀티의 "동생"들을 파괴한
범인 그룹의 멤버였고, 동정할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과잉방어의 책임은 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사건은 매스컴 각 사에 크게 보도되어, 나와 멀티는 일약,
고맙지 못한 의미에서 "유명인"이 되었다.
<마성(魔性)의 메이드 로봇!, 로봇광 학생 광기의 카 체이스!!>
<광기의 사랑!! 메이드 로봇을 편애한 청년 F(21)의 흉악 범죄!>
이런거부터 시작해서는,
<로봇밖에 사랑할 수 없는가? 현대 젊은이의 병든 일면>
<메이드 로봇을 '사랑'한 청년......하이테크 사회의 일그러짐속에 태어난 고독>
어쩌고 하는 대단망칙한 분석에 이르기까지, 각종 미디어에 나와 멀티에 대한
정보가 흘러들어갔다.
게다가 시기도 나빴다. 총노등의 노동조합조직에 의한 메이드 로봇 배척운동의
기세에 좌익계열 보도기관이 편승하는 형태로 전개된 반 메이드 로봇 캠페인에,
내가 일으킨 사건은 절호의 껀수를 제공하게 되었고, 다음 국회에서 무언가의
형태로 메이드 로봇 규제법안이 가결될 것은 명백했다.
"오늘은 증거물건으로써, 문제의 메이드 로봇을 출정시키고자 합니다."
재판장의 목소리에, 멀티가 직원에게 끌려 법정에 들어왔다. 밝은 핑크색 원피스.
이전에 내가 사주었던 옷이다. 오랜만에 보는 멀티는 조금 긴장한 듯 보였지만,
내쪽을 향해 가볍게 미소지어 주었다. 내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기쁘다.
사건후, 나는 멀티를 쿠르스가와 일렉트로닉스의 나가세 주임에게 맡기기로 했다.
집에서는 매스컴의 먹이가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다할 면식도
없었지만, 나가세 씨는 쾌히 멀티를 맡아주었고, 매스컴에서 격리해주었다.
"메이드 로봇은 본 건의 증거 물건이며, 그 기억하는 바에는 충분한 증거 능력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도록."
"예. 저는 주인님께서 마실 것을 사러 가신동안, 인도쪽에서......"
멀티는 열심히 설명했다. 그것은 나의 진술 및 현장의 물적 증거와 거의 일치하는
것이었으며, 유괴 그룹의 진술과는 엇갈리는 것이었다.
그때 방청석 일부에서,
"로봇 꺼져라!"
"메이드 로봇을 부숴라!"
그런 성난 목소리가 울렸는가 싶더니, 멀티를 향해 무언가가 날아왔다.
파직!
멀티의 머리와 어깨에 노란색의 액체가 퍼진다.
계란이다. 날 계란을 멀티에게 던진 것이다.
"멀티!"
나는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멀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머리에서 흘러 떨어지는 계란을 바라보았지만,
그 눈이 자신의 원피스에 멎었을 때, 표정이 일변했다.
계란을 던진 방청석쪽을 매섭게 노려보고는,
"무슨 짓을 하는거예요!"
일순, 법정 안이 조용해졌다. 멀티가, 메이드 로봇이 화를 낼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욱....이게 무슨 짓이예요.....이, 이 옷은 저한테 제일 소중한 건데......"
직원들이 계란을 던진 남자쪽으로 우루루 쇄도한다. 그 때,
"병신-! 로봇 주제가 무슨 헛소릴!"
그런 소리가 반대 방향에서 들려왔다. 반대편 방청석의 제일 앞자리, 벽에
설치되어 있던 것을 뜯어왔는지, 남자가 소화기를 휘둘러 멀티에게
내던지려 하고 있었다.
"멀티------------이!"
나는 제지하는 직원을 밀쳐버리고, 수갑이 채워진채로 멀티에게 달려들어
그 위로 덮쳐들었다.
퍼억, 덜컹 덜컹......
직격은 겨우 면했지만, 바닥에 튕긴후 소화기는 내 뒷머리와 등을 강타했다.
"와하하하하하! 너 바보 아냐. 그렇게 로봇이 좋다 이거지-."
"정숙히! 정숙히!"
재판장의 제지와, 직원의 실력행사로 겨우 법정안이 조용해졌다.
나는 내 아래서 흐느껴 울고 있는 멀티에게 말했다.
"멀티, 괜찮아?"
"흐윽, 주인님, 모처럼 사주셨던 옷인데, 소중한 옷인데 더럽혀버렸어요....
흐, 흐윽...."
"그런거야 빨면 깨끗해지는거지. 윽...."
뚝.....뚝.....
"앗, 피가,피가 나요. 세상에 무슨 짓을, 어떻게 이런 짓을......"
