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주년 3.1절 기념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00만 해외동포와 북한 동포 여러분,
그리고 독립유공자와 내외귀빈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제96주년 3.1절을 맞아
3.1 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 몸을 바치신
순국선열들의 희생과 애국지사와 독립유공자께
경의와 감사를 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96년 전 오늘 우리는
민족의 자주독립, 인류평등과 세계평화의 대의(大義) 앞에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남녀노소·신분과 계층·종교와 사상의 차이를 뛰어 넘어
오직 독립을 향한 열망과 애국심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3·1운동의 ‘자유를 향한 의지’와 ‘인류평화의 이상(理想)’은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고,
그 법통이 대한민국 헌법정신으로 계승되었습니다.
민족 대단결의 3.1운동 정신은
우리 대한민국이 가난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반세기만에 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꽃피우는
‘기적의 역사’를 일구어 낸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우리 민족의 저력에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며,
이 위대한 ‘성공의 역사’는
피와 땀과 눈물로 함께 하신 국민 여러분이 계셨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숱한 역경을 딛고 눈부신 성취를 이뤄낸 선대들의 헌신 위에
오늘 우리가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있듯이,
다가올 미래 세대들이 희망과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입니다.
지금 우리는 미래로 도약하느냐, 이대로 정체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글로벌 경제 침체와 추격형 성장전략의 한계에 직면해 있고,
과거부터 누적되어 온 적폐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나라의 곳간도 여러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처방과 해법으로는 안됩니다.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경제를 활성화하며
국민의 창의력과 독창성을 발휘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그동안 누적되어 온 우리 사회의 적폐를 개혁하여
근본적인 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을 확충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창조경제 생태계 구축을 포함하여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지금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이고 있는 공무원 연금개혁은 물론
공공, 노동, 금융, 교육 등 4대 구조개혁과
규제혁파, 비정상의 정상화 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혁신과 구조개혁 과정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이해와 양보를 필요로 합니다.
3.1운동 당시 우리 민족이 그랬던 것처럼
국민 모두의 일치된 마음과 단합된 힘이 수반되어야만 하는
어렵고 힘든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들과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국민적 노력과 합심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저는 3년의 경제혁신으로
반드시 30년의 성장을 이루겠습니다.
‘경제혁신과 개혁’을 꼭 이루어내서
성장의 온기가 민생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가고
정부 출범 시 약속드린 ‘경제 재도약’을 일궈 나가겠습니다.
그래서 30년 후 우리 후손들이
세계 속에 우뚝 선 경제대국, 통일한국의 국민으로
광복 100주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올해는 한국과 일본이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이기도 합니다.
양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며,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추구해 나가는 중요한 이웃입니다.
1965년 수교 이래 두 나라가 쌓아온 교류협력의 성과는 놀랍습니다.
지난해 양국의 교역량은 860억불을 넘어섰고,
상호 인적교류는 500만명을 넘어섰으며,
양국의 독창적인 문화는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보다 성숙한 미래 50년의 동반자가 되어
새로운 역사를 함께 써 나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 정부는 출범이래
올바른 역사인식에 기초한 한일관계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21세기 한일 신협력시대를 열어나가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리적 이웃국가 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 때문에
안타깝게도 마음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양국이 미래로 함께 가는 여정에서
반드시 풀고 가야할 역사적 과제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인권문제를
조속히 해결할 것을 촉구해 왔습니다.
올해에 들어서도 벌써 두 분의 피해 할머니들이
평생 가슴에 맺힌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채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쉰 세분만이 생존해 계신
할머니들의 평균 연령이 90세에 가까워서
그 분들의 명예를 회복시켜드릴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역사란 편한 대로 취사선택해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 게 아니며,
역사에 대한 인정은 진보를 향한 유일한 길” 이라는
최근 한 역사학자의 지적을 깊이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교과서 왜곡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것도
이웃관계에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
양국 국민들은 문화를 통해 교류하고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서로 더욱 공감대를 형성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이런 마음의 외연을 확대시키는 것도
국가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입니다.
과거 독일과 프랑스가 갈등과 반목을 극복하고
새로운 유럽 건설의 주역이 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이제, 일본이 용기 있고 진솔하게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고
한국과 손잡고 미래 50년의 동반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함께 써 나가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과 재외동포 여러분,
그리고 북한 동포 여러분,
우리 민족은 70년 전,
오랜 항일투쟁의 결과로 되찾은 독립의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남과 북으로 갈라져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분단국가로서 지금까지 군사적 대치와 긴장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분단 70년을 또다시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남북이 하나가 되어 평화 통일을 이루어 냄으로써
진정한 광복을 완성하고, 민족의 번영을 향한 항해에
적극 나서야 할 때입니다.
