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강자의 중단된 도전
이스라엘은 미국의 절대적(絶對的)인 지원(支援)을 받는 국가지만 사실 건국 초기(建國初期)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967년 3차 중동전(中東戰) 당시까지 공군(空軍)이 보유(保有)한 장비(裝備)의 대부분이 프랑스제(製)였을 만큼 프랑스는 1970년대 이전까지 이스라엘에게 최대 무기 공급처(最大武器供給處)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국제 정세(國制政勢)의 변화(變化)와 중동 국가들의 압력(壓力)으로 말미암아 1969년 프랑스는 무기 금수(武器禁輸)를 단행(斷行)하게 되는데 이것은 커다란 전환점(轉換點)이 됩니다.
↑1950년대 이스라엘의 주력전투기였던 프랑스제 우라강
이는 [3]편에서 언급한 이란처럼 이스라엘이 전투기 개발에 나설 필요성(必要性)을 느끼게 만든 결정적 계기(決定的契機)가 되었습니다.
이미 주문(注文)하여 놓았던 미라주 5의 공급을 프랑스가 거부(拒否)하자 이스라엘은 설계도(設計圖)를 훔쳐 이를 데드 카피하는 초강수(超强首)를 두었습니다.
사실 이는 표면적(表面的)으로 알려진 이야기이고 이면(裡面)에는 아랍의 눈치를 보되 이스라엘과의 거래(去來)를 계속 유지(有志)하려는 프랑스의 꼼수가 개입(介入)된 결과(決科)입니다.
↑미라주 5는 이스라엘의 요청에 의해 개발되었으나 금수조치가 내려집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1971년 초도 비행(初度飛行)에 성공한 형식상 무허가(無許可) 이스라엘판 미라주 5가 네셔(Nesher)입니다.
한편의 스파이 드라마처럼 극적(劇的)으로 탄생(誕生)한 네셔는 배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73년에 욤키프르(Yom Kippur) 전쟁이 발발하자 즉시 실전(實戰)에 투입(投入)되었습니다.
아랍의 기습(奇襲)으로 시작된 4차 중동전에서 15기의 네셔가 작전 중 손실(損失)되었지만 상당수의 적기(敵機)와 지상 목표물(地上目標物)을 제거(除去)하는 뛰어난 전과(戰果)를 올렸습니다.
↑네셔는 무허가(?)로 복제된 이스라엘판 미라주 5입니다
실전 투입(實戰投入)으로 많은 자료(資料)를 얻게 되었고 이것은 후속 제작(後續製作)중인 전투기의 성능 향상(性能向上)에 사용(使用)되었습니다.
그렇게 탄생(誕生)한 걸작(傑作)이 크피르(Kfir)입니다. F-4 팬텀에 사용된 J-79 엔진을 이식(移植)하여 획기적(劃期的)으로 추력(推力)을 향상했으나 처음에는 안정성(安定性)이 떨어져 벽돌이라는 오명(汚名)을 들었습니다.
결국 카나드(canard, 프랑스어로 ‘오리’라는 뜻)는 비행기의 동체 앞부분에 위치한 작은 날개이다.
기동성을 좋게 해주기 때문에, 수호이 Su-35, 유로파이터 타이푼, 사브 JAS 39 그리펜 등의 전투기에서 많이 쓰고 있다.)
를 장착(裝着)하여 문제점(問題點)을 해결(解決)한 후 원판(原版)을 훨씬 능가(凌駕)하는 최강(最强)의 미라주 5가 되었고 5차 중동전(中東戰)에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크피르는 최강의 미라주 5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크피르의 등장(登場)으로 총 61기가 제작(製作)된 네셔는 생산(生産)이 중단(中斷)되었고 1977년 이스라엘 공군에서 퇴역(退役)이 이루어졌습니다.
소모량(消耗量)을 제외(制外)한 잔여(殘餘) 40기는 아르헨티나에 대거(Dagger)라는 이름으로 수출(輸出)이 되었는데, 이들은 1982년 발발(勃發)한 포클랜드(Falkland) 전쟁에서 맹활약(猛活躍)하면서 영국 해군의 주요 함정(艦艇)에 심각(深刻)한 타격(打擊)을 입히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네셔는 가장 짧은 시간에 여러 전장(戰場)에서 사용된 전투기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아르헨티나 공군의 대거, 포클랜드 전쟁에서 많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더불어 총 200기 이상 생산(生産) 된 것으로 추정(推定)되는 크피르는 1996년까지 이스라엘 공군(空軍)에서 활약했고 미 해군이 임차(賃借)하여 F-21 라이온(Lion)이라는 이름의 가상 적기(假像(敵機)로도 운용(運用)했을 만큼 평판(評判)이 좋았습니다.
퇴역(退役)한 일부는 콜롬비아(Colombia), 에콰도르(Ecuador), 스리랑카(Sri Lanka) 등이 구입(購入)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미라지 5를 복제(復除)하여 국산 전투기 개발에 짭짤한 성과(成果)를 내었지만 곧바로 한계(限界)에 부딪혔습니다.
↑아르헨티나 공군에서 가장 강력한 펀치력을 가진 기체인 A-4AR, OA-4AR '파이팅 호크'
포클랜드 전쟁 하면 아무래도 영국 함대를 향해 목숨을 건 저공 공격(低空攻擊)을 가했던 미라지나 스카이호크(Skyhawk) 조종사(操縱士)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물론 언론(言論)을 통해 유명해진 것은 시 해리어(Sea Harrier)나 영국해군 조종사들 혹은 에땅다르(Étendard)가 발사한 엑조세(Exocet)였겠지만... :)
방어장비(防禦裝備)도 제대로 없는 전투기에 현대전(現代戰)에는 어울리지 않는 폭탄(爆彈)을 매단 채 항속거리(航速距離)의 한계(限界)에 근접(近接)하는 먼 거리로 날아가 저공 공격을 해야 했던 아르헨니타 조종사들의 정신은, 어쩔 수 없었던 비효율적(非效率的)인 공격방식이라는 비판(批判)에도 불구하고 용맹(勇猛)함 만큼은 항공전사(航空戰史)에 길이 남을만 하다고 누구나 입을 모으게 됩니다.
↑콜롬비아 공군 소속 크피르
갈수록 고성능(高性能) 전투기의 개발이 어려워진다는 현실이 이스라엘에게도 예외(例外)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막대한 비용(費用)이 투입되는 전투기 개발 및 생산을 계속 추진할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미국제 엔진을 사용한 크피르도 처음에는 대외 수출(對外搜出)에 제동(製銅)이 걸렸을 만큼,
모든 것을 완전 국산화(完全國産化)하지 않는 한 산업(産業)으로써 전투기 생산을 유지(有支)한다는 것이 이스라엘처럼 작은 나라는 힘들었고 사실 불가능(不可能)했습니다.
↑양산에는 실패한 라비
더구나 미국이 공급(供給)한 F-15, F-16에 비해 자체 개발(自體開發)한 전투기의 성능이 미흡(未洽)했던 것도 고민(苦悶)이었습니다. 결국 야심(野心)차게 추진(推進)하여 1986년 초도 비행(初度飛行)에 성공(成公)한 차세대(此世代) 전투기 라비(Lavi)도 이듬해 취소(取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견제(牽制)에 나선 미국을 개발에 참여(參與)시켰지만 이런 이유로 더 이상 프로젝트를 진행(進行)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더 이상 이스라엘의 전투기 자체 개발은 없습니다.