".....걱정 말라고. 별것도 아니야."
꼭 안아주고 싶지만, 수갑을 찬 채로는 어찌할 수도 없다. 그러긴 고사하고,
"후지타, 일어나."
하고 직원에게 끌려 일으켜져 버렸다.
멀티도 일어섰지만, 뭔가 좀 이상했다. 직원에게 끌려 연행되는 남자들을 곧바로
바라보는 눈에는, 지금까지 내가 본적도 없던 '빛'이 담겨있었다.
결국 잠시 중단을 거쳐, 그날의 심리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나가세 주임이 알선해준 변호사를 통해, 나는 그 날의 상황이 크게 매스컴에
실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메이드 로봇 재판, 또다시 소란. F군 재차 폭주>
이 정도의 비방에는 이미 익숙해져 버렸다. 그러나 부모님이 매스컴에 쫓겨다니고,
회사도 퇴직에 몰렸다는 이야기는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 집도 팔아 넘기고, 교외로 이사가기로 했다고 한다.
한편 쿠르스가와 일렉트로닉스는 반 메이드 로봇의 여론과, 메이드 로봇 규제법의
성립으로 인해 HM-12, HM-13 양 기종의 제조 중지와 회수를 시작, 메이드 로봇은
그 존재 자체가 부정 되어가고 있었다......
1주일후, 판결이 내렸다.
"주문(主文). 피고, 후지타 히로유키를 징역 3년형에 처한다....."
나는 말없이 머리를 숙였다. 항소는 생각하지 않았다.
For Two Years and a Half
"......후지타 히로유키. 네 번호는 2058이다. 출소까지 이 번호가 네 이름
대신이 된다. 알겠나."
"예."
형무소 생활이 시작되었다. 번호로 불리우고, 생리현상을 포함한 모든 것이 관리
하에 놓인다. 박박 민 머리에 죄수복을 입고, 단조로운 노동에 종사하며, 주변은
모조리 범죄자.....
"최악이구만. 하지만 나도 그중 한명인가......"
어느날, 형무소내의 농장에서의 징역노동에서 돌아오자 간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2058호, 편지다."
어머니에게서 였다. 이사간 교외의 주택에서 부부가 그런대로 살고 있다는 것,
내 행동은 자신으로썬 이해할 수 없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었으니 그것을 충분히
보상할 수 있도록, 게다가 만나고 싶을때는 그쪽에서 찾아올테니 출소후에도
내쪽에서 만나러 오지 말아다오, 하고 적혀있었다. 지금은 평온하게 살고 싶다는
한마디는 내게 큰 타격을 주었다.
편지는 쿠르스가와의 나가세 주임으로부터도 가끔 오곤 했다. 멀티와의 직접 편지
교류는 '로봇을 상대로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멀티에 대한 정보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이 나가세 주임으로부터 오는 편지였다.
간단한 근황보고가 대부분이었지만, 한번은 내 실형 판결후 멀티는 무언가 생각에
잠기는 일이 많아졌다고 적혀있었다.
'......실험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한 '학습형'인 HMX-12의 도달점은,
사실은 우리들도 잘 알지 못합니다.'
나가세 주임의 이 한마디를 읽고서, 나는 공판중에 멀티가 보였던 표정을
기억해냈다. 멀티의 원피스를 더럽히고, 나를 다치게 한 남자들을 바라보는
멀티의 표정......
"학습형, 이라......"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나는, 그저, 그저 멀티를 보고 싶었다.
.......1년이 지났다.
"2058호, 면회 시간이다."
"예."
사촌 남매간인 후지타 유코가 면회를 신청했다는 통보를 받은 것은 2주일 전이었다.
유코는 이전에 가까운데 살던 적이 있어서, 그 때 아카리하고 마사시를 포함해
같이 놀았던 적도 있었지만, 근래에는 전혀 연락이 없었고 얼굴도 잘은 기억이
안난다. 대체 뭣 때문에? 그런 생각이 강했지만, 하여간에 거절할 이유도 없다보니
오랜만에 면회실로 향했다. 석달쯤 전에 아버지가 와 주셨던 이래 오랜만의 면회다.
"2058호입니다."
"면회시간은 30분이다. 알겠지."
"예."
투명한 아크릴 보드 너머로의 면회다. 나는 정장 차림의 여성이 앉아있는
면회용 부스 앞에 걸터앉았다. 간수가 방 구석으로 물러난다.
"유코. 웬일로....."
거기까지 말하고는 나는 말을 잃었다.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린 그 여성은......
"아, 아카리......"
".....오랜만이야. 히로유키짱."
"왜, 어째서......"
"응......면회는 4촌 이내만 되니까. 유코한테 부탁해서 이름 빌려달랬어.
좀 두근거렸지만, 어떻게 되네."