정부는 통일이 꿈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미래이며,
미래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부터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실질적인 평화통일 기반을 구축해 가고 있습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통일준비위원회’를 중심으로
남북 모두에 축복이 되는 구체적인 통일 준비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통일 준비는
결코 북한을 고립시키는데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나와서
공동 번영과 평화의 길로 가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북한은 더 이상 남북대화를 외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진정성 있는 대화와 변화의 길로 들어선다면
모든 협력의 길이 열려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합니다.
올해 광복 70주년을 함께 경축하면서
이를 계기로 민족화합과 동질성 회복의 전기를 마련하는데
나서 주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남북 이산가족들의 절절한 염원을 풀어드리는 것이
시급한 일입니다.
이산가족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매년 남한에서만 4천 명 가까운 이산가족들이 세상을 뜨고 있는 비극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부모 없는 자식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듯이
북한도 내부의 인간적인 혈연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과 상봉의 정례화, 서신교환 등
이산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협의를 조속히 갖기 바랍니다.
또한, 금년 중에 남북한 간 의미 있는 스포츠, 문화, 예술 분야 교류와
민생차원의 협력을 확대해 나가길 기대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민족 동질성 회복에 기여하는
순수 민간교류를 적극 장려할 것입니다.
남북한은 민족문화 보전사업의 확대와 역사 공동연구에
착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60여년 간 단절된 남북 간 철도운행 재개를 위한 철도 복원사업 등
이행 가능한 남북 공동 프로젝트를 협의해서 추진하는 것도
남북 모두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사전준비의 일환으로
우선 남북철도의 남측 구간을 하나씩 복구하고 연결하는 사업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북한은 더 이상 핵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다는 기대에서 벗어나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진정으로 평화와 체제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개방과 변화의 길로 나오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역사는 길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어려운 길을 피해갈 수도 있고,
적당히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길이 될 것입니다.
다음 세대에 너무나 큰 짐을 지우게 될 것입니다.
국가 부채는 늘어나고, 경제는 휘청거리게 될 것이 자명합니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대한민국을 위한 길을 가겠습니다.
저와 정부부터 경제 활성화와 국가개혁을 위해
모든 정성과 노력을 다 쏟아 붓겠습니다.
3.1운동 당시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역량을 결집했듯이
국민 여러분께서도 하나 된 마음으로 동참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 오후에 중동 순방외교를 떠납니다.
우리가 1970년대 중동 건설 붐으로 세계 석유파동을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토대를 마련했듯이,
제2의 중동 붐으로 제2의 경제부흥을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해 비즈니스 외교를 펼칠 것입니다.
열사의 사막에서 흘린 땀과 눈물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토대를 만들었듯이,
우리도 이제 그런 노력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1970년대, 석유위기를 중동 붐으로 오히려 기회로 만들었듯이
저는 우리 국민들께서 위기극복의 DNA를 다시 한 번 발휘한다면
‘대한민국의 재도약’이라는 제2의 성공신화를
반드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우리가 지금 걸어가는 이 길이
‘미래 대한민국을 위한 희망의 새 길’임을 확신하며
국민 여러분과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이제 다 같이 동행하여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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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뉴스
서울대의 상징, 교문 "뉴스 배경화면으로 서울대학교 정문 모습이 등장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배경이 서울대학교라는 것을 안다. 슬쩍 비치는 모습만으로 어느 학교인지 알 수 있는 대학은 별로 많지 않다. 서울대는 정문 디자인 하나로 다른 학교들은 누릴 수 없는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 최종학 교수) 이런 홍보효과는 서울대의 국제적 인지도 상승과 함께 이미 국경을 넘어서고 있다. 학교의 이니셜을 이용해 정문을 만드는 것은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서울대만의 개성이라는 것이 외국인들의 흔한 촌평이다. 서울대 상징으로 굳어진 '샤' 모양 정문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관악 캠퍼스 이전 후 3개 정문 디자인 놓고 구성원 투표 실시했지만 결론 못 내
1975년 관악으로 처음 이사를 온 이후 무려 4년 동안 서울대에는 정문이 없었다. 교수 9인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에서 현재 디자인 공동 구상
결국 서울대는 지극히 서울대스러운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로 했다. 수 많은 비난 속에 강행된 정문 공사
갑작스레 등장한 정문 디자인에 서울대인들은 혼란 속에 비난을 퍼부었다고 '대학신문'은 전한다. 1978년 2월 서울대 교문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3개월로 예상되었던 공사는 6개월이 걸렸고, 당시로서는 상당한 금액인 4천만원의 예산과 42.3톤의 철근이 투입된 결과였다. 교문의 위상을 보는 순간 수 많은 반대 여론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진리(VERITAS)를 찾는 열쇠를 상징하는 정문 30년간 서울대의 상징으로서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던 정문은 2006년 개교 60주년을 맞아 한 차례 변신을 선보였다. 낡은 표면에 도색을 새롭게 하고 밤에도 환하게 빛나도록 점등하여, 진리를 찾는 열쇠라는 상징적 의미가 더욱 빛을 발하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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