"..............."
"........몸은 건강해?"
".......뭐, 그렇지."
그런 대화를 주고 받은 후, 아카리가 말을 꺼냈다.
"히로유키짱. 나, 저번에 쿠르스가와 연구소에 가서 그 로봇을 만나보고 왔어."
"로봇이라니, 멀티 말야?"
"그래, 그 로봇, 얘기하는 도중에 울어버렸어. 히로유키짱을 보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말야."
가슴이 욱신하니 아프다.
"그 로봇, 가엾어.......히로유키짱이 나쁜거야."
"아아, 알고 있어."
"아니, 아무것도 몰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히로유키짱이 형무소에 들어와
있어서 그 로봇이 가엾다는 얘기가 아냐. 애시당초 메이드 로봇은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한 거쟎아. 인간하곤 다른거야. 그런데, 그 로봇은 히로유키짱이 마치
인간처럼 취급했으니까, 자기가 인간하고 같다고 생각해 버리고 있는거야.
그러니까, 원래대로라면 로봇이 당할 필요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거야......
히로유키짱 때문이야."
"..............내가 멀티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는 말인가."
".........응.......히로유키짱이 나빠."
"......그럴지도 모르지......."
"......로봇은 로봇인거야. 인간이 아니란말야. 로봇으로써 취급해주는 편이,
훨씬, 훨씬 행복할거야."
"......아니야. 멀티는 나와 있으면서 행복했어.....그럴거야......"
"아니, 그 로봇한테는, 히로유키짱이랑 만나지 않았던 편이 행복했을거라고 생각해."
아카리는 결코 멀티를 '멀티'라고 부르려 하지 않았다.
"................."
"................."
"내가 멀티를 좋아하게 된건, 잘못된 일이라고 하고 싶은거야."
"......응, 로봇은 로봇인걸."
"...................그럴, 그럴리는......"
"................."
나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내가 멀티를 괴롭게 했다.....나와 만나지 않았던 편이
멀티는 행복했을 것이다.......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그리 생각하는
한편, '히로유키짱이 나쁜거야'라는 아카리의 말은 내 가슴에 차갑게 꽂혀들었다.
"................."
".....히로유키짱"
".....이만 가 주지 않을래."
".....아직 할 얘기가 있어."
"...........뭔데."
"나, 지난번에 마사시짱한테서 프로포즈 받았어."
"...........그랬구나."
"그것뿐이야?........냉정해...."
"................."
".....으, 우흑....히, 히로유키짱, 혹시 히로유키짱이 기다리라고만 해주면,
난, 난 언제까지든 기다릴거야. 히로유키짱이 여길 나와서, 그 로봇을 잊을 수
있게 될 때까지.....언제까지든......"
덜컥. 나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히, 히로유키짱......"
"아카리, 미안해. 나로썬 멀티를 절대 잊을수는 없을거야."
".........흑, 으흐흐흐흑, 어째서, 어째서 로봇한테......"
"미안."
"......흑, 흑......"
"아카리, 마사시하고 행복하길 바래. 틀림없이 아카리를 뭣보다 아껴줄거야.
나 같은놈보다 훨씬....."
"................."
"그럼. 만나러 와줘서 고마워. 2058호, 면회 끝났습니다!"
간수 쪽으로 걸어갔다.
"히로유키짱!"
나는 멈춰서서 아카리쪽을 돌아보았다. 아카리는
"안녕......"
하고 중얼거리며 자리를 일어섰다.
"2058호, 괜찮겠나. 아직 시간은 있는데."
"예. 이제 됐습니다."
그렇게 답했을 때, 간수가 내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을 알았다.
어라, 싶었을 때 뺨을 타고 죄수복 가슴에 몇방울의 물이 떨어졌다.
눈물.
나는 대체 누굴 위해서눈물을 흘리고 있는걸까.
아카리를 위해, 멀티를 위해, 아니면 나 자신을 위해.......
얼마후의 일요일. 일요일엔 징역 노동도 없다. 잡범방에서 할 일없는 시간을
보낸다. 오후의 TV시청.....이라고 해봐야, 형무소측에서 프로그램을 편집한
재미라곤 없는게 대부분이었지만.....그 뉴스에서 마사시와 아카리의 약혼 발표가
보도되었다. J 리그를 대표하는 젊은 플레이어이자, 일본 대표팀의 미들 필더로써
월드컵에서도 활약한 인기인인 마사시가, 소꿉친구와 결혼한다는 뉴스는
호의적으로 보도되었으며, 내내 고개숙인 채 인터뷰에 답하는 아카리와, 그러는
아카리를 조심스레 바라보는 마사시의 표정이 교대로 클로즈업 되어 비치고 있었다.
예식은 아카리가 대학졸업후 바로 올린다고 한다.
"......잘 됐구나. 아카리. 마사시"
나는, 마음으로부터 두 사람의 행복을 바랬다.
"후지타 히로유키. 출소 축하하네. 형무소에서의 힘든 생활을 견디어낸 경험은,
이제부터 자네의 인생에 있어....."
출소때 듣는 형식적인 훈사. 감명을 받을 내용도 못된다.
입소한 이래 세 번째 맞는 봄, 이렇다 할 문제도 일으킨 것 없이 형기를 보낸
나는, 반년정도 형기가 단축되어 석방되었다.
나는 석방되는 날짜를 멀티에게는 말하지 말도록, 나가세씨에게 부탁해 두었었다.
'히로유키짱이 나쁜거야.......'하는, 아카리의 말이 귀에서 떠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가 멀티를 고통스럽게 하는거라면, 이제 만나지 않는편이 좋다.
나는 형무소의 접수계에 꾸벅 머리를 숙이고는, 2년반만의 바깥 공기를 쐬었다.
하여간 가까운 동네로 향한다.
갈만한 곳도 없었던 나는 공원에서 시간을 죽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어머니들은, 나를 보자 노골적으로 얼굴을 돌리고는 아이의 손을 끌고 멀어져간다.
저녁 나절, 오늘밤은 여기서 야숙이구나.....그리 정하고 벤치에 자리를 잡고는,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과 맥주로 저녁을 먹었다. 2년반동안 술을 안한만치,
350ml의 맥주는 도저히 다 마실수가 없었다.
취기가 돈 나는, 휘청이며 일어나서는 역으로 향했다. 판매기에서 예전 살던
동네까지 표를 샀다. 내 머릿속에서는 '그러지 마!'하는 목소리가 울렸지만,
술기운이 그것을 억눌렀다.
전철에 탄다.
그 동네가 시시각각 다가온다.
'멀티를 보고싶어......'
'히로유키짱이 나쁜거야.......'
쉬익-
"승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개찰기에 표를 넣고서, 오래간만에 태어나고 자란 동네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운 상점가. 미인 웨이트리스가 있던 찻집, 수상쩍은 헌 책방, 시호랑
아카리하고 자주 갔던 약(약도널드), 멀티와 함께 놀았던 게임 센터......
'멀티를 보고싶어......'
'히로유키짱이 나쁜거야.......'
이미 밤은 깊어있었지만, 봄날 밤 한가운데 아직도 많은 사람이 걷고 있었다.
상점가를 벗어나 공원으로 나선다.
공원을 벗어나가 예전 살던 집이 보인다. 집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물론, 얼굴도
모르는 남이 살고 있을 것이다. 예전 내 방이던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여자 아이의
방이 되어있는 모양이다. 레이스 커튼이 좌우를 창틀에 고정하고, 귀엽게 윗쪽
절반만 열려 있었다.
순간 멀티하고의 첫날밤 추억이 해일처럼 내 의식을 메워버렸다.
'멀티를 보고싶어. 멀티를 보고싶어. 멀티를 보고싶어........'
'히로유키짱이 나쁜거야.....'
"우, 우욱......"
두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래도 멀티를 보고싶었다.
나는 오열을 참으며, 추억속의 집에 등을 돌렸다.
어쨌거나, 오늘밤은 공원 벤치에서라도 잘까 생각하고, 다시 공원으로
가는 길을 걷는다.
그대로 공원을지나쳐 버렸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마냥, 고등학교로 향하는
언덕길을 올랐다.
멀티하고의 짧은 고등학교 생활을 보낸 추억이 되살아난다.
'멀티를 보고싶어......'
교문 앞에 와서, 나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벚꽃......
꽃은 지고 잎이 피어가고는 있었지만, 아직도 만개했다고 말해도 좋을만치
벚꽃이 가득히 꽃잎을 날리고 있었다.
그랬지. 멀티와 보냈던 고등학교 생활은 벚꽃이 날리는 계절이었지.
"멀티......"
나도 모르게 입에 담는다.
그 때 였다.
"우-러-르-면-, 귀-하-도-다-, 스-승-의-은-혜, 가-르-침-의-,뜨-락-에-도,
이-른......."
놀라서 돌아본 내 눈에 비친 것은, 하얀 소매자락의 핑크색 원피스,
특징있는 귀 센서......
"에헤, 딱 6년전에 히로유키상이 불러주셨었죠.......어서 오세요.
히로유키상....."
"멀티, 멀티!"
"히로유키상! 히로유키상--------------!"
"멀티------------------!"
타다다닥, 꽈악.
우리는 서로에게 달려가 그대로 끌어안았다.
"히로유키상,히로유키상,히로유키상......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보고 싶었어요...."
"멀티, 멀티......"
겨우 진정한 멀티의 머릴 쓰다듬어주며, 나는 물었다.
"어떻게 여기 있는줄 알았어?"
"훌쩍, 오늘 아침부터 나가세 부장님이 좀 이상하셨어요. 왠지 안절부절하시며
절 피하시는 것 같아서요. 혹시나....싶어서 몰래 형무소에 문의해보니까 오늘
출소하셨다고......그래서 히로유키상이 가실만한 데를 찾아봤어요. 아마 이
동네에 계실거라고 생각해서......."
신발은 흙 투성이였다. 원피스도 팔꿈치가 더러워져 있다. 어딘가에서
넘어진거겠지.
"멀티......"
멀티의 어깨를 잡고서,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눈물 자국이 남은 눈으로, 멀티는 가만히 나를 마주본다.
"저, 왜 그러세요?"
확실히 결말을 내자. 나는 있는 힘껏 물었다.
"멀티, 솔직하게 대답해줘. 나랑 만나게 된건 멀티를 괴롭게 한건가?
멀티는 나하고 만나지 않았던 편이 행복했던걸까?"
"............."
"아카리가 그랬어. 내가 나쁘다고. 내가 멀티에게 고통을 줬다고. 멀티가 메이드
로봇의 시험기답게 정상으로 시험 운용을 마쳤으면, 멀티는 아무런 고통도
없었을거라고. 역시 그런거야?"
".......히로유키상......"
"......미안해. 멀티. 난, 자기 생각만 해대고......나는 또, 틀림없이 멀티를
괴롭게 만들게 될거야. 그러니까, 이제 난 멀티를 만나면 안되는거야. 알고 있어.
그런데, 나는 멀티를 보고 싶었어, 멀티 목소리를 듣고 싶었어. 멀티를 가슴에
안고 싶었어. 그런 마음을 억누를수가 없는거야.......난, 난, 왜 이리도 한심한
놈일까.......미안해, 미안해, 멀티......"
지리멸렬하게 중얼거리는 내 목소리는, 한심스럽게도 눈물탓에 제대로 된
소리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소리를 죽여 울었다.
내 어깨에 멀티의 손이 닿는다. 나는 눈물에 젖은 얼굴을 들었다. 멀티는 양손을
내 목뒤에 살짝 두르고, 내 얼굴을 가슴에 꼬옥 안아주었다.
"......히로유키상.....저, 행복해요. 히로유키상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다니.....히로유키상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예요. 괴롭게 했다니,
말도 안돼요."
"......멀티......."
"히로유키상. 저, 이제 히로유키상을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어요.
아뇨, 히로유키상이 그러라고 하셔서가 아니예요. 이유, 들어주실래요."
"..............."
"저, 그 사건때까지는,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는게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때, 전 차에 끌려들어가 옷을 찢겼어요. 조용히 하라며,
커터를 눈 앞에 들이댔었어요. 전 정말 무서웠어요. 제가 떨면서 제발 이러지
마세요, 하니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큰 소리로 웃었어요. 그때 그
사람들이 좋아라 웃던 얼굴, 무서웠어요."
"..............."
"재판소에서, 저한테 계란을 던졌던 사람도 웃었어요. 제 소중하고 소중한
원피스를 더럽혀놓고는, 좋아했어요. 소화기를 던졌던 사람도 웃었죠.
히로유키상이 피를 흘리는데도 좋아했었죠. 전, 저는 그 사람들이
죽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멀티........"
"저, 그걸 깨닫고 자신이 무서워졌어요. 전 인간분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는데, 그 사람들을, 미, 미워해버린거예요."
멀티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말을 끊었다.
"죄, 죄송해요.......그때 히로유키상이 흘렸던 피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움으로 머리가 가득차요."
"..............."
"오랫동안, 정말로 혼란했어요. 불안하고, 불안해서 견딜수가 없었어요.
그 무렵에 아카리상이 찾아와 주셨는데, 저 아카리상 앞에서 앙앙
울어버려서......창피해요....."
"그 얘긴 들었어.....미안해. 그렇게 괴롭게 해서......전부 내 탓인거야."
"아뇨. 그런게 아녜요. 제 속에 CPU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그런 혼란을 극복해
나갔던거 같아요. 결국 저는 이런 괴로움이랑 미움이, 히로유키상이 느끼시는
거랑 같은거란걸 알았거든요."
"........나랑, 같은......"
"예. 히로유키상은 이렇게나 힘든 고통이나 미움을, 훨씬 전부터 느끼실수가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됐어요. 저는 히로유키상이 저한테 폭력을 휘둘렀던 그
사람들을 미워해주셨던 것처럼, 제게 소중한 히로유키상을 다치게 하고,
히로유키상하고의 추억을 더럽힌 그 사람들을 미워할 수 있게 된거구나, 그저
그것뿐이다 하고 깨닫게 된거예요. 이상한 일이죠...... 저, 그때 기쁘고
기뻐서, 눈물이 끝없이 났었어요........"
내 목덜미에 멀티가 흘리는 눈물이 방울진다. 따스하다. 따스한 멀티의
눈물은 내 가슴속에 천천히 퍼져나갔다.
"저는 히로유키상이랑 같아질수가 있었어요. 전 그렇게 생각했던거예요."
".............."
"전 로봇이죠. 하지만 기쁨도 즐거움도, 슬픔도 미움도, 히로유키상이랑 똑같이
느낄수 있게 됐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전 메이드 로봇으로써 히로유키상께
봉사하는게 아니라, 저 자신으로 히로유키상을, 히로유키상을, 사, 사랑하고
싶다고........그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멀티.........."
"그러니까, 저, 히로유키상을 '주인님'이 아니고, '히로유키상'하고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요........에헷, 뻔뻔하죠. 로봇 주제에........"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에 대한 봉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메이드 로봇은 본래, 분노라든지 증오
같은 감정은 필요없다. 당연히 멀티도 그런 감정을 갖고있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사건을 통해서 멀티는 그런 감정을 '학습'했던 것이다.
멀티의 '마음'이 성장한거다. 나에 대해서, 멀티 자신으로써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을만치.
그렇다. '사랑'은 사람과 기계의 사이에서,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마음과 마음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지금, 멀티의 마음이 사랑을 빚어낼 수 있을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저는 행복해요. 히로유키상을, 사, 사랑할 수가 있게 됐으니까.......
꺄악!"
나는 멀티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내 속에서 응어리져 있던 것이 모두 사라지고,
멀티에 대한 사랑스러움이 온몸을 가득 채웠다.
"멀티, 나의 멀티!"
밤 바람에 날아나리는 벚꽃잎이 우리들을 감싼다.
나는 멀티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똑바로 멀티의 눈을 바라본다.
멀티도 내 눈을 똑바로 마주본다. 깨끗한, 정말로 아름다운 눈으로.
"멀티......"
"히로유키상......"
우리들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이어지는 말도 동시였다.
"사랑해."
"사랑해요."
우리들은 2년반만의, 서투른, 하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이 가득히 담긴
길고 긴 키스를 나누었다.
전해진다. 지금 전해진다.......
나의 사랑이, 내 마음에서 멀티의 마음으로.......
전해진다. 지금 전해진다.......
멀티의 사랑이, 멀티의 마음에서 내 마음으로........
그래, From Heart, To Heart..........
EPILOGUE
딩-동-댕-동
5시다.
"휘유-ㅅ. 에구에구......"
나는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일어서고는, 컴퓨터를 종료시켰다.
"여, 후지타 군. 수고했어. 어때, 좀 할만한가?"
"아, 키유카와씨. 에구-, 역시 대학 중퇴는 괴롭군요. 형무소 생활중에 OS까지
완전히 바뀌어버렸으니 원-. 하지만 이 기계 진짜 빠르네요. 영상이
핑핑 도는게, 거짓말 같아요."
"뭐, 천천히 해 나가게. 매사 다 학습이라고 생각하고서."
"하아."
"그럼 먼저 가겠네. 집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아, 그러시죠. 안녕히 가십쇼-."
나는 쿠르스가와 종합개발연구소라는, 광대한 부지를 가진 연구시설 안에 있는
쿠르스가와 메디컬웍스에 개발부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메이드 로봇 개발 중지
이후, 메이드 로봇 개발에서 얻어진 노하우는 의료부문으로의 전용이 가장
유용하다는 이유로 설립된 쿠르스가와 메디컬웍스는, 인공 장기라든지 의수,
의족등의 개발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올리고 있었다. 개발부 부장은 메이드 로봇
개발당시 주임이었던 나가세씨가 취임하였고, 연구원도 나가세씨를 따라 메이드
로봇 개발과에서 이동해온 사람들이 태반을 점하고 있었다. 내가 형을 받는 도중
멀티를 맡겨둘 수 있었던 것도, 전과자인 내가 여기서 직업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전부 그 나가세 부장 덕분인 것이다.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자니,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바로 그 나가세 부장이다.
"아, 히로유키군. 잠깐만."
"앗, 나가세 부장님. 무슨일이십니까."
"응, 오래간만에 자네 집에 좀 들러볼까해서. 오늘 밤 괜찮겠나?"
"예, 그야 물론이죠. 멀티도 좋아할겁니다."
"아, 아니, 별로 멀티를 보자고 그러는게 아니라니까. 히로유키군 장래
문제도 있고 말이지."
또 저런다. 쑥스러워하기는. 이 아저씨도 하여간 여전하다니까. 좋-아.
"아, 그게 말이죠. 실은 멀티가 요즘 감기 기운이 좀 있거든요."
"풋, 푸하하하......."
귀를 쫑긋하니 세워 듣고있던 동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린다.
".......히로유키군. 그건 이제 좀 고만 하게나......"
"아하하.....이거 죄송합니다. 그래, 몇시쯤 오시겠습니까? 일곱시쯤으로
생각해두면 될까요?"
"아아, 뭔가 들고 갈까?"
"됐어요. 그보다 다림질 할 거라든지, 단추 떨어진 셔츠나 꿰맬거 있거든,
들고 오세요. 멀티가 해 드릴테니까. 그 가운도 꽤 망가져뵈는데요?"
"........뭐, 그렇군. 그럼 적당히 들고 가겠네."
"그럼 일곱시에. 기다리겠습니다."
나가세 부장은 발걸음도 가볍게 부장실로 돌아갔다.
출소한지 2주일후, 나는 멀티와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둘이서 선언서를 읽고,
멀티가 준비한 가벼운 식사를 하는것뿐인 간단한 피로연이었다. 와 준 사람도
개발부 멤버가 대부분이었지만, 내 부모님하고, 일단 연락을 넣어본 아카리와
마사시가 자기들 예식때 입었던 결혼 의상을 들고 달려와주었다.
아카리가 신경 써서 화장을 해 준데다, 순백의 웨딩 드레스를 입은 멀티는
재차 반해버릴만치 아름다웠다.
"멀티짱. 진짜 예쁘다-. 이거봐."
거울을 본 멀티는 살짝 뺨을 붉히며,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아닌 것 같아요. 꿈을 꾸는 것 같아서.....
훌쩍......"
"아, 자아 자아, 울면 안되쟎아. 화장 지워질라. 자, 눈물 나올 것 같으면
여기 손수건으로 가볍게 눌러. 알았지, 문지르면 안돼."
"아, 예. 정말 여러 가지로 감사드려요-."
"그렇다쳐도, 멀티짱에 비하면 히로유키가 너무딸리는구만."
윽, 마사시 저 자식이......뭐, 사실 그건 그랬다. 다소는 회복됐다고 해도
형무소에서 나온 내게는 아직, 여윈 '흔적'이 남아있었고, 멀티하고 나란히
서면 까놓고 말해 멀티의 들러리역할 말고 아무것도 아니었다.
"히로유키도 고등학교 시절엔 그런대로 멋있었는데 말이지. 이렇게 멀티짱이랑
나란히 놓고 보면, 그야말로 '공주님과 하인'인데 그래."
"마-사-시-. 너, 기억해두마."
"어머, 히로유키짱. 마사시짱은 사실을 말한 것 뿐인걸. 나는 되려
'여왕님과 노예'쪽이 낫지 않을까 싶은데."
".................."
".................."
"......아카리 개그, 건재하구만."
"응, 중요한 시합전에 저걸 당하면 좀 곤란해."
"마사시짱, 뭐야--."
아카리하고 마사시랑 예전처럼 가볍게 말을 나눌수 있었던 것도 기쁜 일이었다.
"......저희들은, 서로를 최고의 파트너로써, 어떤때라도 손을 마주잡고
살아갈 것을 여러분 앞에 맹세합니다. 히로유키, 멀티."
꾸벅.
짝짝짝짝짝.......
"그러면 마지막으로 꽃다발 증정을 부탁하겠습니다."
나하고 멀티는 꽃다발을 들고 내 부모님 앞으로 나아갔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하고 멀티를 마음으로부터 축복해주시지는 못하는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멀티양, 히로유키를 잘 부탁해요."
"한번 둘이 같이 놀러 오려무나."
하고 말씀해주셨다.
"아버님, 어, 어머님......,감사해요......"
그 다음은 말이 이어지질 않았다.
나는 꽃다발을 하나 더 가져다가는 멀티에게 건네주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멀티와 손을 잡고서, 우리들은 나가세 부장님 자리로 갔다.
무슨일인가 싶은 얼굴을 한 나가세 부장님 앞에 선다.
베일을 벗은 멀티와 함께 깊이 머리를 숙였다.
"아버지. 오랫동안 절 키워주셔서......정말로....정말로.....고맙습니다."
방울방울 눈물을 떨구며 멀티는 꽃다발을 나가세 주임께 내밀었다.
"어이, 신부 아버님, 뭐 합니까?"
주위의 개발부원들에게 재촉받아서, 꽃다발을 받아든 부장의 눈에 금새
눈물이 맺힌다.
"부장님-. 신부 아버지니까, 이럴 때 한방 좋은 말씀을 해 주셔야죠.
멀티짱이 기다리쟎아요."
"아, 아아............."
"..............."
"..........훌쩍....."
"아-, 정말 갑갑하시네. 평소에 우리한테 하던 잔소리는 다 어디갔어요."
".....훌쩍,아, 아, 그렇지.......훌쩍.....멀, 멀티......"
".....예. 아버지."
".....훌쩍........"
"..................."
"........훌쩍......머, 멀티........가, 감기, 감기 걸리지 마라....."
우와하......마치 울고 웃는 희극 극장이었다.
"나왔다-, 부장님 대 헛소리!"
"부장님-. 무슨 소릴 하시는겁니까. 멀티짱이 어떻게 감길 걸리는데요."
어쩌고 하면서 야유를 던지는 개발부원들의 눈도, 태반이 젖어있었다.
나는 개발부 건물을 나섰다. 슬슬 저녁의 어둠이 주위를 감싸든다.
이곳 종합개발 연구소 부지내에 있는 탁아시설로 향한다. 멀티는 거기서
일하고 있다.
저편에서 떠들썩한 아이들 목소리가 들린다. 마침 부모들이 "마중"하러
올 시간이다.
"멀티 선생님-. 안녕-. 내일 또 봐요-"
"그래-. 사오리짱 바이바이-. 딴데 들리지 말고 곧장 집에 가야한다-"
아이들에게 귀가 인사를 하고 있는 멀티는 정말로 즐거워보인다. 훈훈한
공기가 멀티 주변에 가득하다.
그때, 아까 멀티가 사오리짱이라고 불렀던 붉은빛을 띈 머리를 한 여자
아이가, 나를 보고는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했다.
"앗, 멀티 선생님 '허즈'다-."
누가 '허즈'야.
"우후후.....멀티 선생님~~! '그이'가 마중왔어요~~~! 휘익-휘익-"
멀티도 나를 보았다.
"앗, 히로유키사~~앙."
타다닥, 하고 곧장 달려온다. 앗, 하고 발이 걸려서.......
"앗........"
포옥.
형무소 생활이 길었다고는 해도, 멀티를 사랑하는 나다. 이 타이밍은
완벽히 마스터하고 있다. 나는 절묘한 타이밍으로 멀티를 받아 안고는,
그대로 팔을 뻗어 멀티를 높이 안아올렸다.
그 자리에서 두 번, 세 번 빙빙 돌며 천천히 멀티를 돌린다.
"꺄----악. 히로유키사-앙. 내려주세요-.어지러워요오-."
멀티의 스커트가 하늘하늘 나부낀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멀티도
얼굴은 환히 웃고 있다.
"휘익-휘익-. 멀티 선생님-. 러브러브다~~~."
빨랑들 못가냐. 전파가 온다, 전파가.
나는 팔을 내리고 멀티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뺨에 가볍게 키스하고는
속삭인다.
"멀티, 이제 가자구."
"......예."
나와 멀티는 탁아소를 나와, 신혼집이 되어있는 사원 기숙사로 향했다.
사박, 사박......
포장되지 않은 오솔길을 밟는 소리가 작게 울린다. 양쪽의 가로수는 신록에
감싸여있다. 저녁 햇살을 받은 부드러운 신록이 우리들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장인 어른, 일곱시께에 오신다던데."
"아, 그래요. 뭘 대접해드리면 좋을까. 지난주엔 어디.....생선을 구웠었죠."
"아, 그랬지. 꼬치구이에 재도전하다 실패했지."
"......불이 붙었을땐 진짜 놀랐어요-."
"뭐, 불 안났으니 다행이지. 뭘, 앞으로 두 번만 연습하면 괜찮겠지만."
"......하여간, 뭘로 할까요."
"불고기 어때? 그 소스 2년반 재워놓은 보람이 있어서 평판 좋쟎아."
"응-. 아버지 요새 배가 나오기 시작하셔서 말이죠."
별 대단할 것 없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란히 걸었다.
멀티가 내 손을 살짝 잡아온다. 나도 꽉 힘을 넣어 마주 잡았다.
"......에헷, 히로유키상이 마중와주시니까, 정말 좋네요--."
두근.
"......나도, 멀티를 빨리 보고 싶었으니까....."
".....에이, 또 그러신다. 가슴 두근거리쟎아요---."
"하하하....."
"후후...."
신록에 젖은 가로수를 벗어난다. 사원 기숙사는 바로 앞이다.
저녁해를 등지고 우리들은 걸어갔다.
손을 잡고 걷는 우리 앞에는, 우리의 그림자가 길게 뻗어있었다.
손을 잡은 우리들의 그림자는, 길게, 길게, 어디까지고, 그리고 언제까지고
이어져있는 듯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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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빈터
[나꼬군] 멀티의 엔딩. 그 후
나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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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7.1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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